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주례를 위해 단상 앞에 있는 사람은 조금 엄숙하면서도 엣된 목소리로 낭낭하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입니다만.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두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게는 눈길하나 주지 않고 서로만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고요.

 꿀떨어지네요 젠장.

 

 그렇다면 지금부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멸망 전이었다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례사와 대답이었지만인류가 멸망한지 어언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결혼이란 신성한 것을 넘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와아아!

 

 성대한 환호성과 눈앞에서 애정어린 키스를 하고 있는 폐하를 보며 어언 20번 째 주례를 끝마친 저아르망 추기경은 어딘가 냉정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 *

 

 

폐하께서 나를 찾아주고 필요로 해주는 건 좋긴 하지만…

 

 부러워…

 폐하의 43번째 결혼식의 주례를 끝마친 그날 밤.

 저는 제게 주어진 집에서 술과 함께 시름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관한 주례만 20다른 결혼식은 종교계 바이오로이드 분이나 결혼 하시는 분들과 연관이 깊은 분들에게 맡기고선 치러졌었습니다.

 제가 절반가량의 결혼식을 주관 하게 되었고공적으로도 폐하의 비서로서 자주 만나 뵙고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폐하와 관련 된 바이오로이드라면 누구라도 알 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그 사실을 부러워하시는 분들도 많기는 합니다만…

 

 부러워…

 

 여성으로서도 필요로 해주고 사랑해 줬으면 하는 건 저 만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아니겠지요.

 

.

.

.

 

 철충과 별의 아이와의 전쟁이 끝난 지금폐하의 휘하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는 더 이상 오르카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육지에 머물러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최전선이 우리가 있는 항구도시 오르카.

 인류의 전초기지이자 요람이었던 잠수함 오르카에서 따온 도시로서 현재 폐하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의 수도라고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최근들어 그런 항구 도시 오르카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세분류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은 전쟁의 끝으로 인한 결혼 해금으로 신혼을 즐기느라 생기가 넘치는 부류.

 

 다른 한쪽은 곧 있을 새 결혼식의 주인공이 될 거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부류.

 

 마지막은…

 

 마지막을 말하기 전에 위의 두 부류의 공통점을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폐하께서 첫 번째로 아내로 맞이하신 분은 다름 아닌 콘스탄챠씨.

 뭐어폐하와 처음으로 만났고잘 케어 해주신 분이니까 그럴 수 있죠.

 오히려 그녀가 아니면 첫 아내가 누구냐고 말할 정도로 납득이 가는 인선입니다.

 

 두 번째로 맞이하신 분은 라비아타님.

 이쪽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은 선택이네요같이 있던 시간이 꽤 길었으니까요.

 

 세 번째는 소완님.

 여기서 부턴 조금 물음표가 들어가도 이상하진 않겠죠그래도 어… 고생 하신 분이었으니까…

 

 네 번째는 홍련씨.

 어… 같은 몽구스팀의 미호씨와 더 오래 알고 지냈다고 알고 있는데……?

 

 다섯 번째는 쿠노이치 엔라이.

 이때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 다음은 블랙리리스씨…… 가 아니라 포이씨.

 그리고 그 다음은 마키나씨아자젤씨블랙 웜씨레모네이드 알파프리가자비로운 리앤매우 화나는 샬럿……

 

 그렇습니다.

 결혼을 한 바이오로이드와 결혼을 할 것이라 즐거워하는 바이오로이드에게는 매우 큰 공통점이 있었던 겁니다.

 

 결혼을 한 분들을 보세요.

 

 모두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었고,

 가슴이 매우 컸습니다.

 

 결혼을 기대 중인 바이오로이드를 보십시오.

 모두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었고가슴이 엄청 큽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분류.

 선택받지도 못하고선택 받을거라 생각하지도 못해서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우중충한 분위기를 뿌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제 주변에 사람들.

 

 모두 성숙하지 않은 여성의 모습이었고가슴이 크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매우 안타깝게도 저는 제 눈으로 발끝을 볼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

.

