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정신상태가 이상하다 (1) https://arca.live/b/lastorigin/8087917









 "호위하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나는 집무실 앞에 서 있는 발키리를 보고 콘스탄챠에게 눈길을 돌렸다.

 T-8W 발키리는 모신나강을 어깨에 매고 집무실 옆에 서 있었다. 마치 명령이라도 받고 여기로 나온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내 기억속에 발키리를 호출했던 기억은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리리스가 새벽에 나를 찾아왔고, 콘스탄챠가 리리스를 몰아내었다는 것 뿐이다.


 "제가 발키리 씨를 불렀어요, 주인님."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한테 호위가 붙을 만한 일이라도 있어?"


 콘스탄챠는 나와 발키리 사이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독단으로 일을 결정한 것에 대해 사죄하는 듯한 그림이다. 콘스탄챠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갑자기 발키리가 내 옆에 따라붙는 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호위대장인 리리스 씨가 당장 주인님 곁에 있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어요. 제가 리리스 씨를 '설득'할 동안 발키리 씨를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 붙여 놓을 테니 불편하시더라도 참아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 리리스의 상태가 이상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녀를 떼어 놓아야 한다는 판단에도 동의한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 새로운 호위를 정했다는 데 안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그 대상자가 발키리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발키리라면 콘스탄챠의 약간은 독단적인 선택에도 괜찮다고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반가워, 발키리."


 발키리는 오르카 호에 처음 왔을 때부터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콘스탄챠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집무실 안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콘스탄챠는 따라오지 않았지만 발키리는 집무실 안까지 따라왔다.

 발키리는 어색해 하지도 않고 의자에 앉은 내 옆에 가지런히 섰다.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올곧은 몸가짐이었다. 시선은 집무실 너머의 저 끝을 보는 것 같았다. 눈 앞에 설원이라도 펼쳐져 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오랜만이야, 최근에는 볼 일이 자주 없었는데. 그 동안 뭐하고 지냈어?"


 나는 자리에 앉아 결재가 필요한 서류들을 넘기며 발키리에게 물었다.

 발키리와는 좋은 추억이 있었다. 그녀는 믿음직스러웠고,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해냈다. 인프라가 미흡하던 오르카 호의 초기 시절때는 발키리만큼 믿음직스럽게 임무를 믿고 맡길 만한 대원이 없었다. 그 덕에 나와 얼굴도 자주 봤고 서로 신뢰를 쌓아 뒀던 사이다.


 "사령관님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가벼운 농담도 가능할 정도의 사이라는 거다.

 발키리는 마음씨는 착해도 겉으로 보기엔 쌀쌀맞아 보여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접하기 쉬우니까. 게다가 그녀는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농담도, 최근에는 복잡한 임무들이 많아서 자주 보지도 못했네. 뭐 바라는 거나 원하는 건 있어?"


 "사령관 각하와 같이 있는 이 순간이 제가 바라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서류를 넘겼다. 아마 콘스탄챠가 발키리를 내 옆에 붙여 둔 것도 이런 발키리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농담입니다. 대부분은 훈련과 반복임무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령관 각하와 함께 임무를 나갔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군요."


 다행이다. 발키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나는 속으로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발키리를 돌아 보았다. 감정모듈을 해치는 파장이라는 게 발키리에게까지 먹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격수라 그런가, 마음가짐이 원래부터 남들보다 단단한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콘스탄챠의 안목과 눈썰미는 대단하다는 소리가 된다. 콘스탄챠도 파장의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은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시기에 완변한 인재를 내 옆에 붙여 두다니 말이다.


 "저기, 사령관 각하. 저희가 얼굴을 마주 본 지도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내가 발키리와 눈을 마주치자 발키리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렸다.

 발키리는 눈을 집무실 안의 이곳저곳을 흘기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대충 보니 집무실 안에 발키리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발키리가 품 안에서 손을 꼼지락 대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그동안에 못 해 주셨던 선물을... 지금 몰아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보니 발키리와 안 한지도 꽤나 오래 되었었지. 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발키리에게 대답하려고 했다.

