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의 집무실은 업무중이라면 항상 열려있다. 이것은 자신에게 용건이 있는 대원이라면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사령관의 배려로, 실제로 몇 번씩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다 이내 돌아섰던 몇몇 소심한 대원들도 열린 문 너머로 사령관과 눈이 마주치면 머뭇거리면서도 방 안으로 발을 내딪었다. 사령관의 안위에 대해서는 항상 곁을 지키는 귀엽고 충직한 컴패니언 대원들이 있어주기 때문에 경호대장인 블랙 리리스 단 한 명을 제외한다면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걱정거리도 실제로는 리리스 본인이 갖는 컴플렉스와 같은 것에서 유래되는 것인 만큼 문제되는 점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아아 그래. 정정, 집무실은 대체로 열려있다. 드물게 문이 닫혀있는 때에 사령관은 살짝 숨이 찬 듯한 목소리로 방문객을 돌려보내고는 하지만 대원들은 다들 상황을 짐작하고 다른 때에 찾아온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지만 그런 이들은 대체로 동행이 있기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메이 대장이라던가, 둠브링어 지휘관이라던가, 모 납작 대령의 속을 태우는 상관이라던가.


오늘은 사령관의 집무실이 열려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나른한 오후, 사령관은 자신의 무릎에 턱을 괸 하치코를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요령있게 오른손만으로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옆에 서있는건 오늘의 부관인 아르망으로 사령관이 들고 있는 책에 시선을 주고 있다가 문앞에 선 방문객에 눈치채고 작은 목소리로 사령관을 불렀다.


"사령관님의 마법소녀가 돌아왔어요!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모모구나. 오늘은 어쩐일이야?"

"네! 실은 마법소녀 뽀끄루를 대신해서 사령관님한테 전해드릴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래? 그럼 저쪽에 앉을까? 아르망, 마실걸 부탁해."

"네, 폐하."


아르망이 집무실 곁에 준비된 탕비실로 넘어가고, 사령관과 모모는 집무용 책상이 아닌 방 한켠에 준비된 소파로 몸을 옮겼다. 하치코는 여전히 사령관의 곁에 앉아 한손으로 쓰다듬을 받고 있었다.


"저기, 사령관님? 아까 읽고 계시던 낡은 책은…?"

"응? 저거? 멸망 전에 있던 연극의 서적판이라고 며칠전에 샬럿이 가져다준거야. 그러고보니 마침 마법소녀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읽고 있었네."


얼마 안 있어 돌아온 아르망이 탁자 위에 두 잔의 차와 접시에 소복하게 담긴 과자를 내려놓고 사령관의 뒤에 서자 사령관은 모모의 용건을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뽀끄루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지?"

"네, 사령관님도 아시다시피 백토가 뽀끄루의 마지막 의식을 남겨두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인데, 아마 그게 오늘 치뤄질 예정이라고 미리 말씀드리려고해서요."

"응? 그러면 뽀끄루가 직접 와도 되는 거 아니였어? 뭔가 문제가 있는거야?"


모모는 가볍게 웃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오기 전 뽀끄루의 차림새… 라고 할까 알몸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은 절로 미소지어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백토가 오늘 갑자기 정한탓에 지금 급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서요. 꼭 마음에 드실 거에요, 헤헤."

"오늘이라… 저녁에 일정이 없어서 다행이네. 아니, 달이 뜨는 걸 기다려서 한밤중에 하려나? 어때, 아르망?"

"오늘은 만월입니다, 폐하. 오후 6시 경부터 달이 떠오르고 정각에 가장 높이 위치하기에 백토님과 뽀끄루님의 방문시각은 정각정도로 예상됩니다만, 예지를 위해 필요한 의식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기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마워. 그러면 혹시 모르니까 오늘 밤 약속이 어쩌면 미뤄질 수 있다고 연락해 줄 수 있어? 만약 늦춰지면 1주일 내로 대체할 수 있다고도 부탁해."

"알겠습니다, 폐하."


아르망이 집무실의 문을 닫고 내선으로 전화를 거는 동안, 사령관은 하치코에게 책상에 엎어둔채인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사령관은 네잎클로버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를 펼쳐 모모에게 건네주었다.


"예전에 모모가 말해줬었지? 너를 포함해서 다섯명의 마법소녀가 나오는 연극이었다고. 아쉽게도 영상물이나 사진은 없는 서적이라 이미지가 잘 안 잡혀서 그런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다른 동료들에 대해서 알려줄래?"