.

 

 …그래서 찾아왔습니다제 의지로닥터만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아이 서늘하고 묵직한 연산력은 아르망이 아닌가.

 그런가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지금이야말로 닥터닥터맨으로 되돌아갈 시간이다.”

 

 연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의 사람은 다름아닌 닥터.

 오로지 그녀만이 이 상황을 해결할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앉게 동지여.”

 

 그녀가 권해주는 자리에 앉아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불을 켜지 않아서 어두운 방 안에서 컴퓨터 화면의 빛을 받고 있는 닥터의 모습은 어쩐지 음산하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음산함이야말로 그녀가 가진 정념의 깊이이자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욕이기에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당신은 일전에 성장약으로 저주받은 천형을 벗어난 적이 있으셨죠.”

 

 그래그렇지만 오빠는 정신연령이 어쩌고 하면서 받아주지 않았어이미 각인된 이미지 탓에 몸이 성정했어도 아이로 보였다는 뜻이겠지.”

 

 그녀의 말은 여러 가지를 시사 합니다.

 성장하여 가슴이 발끝을 가리더라도 사랑받은 가능성은 낮다.

 심지어 가짜 모습으로 여겨져 이도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폐하의 취향이 너무나도 확고하여태생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에게 여성으로서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지.”

 

 하나뿐입니다.”

 

 ““진실한 우리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름 하여 빈유와 작은 몸집을 사랑하게 만드는 비약입니다.

 

 로리콘 이라뇨좋지 않은 음해는 집어 치우세요.

 그저 빈유와 작은 몸집을 사랑하게 될 뿐입니다

 

 사령관의 로리콘 화… 젖가슴으로 가득 찬 오르카의 유일한 구원…

 

 닥터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그녀는 오랜 연구로 인해 착란 상태에 빠져있을 뿐입니다.

 결코 소아성애와 같은 추잡한 일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저 미에 대한 관점이 조금 바뀌는 것뿐입니다.

 성욕의 범위가 조금 달라질 뿐이고요.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먹이냐는 것인데아르망은 뭔가 방법이 있어?”

 

 모르셨습니까한다고 했을 때는 이미 끝낸 다음이라는 것을?”

 

 뭐… 뭐라고?”

 

 닥터의 그림체가 소년 만화와 비슷한 화풍으로 바뀌었지만이미 일은 끝난지 오래였습니다.

 그녀 또한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기대어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고요.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잘난 표정으로서 결정 대사를 날려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타짜 더 엘라 님께서 하룻밤 만에 해주셨습니다.”

 

 그 녀석은 배신자야젖가슴이 달린 괴물이라고!”

 

 엘라라는 단어에 발작하듯 외치는 닥터.

 그렇지만 이미 상정 내입니다.

 비록 가슴은 배신하였지만몸은 여전히 우리 쪽 라인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무엇보다 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사용해야 책사라 할 수 있는 법!

 

 맞습니다배신자죠하지만 우리 집 괴물입니다.”

 

 아르망… 무서운 아이…

 

 두려운 듯 목소리를 떠는 닥터를 보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럼 가볼까요?”

 

 어디로?”

 

 우리들의 신혼집(X)으로요.”

 

 

 * * *

 

 

 그녀들의 계획은 완벽했다.

 남은 것은 사령관과 조우하는 것 뿐.

 

 성욕이 넘치지만 성벽이 뒤바뀐 사령관 주변에는 현재 닭장 밖에 없을 터그때 이 풋풋한 몸을 내밀면 성욕을 이기지 못한 사령관님이 저를 덮쳐주시고아르망… 사랑한다…

 

 우헤헷.”

 

 또 연산력 이상한데 쓰고 있네.”

 

 굉장히 음흉하게 웃고 있는 아르망을 보며 닥터는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아르망이 망가지는 것과 별개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

 닥터 또한 오빠X여동생으로 수십가지의 망상이 펼쳐지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사령관님의 패턴 상 지금 이 시간에 복도를 지나가실 확률이 89.98%! 이겼다웨딩 대회 완!”

