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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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는 발키리가 준비해준 홍차를 음미하며 업무를 해치우고 있었다.


역시 내 부관이야. 오늘 홍차도 아주 훌륭한걸?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발키리는 레오나가 한 손에 들고있던 서류가 유독 눈에 띄기 시작했다.


...라붕씨와의 모의전 결과로군요.


그래. 최근에 나랑 붙었던 그 결과야.



단 한판. 레오나와 라붕이가 맞붙었던 그 모의전의 종합결과가 레오나의 오른손에 들려있었다.


어떠셨나요? 그토록 기대하셨던 라붕씨와의 싸움은.


응? 기대라니?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거든요. 대장, 드물게도 엄청 흥미를 보이셨으니까.


...나 참. 우리 부관님 눈은 못속인다니까.


당연하죠. 함께 지낸 시간이 있는걸요.



언뜻 무심한 듯한 언행의 레오나였으나, 그녀를 오랜 시간 보좌했던 발키리는 자신의 상관이 라붕이와의 모의전 결과에 대해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걔를 부관으로서 보조했던 소감은 어땠어?



레오나는 당시에 그의 옆에서 전투지휘를 도왔던 당사자인 발키리에게 감상을 물었다.


음, 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더군요. 경험이 부족한 일반인이신걸 제외하고 보더라도, 그 분이 갖고 있는 자질 자체는 확실히 다른 분들께서도 눈여겨 보실 정도라는걸 알았습니다.



라붕이 본인은 대부분 옆의 발키리가 다 했다, 라는 말만 반복하며 그 이상의 감상이나 발언은 자제하는 모습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그의 지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던 발키리는 어째서 레오나를 비롯한 수뇌부가 그를 눈여겨보는지 깨달았다.


설마,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과감한 방식을 사용하리라고는 나도 예상못했는데.


아마 그것도 전부 계산하고서 실행하신거겠죠.

그 철혈을 상대로,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점을 노리고서 준비한 한 방...


..."사령관"인 본인을, 미끼로 앞세워서 빈틈을 노리는 작전이라니, 얼마나 무식한 방법인지...



아무리 속내가 뻔히 보이는 술책이라지만, 다른 것도 아닌 "사령관인 자신"을 장기말로 사용한다는 어이없는 방식은 그 천하의 레오나라고 해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저도 순간 잘못봤나 싶었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전술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시다니.



너무나도 지나친 리스크를 안고있는 도박이었기에 발키리는 보다 효율적이고 부담이 적은 방법을 건의 했지만...


'다른 별동대를 미끼로 활용한다는 대체법을 건의드렸지만, 그 때 라붕씨가 보여줬던 그 표정...'



당신 대신 부하들을 사용해라.

이러한 조언을 "사령관"인 그에게 건냈을때 그의 얼굴에서 조용한 분노라는 감정을 감지한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사령관"으로서 지휘에 임할 때의 모습은, 평소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순간 실언을 내뱉었을 때, 발키리는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뭐, 결국은 이 나에게 미치지 못했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야.


그래도, 막상 당하시니까 당황하던 기색이 역력하시던데요? 그 당시 대장의 얼굴 다 기억한다구요?


..?! 그, 그런걸 일일이 말하지 말라고!


후훗...


어휴, 처음에는 그냥 정석대로 나오나 싶었는데, 설마 뒤에서 그런 미친짓이나 꾸미고 있었을 줄은...

심지어 그런 수를 쓴 이유를 물었을때 기억해?!

답변 내용도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사령관"인 자신이 미끼가 되는것이, 부하들의 사망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거야. "사령관"인 자신이 죽으면, 부하들의 생존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거냐고.


본인에게 있어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겠죠. 그러한 길 외에는, 떠오르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하셨으니까요.



...아, 그러고보니.


머리속에서 불현듯 과거의 일이 떠오른 발키리는 들고 있던 찻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예전에, 사령관 각하께서도 비슷한 행동을 하신적이 있었죠.