모모는 말라서 표지가 갈라지고 누렇게 변색된 책이 혹여나 바스러질까 조심스럽게 받아들고는 천천히 내용을 읽어나갔다. 연극의 어느 부분인지를 파악해나가던 모모는 이내 부드러운 표정으로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그리운 이야기네요… 사령관님만 괜찮으시다면 말씀드릴께요. 소중한 동료 마법소녀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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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의 추억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생겨서인지 모모는 꽤 오랜시간동안 이야기했다. 앞에 놓여진 컵의 내용물을 몇 번이고 비워가며 다른 세 명의 마법소녀의 외형, 성격, 능력, 그리고 당시 연극의 관객에게 알려졌다간 큰일이 났을법한 뒷이야기를 섞어가며 말하는 모모는 이전에 백토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큼 즐거워보였고, 사령관과 아르망 또한 그 생생한 경험과 이야기에 빠져들듯이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가 일단락지어졌을 즈음, 사령관의 안에 한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모모, 다른 동료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사령관의 질문에 모모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이 살짝 갸웃하고는 말했다.


"어딘가에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만나러 갈거에요. 그치만... 제가 모르는, 저를 모르는 마법소녀라면 잘... 모르겠어요."

"음… 왜냐고 물어봐도 괜찮을까?"


사령관은 자신의 질문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모모 또한 사령관이 이해하고 있음을 알고있다. 그렇기에 모모는 곰곰히 생각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도 아시다싶이 저희는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에요. 연극을 위해서 외모도 성격도 기억도 전부 만들어진 저희는 인간님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존재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연극을 보여드릴 인간님도 없고, 사령관님이 저희가 했던 연극을 보고싶어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거기다 이전에 라비아타씨가 백토만 재생산했던 것처럼 다른 동료들은 싸우는것도 그다지 특기가 아니에요. 물론 사령관님이라면 동료들을 재생산할때 저희의 유전자에 각인된 그런 가짜 기억과 성격을 지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는데다 목표도 없는 동료들을 제 욕심때문에 재생산해 달라고 부탁드릴 수는…"

"모모..."


사령관은 할 말을 잃었다. 모모의 이야기는 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이라면 얼마든지 구실을 붙여서 바이오로이드를 재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목적을 잃어버린 바이오로이드를 태어나게 한다는것, 그것이 그녀들에게 있어서 도구나 다름없이 사용되던 과거와 비교해도 얼마나 가혹한 처사인지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령관은 모모에게 돌려줄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때, 집무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치코가 잽싸게 일어나 성큼성큼 문앞으로 걸어가 커다란 목소리로 방문객이 누구인지를 묻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자, 의식의 시간입니다 매직 젠틀맨. 이 문을 어서 열어주세요."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치코가 문을 열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먼저 들어온건 테마파크에서 찾은 두건 차림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백토, 그리고 이… 이…


"이이이이게 뭐야?!"


사령관은 방금전까지의 고민을 한순간 잊어버리고 그저 순수하게 놀랐다. 그녀들의 복장에 관해서는 더 이상 놀랄 여지가 없다고,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야성적인 한편 순수함의 극치인 모습을 봐 버렸던 만큼 이 이상의 무언가가 출현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보라, 온갖 서프라이즈와 예측불능의 사건사고로 가득한 오르카에서도 평정심을 잃지않는 그 아르망이 입을 벌리고 그녀를 쳐다보는 모습을.


"뽀끄루… 병영부조리가 있었으면 직통전화를 주면 됐을텐데…"

"사장님, 아니에요! 이건, 그… 의식 때문에…!"


뽀끄루 대마왕, 아니 마법소녀 뽀끄루는 하얀 문양이 그려진 짙은 보라색 부적과도 같은 것을 양 가슴과 사타구니에 정확히 세 장씩 붙였을 뿐, 그 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집무실 입구에 서 있었다. 팔을 이용해서 부끄러운 곳을 숨기려고 하지만 백토가 자랑스러운 듯이 바라보는 시선에 가리지도 못하고 어쩔줄 몰라하며 온몸으로 수치를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은 사령관에게 이전 펜리르가 경호를 하겠다며 알몸으로 나타났던 어느날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그… 알겠어. 그런데…"


미간을 부여잡으며 두통을 가라앉히려는 사령관은 다시금 지금 상황을 돌아보았다. 백토와 뽀끄루의 용건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먼저온 모모와의 이야기 쪽이 훨씬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백토에게 양해를 구할 수 없을까?


