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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보며,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거울 속에서 한 남자가 사령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만을 위해 오드리가 준비해둔 정장은 날카롭게 맵시가 살아있었고, 머리는 한껏 왁스를 써서 뒤로 넘겼다.거울 속의 사령관이 윙크를 날렸다.

 

너는 최고야.

 

사령관도 마찬가지로 거울속의 자신에게 윙크를 날렸다.

 

너도 좀 멋진데?

 

“……뭐 하고 계십니까?”

 

“바닐라!? 있었어!?”

 

“당연한 걸 말씀하시는군요. 아침부터 주인님의 옷을 입혀드리고, 머리를 만져드리고, 한 발 빼드린게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잠깐만, 앞의 두 개는 내가 부탁한게 맞지만 뒤에 하나는 부탁한 적이 없는데?”

 

“저라고 좋아서 한 게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아침부터 그 추잡한 물건을 세워두고 계셨기에 어쩔 수 없이.”

 

“한거야!? 내가 자고있을때!?”

 

“손은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입으로.”

 

“내 순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고 있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거야?”

 

“아직도 그런게 주인님께 남아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라? 난 기억이 없는데 이미 옛날 옛적에 사라진거였어!?”

 

“주인님~. 이제 시작할 시간인데 아직도 준비가 안되셨나요?”

 

사령관의 의문에 바닐라가 대답하기도 전에 사령관 개인실의 문이 열리며 콘스탄챠가 들어왔다.

 

“보자. 옷은 깔끔하게 입으셨고, 머리 정리도 완벽하네요. 역시 바닐라에게 맡기길 잘했네요.”

 

“아니 근데 잠깐만 아침에-.”

 

“당연합니다 언니. 제가 항상 하는 일이니까요.”

 

“바닐라야, 항상 한다는게 아까 얘기한 그것도 포함해서-.”

 

“어서 가요 주인님.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응? 어 그래, 그런데 잠깐만, 아니 어.”

 

제대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콘스탄챠에게 떠밀리듯 사령관은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는 사령관의 등 뒤로 바닐라가 혀를 낼름 내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령관이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방문이 닫혀버렸다.

 

그래,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사소한건 신경쓰지 말자. 이런 날에 저런게 뭐가 대수람.

 

그렇게 생각한 사령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령관 개인실은 안보를 위해 오르카호 깊숙이 위치해있어 어디를 가던 상당히 많이 걸어야 했지만 사령관은 목표한 곳까지 순식간에 도착한 것 같았다.

 

옆에서 콘스탄챠가 숨을 가다듬는 걸 보면 확실히 빨리 온게 맞긴한 것 같았다.

 

“그러면 주인님.”

 

가까이 다가온 콘스탄챠가 마지막으로 옷 매무새를 점검해 주고 조용히 물러났다.

 

지금부터는 그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사령관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여기까지 걸어올때와는 정반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고작 십여초가 너무가 길게 느껴진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엘리베이토 문이 열렸다.

 

아름답게 장식된 갑판에서 사령관은 그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사령관은 소중히 간직했던 반지를 케이스에서 꺼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인님. 자, 저도 준비했으니 이 반지를 받아주세요. 우린 이제, 서로의 영원한 짝이 되는거에요. 우리 둘이서만…….”

 

사령관은 리제에게 반지를 끼워주었다.

 

“사랑해요 주인님. 앞으로 몇 날, 몇 번의 밤이 지나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이어진 마음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거에요.”

 

사령관은 대답 대신 리제를 끌어안았다.

 

리제와 사령관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입술이 가볍게 포개어졌다.

 

오늘은 사령관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2.

 

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이었다.

 

소설이나 만화, 영화에서 첫눈에 반하는 묘사가 나올때마다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묘사는 과장 한 점 없이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리제를 처음 봤을 때 그랬으니까.

 

그 날은 다른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러나 눈을 뜨고, 침대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온 몸에 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나는 그녀에게 반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만나는 게 오늘 처음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말했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로 볼품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부스스한 몰골에 반쯤 침대에 누운 채로 하는 고백이라니. 그러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물론이에요 주인님.”