비슷한 일? 사령관이?


네. 각하께서 오르카에 합류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있었던 일이에요.

그 당시엔 마리 대장님도 안계셨던, 아주 초창기에 있었던...


마리가 없었던 시기라면... 엄청 예전이었나보네.


상위 연결체 스토커를 솎아내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스토커의 사정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저격을 위해 무방비해진 그 빈틈을 별동대가 요격...

레오나 대장님이랑 겨뤘던 모의전하고 어느 정도는 흡사한 환경이었죠.



.......



거의 비어버린 레오나의 찻잔을 다시 채우는 발키리는 자신이 느낀 솔직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확실히, 대장님이나 알렉산드라 양 같은 훌륭한 교육자들이 세심하게 키워내실 수만 있다면... 그 분은 분명 진가를 발휘하실 날이 오겠죠.

다만...


...그래. 너도 눈치챈 모양이네.


.....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아마, 그 점에 대한 근본적인 무언가... 그 분을 옭아매고 있는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할까요.

유독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건...


부하들의 희생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어. 그것도 진심으로 말이야.

어찌되었든 결국은 모의전, "가짜"에 불과해.

녀석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분명, 이전 14판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긴 했었지만, 이번에 자신과 맞붙었을 때의 그 모습...


진심으로 두려워 했었지. 패배라는 결과가 아닌 아군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설령 그가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그 눈에서 동요와 분노가 지워지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승리를 향하는 길 아래에, 자신이 지휘했던 부하들의 시체가 가득할테니까.


확실히, 메이가 지적한 대로야. 결단력, 용기... 강단이 부족해.

아니, 너무 유약하고 여리다는게 오히려 알맞으려나.



너무나도 무르고 너무나도 유약하기에 부하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일에는 부적합하다.

그저 한없이 상냥한 성격이,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부하들을 전멸로 내몰고 말았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괴로워한건가. 고작 모의전에 불과한데.


역시... 관계가 있는걸까요? 그 분이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비밀과.


....글쎄. 그건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 녀석이 말해주지 않는 한, 우린 절대로 알 길이 없을테니까.



안타깝지만, 이러한 여리고 무른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더더욱 그는 지휘와는 적합하지 않다.

그가 내면에 품고있는 적성과 가능성은 자신을 비롯한 수뇌부들도 눈여겨볼 정도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연약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지. 부하들을 전쟁으로 내보내는 행위 그 자체를.



승리냐 패배냐.

그러한 결과가 가져오는 영향이나 미래보다는, 그 결과로 향하는 도중 발생하는 과정을 두려워 하고 있다. 그렇기에 충분한 잠재능력이 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숨겨진 재능을 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그 정신은 그것을 버티는 것조차도 버거울 것이 분명하다.


...........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권유해도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본인은... 지휘라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 그거면 충분해.



처음은 그저, 그의 재능에 호기심이 생겨서 시작한 모의전에 불과했다.

그렇게 시작된 사소한 대결일 뿐이었지만.


'너라는 남자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네.'



그가 부사령관의 길을 걷든, 아니면 다른 일을 맡게 되든... 어느 쪽의 길을 선택하든 자신을 비롯한 모두, 그것을 존중할 것이다.


부사령관이 되겠다고 다짐한다면, 전력을 다하여 그를 키워낼 것이고, 다륻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런 상냥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진 너라면... 잘 해낼테니까.'



그러니 기다리자.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바보가 마음을 다 잡고서 결심에 이르를 때까지.


...기대되는걸. 너의 몸이 다 낫는 그 날이.



그의 몸이 다 낫게 될 날을, 진정으로 휩노스병을 극복하고 온전한 컨디션을 되찾은 그와 다시 한번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날을... 철혈의 레오나는 마음 속 깊이 기대했다.


























밥 줘.



