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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오리진의 세계관에서 펙카스들이 부활했다는 상황보단 좀 나을지 모르나, 이쪽 세계에서 펙카스들이 부활한 것도 더 큰 문제였다. 라스트오리진 세계관에서와 다르게 정말 가진 세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내가, 바이오로이드 군단을 이끌고 있을 수도 있는 펙스를 상대로 정면대결을 할 수 있겠는가. 한 수, 한 수... 신중을 다해 수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 그리고. 죄송해요 주인님. 엘프를 염탐하다가 결국 들켜버렸어요."

"들... 켜? 리제! 몸은, 몸은 괜찮은 거야?"

"네?"



아뿔싸,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무엇보다, 리제의 몸상태를 살피지 못했다. 황급히 알바트로스 동체에서 내려 그녀에게 달려왔다. 빠르게 그녀가 부상이 심한지 체크를 하려는데, 다행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염탐 지역을 탈출한 것 같았다.


리제는 자신의 몸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에 괜스레 부끄러워했는지 볼에 홍조가 살짝 피어올랐다.






"주... 주인니임..."

"리제, 다친 곳은 없어? 정말 괜찮은 거야?"

"저는 괜찮아요... 물론, 그 엘븐 햇츙들한테 포위당했긴 했지만. 주인님께서 몸 다치지 말고 오라 하셨잖아요!"

"... 리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리제가 어떻게 발각되고 나서도 추격을 뿌리치고 왔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엘븐아이들, 그러니까... 세레스티아와 세크메트, 그리고 하토르는 게임 설정 상 SS랭크의 고급 바이오로이드인데.



"주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그리고... 으음, 조금 걸리는 게 있었긴 했는데..."

"... 응? 걸리다니. 뭐가?"

"그게... 뭐랄까. 바이오로이드 치곤 조금, 약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리제는 자신이 전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곰곰이 시선읗 하늘로 향하다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오르카를 지휘하셨을 때 있었던 햇츙, 아, 아니... 바이오로이드들 보단 조금 약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

"아마... 햇츙이랑 하얀 햇츙 정도면... 무리 없이 엘븐 햇츙이랑 디자니어 햇츙은... 제압이 가능했을 수도요?"

"리리스랑 소완 말이지?"



걸음을 멈추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물론 소완과 리리스는 게임 설정 상 SS랭크의 고급 바이오로이드이고 게임 내에서 나는 리리스와 소완에게 서약을 해준 것은 물론이고 풀링크에 100레벨 까지 찍은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리제에게도 그랬었다.


물론 리제를 깎아내리는 말은 아니었지만 리제의 경우에는 풀링크에 S급 승급을 마친 상태였어도 태생적으로 그녀는 '양산기'라는 설정과 낮은 체력으로 다른 바이오로이드에 비해 전장에 많이 내보낸 적은 없었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리제 말고도 글라이시아스, 에밀리, 샬럿 등등... 확실히 딜을 잘 뽑는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엘븐아이들로 짰던 덱도 변소를 오를 때 많이 애용했던 덱이었다.


하지만 리제의 말로 그들이 약했다는 건... 라스트오리진의 세계관에서 왔던 내 아이들과, 이 세계에 오리지널로 존재하는 바이오로이드의 전투력 차이가 심하다는 걸까? 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페로는 리리스의 말대로 약하다 했지만... 펙스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내 아이들보다 약하다면?



"아냐... 그렇다고 도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기는 수복시설이고 뭐고 이런 곳이 하나도 없잖아!"

"뭔데 갑자기 혼자 고민을 하십니까, 라붕 공?"



나의 아이들과 이 세계 바이오로이드의 수준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결국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소리인데...



"알바트로스?"

[왜 불렀는가 사령관.]

"그, 지금 너가 데려 온 고블린들이 정예 고블린이란 거지?"

[그렇다. 사령관의 호위를 위해, 본 개체가 엄격히 선발한 뛰어난 특임대 병사들로 준비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랑 부딪친다면, 지휘를 맡아줘."

