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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뱀, 그 소식 들으셨슴까? 요리 대회?"

 

"아, 그거? 듣긴 들었지. 내일부터 참가자 받는다며? 근데 쌩뚱맞게 갑자기 웬 요리 대회래?"

 

"제가 지난번에 취사지원 나갔을 때 그레고르 사령관님이랑 프란츠 사령관님이 하시는 말씀을 잠깐 들었는데-"


"잠깐. 두 분을 직접 봤다고? 혹시 몰라 물어보는데, 너 그 날 뭐 실수하거나 한 거 없지?"


"에이, 걱정 하실 필요 없슴다. 실수를 좀 하기는 했는데, 어차피 다른 분들도 다 비슷비슷해서 티 안 났을 검다. 아무튼, 두 분이 대화하시는 걸 좀 들었는데, 메뉴가 어쩌고 하신 걸 보면 사령관님의 마음에 드는 메뉴가 안 나온 모양임다. 그래서 새 메뉴를 개발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슴까?”

 

"마음에 안드는 메뉴? 뭐, 그럼 프란츠 사령관님이 반찬투정을 하시는 거라고? 그게 말이 되냐? 지난번에 보니까 그 맛대가리 없는 전투식량도 잘만 드시던데? 그리고 그레고르 사령관님은 애초에 식사를 안 하시잖아."

 

"어? 듣고 보니 그렇슴다. 그럼 요리 대회는 왜 여는 겁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메뉴를 보고 뭐라 하신 거면 식당에 메뉴가 다양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하신 거려나? 그런 거라면 요리 대회를 여는 게 완전히 말이 안되는 건 아닐지도? 그건 그렇다고 쳐도 왜 요리 대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원이 되려나 모르겠네?"

 

"엥? 인원은 충분하지 않슴까? 각 부대에서 두세 명만 나와도 서른 명은 너끈히 될 거 같은데 말임다."

 

"그야 그렇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참가자 쪽이 아니라..."

 

                                                                                               

 

"그래서, 참가할 대원은 차고 넘치는데, 정작 그 대원들의 요리를 평가할 사람이 모자라서 여기까지 왔다, 이 말인가?"

 

숲 한가운데에 마련한 조촐한 베이스캠프 한가운데에서, 적당히 급조한 의자에 앉아 보온병에 든 차를 홀짝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덕분에 이곳저곳에 전단지를 왕창 뿌리고는 여기서 적합한 사람이 오길 며칠째 기다리는 중이야. 겸사겸사 생존자 탐색도 할 겸. 참고로 어제는 저쪽 산 너머 마을에 뿌렸었고, 그저께는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나오는 산업지구에 뿌렸지. 그쪽은 둘 다 허탕이더라고."

 

나는 내 앞에 놓인 지도를 뚫어져라 처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흠...내가 지금까지 어디 어디에 포스터를 뿌렸더라? 이따가 바닐라랑 리제가 돌아오면 물어봐야겠다.

 

"왜 산업지구에 그런 전단지가 뿌려져 있나 했더니, 그런 것이었나?"

 

"뭐,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 그래도 덕분에 그쪽을 돌아다니던 생존자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론 잘 먹힌 거 아니겠어? 그래도 설마 너 같은 거물이랑 만날 줄은 몰랐지만."

 

"거물이라니...최후의 두 인간 중 한 명이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병사에게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묘하군."

 

'별 볼 일 없는 병사'라고 자신을 칭한 그녀, 신속의 칸은 멋쩍게 웃으며 보온병을 내려놓았다. 저걸 겸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한 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느 쪽이건, 다른 대장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색다른 반응이다. 특히 그 빨간 머리 꼬맹이.

 

"별 볼일이 없기는. 너 데리고 우리 배로 돌아가면 프란츠가 졸도하고도 남을걸? ‘그 전설적인 칸 대장님을 실제로 볼 줄이야!’라면서. 걔가 네 광팬이거든. 나도 잠시 봤는데, 전적이 화려하던데? 아마 오르카에 들어서는 순간 프란츠 뿐만 아니라 네 팬들이 줄을 설거야."