"........"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작전에서 복귀한 장화와 천아는 책상에 발을 걸치고서 껄렁껄렁한 자세로 먹을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뭐하니?"


아이 씨..! 배고파 븅신아! 야간 수색하고 아침에 복귀하면 얼마나 출출한데!


거 눈치것 알아서좀 먹을거나 꺼내오지?


어... 주는김에 우리 것도 좀 부탁한다. 나도 배가 고파서...


아, 참고로 야간 근무자 식단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긴한데, 식당까지 가는게 귀찮아서 그냥 여기로 직행했다.

그러니 먹을것좀.


결식은 금지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식당가야지... 그보다 쉐이드 넌 밥 안먹잖아."


음? 라붕씨, 설마 쉐이드를 위한 리튬 이온 배터리를 준비해놓지 않은거냐?


저런... 쉐이드가 많이 실망할거다.



"아니, 뜬금없이 입원실에다 리튬 이온 배터리 같은걸 준비해 놓는게 더 이상하지!"


기대도 안했습니다.



"아니 이 새끼가??"


야, 제육 남은거 있냐?



"그런게 있겠냐!!"


아 밥 갖고 오라고 븅신아!!!



"ㅗ"


.......???

(스르륵--)



"자자잠깐, 임마들 왜 병실에서 칼을 꺼ㄴ.. 어어어 그런거 들고 가까이 오지마라 어어어어...!"


...또 시작이군.


아 밥 줘 씨발!!!



"아 알았다고!! 밥 줄게 이년들아! 그러니까 제발 칼좀 집어넣어라 좀...!!"


....새끼. 진작에 내놓을것이지.



양아치 새끼들...



"....근데 먹을거라고 해봐야 먹다남긴 냉동이랑 엿밖에 없는데 괜찮겠어?"


야! 누나가 배를 쫄쫄 굶고왔는데, 넌 고작 내미는게 잔반이랑 엿밖에 없냐?!



"아니 그러니까 밥땡기면 식당을 가라니까!"


아 그러니까 그게 귀찮다고 븅신아!



"무, 무슨..!"


너희들, 환자 방에서 너무 깽판치지 마라.


가뜩이나 아픈 녀석에게 너무 민폐끼치는거 아니다.



엄숙한 표정으로 둘에게 훈계하는 바르그의 양손은 엿의 비닐을 벗기느라 매우 분주했다.


'...그러는 지도 엿까먹느라 바쁘구만.'


그러고보니, 요즘 스틸라인 쪽이 매우 소란스럽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아... 그건 말이지.



레이스는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듣고 봐온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 소대에서, 2급 CEOI를 분실했다더군.

심지어... 사본도 아니고 원본을.


저런...



그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 팬텀은 그저 말없이 속으로 조의를 표했다.



"아 맞아 그거! 그때 애들 난리도 아니었는데, 비문은 잘 찾았데??"


........


..........



"저런..."


안그래도 나도 걔네 지나가듯이 봤는데, 지금 완전 초상집 차렸던데?


피 같은 보안문서를, 그것도 원본을 분실한 대형사고다.

그 불굴의 마리가 이 건에 대해서 절대 편하게 넘어갈 일은 없겠지.


군에게 있어서 보안은 생명입니다. 엄벌 필요.



"그때 하베트롯과 소대 애들의 창백한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네..."


그래서, 걔네는 지금 어떻게 됬는데?


........


......(절레절레)


어우...



"...걔네 무사한거지?"


음, 역시 당분간은 만나기 힘들것 같다.



"아이고..."



이미 그 소대원들의 현 상황부터 결말까지, 뇌내에서 자동재생 된 라붕이는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위로라도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야. 그러고보니까, 너 이번엔 레오나 대장이랑 모의전 떳다면서?

결과 어떻게 됬어?! 이번엔 잘 싸웠냐?


