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한참 우기일 때라서 그놈의 스콜이 처마를 시끄럽게 두들겨대던 어느 밤. 폭우 때문인지 텅 빈 카페 겸 바의 스윙도어를열고 손님이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손님, 당분간 술 주문은 못 받아요.” 


점장은 자기 뒤편의 맥주 한 병조차도 없이 가지각색의 빈 술잔들만 진열된 찬장을 가리켰다. 하지만 손님은 성큼성큼 바로 걸어갔다.


손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점장은 화들짝 놀라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관등성명을 대었다.


“쉬어, 아니 자네가 전역하고 이런 술집을 차릴 줄 꿈에도 몰랐군.”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죠. 그건 그렇고 휴가라도 나오셨습니까, 마리 소장님?”


비에 젖었지만 붉은 군모와 군복을 입고 스틸라인을 이끄는 마리 4호기, 불굴의 마리라 불리는 그녀는 흐트러진 모습을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주무장인 주시자의 눈 하나가 커다란 캐리어를 힘겹게 들고 있었다.


“오늘부로 전역했다네 이제 그냥 마리라고 불러주게.”


점장은 은퇴했다는 마리의 말에 매우 놀랐지만, 비에 젖은 그녀를 보고 재빠르게 수건을 건넸다.


“고맙네, 미안하지만 잠깐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서 신세 좀 지겠네.”


“저... 소장님”


“이제는 이름으로 부르게.”


점장은 어렵사리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마리씨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도 계속 젖어있으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탈의실은 없지만, 따로 직원 휴게실이 있으니 그곳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으시죠.”


마리는 고맙다고 말하고 캐리어를 들고 방으로 가려 했지만 그녀의 짐에는 갈아입을 옷이 사령관을 유혹하려고 입었던꽉 끼는 교복과 부대원들이 억지로 사령관 침실에 밀어 넣으면서 선물로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네글리제뿐이란 것을 깨달았다.


“혹시 자네 남는 옷이 있나?”


“그... 알바복이 있긴 하지만 군에서 받은 활동복이 더 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마리는 은퇴하고 나서 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감상에 젖어 군과 관련된 물품을 정리하면서 전투 모듈, 주시자의 눈3기, 그리고 활동복까지 전부 반납했다. 그래서 그녀가 입을 옷은 두개의 야한 옷뿐이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주시자의 눈한기는 전투능력을 제거해서 원래 역장 능력으로 비를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애완용 로봇이었다.


“그냥 알바복 주게나.”


“아니 설마 입을 옷이 그 ‘두개의 옷’ 뿐이에요?”


점장은 예전에 Talonhub에서 봤던 마리 소장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네 그런 건 어디서 들었나? 내가 자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 없었는데 말이야.”


“아... 그... 그냥 저도 어디서 흘려들은 얘기입니다 흘려들은...”


지금 열대야가 한창임에도 점장의 등줄기에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점장은 바로 잘 다려 놓았던 제일 큰 사이즈인알바복을 대령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점장은 최근에 블랜딩한 신선한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았다.


곱게 갈린 원두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꺼낸 포터필터에 채워졌다.


가볍게 필터를 탬퍼로 눌러준다. 필터를 다시 머신에 꽂기 전 추출수를 한번 빼내고 꽂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기계음과 함께 진한 커피 향이 바를 가득 채웠다.


추출이 다 끝나서 기계음이 멎을 즈음 직원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이제 계급장과 불굴이라는 이명이 없는 마리가 바 쪽으로 걸어왔다.


카페 알바복을 입은 그녀는 제일 큰 사이즈를 입고 앞치마로 가렸어도 그 키 때문에 꽉 끼는 부분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리고 젖은 머리를 묶어 포니테일을 한 그녀는 쥐고 있던 알바 모자를 써 보였다. 거의 난생처음 정상적인 민간인이 입을법한 옷을 입은 그녀는 어색한지 수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음.... 좀 끼는 부분이 있네만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어울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