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키리시마 이치카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에는 이제는 젊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는 여성이 비춰지고 있었다. 세상을 바꾼다. 그런 포부를 가졌던 젊은 여성의원은 이제 없었다. 주름이 늘어나는 것이 걱정인 한 여성만 남아있었다.

이치카는 한숨을 쉬었다. 주름은 화장으로 가려졌지만 주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선가는 오리진 더스트를 이용한 불법 시술로 피부노화를 막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치카에게는 먼곳의 이야기였다.

“의원님, 연설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사치였다. 의원 보좌용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였다. 젊고 귀여운 얼굴을 한 아이였다. 이치카는 사치를 볼 때마다 자신도 저런 외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 정도의 바이오로이드였다.

“미안.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말야. 사람들은 어때? 많이 모였어?”

“직접 세보지는 않았지만 주최측에서는 5천명정도 규모라고 합니다.”

“5천명이라… 한번도 그정도 되는 인원들 앞에서 유세를 해본 적도 없는데 말야.”

이치카의 지역구는 시골이었다. 지역구민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큰일이겠지만. 매일같이 상승하는 노인비율을 걱정하는 수많은 일본 지방도시의 현실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이치카의 유세장의 대부분은 노인정이나 마을회관이었으니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평소 연습하신대로만 말하신다면 저들은 만족할 것입니다. 여기 시원한 차입니다.”

사치는 그렇게 말하며 녹차가 든 페트병을 이치카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역시 너뿐이야.”

다른 보좌관들은 의원실에서 법안을 준비하느라 이런 곳까지 이치카를 따라올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그녀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바이오로이드인 사치뿐이었다. 이치카는 병을 따서 녹차로 목을 축였다. 여느 인스턴트 녹차의 맛이었지만 이런 곳에서 고급 녹차를 찾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사치, 너는 내 연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오탈자와 문법에 어긋난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시적 허용이라 하던가요, 문법상에는 맞지만 어법에 틀린 부분이 조금 있었습니다.”

연설에 있어서 중요한 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그를 위해 약간의 문장성분의 변형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외적인 부분 말고. 연설문에 대한 네 생각을 묻는 거야. 너도 준비하면서 여러 번 읽고, 들었으니까.”

연설은 단순히 연설문을 쓰고 단상에 서서 발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초고를 쓰고 읽어보고 고치고 수정본을 쓰고 다시 읽어보고 다시 고쳐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치카는 그 작업을 혼자 하지 않았다. 사치는 항상 이치카의 옆에 있었다.

“명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만, 점점 강렬하고 듣기 좋은 연설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역시 이치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사치는 지적을 잘 하는 바이오로이드였지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바이오로이드이기도 했다. 명문입니다. 라는 대답은 이치카가 초고를 읽어주었을 때부터 하던 말이었다.

“그냥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너는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연설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저는 의원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의원님이 어떤 주장을 하시건 저는 그에 동의합니다.”

괜한 질문을 한 건가 싶었던 이치카였다. 사치는 덴세츠가 만든 바이오로이드였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 아니란 이야기는 덴세츠가 바이오로이드를 팔기위해 주장하는 말이었다. 그런 덴세츠 사이언스에서 만들어진 사치가 그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리가 없었다.

“그 대답은 네가 덴세츠 사이언스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야, 아니면 정말로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이치카는 다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는 사치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처음 의원님을 보았을 때부터 의원님은 무언가에 열심이었습니다.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았던 저는 모르는 것도 많았고 잘못된 일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다른 의원님들이라면 화를 낼법도 했지만 의원님은 언제나 저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네. 저는 덴세츠 사이언스에서 의원님을 따르고 보좌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의원님을 지지하는 것은 의원님의 그런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이 의원님의 모습을 보고 지지하듯,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치의 말에 이치카는 웃었다. 덴세츠의 프로그래밍이든, 사치의 본심이든, 이치카에게는 기댈 누군가가 있었다. 이치카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목을 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이야기를 하다보니 연설에 조금 늦어지게 되었네. 뒤에서 응원해줘.”