퍽이나 잘 싸우겠네. 초급AI도 겨우 상대하는 놈이 지휘관 상대로 씨알이나 먹히겠냐?



"ㅇㅇ. 장화 말대로 이번에도 탈탈 털렸지."


하긴, 다른 녀석도 아니고 그 철혈의 레오나 상대로는 솔직히 어림도 없겠네.


그 철혈의 레오나를 상대로 승기가 보장되는 인물은 이 오르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일반인인 너의 패배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니 신경쓰지마라.



"응. 나도 알고있어. 근데 확실히 지휘관은 뭔가 다르긴 하더라."


철혈과의 대결로부터 무언가 느낀 점이 많았나보군. 구체적으로 무엇이 인상깊었지?



"으음... 역시 전장을 주도하는 힘이겠지? 내가 상대한 초급AI와는 행동 방식부터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나같은 초짜라도 그것만큼은 알겠더라고. 모든 전장은 이미 이 사람 손바닥 위에 장악된지 오래라는거."


호오, 벌써 그런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에 도달했다는 건가.



"도달은 무슨, 발키리 씨가 옆에서 도와준게 전부 무색할 정도로 탈탈 털렸구만 뭐."


그래서, 이번 레오나 대장과의 모의전도 10판 넘게 한거냐?



"아니. 딱 한번만 겨뤘어. ...사실 난 한번 더 재도전 하고 싶어서 말을 꺼내보긴 했는데, 레오나 대장님이 난 병실 밖에 너무 오래있으면 위험하다면서 날 돌려보냈거든."


라붕씨는 아직 중환자에 속하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은 피해야지.


재도전이라니, 우리 차기 부사령관님께서 어지간히도 불붙으셨나봐?



"그냥, 뭔가 아쉽기도 했으니ㄲ... 아니, 부사령관 같은거 안한다고!"


으음... 그래도 아쉽다. 라붕씨도 가슴팍에 파란 명찰 박힌 정복 입으면 분명 잘 어울릴텐데...



"그러니까... 난 그런거 전혀 생각없ㄷ...


파란색...?"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오자마자 얼굴색이 하얘진 라붕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팬텀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응? 라붕씨. 갑자기 얼굴색이 창백해졌는데, 혹시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거냐?



"아, 아니... 괜찮아괜찮아! 하하하...!"



그러고보니, 사령관이 가끔 업무시간에 입고 있던 정복의 명찰 색깔이 아마...



".....주황..."


응? 주... 뭐라고?



"....."



여기서도 파래지는 일 만큼은 무조건 피하자.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피하자.



"우으으으..."

(부들부들)


...???












모두가 한바탕 난리피우고 난 뒤의 입원실에서, 홀로남겨진 라붕이는 모두가 먹어치운 냉동식품 비닐 뒷정리를 마치고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휴, 아예 파티를 벌이고 갔네."


혼자 있는 방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지막 쓰레기도 정리를 끝내고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


오늘도, 대충 마무리된건가.


"내일도... 병실 밖으로 외출 가능할까."


오늘날 까지도 어떻게든 무사히 잘 넘기며 버텨올 수 있었다. 아마 아자즈와 이터니티가 만들어준 이 관....에 내장된 신경계 안정화기기 덕분일까.


"그 애들 뿐만이 아니라, 닥터도 매일 힘써주고 있으니까."


매일 아침일찍 찾아와 정기적으로 검진을 도맡아 주면서 나의 몸을 위한 맟춤형 약물로서, 신경안정제가 함유되어 있는 진정제를 투여받은 뒤로 신체의 안정성은 매우 크게 호전될 수 있었다.


"내 신체 재건준비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을텐데, 그런데도 피곤한 티 하나 안내고 활기차게 대해주니까."


이렇게까지 돌봐주니, 면목이 없을 뿐이다.


"......나갈까."


오늘 팬텀 일행이랑, 엠하 애들이랑은 봤으니까, 이제는 스틸라인... 아니아니, 얘네는 지금 상황 많이 안좋지. 그럼 호드 숙소라도...