[맡겨라. 사령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고블린 병사들을 엘븐 아이들과 대결 시켜 얼만큼의 전투력이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밀리는 것 같다면 어쩔 수 없이 리제와 알바트로스를 투입시켜야겠지만... 핵심전력인 리제와 알바트로스를 출격시킬 일이 없길 바라야만 했다.


그렇게 골치 아픈 생각을 가지고 나는 드워프 왕국으로 우리의 일행이 걸어 나갔다. 팔짱을 낀 채 알바트로스의 동체에 앉아 골똘이 생각하던 그때였다. 그의 어깨에 앉아있던 페로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주인님, 생각이 많아 보이시는 것 같네요...?"

"하아... 다른 라붕이들은 라스트오리진 세계관에 떨어져서 어떻게든 지휘도 하고, 용이나 닥터 같은 애들한테 현장을 맡기기도 하고, 둠브링어로 폭격도 마음대로 하고... 스홀 군단들을 기갑 웨이브 마냥 굴리기도 하는데... 대체 나는 왜 이곳으로 와서, 아니..."

"... 주인님?"

"진짜 사령관이라는 거... 섹스만 하는 종마인 줄 알았는데... 얘도 나름 힘든 직업이었구나."

"주, 주인님?"

"어? 어! 어... 그래. 페로."



이런, 내 혼잣말을 혹시라도 들었나 싶어, 애써 헛기침을 한 뒤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대뜸 내게 입을 열었다.



"리리스 언니께 모두 들었어요. 주인님이 이 세계에 넘어오기 전의 이야기 모두를요. 그러니까... 주인님께서는 엄청난 수의 부대를 데리고 사상자 한 명도 없이 승리를 거머쥐셨다고요."



그건 애석하게도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스토리 작가가 지어낸 거지. 라붕이들 좋아하는 최애 섹돌이 불편하지 말라고 그런 긍정적인 이야기를 부여해준 거겠지만, 실제 전쟁과 비교해보면 터무니없는 판타지였다.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하다 못해 멸망 전 기업 전쟁을 다룬 공식 만화에서도 스틸라인과 앵거 오브 호드, 그리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가 얼마나 처절한 전쟁을 치뤘는지 보기도 했다.



"... 그건 판타지잖아. 게임 속 설정."

"예?"

"아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냐."



내 아이들은 라스트오리진의 세계관이 자신의 세계관이었지만 난 그저 게임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적의 사령관이 아니라 라붕이었다. 심지어 게임의 지식을 전혀 써먹지도 못하는 가운데, 나는 아이들을, 그리고 병사들을 지휘해야만 했다.



"주인님... 물론, 저는 주인님 밑에서 싸워 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주인님께선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는 알고 있어요. 리리스 언니가... 그리고 알려주셨어요. 주인님은 이 세계 사람들하곤 너무도 다른 분이셨다고. 그러니까..."

"페로, 그건 다..."

"바이오로이드. 그래요... 저도 바이오로이드라는 생물체라고 했어요. 그쪽 세계에선 창조주인 인간을 지키는 생명체라고요."

"..."

"그쪽 세계의 인간들은 바이오로이드를 험하게 다뤘다고 들었어요. 마치, 우리 인외종을 다루는 이 세계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고요."



그렇게 말한 페로는 자신의 가슴께에 그려진 노예인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주인님은 그 세계에서도 바이오로이드를 따뜻하게, 소중하게 대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우리 수인... 에, 아... 전 바이오로이드죠? 그러니까 수인족들을 인간과 똑같이 대우해주셨다고 들었어요."



페로는 이내 희미한 웃음을 내비치며 답했다.




"저는 주인님을 믿어요- 주인님께서, 이 지긋지긋한 세계를 바꿔주실 분이시란 걸요."

"... 페로."

"저, 소완 님이나 리리스 언니보단, 약한 바이오로이드란 소리를 들었어요... 실제로도 며칠 전에 리리스 언니랑 벌인 모의 전투에서 10초도 못 버티고 졌어요."

"..."

"그래도 저, 주인님을 위해선 뭐라도 하고 싶어요. 하다 못해... 으음, 음... 정말 경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 음... 제 몸을... 그러니까... 몸... 아... 으. 으음..."