이치카는 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의원님, 긴장하지 마시고요. 파이팅입니다.”

사치는 귀엽게 두 손을 꼭 쥐고 들어올리며 말했다. 누가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모습이었다. 사치. 행복이라는 뜻이었다. 그 이름대로 사치는 의원실에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토오노가 죽은 이후 침울해진 의원실을 분위기를 되살려 준 것도 사치였다. 법안이 표류해서 모두의 의욕이 떨어졌을 때 그들을 응원해준 것도 사치였다.

이치카의 마음 어디서에는 사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준비하는 법안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가 다 저렇다면, 아이 같은 바이오로이드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그런 이치카의 마음을 가다듬게 해준 것 역시 사치였다. 사치는 이치카에게 왜 의원이 되었는지 상기시키며 법안을 다시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사치는 이치카에게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운 존재였다.

“역시 너뿐이야.”

이치카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무대의 백스테이지가 보였다.

“아, 의원님 나오셨습니까?”

진행요원중 하나가 이치카를 보더니 무전기를 들었다.

“의원님 나오셨습니다. 연설 준비 진행해주세요.”

무대는 시끌벅적했다.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는지 흥겨운 음악이 저 멀리서 들려왔다. 이치카는 진행요원을 보았다. 그녀의 티셔츠에는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뒷면에는 ‘바이오로이드는 바이오로이드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의원님, 오늘 연설 기대하겠습니다!”

지나가던 진행요원이 그렇게 외치며 지나갔다. 다른 진행요원들도 이치카를 응원했다. 응원이었지만 연설을 준비하는 이치카에게 있어서 그것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쌀쌀한 공기가 느껴지는 봄이었지만 이치카의 손에는 약간의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의원님, 이제 무대로 가시면 됩니다.”

이치카는 살짝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붙잡았다. 겨우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였다.

“의원님. 연설문을 두고 가셨습니다.”

사치가 이치카의 뒤에 와 그녀에게 종이뭉치를 건네주었다.

“의원님은 제가 없으면 안되겠네요. 설마 연설문을 다 외운건 아니죠?”

“설마. 고마워.”

사치의 얼굴을 보자 이치카의 긴장이 누그러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치는 별 말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응원이 되는 것 같았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의원님.”

사치는 다소곳한 정자세로 서며 말했다. 이치카는 연설문을 흔들며 사치에게 인사를 했다. 천천히 무대로 걸어갔다.

““와아아아!””

무대로 나서자 너무나 밝은 조명과 수많은 사람의 함성이 이치카의 모든 감각을 메웠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이치카는 천천히 단상으로 나아갔다. 연설문을 발표대에 내려놓은 이치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쿄구 신주쿠구 이치가야. 방위성 청사가 있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몇사람으로 시작된 시위는 사태가 악화되어가며 점점 늘어갔고 이제는 5천명이나 되는 시위대가 되어있었다. 이치카는 이 시위대에 찾아온 첫 국회의원이었다. 의회에서는 시위를 환영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과 일치하는 집단이었지만 시위처럼 소란스러운 곳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그들이었다.

이치카는 달랐다. 일본은 시위를 잘 하지 않는 나라였다. 이정도 규모의 시위대를 역사속에서 찾아본다면 쇼와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할 것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민의라 불렀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무라고.

“안녕하십니까. 중의원 키리시마 이치카입니다.”

이치카의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울려퍼지자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이치카가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별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마디면 충분했다.

“여러분!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닙니다!”

군중들은 더욱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치카는 군중의 반응을 기다리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키리시마! 이치카! 그녀의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해자대를 외쳤다. 해자대는 파업을 철회하라!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져 더 이상 무슨 말이라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소리가 되었다. 그 소리는 어떻게 듣냐에 따라 달라질 소리였다. 이치카는 방위청 청사 A동을 바라보았다. 해상막료장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었다. 그에겐 이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이치카는 궁금했지만 그녀에게는 읽어야할 연설문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이치카는 군중을 보고 다시 외쳤다.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