"아, 얘네도 지금 임무나가서 없구나."


한창 야외작전 수행중이라면, 아마 지금은 분명히 그 사람도 정신없겠지.


"당연히 사령관도... 바쁘겠지. 한창 현장지휘중 일테니까."


그럼 지금 사령관실까지 찾아가는건 역시 민폐려나.


".......지휘 말이지."


그 사람은 현실에서 과연 어떻게 지휘할까.

게임속의 성의없는 텍스트와 스크립트로 대충 짜여진 생략이 아니라, 진짜 실시간으로 모두의 목숨을 구하고 있을것이다.


"......"


조금은, 아주 조금은...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성 덕분에 금새 단념할 수 있었다.


"난 그럴 능력이 안돼니까, 분명 다치겠지. 아니면...... 전부 죽던가."


그걸 알기에 전부 마다하고 내려놓고 싶었다.

내가 괜히 끼어들면, 너무 간섭해버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으니까.


"지켜보는 것 정도면, 조용히 응원해 주는것 정도면 충분하겠지."




누굴 응원한다고?



"...?!!"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급히 일어나며 앞을 바라보니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천아가 허리를 숙이며 서 있었다.



"너... 언제 들어온거야?"


나? 음... 그러니까,


난 그럴 능력이 안돼니까, 분명 다치겠지. 아니면...... 전부 죽던가.


이 지랄 하기 전부터 있었는데?



"...진작부터 있었단 거잖아. 차라리 말을 해주던가."


그러려고 했는데, 왠일로 우리 모지리 새끼가 분위기 잡고 있길래 관전좀 했지~



"분위기는 개뿔, 그냥 피곤해서 누워있는거야."


네네~ 그러시겠죠~ "부사령관"님?



"......."


그냥 애들 말대로 까짓거 시도라도 해보라니까?

 니 주위에 너 밀어주고 도와줄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뭘 그렇게 뜸들이냐? 답답하게시리.



"가볍게 시도했다가 가볍게 포기할만한 자리가 아니라는건 너도 잘 알잖아. 그건 니들 목숨이 걸린 자리라고."


.......



잠시 침묵을 지킨 천아는 침대로 천천히 걸어와 바로 옆자리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모의전 결과 때문에 그래?



"........"


한번도 제대로 못이겨봐서, 그게 마음에 걸려서 도저히 "진짜" 시도해볼 엄두가 안나서 그러는거야?



"...딱히 그런 이유같은걸로 이러는건 아ㄴ..."


너무 몰입하지마.



"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건 "진짜"가 아니야.

그냥... "게임"좀 했다고 생각해.



"........"


아니면... 관계라도 있는거야? 니 과거랑.



"...과거 말이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느낌이다.



"더 이상 의미없거든. 이제는... 안 나오니까."


응?



"늘... 꿈속에서 나왔는데, 더 이상은 안 나오거든. 그러니까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고 해야하나."


요즘도, 계속 악몽을 꾸는거야?



"...아니. 이제는 안 꿔."



정확히는, 꾸고 싶어도 이제는 못꾸는게 맞을까.

몇번을 다시 잠들어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괴로운 악몽같은건 아무것도 안꾸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이제 걱정 안해도 돼."


.......

그래. 그럼 다행이고.



짧은 문답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믿어도 괜찮을 것이라 느낀 천아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나저나, 천아 너 혼자서 갑자기 어쩐일이야?"


응?



"그냥... 갑자기 혼자서 다시 찾아왔길래 궁금해서. 칼이라도 떨구고 갔냐?"


아... 이거?

(스르륵--)



"..!!! 야야..!! 말도 없이 눈 앞에다가 그런거 들이밀지마..!"


푸훕..! 새끼, 남자가 되어가지고 괜히 쫄기나 하고ㅋ



"면상에다 칼끝 들이대면서 할 소리냐!"