 

"후후,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조금은 기대가 되는군. 장비의 예비 부품을 찾으러 산업지구를 들렀다가 당신을 만나게 될 줄이야...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헤, 아직 쌩쌩하면서 나이 지긋한 노인네처럼 말하기는. 그래도 너무 기대하지는 곤란하다? 아직 우리 오르카도 톡하면 문제 터지는 게 일상다반사니까-따흑?!"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가격한 누군가의 손찌검에 반사적으로 비명이 나왔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이번에는 주먹이 정수리에 꽂혔다.

 

"첫 번째는 오르카 내부 사정을 유출한 것, 두 번째는 여자한테 나이를 들먹인 것 때문입니다. 반론 있으신가요?"

 

"없습니다...아이고 내 뒤통수...그새 손이 더 매워진 거 같다, 닐라야?"

 

"야, 진딧물! 너 미쳤어? 주인님, 괜찮으세요? 제 손가락 몇 개로 보이세요?"

 

"어...3개?"

 

"주인님, 리제 양은 광선검을 들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녹색 난쟁이1)가 아닙니다. 아니, 이리저리 날뛴다는 건 똑같을지도?"

 

"지금 말 다 했어?!"

 

지금까지 몸에 총알이 박혀도 따끔하기만 하고 별문제는 없었는데, 충격으로 머리가 울리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덕분에 오랜만에 머리가 띵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어, 그, 어어, 어?"

 

한편, 모닥불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4D로 보고 있던 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사, 인간이 가정용 바이오로이드한테 얻어맞는 모습이 그리 흔한 모습은 아닐 테니 무리도 아니려나? 게다가 칸은 군인이니까, 계급에 대한 것에서도 꽤 엄격할 테고.

 

"자, 자, 둘 다 진정해, 진정. 그냥 엄살떤 거니까. 리제도 그만 무기 내려놓고."

 

내가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둘을 제지하자 상황은 금세 정리되었다. 바닐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리제는 통신기로 오르카에 보고를 올렸다.

 

"...혹시 저 둘은 늘 이런 식인가?"

 

"뭐, 그런 느낌이지. 한 명이 날 갈구고, 나머지 한 명이 거기에 화를 내고, 내가 그걸 중재하고. 그것의 무한반복이란 느낌? 덕분에 하루하루 지루한 날이 없어."

 

"그런가...꽤 특이하군그래."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칸을 뒤로하고, 나는 막 자리에 앉은 바닐라와 리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뭐 건진 건 있어?"

 

"그게...뭐라고 해야 할까요..."

 

리제의 반응을 보아하니 오늘도 꽝인 모양이다. 뭐, 아직 대회 시작까지는 시간이 많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보면-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아무튼 좀 애매합니다."

 

"...?"

 

한순간이지만 내 청각 센서가 잘못되었는지 의심을 했다. 세상에. 보기 드물게 리제와 바닐라의 의견이 일치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상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떤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물어보았다.

 

"평소처럼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이다가, 세상을 떠돌며 요리 수행을 하고 있었다는 한 생존자랑 만나게 됐습니다. 소완이라고 하던데-"

 

"소완?! 그 최고급 요리사? 걔를 만났다고?! 근데 왜 안 데려왔어?"

 

날고 긴다는 최고급 바이오로이드 중에서도 요리에 한해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그 소완이다. 데려왔다면 분명 우리 요리 대회의 퀄리티도 수직 상승을 할 수 있을 텐데?

 

"관심이 없대요."

 

...?

 

"엥? 왜?"

 

"그게..."

 

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말을 고민을 하는 중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리제를 대신해 입을 연 바닐라의 입에서는...

 

"저열해서 참여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소리가 나왔다.

 

"...뭐?"

 

"참여하기 싫다고 합니다. ‘요리라는 것은 충분한 재료, 적절한 공간과 전문적인 손길에서 탄생하는 법, 바다 한구석에 틀어박힌 잠수함에서 칼도 잡아보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이 창고 한구석에 처박힌 재료로 만드는 요리를 평가할 마음은 들지 않는군요’라고 하더군요. 그런 것에 자신의 시간과 혀를 버릴 바에는 차라리 산나물을 뜯어서 데쳐 먹는 게 더 낫겠다나 뭐라나."

 

"..."

 

"너무 말이 심하다고 했더니 ‘요리를 그저 끼니를 때우려는 행위라고만 생각하는 자들과는 말을 섞기 싫습니다’라고 했어요. 덕분에 저도 잠시 열이 올라서 그만..."