"백토? 저기 뭐야, 의식은 지금 바로 해야 하는거야?"

"음? 젠틀맨, 그러고보니 매지컬 모모와 함께군요.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는 건가요?"

"어? 아니, 모모는…"


백토를 상대로 한다면 말을 흐리거나 돌리는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내용과 더불어 뽀끄루의 충격적인 의식용 복장… 복식… 그 무언가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대할만한 대상은…


"에, 어, 저기…"


아르망은 안된다. 아직 충격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기, 백토야? 아무래도 사장님이랑 모모가 우리한테 서프라이즈로 뭔가 준비하고 있었나봐. 방해하면 미안하니까 다음에 오지 않을래?"


마왕님이 최고시다! 아니, 지금은 마법소녀지. 가장 상식 밖의 모습을 하고있으면서도 이 안의 누구보다 정상적인 대응에 사령관은 눈물이 흘릴 것 같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었다. 뽀끄루의 고마운 배려에 말을 맞춰주지 않으면.


"응, 미안해. 실은 모모의 요술봉을 개조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거든. 나중에 완성되면 알려줄테니까 지금은 조금만 기다려줄래?"

"흠… 계획대로라면 달의 힘이 가장 강한 오늘, 만월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의식을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군요. 의식은 오늘 0시 정각에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몸을 청결하게 하고 기다리세요, 매직 젠틀맨."


다행히 백토는 사령관의 변명을 믿고 집무실을 떠나갔다. 뽀끄루가 인사를 하고 백토의 뒤를 쫓으려던 것을 사령관은 말로 붙잡았다.


"뽀그루, 잠깐 괜찮을까?"

"네? 지금은 조금 많이 부끄러운데요…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 "

"아, 미안해. 하나만 물어볼 게 있어서. 너는 지금의 백토를 만나지 않았으면 백토를 재생산할거야?"

"네?"


정말로 마음속 깊이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이런 질문을 할 만한 대상이 뽀끄루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굉장히 무례했을지도 모르는 질문에 뽀끄루는 성실하게도 생각에 잠기더니 곧 답을 돌려줬다.


"네, 저는 그랬을 것 같아요."

"이유를 들려줄래?"


뽀끄루는 잠깐 복도로 고개를 내밀어서 바깥을 둘러보고는 백토가 멀리 떨어져있다는걸 확인하고 대답했다.


"예전의 저희는 인간님들이 정해준 대로 연기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백토를 만나고, 사령관님을 만나고, 모두가 있어줘서 저는 대마왕이 아닌 마법소녀가 될 수 있었어요."


여전히 부끄러운지 가슴과 사타구니를 손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뽀끄루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한편으로 부적을 소중히 여기고있기 때문이리리라.


"백토에게 죽을 운명이었던 제가 마법소녀가 된건 기적이라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과거의 인간님들이 없는 지금이라면 분명, 몇번이라도 저는 백토와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말한 뽀끄루는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서, 려다가 돌아서서 사령관을 보았다.


"그리고 그건 사장님이 있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저기… 오늘 밤에…"


뽀끄루는 아까전 집무실에 들어설때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떠나갔다. 문 옆에 계속 서 있던 하치코가 집무실 문을 닫은 뒤 사령관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고, 드디어 정신을 차린 아르망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흐트러진 모습으로 벽에 손을 짚고 겨우 서 있었다.


"아르망, 괜찮겠어?"

"죄송합니다, 폐하… 연산 피드백 회로에 조금 무리가 간 모양이라…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비어있는 손으로 가슴께를 누르며 숨을 고르는 아르망을 보면 방금 전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령관은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대신 아르망을 앉히고 탕비실에서 차를 타다가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르망은 고개를 기울여 감사를 표하고 천천히 차를 입에 머금었다.

그 광경이, 사령관의 뇌리 한구석을 자극했다. 아르망에게는 미안하지만 분명 평소에는 볼 수 없던 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이 사령관에게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리라.


"아르망, 뭣좀 물어봐도 괜찮을까?"

"휴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도움을 드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로 괜찮으시다면 부디."

"혹시 과거에 있던 연극을, 덴세츠의 극이 아니더라도 재현할 수 있을까?"

"재현… 이라고 말씀하심은?"