 

 

 

1.

 

내가 주인님을 처음으로 만난 건, 21번 스쿼드에 의해 발견된 주인님이 오르카호로 오셨을때였다.

 

그 분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 온 몸에 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나는 확신했다. 저 분과 나는 운명으로 이어진 사이라고. 

 

그러니까 주인님과 나 사이에 있는 건 전부 해충들. 사라져 마땅한 해충들이야.

 

마음씨 착한 주인님은 달라붙는 해충들을 차마 떨쳐내실 수 없으니까, 그 해충들을 제거하는 건 정원사인 나의 역할이다. 나와 주인님의 운명의 정원에는 그 어떤 단 한 마리의 해충도 들어오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인님과 나 사이의 해충은 너무 많아서, 주인님에게는 내가 잘 안보이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주인님과 나 사이의 해충을 제거하는 것보다 먼저 주인님의 곁에 항상 내가 있기로. 아무리 나와 주인님이 운명으로 이어진 사이라고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처음으로 여동생에게 꾸미는 법을 물어봤다. 여동생과 주인님을 위해 옷을 맞춰서 간호사 복도 입어보았다. 수영복을 자를 때는 고민도 많았지만, 주인님이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손니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자매들이 합심해서 옷을 준비해줬을 때는 처음으로 주인님과 함께 데이트도 나갔다. 사실 그 날 하루종일 얼굴에 열이 올라서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기억이 안나지만, 계속 붙잡고 있었던 주인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만큼은 아직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주인님에게 처음으로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터질 것 같았다.

주인님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해달라고 말했을 때, 나는 제대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인님은 그런 나를 다그치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며 기다려 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겨우 울먹이는 목소리로 주인님에게 영원을 멩세할 수 있었고, 주인님은 그런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나와 주인님의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4.

 

“그래서, 이 게 벌써 몇 번째 광대짓이지?”

 

“광대짓이라뇨,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오르카호 내부의 카페테리아.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는 자신의 상관에게 발키리는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했지만, 그녀 또한 상관의 표현을 틀리다고 정정할 생각은 없었다.

 

레오나의 시선이 안드바리에게 향했고 작은 소녀는 허겁지겁 갖고 있던 타블렛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리제씨가 서약의 반지를 절대로 안주시는 바람에 반지는 매번 새로 쓰고 있으니까, 남은 재고량으로 추산하면 101번째 정도 되겠네요.”

 

“저 짓을 벌서 2년째 하고 있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도 대단하네. 매주 저 짓거리에 어울려주고 있으니 말이야.”

 

발키리는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마시던 커피를 마저 입가에 가져갔다.

 

비극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사령관이 처음으로 바이오로이드와 서약을 거행한 그 다음날, 사령관은 기억을 잃었다.

 

마치 거짓말과도 같은 그 현상에 전 오르카호의 두뇌들이 모여 발광하는 리제를 격리시킨 채 상황을 분석했다.

 

그녀들이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사령관은 지난 일주일간의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약한 바이오로이드, 즉 가장 사랑하는 바이오로이드인 리제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 외의 기억은 전부 보존한 상태였다.

 

“닥터의 분석으로는 사령관의 특수한 체질에 오리진더스트가 이상반응을 일으켜 뇌의 일부가 손상된거 같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게 일주일간의 기억만 사라지는건지, 거기에 서약한 리제씨의 기억만 전부 사라지는지는 아직도 판명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쯤 되면 이제 이런 연극은 그만하는게 낫지 않아?”

 

레오나가 진심으로 지친다는 투로 얘기했다. 그야 매주 서약식을, 그것도 2년째 보고 있으니 그녀가 아닌 그 누구라도 지칠만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걸요. 사령관도 매번 그렇구요.”

 

발키리는 사령관이 처음으로 기억을 잃었던 때를 떠올렸다.

 

서약한 바로 다음날, 사령관은 지난 일주일간의 기억과 리제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모든 기억이 멀쩡한 상태였다. 오르카호의 모든 두뇌가 달려들어 어떻게든 사령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령관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사령관을 보고 오르카호의 모두가 생각했다.

