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무패신화가 맞는데


조사의의 난이 사실상 이성계가 저지른일이고


태상왕이 왕 모가지 따겠다고 난을 일으켰다는게 쪽팔려서

조사의 한테 뒤집어 씌웠다는게 학계의 정설.


그리고 이때 조선에서 유일무이한 왕의 친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