"괜찮아 페로... 굳이 억지로 잠자리를 요구하진 않을 거야. 그냥, 그래... 그렇게 날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



페로가 여전히 내게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인간 남성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굳이 억지로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무엇보다 페로를 데리고 온 건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어쩐지 내가 마음을 그녀에게서 다잡아 가는 것 같았다.


라스트오리진이 서비스 종료가 될 때 한 번이라도 그녀들을 다시 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그 소원이 정말 이뤄져서 이 말도 안 되는 세계에 전이를 하고 사령관에 빙의가 된 거면 지금 상황에 투덜거리는 것보다, 아이들과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중요한 거지.


내게는 무적의 용처럼 훌륭한 전략가도 없고, 닥터처럼 비상한 재주를 가진 과학자도 없다. 라비아타처럼 인망이 두터운 리더도 없었고, 레모네이드 알파처럼 어떤 일이든 착착 해내는 비서도 없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내가 서약을 해준 내 최애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 그거면 됐어. 페로. 고마워."



약간이나마 중압감에 시달린 나의 기분이 조금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페로가 희미한 미소로 화답하자 마음 한 켠이 밝아왔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정리한 뒤 어느새 숲과 산의 경계면을 넘어 우리는 더욱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친 산악지대를 넘어가자 어느새 풍경은 거대한 눈의 왕국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치 겨울의 백두대간을 찍은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알바트로스의 말대로 정예고블린을 데리고 왔는지 산악을 행군하는 속도가 꽤나 빨랐다. 알바트로스의 동체에 업힌 나와 애쉬, 페로, 그리고 그 옆에서 날아다니는 리제는 순식간에 산 중턱을 빠르게 주파해, 동굴 문 앞을 성벽으로 만든 거대한 구조물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펄럭거리는 드워프 왕국의 깃발, 그리고 고블린과 알바트로스를 보자 황급히 위병들은 활 시위를 매겼다.



"대삼림에 있는 고블린들이 어째서 이 산 중턱까지 온 것이냐? 그리고 너희들은 대체 누구지?"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이 고블린들은 제가 부리는 수하고요. 하지만 당신들과 싸우러 오진 않았습니다!"



최대한 성심성의를 다해 대답했지만 이내, 피잉, 활시위에서 활이 떠나갔다. 물론 알바트로스가 한 손으로 가볍게 툭 쳐냈고 그들은 벌컥 화를 내며 대답했다!



"우리 드워프를 노예로 부리는 악랄한 종족 놈이 고블린 군대까지 데리고 와선 싸울 마음이 없다고? 지금 그것을 말이라 하는 것이냐?!"



확실히 이 세계의 인간은 라스트오리진의 세계에서의 인간 만큼이나 좆간이네...



"썩 물러나거라!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어려운 상황이라 하면... 엘프들이 당신의 왕국으로 쳐들어 오는 상황입니까?"

"그, 그걸 어떻게?"

"뭐, 건너들었거든요, 하여튼... 저희가 고블린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이유는, 당신들과 싸우려고 온 것도 아니며 오히려, 당신들과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거래?"



고블린이 질문을 던지자 애쉬가 나아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런 일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고, 사업을 잘 구상할 것만 같은 사람에게 맡겨야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애쉬가 두 손을 비빈 채 성문 앞까지 걸어가 인사를 꾸벅, 하곤 말했다.



"저는 헬반도 왕국에서 쓰리스타 상단을 맡고 있는 상인, 애쉬드래곤 입니다. 저는 드워프종을 노예로 파는 바보짓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들만이 생산하는 철광석의 교역을 얻고 싶은 것뿐이죠."

"닥쳐라! 안 그래도 몇 달 전, 헬반도 왕국군이 으름장을 놓고 가버렸다!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모아놓은 철광석들을 모두 압류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동족을 모두 노예로 팔아버리겠다고! 그런 인간 족속을 어떻게 우리가 믿을 수 있겠느냐!"