사령관은 탁자 위에 올려져있던 책을 집어들어서 내용물을 팔랑팔랑 넘기더니 소개의 어느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모모타로이야기라던가 카구야히메라던가.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멸망 전의 인류가 만든 이야기나 연극이 전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가혹한 이야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그래서 그런 과거의 이야기를 덴세츠처럼 연기에 특화된 대원들이 재현할 수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다들 알다싶이 대원들이 즐길거리가 거의 없잖아, 지금 세상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 제안을 다른 대원들이나 새로이 재생산될지도 모를 전 마법소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르망은 시선을 책에 고정한채로 골똘히 생각하더니 사령관을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폐하, 인류가 멸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자연적으로 유실되었고, 남아있는 것들 또한 대부분이 인류에게 있어서 중요한 정보들이었기에 엄중하게 지켜지고 있었던 만큼 과거의 유희나 오락에 관한 것들은 많이 없으리라고 예상됩니다."


대원들이 탐색으로 얻는 것들은 대부분 장기간의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통조림들과 방습방부대책이 철저히 세워진 보관시설의 자재들이었고, 이번에 얻게 된 책은 정말 우연하게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 놓여져 있던 것이었다. 아르망의 답변에 사령관은 멋쩍게 머리를 긁고는 모모를 바라보았다. 모모 또한 책에서 시선을 떼어놓지를 못하고 아래를 바라보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평소에는 짓지 않는 종류의 표정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폐하. 만약 아주 작은 파편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제 연산회로와 AGS의 연산자원을 활용한다면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유사한 정도로는 복원이 가능할 거라고 예측합니다."


그래서 아르망의 그 말은 사령관에게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다. 아르망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때때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녀의 말 - 예상은 상당한 신뢰도를 갖고 있었고 모모와 사령관에게는 한줄기 광명처럼 비춰졌다.


"그리고 아직은 오르카호의 운영과 대원의 보급을 우선적으로 탐색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지상거점의 확보와 더불어 식량과 자원 생산기반이 세워져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있는 만큼 이전에는 후순위였던 과거 자료들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요. 이 책의 존재가 저희가 그러한 단계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증명이 아닐까요?"


아르망은 책을 살포시 모모의 앞으로 밀어주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령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모모의 등에 손을 얹고 말을 걸었다.


"모모, 잠깐 바깥 공기를 쐬고 오지 않을래?"


오르카호는 작전행동중이 아닌만큼 섬 근처 연안에 부상해있는 중이었다. 실내의 공기 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포츈을 비롯한 엔지니어 일동은 잘해주고 있다. 다만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바람과 자연광은 기분을 전환하는데는 최고라고, 언젠가 세이렌이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사령관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난 모모는 평소처럼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연기를 위한 표정처럼 보였다. 사령관은 아르망에게 집무실을 맡기고 하치코와 함께 해치로 향했다. 두 개 층을 걸어올라가서 해치 앞에 오자 입구에 세워진 간이초소에서 브라우니가 꾸벅꾸벅 졸면서 서 있었다.


"하치코, 미안하지만 잠깐만 안에서 기다려줄래? 괜찮아, 바깥이면 미호가 지켜보고 있을테니까."

"네, 주인님. 하치코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돌아갈때는 불러주세요~."

"그래, 고마워."


하치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브라우니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서 깨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브라우니는 비몽사몽한채로 사령관과 모모의 얼굴을 번갈아보고는 명부에 작성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육중한 출입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문틈사이로 바다내음과 태양빛이 확 쏟아져 들어오고, 눈이 빛에 적응하려고 몇 번 깜빡거리는 동안 문이 완전히 열렸다. 오르카호의 상부갑판에는 휴게시간인 듯한 스틸라인 대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떠들고 놀고 있었고, 후미쪽에는 호라이즌대원들이 바다로 뛰어들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해치 옆의 그늘에는 얼음물로 차게 식혀둔 음료가 가득한 아이스박스도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도 하나씩 받아둘까?"


손에 집히는대로 하나씩 집어든 음료와 함께 모모와 사령관은 해치를 빙 돌아 대원들이 잘 오지 않는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르카호에 등을 기대고 선 둘은 잠깐동안 아무말 없이 음료의 맛을 탐미하며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령관이 손에 든 음료를 반 정도 마셨을 무렵,  정박중인 섬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섬에서는 브라우니들과 분대장 대원들, 그리고 마리가 함께 모래사장 위에서 구보를 뛰고 있었다. 


