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들





티아멧의 담담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보고가 간이 통신 채널을 타고 울려퍼졌다. 티아멧의 말을 뒷받침하듯, 옆에 딸린 카메라 드론이 광산 한구석에서 게걸스럽게 알터리움을 포식하는 콜로서스의 모습을 HQ에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시작할까요?"


조심스러운 티아멧의 확인 요청이 한 바퀴 맴돌고,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사령관은 그 잠시 동안, 이 기회를 포착하기까지 들인 것들을 헤아려보았다.


이 침투 루트를 개척하고 정예 병력을 철충 본대에 들키지 않도록 잠입시키기까지 들인 자원과 시간. 콜로서스가 알터리움을 섭취해 알타이트로 변환하는 가장 무방비한 타이밍을 알아내기 위해 거미줄처럼 깔아 놓았던 첩보망과 정찰 병력. 콜로서스의 외피 장갑을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물질을 시험해 본 기술진들까지...


하지만, 저울의 반대편에 달려 있을 지도 모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대원들의 목숨이었다. 다음 사령관의 한 마디가 지금까지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불확실한 위험에 노출될 지도 모르는 대원들을 확실하게 벗어나게 할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공을 들여서 준비한 작전인데도, 결행 직전에 사령관은 다시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음에도.


"...작전 시작한다. 모두 내 신호에 따라줘."


무거우면서도 신중한 사령관의 결단에, 대원들 모두가 마음을 다잡았다.


"5."


커맨드 프레임, Queen's mercy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전개되었고, 레오나의 손가락이 P86G 피스톨의 방아쇠에 걸렸다.


"4."


짧게 명멸하는 카두세우스의 부팅 상태를 확인하며, 오렌지에이드는 오른손의 컨트롤 글러브를 꽉 잡아당겨 손 전체에 빈틈없이 밀착시켰다.


"3."


이 구성원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작전이 익숙하지 않을 에라토는, 침을 꿀꺽 삼키며 파르테노페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초조하게 인이어를 매만졌다.


"2."


스카디의 웨어러블 컴퓨터가 회로를 따라 빛났다. 물론, 그 아래에 숨김없이 드러난 탄탄한 근육도 광택을 뽐내며 섬뜩하게 실룩였다.


"1."


티아멧의 허벅지에서 더크가 뽑혀나왔다.


캉!


콜로서스의 몸에서 비어져 나온 알타이트와 외골격 사이에 빨려들어가듯 박힌 작은 단검. 콜로서스의 거체에 비하면 가벼운 기별이었지만, 이미 이변을 감지하고 알터리움 흡수를 중단하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때 가장 취약해지는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나오는 발빠른 대응이었다. 하지만, 이미 티아멧의 몸은 쏘아진 더크와 같은 속도로 콜로서스에게 도달해 있었다.


퍼걱!


더크가 파고든 틈새를 그대로 따라 들어가는 찌르기.


빠각!


꽂아 넣은 채로, 틈새를 억지로 비집어 여는 올려베기.


서컥!


빼낸 블레이드를 축으로 추진력을 실으며, 벌어진 균열을 따라 깔끔하게 도려내는 내려베기까지.


"쿠어어어어엉!!!"


미미한 상처를 입은 거신의 분노가 산을 울리고 대기를 뒤흔들었다. 가까이에 있으면 음파 병기에 직격당한 것과 다름 없이 코피를 쏟고 기절할 정도의 출력이었지만, 티아멧은 이미 음속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속도로 범위 밖으로 이탈해 있었다. 물론, 위협과 반격의 의미 뿐만 아니라 조금 먼 거리에 있을 동족들에게 내리는 경보까지 포함된 울림이었다. 허나, 이미 대 전자전용 대공 병력이 이 일대를 점거하고 철충 본대에게로 가는 신호를 필사적으로 재밍하고 있었다.


"타이머. 지금부터 세팅하겠습니다."


그러나, 경보 신호의 재밍이 성공하더라도 콜로서스에게서 주기적으로 방출되는 모순성 알고리즘 파장이 일정 시간 이상 차단된 상태라면, 오히려 철충 본대가 부자연스러움을 눈치채고 콜로서스가 있는 이 광맥으로 집결할 것이다. 그래서 이 작전의 제한 시간은 초격이 닿은 시점부터 세어서 35분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1분 카운트 시작한다."