 아주 잠시간의 고요, 그러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거대한 소음이 터져나와 발키리와 내 사이의 대화를 묻어버렸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몇 번을 들어 알고 있었다. 창병기 소리와 화기 소리. 철충과의 전투에서 수없이 들어 알고 있다. 이건 전투의 소리다. 집무실 뒤쪽 벽 너머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전투로 인한 소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집무실 벽의 뒤쪽이다. 발키리를 돌아 보니 그녀도 이미 나보다 먼저 알아차린 듯 어깨에 맨 모신나강을 뽑아 들고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가자."


 "각하께서 직접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발키리가 하는 말은 맞다. 하지만 여기는 오르카 호 안이다. 철충들이 나타날 리가 없는 공간. 하지만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는 취약할 수도 있다. 바닷속에는 철충이 살지 않는다. 이건 철충이 아닌 다른 문제가 전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해."


 "만약 각하의 신변에 위협을 끼치는 존재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발키리의 각오를 다진 말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몸과 발키리의 몸이 동시에 움직였다. 나와 발키리는 소음이 들리는 진원지를 향해 달려 나갔다. 따로 맞춘 적은 없지만 원래부터 맞춰오던 것처럼 서로의 호흡이 잘 맞아 떨어졌다.



 -



 "주인님을 불러 와!!!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소음이 들려오는 곳. 오르카 호 안의 인공 배양소 안에서 수없이 깜빡이는 날개를 가진 바이오로이드가 활개하고 있었다.

 발키리가 내 뒤에 멈춰 섰다. 그녀의 인공 눈으로도 누가 이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리제의 날개는 전투 때처럼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유연한 비행으로, 전진과 후진, 위 아래를 가리지 않고 기교섞인 비행을 하며 인공 배양소를 말 그대로 박살내고 있었다.


 "주인님!!!! 어디 있는 거예요?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을 대려 오란 말이야!!!!"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리제의 발 밑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다프네가 쓰러져 있었다. 나는 다프네를 확인한 순간 내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땅으로 추락해버린 다프네의 곁으로 달려갔다. 발키리도 마찬가지로 내 뒤를 따라 달려왔다.

 그리고 인공 배양소를 박살내고 있던 소음이 멎었다.


 다프네는 눈을 감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몸 전체가 흙투성이였다. 그녀의 마이크로봇과 날개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다프네의 날개에서 깜빡거리며 불빛이 점멸했다.

 나는 다프네를 이렇게 만든 시저스 리제를 올려다봤다.


 소음은 이미 멎어 있었다.


 리제는 공중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제의 입가에 소름끼치는 미소가 떠오른다. 리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지금까지 예상할 수 없는 피해와 소음을 만들어냈던 그녀가 조용해진다. 인공 배양소의 안에선 오직 리제의 날갯짓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주인님."


 "리제, 내려 와."


 "주인님!!!! 가디라고 있었어요, 어디 계셨던 거예요?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 제가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인님의 얼굴이 보고 싶었어요. 주인님을 사랑해요. 주인님!!! 이리로, 이리로 와요. 저를 안아 주세요. 저기 주인님의 옆에 있는 해충은 무시해 버리고 제게 오세요!"


 리제가 소리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내뱉고 있다. 그녀의 눈이 뒤집어져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리제가 부끄러운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그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커다란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절대로 시야 밖에 내놓지 않겠다는 듯이. 내 주위에 있는 다프네와 발키리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필요 없어요! 주인님만 있으면 돼요! 주인님,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저만이 주인님을 진짜 사랑하고 있어요. 제가 진짜 주인님의 사랑이라고요. 누구도 저만큼 주인님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분명해요. 확실해요 제가 제일, 제일, 제일 세상에서 제일 커다랗게 주인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발키리, 내가 신호하면 언제든지 쏘도록 해. 위험한 데는 노리지 말고 되도록이면 날개쪽으로."


 내 뒤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발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발키리에게 말을 건넨 아주 잠깐의 시간, 리제가 어느새 내 눈앞으로 날아와 있었다.


 "어디를 보는 거예요? 주인님?"


