전편 : [로열 아스널. 당신은 저의 소유입니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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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셨어요, 주인님?"


하루의 시작은 거친 환영 인사로 시작했다.

눈을 뜨자, 옆에 포이가 달라붙어서 그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포이."

"냐앙~"

"일어나야 하니까 죄송하지만, 비켜주세요."

"아잉 조금만 더~"

".....두 분은 어떤가요?"


일어나는 걸 포기하고 물었다.

포이가 그에게 꼭 달라붙으며 목덜미 냄새를 맡았다.


"잘 지내고 있다던데요? 분홍 머리 쪽은 무뚝뚝한데, 갈색 머리 쪽은 씩씩하다고 해요."

"....씩씩한 척하는 걸 수도 있어요. 지휘관 개체는 대부분 냉정하니까."

"그러면 결국 씩씩한 것 아니다냐?"

"......"


잠깐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씩씩한 척을 한다면, 씩씩한 걸까?


"....심오하네요."

"포이는 똑똑하니까요."

"그럼 똑똑한 포이 씨. 이제 좀 비켜주세요."

"냐아~"


포이가 떨어지기 싫다고 버둥거리지만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밀어냈다.


"어젯밤에는 포이를 예뻐해주지도 않고, 너무하시네요."

"미안해요, 바빠서."

"그럼 오늘 밤에는 예뻐해주시는 거죠?"


그는 옅게 웃었다.


"네. 오늘 밤에."

"...기대하겠다냐, 주인님~"


포이가 자기 가슴을 주무르며 젖꼭지를 핥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랫도리가 강하게 반응했지만.....

할 일이 있었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냐아~"


포이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아 왜 오렌지 쥬스냐고!!"


셔츠를 입으며 밖으로 나가자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귀를 울리는 듯한 고주파.

드라큐리나의 목소리였다.


"오늘 식단이 오렌지 쥬스인데요오....."

"나는 토마토! 토마토 주스라고 했잖아!"

"아, 으, 그, 그게...."


식당 쪽을 슬쩍 엿보니 식사 자리에서 문제가 생겼다.

드라큐리나가 꼬장을 부리고 있었다.


"정해진 식단이라서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어요...."

"그럼 쟤는!"


드라큐리나가 가리킨 건 키르케였다.


"식사 시간에는 조용히 하셔야죠~"


그녀가 식혜를 마시고 있었다.


"쟨 식혜를 주고, 내 요구는 개똥으로 듣는 거야?"

"아, 아니에요... 대체 언제 식혜를 가져가셨지....?"

"어?"

"히히히."

"멋대로 훔친 거였어....?"

"이, 이리 주세요, 키르케 씨. 마음대로 먹으면 안 돼요!"

"요호호호! 요를레히 회피하기!!"

"......."


그는 식당을 가만히 바라본다.

언제나처럼의 하루였다.


'이상 없군.'


그렇게 생각하며 식당 한쪽에 앉은 두 여자를 본다.

아스널과 에밀리.

서로 한쪽 눈을 잃은, 어떻게 보면 자매, 어떻게 보면 사촌지간처럼 보이는 여성들.

두 사람은 오늘이 이곳에서의 첫 식사였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조용히 해주겠나?"


먼지가 풀풀 날리자 참다 못한 아스널이 말했다.

에밀리가 식사를 멈추고 안대를 꾹 누르고 있었다.

소음 때문에 상처가 울린 것이다.


"넌 누구야?"

"로열 아스널이다."

"이름을 물은 건 맞는데, 그 뒤에 뭐 더 없어?"

".....이 아이의 보모 노릇을 하고 있지."

"어, 음, 그래."

"조용한 아가씨네~ 언니랑 식혜 한 잔 하실까요오~?"


키르케가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말을 건다.

에밀리는 스프를 떠먹으려다가 멍한 시선으로 키르케를 응시했다.


"시케?"

"어머, 요즘 학생은 식혜를 모르나아~?"

".....학생?"

"미안하지만 이 아이는 기억을 잃었다. 대부분의 단어 뜻도 함께."


아스널이 대신 대답했다.


"......네, 실례했어요."


키르케가 얌전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포티아가 그 틈에 식혜를 빼앗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


"저, 맛은 괜찮으신가요...?"


포티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맛이 어떻지, 에밀리?"

"맛?"

".....이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묻는 거다."


소녀가 한참을 고민한다.


"좋아져."

"아주 맛있다는군."

"아, 네...! 감사합니다. 저, 저는 포티아에요. 이쪽은 드라큐리나 씨. 저쪽은 키르케 씨."

"나는 로열 아스널, 이쪽은 에밀리다."

"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내가 할 말이군, 앞으로 잘 부탁한다."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대화와 행동만으로도 에밀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으, 으흠! 크흠...! 저기, 아스널? 그리고 에밀리. 뭐 도와줄 게 있으면 말해. 이래뵈도 여기서는 고참이니까."


드라큐리나가 말했다.


"맞아요! 저는 여기 최고참이라구요?"

"쟨 말년 병장 같은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없는 셈치면 돼."

"뭐 물어볼 게 있으면 우리한테 물어봐. 도울 일 있으면 말하고."

"너희는 어쩌다 여기 오게 됐지?"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다 비슷하다고 보면 돼."


드라큐리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옷을 살짝 여몄다.

그녀의 왼쪽 가슴에는 거대한 흉터가 있었다.


"....알겠다."


아스널은 흉터만 보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도련님."


옆에서 소녀가 다가왔다.