사령관은 1분 안에 끝낼 생각이었다.


콜로서스는 알타이트 거체에 상처를 입힌 티아멧의 무장의 해석을 이미 끝마쳤다. 단원자 수준으로 연마된 블레이드. 피해 수준은 경미하나 외골격에 손상이 갔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과소평가할 순 없었다. 기습이라 허용했지만, 다음은 없을 것이다. 콜로서스는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지능적인 기만 대비책으로 장갑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우지직. 빠지직. 지진이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장갑판이 끌어모아지며 점점 상처를 메워가려 하고 있었다.


빠각!


"흥, 역시... 저런 무식한 회로 덩어리에 빈틈 하나 없을 리 없죠. 의외로 체계는 단순해서 놀랐네요. 하긴, 쓸데 없이 복잡하면 저런 거체는 발 하나 옮기는 데에도 수 시간이나 걸리려나?"


스카디의 비웃음과 함께, 장갑판 하나가 어긋나며 오히려 생체기가 벌어졌다. 콜로서스의 방화벽이 멋대로 과부하를 걸어대는 스카디의 침투 경로를 찾아내기 위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장을 관망할 수 있는 바위산 위. 레오나와 오렌지에이드는 마구 날뛰는 콜로서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봐. 저렇게 큰 표적이야. 발할라의 저격수라면 저 정도는 눈 감고도 맞힐 수 있을 걸? 긴장하지 말고 내 커맨드 프레임에 집중해."

"저, 저거... 연습했을 때보다 더 먼 것 같은데요. 레오나 대장님? 저, 저기까지 카두세우스를 던져서 약점 스캔하는 건 솔직히 대장님이 그 권총으로 저거 맞추는 것 만큼 어렵지 않을까요?"


탕!


레오나는 말 없이 오렌지에이드의 칭얼거림에 받아치듯 콜로서스를 향해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고, 콜로서스의 어깻죽지에 난 상처에서 돌 조각같은 파편이 튀었다.


"..."

"..."


빨리 안 하고 뭐 해? 레오나의 힐난하는 듯한 회색빛 눈동자가 오렌지에이드를 재촉하듯 쳐다보았다. 커맨드 프레임도 주인을 따라서 이미 홀로그램으로 오렌지에이드가 투척해야 할 궤도를 허공에 친절하게 띄워 주고 있었다. 그 옆에는 조롱하듯 영상 자료로 지금까지 오렌지에이드가 골백 번은 연습했을 던지기 자세가 예시로 상영되고 있었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으랴랴랴랴럇!"

 

더 이상 변명거리도 사라진 오렌지에이드는 더 멀리 던질 수 있도록 카두세우스에 달아 놓은 보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해머 던지기의 요령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Queen's mercy가 표기한 릴리즈 포인트에서 정확하게 놓는다. 기합과 함께 던져진 카두세우스가 공중에 표시된 궤적을 따라 마치 서커스에서 불타는 원을 뛰어넘는 사자처럼 아름답게 날아갔다.


"돼, 됐다!"


오렌지에이드는 뛸 듯이 기뻐하며 레오나에게 하이파이브를 내밀었으나, 여전히 암사자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안심하지 말고. 진짜 일은 지금부터잖아?"

"으으, 여기부터는 제가 알아서 잘 할 수 있다구요!"


머쓱하게 손을 거두고, 드디어 비전문분야에서 전문분야로 전환된 오렌지에이드의 오른손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카두세우스는 이미 콜로서스의 어깨 위에서 둥지를 틀고 취약점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었고, 오렌지에이드는 카두세우스가 보내오는 정보의 파도를 취합하고 축약해서 티아멧의 비행 관제 알고리즘에 전송했다.


"조오아써! 이제 저 덩치의 신체적 결함, 구조적 약점, 취성파괴를 유발할 수 있는 충격량과 적절한 각도, 알터리움 먹을 때 어느 쪽 손을 쓰는 지, 별로 안 친한 친구 철충 이름이 뭔지까지 몽땅 다 까발려냈다구요!"

"...하아."


그리고, 그 모든 정보를 전달받은 티아멧은...


"티, 티아멧! 괜찮아? 다시 날 수 있겠어?"