병사들이 부르르 주먹을 떨며 쏘아붙였다. 아무래도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것 같은데... 가만히 생각에 잠긴 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엘프들과의 전쟁에서 교섭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 뭐? 인간이... 엘프를 상대로 교섭을 한다고?"

"저도 공연하게 피를 흘리고 싶진 않습니다, 교섭할 수 있을 때 교섭하는 것이, 엘프나 드워프나 다 좋지 않나요? 물론... 거부한다면 싸워야겠지만요."

"웃기지도 않는군! 인간이 엘프도 잡아다 노예로 파는 족속인데, 행여나 말을 들어주겠는가?"



제기랄, 헬반도 왕국은 대놓고 여기저기서 미운털을 박혔다. 왜 이 세계 인간들은 내게 도움 하나 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적만 만들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펙스 연합 왕국이나 아이언 제국 같은 경우는 그럼 비교적 신중하게 수를 두고 행동했다는 걸까? 더욱 머리가 꼬여가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망을 보던 병사 한 명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 엘프의 군대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뒤를 돌아본 곳에선 산길을 따라 가죽옷을 두른 채 유유히 걸어오던 엘프들이 보였다. 추운 험지까지 어떻게 행군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딱 봐도 수는 어림잡아 내가 가진 고블린 군대보다 족히 5배는 많아보였다.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얼마나 남은 거죠, 드워프?"

"이미 우린 병력이고 뭐고 이젠 없어! 그 세레스티나인지 세레스티아인지 모를 년이 나타난 이후론 학살 뿐이었다고!"

"세레스티아?"

"풀 하나 자라나지 않은 고산에서 나무를 피워내지 않나, 덩쿨을 피우질 않나! 그런 엘프가 있다는 것은 난생 처음 들었다, 이말이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당신들과 교역을 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라고요!"



드워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민을 하다 이내 어딘가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듯한 갈색 수염에 구릿빛 갑주를 걸친 드워프가 도끼를 들곤 나와 내게 말했다.



"겨우 200명의 고블린으로 어떻게 엘프 1천명을 막을 셈이지?"

"당신들 전력하고 합친다면 어떻게든 해볼만은 한 거죠."



내 대답에 드워프 장군은 피식 비웃듯 내게 대답했다.



"이보게, 자네. 대체 철광석이 뭐 얼마나 급해서 그 오만한 인간의 체면을 무릅쓰고 와서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건 이미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대일세... 이미 우리는 얼마 없는 병력으로 최후 결전을 준비중이네만..."



그때였다. 듣고만 있던 알바트로스가 푸른 빛을 번쩍거리더니 대뜸 입을 열었다.



[본 개체가 키운 고블린 부대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뭐야, 골램이 말도 하나?"

[보아하니, 지휘관 같군. 하지만... 지휘관으로서의 사명도, 목적도 불분명하다. 그야말로 지휘관이란 존재에선 실격.]

"하등한 골램 놈이 무슨!"

[분명 물량이 현대전에선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와 동률의 기술'을 가졌을 때이다.]

"... 기술?"



드워프 장군의 질문에 알바트로스는 자신의 동체를 들어올렸다. 이윽고 그 거대한 몸을 드워프 성벽 앞까지 몰고가자 겁에 질린 드워프가 활을 겨누고 칼을 뽑아들었다. 알바트로스는 파란 빛을 번쩍거린 뒤 대답했다.



[본 개체가 키운 병사의 사기는 가히 일기당천. 그리고 본 개체는 모든 군단을 지휘했던 전략의 귀재였다.]

"차, 참으로 자신만만하군! 전략의 귀재? 일기당천? 겨우 고블린 200마리로 무얼 하겠다고?!"



어이가 없었는지 버럭, 드워프 장군이 소리지르던 그때였다. 알바트로스는 낮은 기계음을 지직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고블린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자는 너희 고블린의 명예와 긍지를 무시하고 있다. 너희들은 본 개체가 키운 '최강'이다. 맞는가?]

"악! 그렇습니다!"