 

리제는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좀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더라니, 그런 사정이었군. 아무래도 소완은 우리의 요리 대회가 개최되는 이유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흐음...소완이라면 나도 몇 번 이름을 들어보았지. 성격이 꽤 까다로운 편이라 인제 와서 다시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아쉽지만 그녀를 요리 대회의 평가원으로 참여시키는 것은 단념하는 쪽이-"

 

"...아니. 아무래도 내가 직접 소완을 만나야 할 것 같아."

 

유감스럽다는 칸의 말을 끊고,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좀 유치해 보이는 건 인정해. 하지만 아무리 우리 요리 대회가 하찮고 소완이 대단한 요리사라 해도, 우리를 그렇게 폄하하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 대회를 여는 거니까."

 

"그래서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해보시겠다, 이 말씀입니까?"

 

"그치. 우리 진심을 이야기하면 조금이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거니까. 너희 둘은 안 따라와도 돼. 방금 싸워놓고 다시 얼굴 보기도 좀 그럴 테니까."

 

"...아뇨. 주인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저도 같이 갈게요. 솔직히, 아직 화가 덜 풀리긴 했지만, 이렇게 그냥 가는 게 더 찝찝하겠죠."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주인님이랑 저 정원사만 보냈다가는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리제와 바닐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완은 지금 요리 수행 중이라 했으니, 오늘이 지나면 또 어디를 갈지 모르는 일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 수도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

 

"미안, 칸. 아무래도 자리를 좀 비워야 할 것 같아. 혼자서 좀 기다려줄 수 있을까? 금방 돌아올 테니까."

 

"...아니, 괜찮다. 나도 따라가도록 하지."

 

"엥? 진짜?"

 

예상치 못한 칸의 대답에 잠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사실 나한테는 눈이 없기는 하지만, 느낌 알잖아?

 

"...멸망전쟁 이후로 만난 첫 인간이 당신이라니, 아무래도 오늘 내 평생치 운을 다 쓴 모양이군."

 

왠지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칸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해서 바로 짐을 싸고 시내로 향했고, 서두른 덕에 막 다른 도시로 가려는 소완을 찾을 수 있어서 나랑 단둘이 몇 분 동안 이야기를 좀 했어. 그렇게 해서~이렇게 오르카에 데려왔다, 이 말씀! 어때? 이 정도면 이번 탐색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장장 2시간에 걸친 그레고르 씨의 보고...의 탈을 쓴 무용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쓸데없이 장황한 묘사나 과장된 표현 덕에 요지를 잡는 게 조금 어려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칸 대장님과 소완 씨를 오르카에 모셔오는 데 성공하셨다’라고 요약하면 될 것 같다. 보고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기도 하고. 그것 밖에 안 쓰여 있어서 문제지만.

 

아무튼, 확실히 오늘의 탐색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칸 대장님과 소완 씨의 합류는 두말할 것도 없고, 온종일 전단지를 붙이러 돌아다니신 덕에 위성 사진으로는 2% 부족했던 이 근방의 지형 데이터도 입수할 수 있었다. 특히 시내 쪽에는 아직 쓸만한 시설이 많아 보이니, 기회가 될 때 한 번 단체로 수색을 나가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두말할 필요 없는, 대성공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만 여쭤볼게요, 그레고르 씨."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레고르 씨의 옆을 바라보았다.

 

길다란 은빛 머리칼에 새하얀 요리사복. 냉철함이 묻어나올 것 같은 날카로운 눈매.

 

틀림없이, 이분이 그레고르 씨가 말한 소완이라는 분일 것이다. 그레고르 씨가 계속된 설득 끝에 어렵게 모셨다는.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읍! 읍읍!"

 

"...이분은 왜 묶여있는 거예요? 말로 해결하신다 하지 않으셨어요?"

 

"어...말이 안 통해서 중간에 바디랭귀지를 좀 섞긴 했지, 아마?"

 

"세간에서는 그걸 납치라고 부르거든요?!?!"


                                                                                               


패러디 목록

제목) 동명의 책 이름


문명 시리즈의 간디로 패러디한 버전도 있다.


1)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등장인물인 '요다'는 손가락이 세 개다.


2주만에 돌아온 최신화.


계속 올려야지올려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제야 올린다.


솔직히 글 쓰는 것보다 짤 만드는 거 더 오래 걸리는 듯.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