누군가 보니 아스널을 안내해줬던 대원이었다.

지금은 그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때 호드 부대였던 대원이다.


"케시크 씨."

"식사 하러 오셨어요?"

"예."

"저도 이제 막 먹으려고 왔어요, 가, 같이 식사 하실래요?"


그는 케시크의 목덜미와 겨드랑이를 본다.

땀에 젖어 있었다.


"또 악몽을 꾸셨나요?"

"...네, 조금...."


케시크가 쓰게 웃었다.


"같이 먹죠."


두 사람이 식탁으로 간다.


"오하요~!"

"안녕하세요, 도, 도련님!"

"....좋은 아침이다."


바이오로이드들이 각자 인사를 건넸다.

그가 앉자 대원들이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마구 토해낸다.


"그리고 보니 내 토마토 주스는 발주 안 넣은 거야?"
"식혜로는 좀 부족한데, 역시 보드카는 안 될까요?"

"주인님. 그, 주방 물품 중 하나가..."

"....그리고 보니 칸 대장님 피규어가 사전예약하던데.... 안 될까요...?"

"다 주문하세요. 보드카는 말고."

"너무해."

"무알콜 맥주라면 괜찮습니다."

"그럼 그걸로."


언제나 같은 하루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긋한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 정도.


"......"


아스널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오늘은 교단으로 갑니다."


그가 모두의 앞에서 발표했다.


"교단이요?"

"그 치녀들 있는 곳? 거기는 왜?"

"낙오자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저번부터 느낀 건데 그 소식은 대체 어떻게 들은 거야?"


드라큐리나가 아스널을 슬쩍 봤다.


"군부 쪽 정보도 받지 않았어?"

"영업비밀입니다. 다음 질문."

"질 문이면 보지 주름을 말하는 거죠? 어머나 남사스러워라."


키르케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베베 꼬았다.


"와, 진짜 역겹...."

"훗."


다들 혀를 내두르는 와중, 아스널이 피식 웃었다.

독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키르케만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질.... 또 여쭤볼 건 없습니까?"


그는 말을 바꿨다.


"천사 중 어느 쪽인가요?"


케시크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가장 강한 쪽."

"그 말씀은....."

"....전기에 지져지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케시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포획 임무인가. 나도 가겠다."


아스널이 발언했다.


"좀 더 쉬셔도 됩니다."

"쉬면 몸이 망가진다. 밥값은 해야지."

"에밀리 씨는?"

"기억을 잃었을 뿐, 혼자서 못 지낼 정도는 아니다."

"우리가 돌봐주고 있을게!"


드라큐리나가 외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스널 씨, 케시크 씨. 그리고 포이와 저. 이렇게 넷이 가죠. 그런데 아스널 씨. 지금 전투 모듈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

"포이."

"냐아~"


포이는 한쪽 구석에서 듣고 있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안내해주세요."

"알겠댜나."







"어디로 가는 거지?"

"따라오라냐~"


포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섰다.

아스널은 복도를 걸으며 좌우를 훑는다.

창문이 없다.


'모든 인원이 기본적인 생활을 지하에서 한다.'


인원은 많지 않다.

그리고 전원이 어디에서 죽은 것, 또는 폐기된 것으로 처리된 인원이다.

지금 앞에서 걷고 있는 고양이도 주인에게 너무 달라붙는 것이 결함이 되어 전량 폐기됐었다.

그리고 그녀 본인도 죽음을 위장해 이곳에 왔다.


'폐쇄적인 장소에 들켜서는 안 되는 인원들.'


구성원들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으나, 환경은 묵직했다.

게다가 누군가 질문-보지 주름이라니.-했듯, 도련님이라 불리는 자는 알 수 없는 정보를 얻어냈다.


띵~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것은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더 지하로 내려갔다.


"....이 지하에 누가 있지?"

"말할 수 없다냐."

"고양이 말투는 컨셉인가?"

"그렇다냐~"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이는군."

"....그렇다냐~"

"너에 대해 물어봐도 되겠나?"


엘리베이터가 멈추지 않는다. 층수는 표시되지 않으나 상당히 오래 내려가고 있었다.


"...주인님은 포이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세요."

"그 말은?"

"발정 나도 화내지 않고 잘 받아주시죠."

"그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얘기인가?"

"안 될 게 있다냐?"

"흐음."


안 될 건 없다.

하기야. 목숨을 살려주고 결함도 받아들여줬는데 첫눈에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오~ 손님?"


실루엣이 보였다.

작은 소녀의 몸인데 얼굴은 상체 만큼이나 컸다.

그게 가면이라는 건 3초 정도 뒤늦게 떠올랐다.

소녀의 등에서는 집게 손가락을 가진 기계가 뻗어 나와 가면을 벗겼다.


".....?"


아스널은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있지?"
"언니, 날 알아?"


세상에 단 10기 정도밖에 제작되지 않은 특수모델.

특별형 독립 기술 개발용 바이오로이드. 


".....닥터."


전날에는 어느 정도 비밀은 있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다.


저건 돈이 많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다.

국가 단위에서 관리하고 있는 특수개체다.

그걸 소유하고 있다니.....

그를 데려온 남자는 단순한 도련님이 아니다.


'대체 정체가 뭐지?'


"아니, 난 닥터가 아니야."


소녀가 다시 가면을 쓴다.

장난감처럼 생긴 판때기의 뒤에 서자, 소녀의 목소리 톤이 살짝 변했다.


"나는 무시무시한 닥터닥터맨이다...!"

"....."


소녀는 무시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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