"요안나에게는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오르카호와 떨어져서 섬을 개발하는 일을 솔선해서 맡아준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지금이라면 잘 알거든. 분명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고, 도움이 될 거란 걸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나서서 하기는 힘든 그런 일이야."


사령관은 남은 음료를 입에 털어넣은 뒤, 입가를 닦고는 말을 이어갔다.


"원래는 영화 촬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안나지만 지금은 전혀 관계없는 곳에서 전혀 관계없는 일을 나서서 해주고 있어. 나는 바이오로이드 대원들이 무언가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어도 스스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원래 목적을 위한 특기를 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야."


사령관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바라보던 모모와 시선이 마주쳤다. 모모는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물 맺힌 눈으로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우리 대원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건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만약 예전 친구들을 보고싶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모모는 눈물을 삼키듯이 뒤돌아섰다. 잠깐 동안 옷소매로 눈가를 훔친 모모는 그대로 사령관을 등진채 말문을 열었다.


"사령관님, 예전의 저는 촬영이 없는 날에는 오래된 영화들을 보고는 했어요."


수평선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모의 뒷모습은 사령관에게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영화관의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수십년도 더 전에 보았던 광경이지만 지금의 모모에게는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중에서 모모는 로맨스 영화를 가장 좋아했답니다. 연애나 사랑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영화속 히로인을 보는게 좋았거든요. 그러다 어느날, 소원이 생겼어요. 정말로 영화 속의 히로인같이 되고싶다는 소원이요."


모모는 빙글 돌아서더니 목을 가다듬고는 자세를 잡고 연극을 하듯 어떤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로마에요. 몇번이고 말해도 로마에요. 저는 평생토록… 제가 온 이 로마를 기억할거에요."


그녀의 연기를 본 사령관이 어떻게 반응할 지 곤란해하는 얼굴에 모모는 무심코 웃음이 터졌다. 언제나 얼굴에 띄우고 있는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즐거움에 가득찬 진짜 웃음이었다.


"아하하핫! 하하, 헤에, 죄송해요 사령관님. 이건 모모가 되고싶다고 생각한 여주인공이 등장한 영화의 대사에요. 하지만 저희는 인간님들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도구인만큼 기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는요."


그렇게 말하면서 모모는 사령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령관은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 작고, 희며,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바라보고는 다시 모모를 쳐다보았다. 모모가 하고싶은 말을 끝까지 듣기 위해서.


"사령관님, 모모와 함께 영화를 찍어요. 그리고 마법소녀가 아닌 모모를 봐주세요."


사령관은 모모가 내민 손을 마주잡으며 목소리에 힘을 싣고 대답한다.


"그래. 모모가 그 여주인공을 부러워한 만큼, 다들 모모를 부러워할만한 영화를 찍자."


기쁨에 복받쳐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는 모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사령관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니까 모모가 도와줘야되, 알겠지?"

"네… 사령관님, 모모 노력할게요!"

"좋아, 그러면 그렇게 정했으니 행동으로 옮겨야겠지? 바로 돌아가서 영화을 찍는데 필요한 기재랑 촬영인원이랑, 또 대본도 필요한가? 그리고…"

"사령관님, 저기..."


사령관이 생각에 잠기며 모모를 이끌고 함내로 들어가려는 것을 모모가 불러세웠다. 사령관이 미소지으며 돌아보자 모모가 조금 부끄러운 듯한 얼굴로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왜 그래?"

"그, 혹시…"


사령관은 재촉하지 않고 모모가 말하는 것을 기다렸다. 잠깐의 기분좋은 침묵이 지나고, 모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마법소녀 동료들도, 볼 수 있을까요…?"


철든 어린아이가 소심하게 선물을 조르는 듯한 모습에 사령관은 무심코 입가가 풀어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겨우 말로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소원을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다른 대원들에게도 항상 염두해두도록 전해줄게."

"고맙습니다…!"


사령관은 모모의 손을 이끌어 해치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졸고 있던 걸 걸렸는지 레드후드에게 얼차려를 받는 브라우니를 지나쳐 하치코를 데리고 집무실로 향한다.

오늘은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할 필요가 생겼다. 영화를 찍는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해야하고, 모모와 대본도 만들어야 하고, 모모가 찾는 동료 마법소녀에 대한 정보를 모아 탐색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당장 오늘 밤에는 백토와 뽀끄루가 치룬다는 의식을 도와줘야한다. 몸이 두 개, 세 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즐거운 표정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