"하아, 하아..."


이미 처음의 기동으로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되어 있었다.


괜찮다는 말로 에라토를 안심시키는 겉치레도 취할 수 없을 만큼, 티아멧은 한계에 몰려 있었다. 생명력이 한계까지 몰아붙여질 수록 출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X시리즈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출격 전에 모종의 수단을 이용해서 의도적으로 체력을 단 한 번 기동할 수 있을 정도만 남겨두고 한계까지 빼놓은 탓이었다.


"아가씨들? 미안하지만 빨리 해 줘야 할 것 같아요. 방해 전파 때문에 원격 해킹이 먹히지 않기 시작했거든요."


웨어러블 컴퓨터를 조작하는 스카디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하지만 스카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체되어 있던 콜로서스의 회복력이 점점 스카디의 방해 공작을 웃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티아멧이 만들어 놓은 균열이 절반 가까이 메워졌다. 그 광경을 본 에라토는 눈을 질끈 감고 스탠드 마이크를 그러잡았다.


스카디는 혀를 차며 몸 위를 기는 손가락질을 다 집어치웠다. 피부가 찌릿해질 정도로 토해대는 방해 전파 때문에 어차피 이 이상은 무용지물이었다. 옆에서 연산을 보조하던 오렌지에이드도 스카디가 작업을 중단하자 덩달아 서포트를 멈추었다.


"이런... 이러면 외부 조작을 통한 해킹은 더는 힘들겠어요."

"바, 방법이 없을까요, 스카디 씨?"

"장갑판이 보강되는 알고리즘은 내부에서 전기적 간섭로부터 보호받는 노드들의 상호작용의 연속이라고 하더라도... 장갑판 그 자체의 움직임은 외부에서 이루어지죠. 따라서..."

"따라서?"

"외력으로 장갑판을 탈각시키면 돼요."

"응?"

"괜찮아요. 저 같은 전문가는 이런 방식의 해킹에도 대응할 수 있죠."

"잠깐...!"

"흐읍!"


오렌지가 만류할 틈도 없이, 스카디는 다리에 힘을 모아 콜로서스를 향해 도약했다. 이미 웨어러블 컴퓨터는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프로필에도 있듯이, 그녀의 진짜 무기는 웨어러블 컴퓨터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해킹!"


쾅!


기묘한 포효와 함께, 콜로서스의 어깨를 메우고 있던 큰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와 땅에 박혔다.


"해킹... 성공."


말끝에 (물리) 라고 쓸데 없는 사족을 다는 얄미운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성취감에 야릇하게 취한 스카디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한 방 먹여주고 지면을 향해 자유낙하 중인 표적은 콜로서스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콰앙!


콜로서스의 육중한 스매시가 공중에 뜬 스카디에게 직격했고, 스카디의 몸은 힘껏 내리친 셔틀콕처럼 암반을 부수며 지면에 처박혔다.


"끼흑!"


엄청나면서도 끔찍한 소리에, 오렌지에이드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곧 먼지구름이 걷히고, 바위 위에는 스카디의 오른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오렌지에이드의 새된 비명이 고막을 찔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나는 태연하게 오렌지에이드를 일깨워주었다.


"진정해. 생체 신호에 노란 불도 안 들어온 거, 안 보여?"

"...네?"


스카디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녹색 게이지는 조금 줄어 있었지만, 저렇게 사지가 결손될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따지면, 계단에서 가볍게 구른 정도일까?


그 말을 들은 오렌지에이드는 바위 위를 다시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손목 아래쪽이 바위에 완전히 박힌 채로 몸이 묻혀 있었다. 


더 자세히 보니, 튀어나온 스카디의 손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고 있었다.


"..."


그 기가 차는 광경에 오렌지에이드는 할 말을 잃었지만, 레오나는 익숙한 듯이 아랑곳않고 에라토와 티아멧 쪽을 확인하고 있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에라토는, 마이크에 자신의 목소리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발성 기관이 빚어내는 천상의 목소리가 티아멧의 귓속으로 흘러들어가고, 티아멧의 가슴에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 ♩♪~"


에라토는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의 의미로 인간 도파민이었다. 어떠한 외적인 호르몬 주사나 수술 따위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뇌하수체가 자극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만드는 울림. 곧 죽을 사람도 잠시나마 최상의 컨디션으로 둔갑시키는 그녀만의 마법이었다. 티아멧의 축 늘어진 손이 움찔거리며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쥐었다. 가슴뼈가 뻐근해질 정도로 치솟는 아드레날린이 신체의 한계 신호를 무시하며 티아멧의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붕 뜰 정도로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티아멧을 러너스 하이로 끌고 올라갔다.


