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지옥에 시아가 없다는 사실에 엠피트리테는 그저 안도할 뿐이다.


그녀는 지금도 간이 주방 한 구석에서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절로 '좆 됐다.' 라는 생각에 도달할 지경이었으니, 실로 지금의 상황에 어쩌다 도달하게 된 것인지 쓰라린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으음... 정말 먹고 싶지만... 시아가 먹을 것만 사고 나머지는 아껴야겠어."

"무엇을 말이냐?"


엠피트리테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땅딸만한 체구의 바이오로이드. 그녀는 스스로를 우로보로스라고 칭하면서 그녀에게 참견을 시작했다. 사실 참견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때 당시에는 그녀의 순수한 호의에 고마워 했었지만.


"아, 그게... 동생이 먹을 것만 사고 참치캔을 아껴야..."

"이런, 물가가 저렴한 오르카 호의 PX에서도 먹을 것에 씀씀이를 줄일 정도로 살림이 팍팍한게냐? 자고로 젊은 여성이란, 잘 먹고 튼튼한 체형을 유지해야 아이도 잘 낳는 법이지."

"아, 아이라니..."

"물론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낳지 않겠느냐, 이 말일세. 이것도 인연인데, 내가 젊은 처자에게 요리를 좀 해줘야겠어. 쫄쫄 굶는 건 끔찍한 일이지. 참치캔 걱정은 내려 놓게! 나름 계급이 있어 내 봉급은 넉넉하니까! 내가 직접 식사를 대접하지."


돌이켜 보면 그때 무슨 변명을 하든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공짜 먹을 것의 유혹에 굴복한 나머지 순순히 따라가고 말았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자! 여기 더 있으니 어서 들게나!"

"고, 고마워요! 하지만 전 이미 배가 불..."

"어허! 그 뼈만 남은 몸으로 그런 말을 해 봐야, 설득력도 없다네. 마침 우리 아이들이 모조리 정찰 임무에 나가 쓸쓸하니, 먹으며 내 말벗이나 해주게."


늙으면 쓸쓸하다며 손사래 치는 우로보로스의 말에, 엠피트리테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금 시작된 식고문을 견디기 시작했다. 분명 몰타 섬에서 고생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아무런 걱정 없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는 했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실현될 줄이야. 


엠피트리테의 뱃속은 이미 가득 차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으나, 순수한 눈망울로 계속 이야기를 하며 먹을 것을 요리해 가져다 주는 우로보로스를 보면 결국 약해지는 마음 때문에 억지로 그 음식을 쑤셔 넣는 수 말고는 없었다. 차라리 자기 주장이라도 강한 성격이었다면 모를까, 애석하게도그녀는 그런 모진 부류는 아니었으니, 지금에 와선 시아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이 시련을 견뎌낼 뿐.


'아닌가? 시아는 좋아했을지도...'


소완처럼 맛있지는 않아도 충분히 정성이 느껴지는 따끈한 밥상을 꾸역꾸역 삼켜내며, 시아의 성향을 생각해 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엠피트리테는 폭발할 것 같은 위장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저 작은 냉장고의 재료가 모조리 동 나는 그 순간까지 먹어 치우는 것 뿐이다.


'다행히 냉장고가 작으니까... 재료도 적을 거야.'


"아, 이런... 냉장고에 재료가 떨어졌나?"

"드, 드디어..."


앞으로 일주일은 굶어도 될 정도로 먹어낸 엠피트리테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으나, 이어진 우로보로스의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걱정 말게! 이럴 줄 알고 유통기한이 넉넉한 녀석들은 냉장고 밖에 따로 꺼내 놨으니! 아직 만찬은 끝나지 않았다네!"


'차라리 죽여!'


엠피트리테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좌절하던 그 때, 구원의 손길이 그녀를 향해 뻗어왔다.


"아, 엠피! 여기 있다는 소리 듣고 찾아왔어. 우로보로스도 안녕?"

"아, 사령관 님!"

"오~ 사령관 아닌가, 자네도 안녕한가?"

"물론이지, 아 참! 엠피, 여기 그리운 얼굴도 데려왔어."

"그리운 얼굴..? 꺄앗!"


그리고 사령관의 뒤를 따라 들어온 거구의 여성이, 엠피트리테를 강하게 끌어 안으며 얼굴을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어렴풋이 풍기는 바다 냄새와 그녀의 뒤로 보이는 매끈한 범고래의 꼬리에 그녀의 정체를 단박에 간파해냈다.


"알키오네!"

"엠피! 너무 반가워! 살아 있었구나?"

"정말... 왜 이렇게 야윈거야... 얼마나 고생했으면... 미안해, 그 때 너를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히히,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났잖아. 그리고 다이어트가 얼마나 힘든데! 10kg 감량 했다! 치지 뭐~"


서로 해후를 풀라며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간 사령관이 의외였으나, 엠피트리테는 어째서 사령관이 황급히 이 자리를 빠져나갔는지 깨닫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 너무 고생해서 10kg이나 빠져?"

"히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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