 

 그렇게 아르망이 확신에 차서 외쳤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그럼 이 왓슨의 신부는 누가 대신하지?”

 

 뭣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에 아르망은 휙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그 말의 진의 때문도 아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런안심하라고그런 불건전함은 이 리앤맨이 막아줬으니까.”

 

 그곳에는 쭉빵한 미녀 여대생자비로운 리앤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추리력과 행동력으로는 이 오르카에서 따라갈자가 없는 바이오로이드!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녀들의 계획은 파탄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었다.

 닥터 또한 그 사실을 알았는지 리앤을 보며 한껏 소리쳤다.

 

 네녀석 리앤맨!”

 

 이런닥터닥터맨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내 이름이 리앤이라는 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고.”

 

 크읏…

 

 리앤의 모든 것을 다 끝낸 사람 특유의 여유에 닥터가 주춤하게 되자 아르망은 계획의 주축이었던 사람을 찾았다.

 

 리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계획의 동조자이자 우리 집 괴물인 그녀가…!’

 

 엘라는엘라는 어떻게 된 거냣!”

 

 엘라엘라… 엘라…

 

 엘라를 찾는 아르망의 절규에 리앤은 처음 들어보는 것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듯 곰곰이 생각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는 이내 아르망이 말한 엘라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는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아르망 또한 눈길을 주지 않았던 발치에 널부러져 있던 흰색 쓰레기를 집어 들었다.

 

 엘라이 녀석을 말하는 건가?”

 

 우으… 미미안해요 아르망…… 실…패……

 

 이런 아직도 의식이 있었네.”

 

 지저분한 것이라도 잡았다는 양 엘라를 바닥에 던져두자 간헐적으로 들리던 신음소리마저 끊어졌다.

 

 이제야 조용해졌군.”

 

 엘라는…

 

 ?”

 

 엘라는 그저평범한 여자아이였다.”

 

 뭐야 갑자기.”

 

 다른 사람에 비해서 보드게임을 좋아하고 흰 가루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자아이였단 말이닷!!”

 

 분노로 인해 각성한 아르망이 리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 * *

 

 

 경찰에겐 이길 수가 없었어요오옷~~♥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면서 잡힌 아르망이었지만 사령관에 대한 위해는 중범죄였기 때문에 곧바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죽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는 1만하고도 4천가지의 방법이 있다고합니다.”

 재판 대신에 처형을!”

 

 -쾅쾅

 

 정숙정숙!”

 

 재판장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그럴법도 한 것이 아르망과 닥터가 한 일은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존폐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에 대한 위해 행위 또한 덤으로 포함 되었고.

 

 바이오로이드 절대 다수가 성숙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닭장 테러는 괴멸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이 뻔했었다.

 

 재판장은 저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 맡습니다부 재판장으로는 불굴의 마리와 무적의 용이 맡아 주십니다.”

 

 불굴의 마리다라비아타를 보좌하도록 하지.”

 

 무적의 용입니다저 또한 라비아타를 보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령부와 육군해군의 우두머리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이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셋은 방청객들을 향해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자리에 착석했다.

 

 검사로 나온 자비로운 리앤이야아르망 추기경 외 5인을 체포하기도 했지.”

 

 변호사로 나온 피고 아르망 추기경입니다잘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군 하나 없는 자비 없는 사법 살인의 시간이 도래했다.

 

 .

 .

 .

 

 

 …그렇게 되어서 아르망씨의 행동은 왓슨은 물론이요우리 모두의 생활을 위협한 테러에 가까운 행동이었다는 거야!”

 

 그렇군요변호사측반론하시겠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사태는 일방적이었다.

 검사가 이야기하고 판사가 받아들이며 변호사가 침묵한다.

 그 사이클의 반복

 

 뛰어난 연산력을 가지고 있는 아르망은 검사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여러 개 떠올렸으나 전부 폐기했다.