"하아아..."


부스스하게 일어나는 티아멧을 걱정하는 에라토를 뒤로 하고, 티아멧은 온 몸을 채우는 고양감을 심호흡 한 번으로 정제시켰다. 그리고, 단숨에 이륙했다.


저 거체를 결딴낼 수 있는 무장 외의 것은 이제부터는 기동할 때 짐이 되는 쓸데 없는 하중일 뿐이었다. 그래서 티아멧은 필요 없는 듀얼 블레이드와 라지 블레이드 따위의 여섯 자루를 일부러 지상에 내려놓고 왔다. 손에 남은 마지막 한 자루. 가볍게 늘어뜨린 참수검만이 현재 티아멧이 지닌 무장이었다.


쐐액!


귀를 스치는 파편. 하지만 티아멧은 아랑곳않고 콜로서스를 올려다보았다. 이미 비행의 통제권은 티아멧에게 있지 않았다. 티아멧이 온전히 마지막 일격에만 신경을 쏟을 수 있도록, 카두세우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정된 경로대로 기동하도록 오렌지에이드가 안배해 놓았기 때문이다. 콜로서스는 티아멧의 노출된 참수검이 뿜어내는 에너지 신호를 감지하고는 저지 1순위로 삼았다. 그러나 티아멧은 스카디처럼 얌전히 자유낙하하는 손쉬운 표적이 아니었다. 둔중한 주먹은 가볍게 고리 모양으로 기동하며 제치고, 한계 고도까지 순식간에 몸을 솟구쳐 올려 발악과도 같은 포효를 떨쳐냈다.


"으읍... 끄흑!"


헤일로 오버쳐에 조준당하지 않도록 구름 위까지 돌파한 티아멧은, 수 초간의 시간을 두고 몸상태를 점검했다. 최상의 컨디션임에도 여전히 참수검은 들어올리기 조금 버거웠다. 확인을 마치고, 태양을 등진 티아멧은 깔끔한 상단세를 취했다. 내려치기 한 방으로 끝낼 수 있도록. 이제 악력과 이두에 힘을 주어 자세를 굳히면, 나머지는 중력가속도와 추진력이 마무리해 줄 것이다.


"하아아아앗!"


티아멧의 몸이 푸른 빛줄기로 화하며 둥그렇게 구름을 뚫었다. 경악하듯 명멸하는 콜로서스의 안광. 최대 출력으로 전개된 참수검이 콜로서스의 벌어진 상처로 내리꽂혔다.


우우우우웅!


격돌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잠시 간의 길항에, 티아멧은 경악했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가는 수준으로 돌파했어야 마땅했다. 어디서 이런 저지력이 나오는 거지? 불길한 보랏빛을 발하는 콜로서스의 코어가 공명하듯 한 순간 고동쳤다. 설마... 간이 역장?


빠지직!


티아멧은 이를 악물고 참수검에 실리는 압력을 더 가했다. 이미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돌아가기엔 늦었다. 돌파하지 못하면 죽을 뿐이었다. 이미 비행 장비의 추진력은 리미터를 넘어서서 더 부하를 줄 수도 없었다. 더 가할 수 있는 압력은 티아멧의 근력 외에 없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압!!!"


뱃심으로부터 끌어올리는 우렁찬 외침. 그에 부응하듯, 형태가 없을 역장에 금이 쩌저적 가기 시작했다. 콜로서스의 코어가 한 순간 더 크게 맥동치고, 뿜어져 나온 빛이 티아멧을 집어삼켰다.


"유기체..."

"...?"


예상 외의 사태에 당황했지만, 티아멧은 팔에 넣은 힘을 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곧장 흘러들어오는 문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티아멧은 미간을 좁히고 참수검에 집중했다.


"대체 어떤 대의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숭고한 목적을 저지하려고 하는 것이냐..."

"..."