 

리제 하나만 희생하면 이 일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고.

 

사령관의 신체에 이변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적 세력에게 알려지면 좋을게 없다. 다행히도 사령관의 일주일간 기억은 업무일지를 남긴 덕분에 대체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리제 뿐이다.

그녀만, 그녀 하나만 희생하면 문제가 커지기 전에 조용히 넘어 갈 수 있었다.

사령관과 서약한다는 것이 오르카호의 그녀들에게 있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는 바이오로이드는 없다. 그것은 즉 리제가 감당해야할 희생이 얼마나 큰지 다른 모두가 알고 있다는 의미였고,

 

그 이상으로 사령관은 그녀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리제는 처음에는 당연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사령관과 처음으로 대면하고 나서야, 그녀는 사령관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천하의 리제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령관을 앞에 두고서는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랐다. 그녀는 마치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가 포기한, 심지어는 리제마저도 포기한 순간 사령관이 움직였다.

 

사령관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리제 앞으로 걸어가 그대로 그녀의 양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첫 눈에 반했습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오르카호의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사령관을 쳐다봤다. 그러나 사이에서 유일하게 경악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리제.

 

그녀의 얼굴은 사령관에게 처음 프로포즈를 받을 때와 달랐다. 처음의 그녀가 자신에게 떨어진 커다란 행복에 둘러싸여 어찌할지 모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믿고 있던 신앙에 보답을 받는 성직자 같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네, 물론이에요 주인님.’

 

“매번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레오나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으며 툴툴거렸다. 그녀는 자기가 주문한 커피에는 손도대지 않은 상태였다.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레오나의 옆에서 안드바리가 말했다. 안드바리는 갖고 있던 타블렛을 탁자 위에 놓은 채, 자기 몫의 커피우유를 마셨다.

 

“사령관님은 기억은 잃었어도, 리제씨를 사랑하는 마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얘기잖아요.”

 

발키리가 미소지었다.

 

“맞습니다. 저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이 광대 짓에 어울려주고 있는거겠죠.”

 

레오나는 말없이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5.

 

사령관 개인실에서, 리제와 사령관은 한 몸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사령관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이미 잠이 들었다.

 

리제는 사령관의 품 속에서 잠든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사령관님은 나를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괜찮다. 나를 보는 순간, 사령관님은 몇 번이고 다시 청혼할테니까.

 

처음으로 사령관이 기억을, 그것도 지난 일주일과 자신에 대한 기억만 잃어버렸다고 할 때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과 사령관의 사이를 질투한 해충들이 지껄이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사령관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눈 앞의 사령관은, 내가 아는 사령관과 다르다고.

 

간호사복을 입은 나와 다프네의 모습을 보던 사령관님, 당신을 위해 만든 수영복을 입은 나를 조금은 곤란한 모습으로 보았던 사령관님, 처음으로 데이트를 나갔을 때 나와 함께 즐겁게 웃던 사령관님, 그리고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프로포즈를 하던 사령관님.

 

기억을 잃은 사령관에게서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리제의 눈 앞에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을 처음 본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령관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과 눈을 마주신 사령관이, 천천히 다가오고, 그 눈에서 조금씩 운명이 빛을 찾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녀에게 사령관이 또 한 번 청혼한 순간 리제는 깨달았다.

 

우리의 운명은 기억 따위로는 갈라놓을 수 없다고.

 

리제는 잠든 사령관을 끌어안고 사령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사령관님.

사랑하는 나의 사령관님.

당신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를때마다 가슴이 뛰어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멈출수가 없어요.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저는 알고 있어요. 믿고 있어요. 당신이 몇 번이고 기억을 잃어도, 우리 사이는 영원하다는 걸. 우리 사이의 운명의 끈은 기억 따위로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당신이 매주 맹세한 우리의 맹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내가 다 기억할게요. 내가 항상 당신 곁에 있을게요. 내가 영원히 우리의 운명을 기록할게요.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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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서약하는 얘기니까 아무튼 결혼 얘기 맞지 않을까?

재미없는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