한 고블린이 경례를 하고 대답하자 다른 고블린들도 기합찬 대답을했다. 알바트로는 푸슈슉, 낮은 기계음을 내뿜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좋은 기합이다. 그렇다면 고블린들... 너희는 오늘 여기서도 죽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너희들에게 주입한 '해병정신'을 떠올려라. 싸우면 이기고 지면 죽는다는 어느 군대의 교훈을 가르쳐주었지. 맞느냐?]

"악!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최강인 '본 개체', 알바트로스가 직접 첫 실전을 지휘하니, 모두 제 실력을 보여주어라.]

"악! 알겠습니다!"



어째 좀 이상해진 고블린들의 기합 소리였지만, 지금 알바트로스는 승산이라도 있다는 양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왜 '한국 해병대'라는 이상한 군대의 정신을 주입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러나 저러나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알바트로스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알바트로스는 성벽에서 유유히 내려오더니 이내, 나의 뒤에 섰다.



[본 개체의 상관인 사령관도 연설하라.]

"... 뭐?"

[병사들에게 있어 사령관의 연설은 고양효과를 주지. 본 개체는 늘, ags사단들을 전장으로 이끌 때 연설했다.]

"저기, 미안한데 알바트로스... ags한테 고양이란 감정이 있니?"

[어서 하라. 사령관.]

"... 하아."



그래, 연설... 그래, 연설도 중요하지.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는 억지로 고블린 앞에 끌려나가 섰다. 마치 군대 있었을 때 연대장이 우리를 바라볼 때 이 모습이었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난 짧게 대답했다.



"제... 제군들?"

"악!"

"제군들의 명예를 걸고 꼭 승리할 수 있도록... 알겠나?"

"악! 알겠습니다! 충! 성!"



어디서 배워왔는지 몰라도 한국식 경례까지 하는 마당에 더욱 부담스러워졌다. 그렇게 급조된 사열이 끝나고 나는 알바트로스에게 말했다.



"근데... 갑자기 전투를 하는 건데... 어떤 작전이나 이런 걸 세워야 하지 않을까 알바트로스?"

[굳이 작전을 세울 정도로 저들은 강력하지 않다. 본 개체가 보증하지.]

"뭐?"

[저기서 본 개체의 베리어를 깰 수 있는 실력의 엘프는 없다.]

"그걸 어떻게 자신하는데...?"



그나저나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나 ags는 어째서 하나 같이 자신 실력에 이렇게 자신이 있어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한 수 한 수 신중을 두면서 행동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만 자신을 과신하는 알바트로스에게 걱정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략에 통달한 레오나 같은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할까 싶다 알바트로스에게 묻기로 했다.



"어떻게 할 셈이야?"

[망치와 모루 작전을 입안할 계획이다.]

"망치와... 모루?"

[망치는 고블린들. 그리고 모루는 본 개체가 맡는다.]

"모루는 내가 알기로 튼튼해야 한다는데... 너 혼자, 정말 감당이 되겠어?"

[문제 없다.]

"뭣하면 리제도 같이 붙여줄게."

[알겠다.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아, 진짜. 메이가 오랜만에 보고 싶네... 적어도 메이는 군사 전략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부를 했을 테니. 어떻게보면 무모할 수 있는 작전을 순전히 알바트로스의 자신감만으로 승인하는 게 맞는 것일까... 자꾸만 고민스러웠다.



"좋아... 대체 알바트로스 너가 얼마나 자신만만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만약 엘프세력이 위험하다 싶으면 최대한 퇴각하는 거로 하자고. 지금 너가 손상되면 고쳐 줄 바이오로이드도 없을 테니까."

[알겠다. 명심하지 사령관.]



**




한편 세레스티아가 이끄는 엘븐의 바이오로이드들, 그리고 엘프군단을 이끌고 드워프 왕국을 뿌리 째 뽑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능선을 따라 눈을 밟고 올라가자, 늘 드워프 왕국군과 싸웠던 좁은 협곡 동굴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모두 주목하세요! 오늘부로 벌목을 하며 엘프의 생존권을 위협했던 드워프 왕국을 멸망시키고, 위대하신 오메가 여왕님께 승리를 가져다 드리기로요!"