"추악한 생존 본능? 지리멸렬한 영웅심? 애처로운 인정 욕구?"

"..."

"어느 쪽이건... 우리의 적대자인 미지의 공포가 승리하면 다 부질없어질 뿐."

"..."

"결국 이게 스스로의 멸망을 앞당기는 행위인 것도 모르고 있는 어리석음과 우매함이..."

"..."

"그저 안타까울 뿐이구나..."

"...닥 ...쳐..."


악문 잇몸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피맛을 느끼며, 티아멧은 씹어 뱉듯 받아쳤다.


"나 외부 작전 때문에 사령관 얼굴을 세 달이나 못 봤단 말이야..."

"...?"


영상으로는 봤겠지만, 직접이 아니므로 티아멧에게는 노 카운트였다.


"이번 작전만 끝나면... 최소 한 달은 사령관을 독점할 수 있다고..."

"..."

"널 여기서 반으로 쪼개 놓고... 돌아가서... 사령관이랑... 세..."


이제 와서 나오는 부끄러움일까? 티아멧의 손속에 약간의 망설임이 섞이고, 역장이 참수검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티아멧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고작 일신 상의 추잡한 욕망으로...! 끝까지 날 모욕하는구나 역겨운 살덩이들은!"

"그으으읏...!"

"번식 욕구에 뇌가 절여져서 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그 열등함! 나는 그런 너희들을 경멸한다! 저속한 충동에 짐승처럼 이끌려서 제멋대로 새끼를 까며 들끓는 너희들이 혐오스럽다!"


티아멧은 이판사판으로 절규하듯 고백하며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기세로 검을 내리눌렀다.


"시끄러워! 난 돌아가서 빨리 사령관이랑 섹■해야 한다고오오오오!"


파치익!


역장이 역으로 압도당하며 콜로서스의 코어에 칼끝이 침범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이런 더러운 이유 앞에서 패배할 수는 없어...!"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어어어어엇!!!"

"이 몸이... 고작 암컷 하나의 번식욕 따위에...!"


투쾅!


집속된 빛이 한 차례 번쩍이고, 참수검이 콜로서스의 코어를 통과했다.


쿼드드드드드득!


그 이후로는, 맥이 빠질 정도로 쉽게 칼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대 바이오로이드 용으로 합성해 놓은 미확인 수면 가스도, 적의 관통력을 한계까지 저지시키는 지능형 위협 측정 알고리즘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거체를 마지막까지 몰아붙인 적을 위해 안배한 우발 사태 대응 체계도, 최후의 수단으로 숨겨놓은 광역 섬멸기 오레올 오버로드도.


투콰앙!


압도적인 참수검의 무력 앞에서 꺼내 볼 기회도 없이 돌파당했다.


콜로서스의 몸체에서 퍼져나오는 충격파에 레오나는 몸을 가렸다.


쿠우웅!


콜로서스의 두 팔이 힘없이 떨어져 내리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여전히 티아멧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레오나는 침을 삼키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오렌지에이드를 재촉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성공했나? 티아멧의 생체 신호는? 콜로서스는 정지한 거야?"

"한 번에 하나씩만! 저기! 상공에 티아멧 씨가! 의식불명인 것 같아요!"

"스카디! 거기서 그만 튀어나오고 빨리 티아멧이나 받아 줘!"

"에휴... 정말, 아까 그대로 끝나는 게 쿨했을 텐데, 어쩔 수 없네요."


스카디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바위에서 나와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힘차게 도약해서 기절한 티아멧을 받아냈다.


"고생 많았어요. 이제 푹 쉬어요."


스카디는 작게 찬사를 보내며 티아멧이 편하도록 자세를 고쳐 안아 주었다. 방금 전까지 야수로 돌변했던 그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세상 순수하면서도 무구한 표정으로 소녀는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나중의 얘기지만, 그 당시 티아멧의 음성 기록은 콜로서스가 뿜어내는 미량의 방사선으로 인해 회로가 손상되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노이즈가 끼어 있었다고 한다. 티아멧도 콜로서스가 대화를 시도해 온 것 같다는 중요한 정보는 보고했지만, 구태여 자세한 대화 내용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티아멧이 먼저 그 일을 꺼내지 않는 한, 소녀의 비밀은 영영 소녀만의 것으로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