 리제의 커다란 눈이 내 눈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리제의 숨소리가 내 입술에 닿고 있었다. 리제의 동공은 이미 작아져서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리제가 내 앞까지 날아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발키리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 1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눈을 돌린 것 뿐이었다. 그런데 리제는 어느새 내 눈 앞에 날아와 있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철컥하고 총을 겨누는 소리가 들렸다.

 발키리가 겨눈 모신나강의 총 끝이 리제의 머리통을 향하고 있었다. 리제가 내 앞까지 날아온 것처럼 아주 찰나의 시간. 미친 듯한 반사신경으로 어느새 발키리가 자세를 잡고 코 앞에 있는 리제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리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발키리가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것 같았다. 리제의 눈은 오직 나만을 본 채로, 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나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네? 주인님? 제가 눈 앞에 있잖아요? 대체 어느 해충에게 눈을 돌리시는 거예요?"


 리제의 눈이 내 눈 앞에 더 가까워져 온다. 그녀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여기 발밑에 있는 이 해충인가? 주인님, 보세요. 날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해충일 뿐이에요. 주인님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쓸모없는 해충이라고요. 제가 해충을 잡았어요 주인님. 주인님을 사랑하니까요. 주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네? 네? 네?"


 발키리의 손가락 끝이 움직였다. 안전장치를 풀고 언제든지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귓가에 바로 붙은 발키리의 총신이 느껴졌다.

 리제는 발키리에게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파리가 날라다니는 것 같이 무신경했다.


 "주인님, 저를 보세요, 해충은 눈에도 담지 마시고 저만을 바라보세요. 주인님, 제가 있잖아요. 주인님에겐 배신하지 않는 제가 있어요. 제가 주인님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을게요. 온 세상이 주인님을 배신해도, 해충들이 주인님에게 몰려와도 저는 주인님 곁에 있을 거예요. 저예요, 저. 저만이 주인님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진짜 사랑이에요. 거짓된 사랑이 아니라구요. 마음 속에서 우러러 나오고 있어요.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주인님과 함께할게요. 맹세해요. 제 목숨을 걸고. 제 모든 것을 걸고. 저를 마음대로 하셔도 좋아요. 저는 이미 주인님의 것이니까요. 네? 주인님, 주인님? 저를 봐요. 저를 봐 주세요. 설마 지금 다른 해충들에게 신경 쓰시는 건가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제가 부담스러우세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이렇게 주인님을 사랑하는데. 네? 네? 네? 네?"


 리제의 말이 속사포처럼 내 정신을 뒤덮고 있었다.

 어느새 뽑았는지도 모르게 리제가 뽑아 든 거대한 정원 가위가 쓰러져 있는 다프네의 목 위를 겨누고 있었다.

 내가 시선을 잘못해서 조금 내리기라도 하면 리제는 그대로 다프네의 목을 찍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진정하려 노력했다. 눈 앞에는 리제가 날갯짓 소리를 내며 붕 떠 있었고, 아래에는 다프네가. 뒷편 사선에는 발키리가 총을 겨우고 있었다.


 나는 숨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리제?"


 "네, 주인님? 부르셨어요? 제가 저희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은 어떻게든 다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의 사랑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키리의 모신나강에서 불꽃이 튀었다.

 발키리는 리제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입에서 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발키리는 방아쇠를 당겼고, 그녀의 총구에서 뿜은 빛이 리제를 뚫고 지나갔다.


 흐릿해진 시야에 리제가 풀썩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눈 앞에 총구가 내뿜은 얕은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고, 귀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먹먹한 감각만이 느껴졌다. 아주 높은 소리로 삐이익 하는 이명만이 들리고 있었다. 나는 귀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귀 바로 옆에서 터진 폭음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시야마저 뿌옇게 변했다.

 리제는 땅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바로 앞에 누워 있는 다프네와 정 반대의 모습으로. 눈에 힘이 풀려 있었다. 그녀의 몸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입에선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주인님... 어째서..."


 리제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이 오는 소리에 묻혔다. 총소리를 들은 다른 대원들이 인공 배양소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짓을 동원해서 명령했다.


 "당장... 두 명을 의무실로 대려가."


 귓가에선 이명이. 시야는 흐릿하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나는 발키리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