 그것들 모두 근본적으론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납득 시킬 수도 없었으며형량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애초에 이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목표를 이루는 쪽이 더 중요했다.

 그랬기에 아르망은 저들이 기세등등 하게 행동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래야만 모두에게 비난받는 가련한 모습으로 비춰질 테니까.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지만비교적 선량한 성격인 사령관에게는 잘 먹힐 것이다.

 어쨌든 사령관 본인에게는 큰 피해가 없었고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는 얼굴이라는 건 마음을 약하게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기나긴 시간 끝에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아르망 추기경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은 있습니까?”

 

 일명 최후의 변론.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아르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오직 인간만이 연민이 섞인 눈으로 아르망을 보고 있었다.

 

 아르망…

 

 이거 각이다.

 그렇게 확신한 아르망은 서글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선 저를 믿어주시던 폐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여러분들에게도요.”

 

 차분한 미성이 흘러나오자 분노로 가득 차있던 재판정 안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론 아르망에게 유리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무슨 말을 하나 지켜보겠다는 느낌이었을 뿐.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망은 사령관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수천수만의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선택받는 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이신 폐하에게 말 한번 붙어보지 못한 자매들이 정말이지 수두룩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은 축복받은 것을 알고 있죠.”

 

 실제로 모든 전쟁이 끝난 지금에 와서도오히려 공훈을 세울만한 일이 그다지 없고 각자 적성에 맞는 일을 분배받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령관과 독대내지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 외의 바이오로이드들 에게는 사령관이란 TV에서나 나오는 멀고먼 상사에 불과 할 뿐이었다.

 인간은 그 하나 밖에 없는데 인간을 필요로 하는 바이오로이드는 이렇게나 많았었다.

 

 아르망은 그렇게 설파하면서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렇지만보급형의 아이들이 단지 보급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외당하고 눈물짓는 것처럼 우리들도 타고난 체형 탓에 당신에게 더 가까워 질수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방청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그나마 사령관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자그마한 기회라도 가진 것은 다양하거나 세분화 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고등급 바이오로이드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기에 개인 보다는 숫자로 판단되기 쉬운 보급형 바이오로이드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말이었다.

 

 자…잠…

 

 분위기가 불온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라비아타가 그녀의 말을 끊으려고 했으나본디 아르망 추기경의 일은 연극배우.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과 좌중을 끌어당기는 기술은 그녀에게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나는 당신을 모시는 바이오로이드이기도 하지만그와 동시에 당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여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단지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에는… 당신을 가볍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맞아… 우리도 좋아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니고.”

 아예 모르는 사이면 모를까 가까이에서 보는 데 참는 것도 힘들테고 말이야.”

 저런 사람도 저런 고충이 있었구나…

 

 악간의 공감의 빛이 들어있는 웅성거림에 아르망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웅성거림을 누르는 더 커다란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제가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하지만제게도제게도 기회가 필요 했습니다단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나라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폐하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아르망 추기경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화끈하다 못해 마그마 그 자체인 고백에 좌중은 순간 조용해졌다가 이내 거대한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바람잡이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그녀의 고백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환성을 즐기던 아르망은 이내 재판정을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구체적으로는 사령관을 향해서.

 

 …물의를 빚어서 죄송합니다그렇지만폐하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르망의 마음을.” 

 

 그렇게 말을 마친 아르망은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연극이란 본래부터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문화였다.

 그 정수를 품고 있는 아르망이었기에 후안무치한 여자라고 욕을 먹는 대신에 좌중의 공감을 사는데 성공했었다.

 

 음…

 이건…

 하긴…

 

 그리고 그건 재판정의 재판장들에게도 상당히 통했는지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어린 모습을 한 바이오로이드와 태생적으로 별다른 능력을 지니지 못한 보급형 바이오로이드를 동질화 시켰기에 너무 가혹한 벌을 내리면 분위기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검사인 리앤 또한 그 가능성을 인지하는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판결이 내려질 사이의 짧은 공백기간.