히히히...



장난스럽게 웃으며 칼을 소매속에 도로 수납한 천아는 허공에 발을 흔들거리며 대답했다.


스카이나이츠 애들이 귀뜸해줘서 데리러 온거야.



"스카이나이츠 애들? 걔네가 갑자기 왜?"



갑자기 스카이나이츠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해가 가질 않았던 그에게 답을 들려주었다.


걔네 간만에 과자파티 한다고 우리한테도 권하더라. 몽구스 애들이랑 시티가드 애들도 같이 한다던데, 자연스럽게 너도 같이 놀자는 얘기도 나왔거든.

그래서 이 누나가 특별히 데리러 왔지~!



"...아..."


그래서 온거야. 너 몸 괜찮으면 데려갈라고.

어때? 갈 수 있겠어? 걷기 힘들면 차라리 애들 싹 다 불러서 여기서 놀아도 상관없고~



"아냐아냐. 어차피 이미 준비 다 해놨을텐데, 내가 가는게 낫지. 요즘은 몸 상태도 엄청 좋으니까 걱정 안해도 돼."


정말 괜찮은거 맞아? 너 여기 벗어나면 안됀다며.



"뭐, 예전에는 확실히 그랬지, 근데 이제 지금은 괜찮아. 이젠 밖에서 놀아도 크게 문제 없거든.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아."


......그래.



그렇다면 다음은 이제 어떻게 할지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장화랑 바르그도 같이 가야지. 우리 둘이 오는거 기다리고 있다면서?"


..........



"장화 얘 또 짜증낼라. 그러니까 걔 잔소리 듣기전에 어서 가자 천아야."


...............


...그래. 빨리 가자.



웃으며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손을 잡아보았다.


같이 가자. 둘이서.



"...응."


혹시 모르니까, 꼭 붙어있어.

...너 혼자서 너무 멀리가면 안된다?



그저 조용히 손을 잡고서,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함께 걸었다.

행여나 이 바보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라도 언제든지 붙잡아 받쳐줄수 있도록 가까이 붙어 모두가 기다리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꼬옥 잡은 그 손은 늘 차가웠던 자신의 손보다 차가웠다.
































...이게 뭐야.



닥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건... 말이 안돼잖아..! 라붕이 오빠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고..! 그럼 이런 결과가 나오면 안돼잖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벽을 마주하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경우의 수 였기에 천하의 닥터조차도 동요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떨리는 손으로 패널을 집어 긴급회선망에 접속해 사령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닥터? 이런 시간에 갑자기 왜...)


오빠.



가라앉은 목소리가 질문을 가로막은 것을 들은 사령관은 무언가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목소리... 무슨 일이 있었구나.)


.......



닥터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고 차분하게 사령관에게 부탁했다.


당장 지휘관 언니들 소집해줘. 긴급회의야.

아니, 지휘관 뿐만 아니라 수뇌부급 대원들 전부 대회의실로 소집해줘. 지금 당장.



(긴급회의라니, 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 주위에 대규모 철충 무리라도 관측된거야? 하지만 그런 보고는 전ㅎ...)


라붕이 오빠.



(...?!!)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사령관도 마찬가지로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라붕씨...가, 갑자기 왜? 라붕씨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거야?)


.......



(...닥터..?)


이야기는 나중에, 우선 모두를 소집해줘.



닥터는 자료를 챙긴 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줘 오빠. 회의실에서 보자.



(닥터..! 잠깐ㅁ...)


<삐빅>



빠른 손놀림으로 통신을 종료하고 먼저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온거지? 이래가지곤...



아무리 준비해도 구할 수 없다.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 가로막혔으니까.


......



한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둘째 오빠와 영원히 작별하게 될테니까.



초조한 발걸음이 연구동의 통로를 울리며 서서히 멀어져갔다.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랑 댓글좀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