"네, 알겠습니다 세레스티아님!"



엘프 병사들의 말을 들은 세레스티아가 살풋 웃었다. 그녀의 기다란 귀에 달린 검정 귀걸이가 반짝거렸다. 다른 엘븐 바이오로이드에도 여지없이 달린 검정 귀걸이들. 엘프 병사들은 언젠가부터 자신들과 함께하며 드워프를 몰아낸 자신들의 영웅들을 맹신했다. 늘 드워프 왕국과의 전투에서 열세였던 엘프들은 마침내, 이 긴 악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펙스 연합 왕국의 위대하신 오메가 여왕님을 위해! 그리고 엘프들의 해방을 위해! 모두 힘내자고요!"




"오메가 여왕님 만세! 세레스티아님 만세!"


엘븐 포레스트 메이커가 만세를 외치자 모든 엘프 병사들도 환호했다. 그렇게 사기가 오른 엘프들은 매서운 고산의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전장이 될지도 모르는 화이트 헤드 산맥의 드워프 왕국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예정된 승리를 예견하던 엘프와 엘븐이 도착한 드워프 왕국의 성벽 앞에는




[여기서 보니 반갑다. 세레스티아.]



"저건 오르카의 세레스티아가 아니에요. 우리 주인님께 반기를 든 벌레일 뿐이죠."



거대한 비행 골렘 한 개체와 무시무시한 힘과 전투력을 자랑했던 한 메이드가 공중에 떠 있었다. 세레스티아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은 물론이고 온 엘븐 자매들이 나서도 밀리지 않았던 최강의 메이드. 그리고 힘을 알 수 없지만, 어쩐지 팔짱을 낀 채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비행 골렘에게서 오는 중압감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여기서 또 만나게 되는군요. 결국 드워프 왕국 측에서 보낸 최후의 발악이다... 이거죠?"


세레스티아의 헛웃음,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뒤에서 전투 테세를 갖춘 엘븐의 자매들과 병사들을 본 알바트로스는 푸른 빛을 번쩍였다. 그리고 리제도 등에 매었던 해충파쇄기를 꺼내곤 양손으로 붕붕 돌려 잡았다.



"발악? 벌레가 정원사한테 발악한다고 비웃나?"

[발악. 정말 그리 보이나?]



그리고 그때였다. 성벽에 있던 한 남자가 세레스티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세레스티아- 처음으로 얼굴을 제대로 보는건데... 반갑다- 정말로."



살기가 등등한 둘과 다르게 묘한 울림을 주는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는 하얀 제복을 입은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조금 평범한 더벅머리를 가진 인간 남성. 그리고 목소리 속에 숨겨진 따스한 감정에 흠칫, 세레스티아는 조금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붙잡았다.



"우리 엘프를 노예로 만들어 자신 욕심이나 채우는 인간에게 들으니 별로 좋진 않군요..."

"... 진짜, 좆간들은 여기나, 라오에서나 다 쓰레기짓을 하네."

"예?"



남자의 중얼거림에 세레스티아가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세레스티아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세레스티아... 너랑 엘븐 자매들이 한 귀걸이는... 설마, 오메가가 채워주기라도 한 거니?"




"오메가 여왕님을 함부로 부르다니! 이런 불경한 인간!"

"하토르... 넌 참 쌀쌀맞은 거 안 어울린다..."



하토르는 움찔했지만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레스티아는 애써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마치 저희를 잘 아시는 투로 얘기하시네요?"

"잘 알지. 세레스티아 너가 상냥하고 모성애가 강한 것도... 그리고."

"... 예?"

"귀가 민감하다는 것도."




"에, 으... 에? 네?"



세레스티아는 화들짝 놀라 어버버했다. 자매들한테도 부끄러워 말을 하지 못한 것을 어째서, 오늘 처음 본 남자가 마치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안이 벙벙하던 그녀를 보던 남자는 세레스티아에게 멀리서 손을 뻗어 말했다.



"세레스티아. 더는 피를 보지 말고 물러나줬음 좋겠어."



=


응애 나 애기 라붕이 세레스티아 찌찌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