 재판장들의 토론이 끝나면 곧바로 그녀의 처우가 결정 될 것이다.

 

 후우…

 

 자리에 앉은 아르망은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대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배우인 그녀에게 있어서 말에 힘을 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지만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서는 진심을 담아야 하는 법이었다.

 

 처벌은 두렵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발버둥 쳤을 뿐.

 

 그렇기에 그녀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그녀의 처우를 결정할 재판장들이 아니라 오로지 사령관쪽 이었던 거겠지.

 

 그리고 그 시선의 대상자는 막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얕은 웅성거림이 서려있었던 재판정이었지만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결국 이 자리의 상황은 그의 결정에 따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

 ……

 

 그렇지만그에게 몰려있는 시선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상냥한 만큼 나름 공정함 또한 가지고 있는 사령관이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마구 감형하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그렇기에 지금 자리에 일어나 걷는 것은 아르망의 고백에 답하기 위함이었다.

 

 ……

 

 ……

 

 그리고 모두의 예상과 기대대로 그는 아르망의 앞에 섰다.

 사령관이 가까이 다가오자 축 늘어져있던 아르망은 다시 자세를 바로 세웠고겸허하게 처벌을 받아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르망.”

 

 폐하.” 

 

 그의 단 한마디에 아르망의 미래 연산은 온갖 방향성의 미래를 주인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떨리는 심정을 감안하듯대부분이 불길하고불온하고또한 부정적인 미래들이었다.

 본래부터 그리 높지 않았던 고백의 성공 확률은 이번 일로 인해서 더 낮아졌을 테니까.

 

 우울함과 슬픔으로 술렁거리는 가슴을 어떻게든 달래가며 아르망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떤 말이 나오더라도 그의 판결을 따르리라.

 

 이거받아줄 수 있을까?”

 

 ……

 

 그렇지만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그가 건네주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반지였다.

 그것도 급조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섬세한 공예품.

 

 태생적으로 큰 가슴에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야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네게 반지를 주려고 했는데… 이거 참멋없는 프로포즈가 된건 아르망 탓이니까?”

 

 그의 말이 맞다면 자신이 벌인 일은 그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을 멍청한 짓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아르망은 그것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안타까움을 토로하지 않고 조용히 그가 건넨 반지를 받았다.

 

 아뇨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직이것만이 그녀가 바라던 것이었고원하던 것이었으며소망하던 것이었으니까.

 그에게 여자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저 아르망 추기경은 폐하에게 유일하게 바라던 것을 얻었으니까요.”

 

 이것이 있다면 그 외의 다른 무엇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르망은 손에 쥔 반지를 품에 끌어안으며 오랜 짝사랑의 끝에 흐느꼈다.

 

 나는 욕심쟁이여서 내게 다가온 사람을 단 하나도 놓을 생각 없으니까 말이야각오하라고.”

 

 제 손끝부터 심부까지 그 모든 것이 폐하의 것이니까요그 무엇도 놓아주지 말아주세요.”

 

 

 .

 .

 .

 

 

 어쨌든 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었기에 아르망 추기경의 구금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녀는 3년 형의 판결을 받았고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그렇지만 삭막한 어느 유치장 안에서 결혼식이 열렸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손에 기록 되어 오래도록 보관되었다고 한다.



================================


최근 애정이 많이 식긴 했는데 아르망 신 스킨이 나왔다고 해서 기념으로 참여 해봄.

그래서 그런지 애들 말투가 좀 이상할 수 있는데 이해 부탁함.


단짠단짠 느낌으로 윗쪽은 가벼운 개그물로, 재판쪽은 시리어스로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 닥터는 매우 건강합니다.




농담이고, 자른 부분에서 급속 성장약이 아닌 자연스러운 성장약을 사용하면 받아주겠다는 대사가 있었음.

분위기가 안 살아서 그냥 잘랐는데 다른 어린이 체형의 바이오로이드들도 대충 그런식으로 받아들였다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