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눈밭에서 죽어가던 자매들의 얼굴이, 총을 맞고 쓰러져가는 적들의 얼굴이.


그렇게 난 괴로움에 휩싸여 살았다.

어둠을 잊기위해 무엇을 해봐도, 어둠은 더 강해져만 갔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건 없었다.

속죄할 수 있는 이도.

속죄를 받을 이도.


결국 모두 죽었으니까.


결국엔 모두 발할라로 떠나버렸다.


내 손은, 수도없는 원혼들과 자매들의 영혼이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신의 손임에도 

그런 저주받은 손임에도.


누군가는 잡아줄것이라 말했던 자매가 있었다.

저주를 함께 짊어질 사람이 있을거라고.

붉게 물든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을거라고.


그럴 사람이 있겠느냐고.

그럴 병신이 어디있겠느냐고 코웃음을 쳤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다.


정말 바보같고, 멍청한 사람. 근묵자흑이라고, 더러운 것을 가까이 하면 더러워진다고 아무리 밀어내봐도 다시 나를 웃으며 반겨줬던 사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내 손을 잡아준 사람.


나의 빛. 나의 구원.


사령관.


"지금부터 발키리양과 사령관님의 서약식이 있겠습니다"


"나와. 부관. 뭐해? 사령관이 기다리잖아. 여기까지 와서 뺄거야? 발할라가?"


"아니오. 대장님. 뺄리가 있겠습니까."


"어서 가봐. 기다리고 있어"



"...저. 어떻습니까 각하? 분명히 굉장히 부끄러운 얼굴일겁니다...분명."


"에이. 예쁘기만 한걸.."


"...사령관님. 지금이라면 무르실 수 있습니다. 저따위랑 서약하시는거.."


"발키리. 내가 몇번을 말해. 너따위라고 말하는거 하지 말라고 했지. 발키리 니가 어때서."


"....제 손은 연합전쟁부터 자매들의 피가 뭍어있고. 더러운 일에 쓰여서 여럿 사람들도 죽였고.."


"그게 중요할까 나한테. 그건 다 과거고, 그걸 시킨 사람들이 문제였지."


"...."


"그리고 말했잖아. 발키리가 살인자라면 난 기꺼이 살인자의 남편이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되고, 피가 뭍었으면 닦아줄거라고."


"각하.."


"그러니까 무르는 일 없어. 아르망. 진행해줘"


"...그럼 신랑은, 신부를 사랑할 것입니까? 이 세상이 끝날때까지?"


"당연하죠."


"그럼 신부는. 신랑을 이 세상이 끝날때까지 사랑할 것입니까?"


"네.."


"이 순간부터 신랑 김라붕과 신부 발키리양은,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각하.

아주 오래전부터 바랐던 소원이 있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각하를 이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내 사랑…



"...당연하지. 발키리"


그날. 시커먼 어둠에 잠식되어가던 한명의 사신에게.


구원의 빛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