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저번 탐색에서 미호... 어, 식별번호가 뭐였더라? 오빠가 웨딩드레스 입혀 보냈던.... 어쨌든 걔가 노획해온 단말기 기억해, 오빠? 그 안의 데이터를 복구하다가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했는데… 후후. 오빠가 좋아할 것 같아서 메일로 보내놨어. 우리가 모르는 멸망 전 인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지도 몰라. 꽤 방대한 자료니까 시간 날 때 찾아서 천천히 읽어봐.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날짜 미상

자유민주당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중의원

 

 

미리 말해두는데, 키리시마 법이 제정된 것에 대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소. 왜 제정에 반대하지 않았냐고? 뭘 모르는 소리지. 기권표를 던진 것만으로도 나는 내 소신을 다한 것이오. 키리시마 법은…, 그래. 우리에겐 불가피한 것이었소.

 

-‘불가피’했다고요?

 

…기자 양반은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시오? 

 

-그건….

 

여당 의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나라에서 야권이 가지는 의미는 유명무실해진지 오래요.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색이라도 낼 수 있었던 것은 태생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정당이 바로 여당이었기 때문이지. 

혹자는 파벌 정치의 지긋지긋함을 말하지만 파벌은 여당이라는 국회 안에 또 다른 정당이오. 이를 두고 옳게 된 사회주의라고도 하지만 어쩌겠소? 애당초 우린 같은 뿌리가 아니었는데. 창당될 시기부터 우리에게 공통된 이념 같은 건 없었소. 

파벌을 이루어 서로를 견제하는 것은 필연이고 이는 이 나라가 단일된 정치노선에 얽매여 폭주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요. 

 

(사카모토 의원은 불편한 듯 자세를 고쳐 잡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그 안전장치가 망가져버렸다면… 어찌되겠소? 

 

-망가졌다고요?

 

지금 자민당 내에는 크게 4개의 파벌이 있지. 키리시마 파, 다케다 파, 아베 파, 기시 파. 헌데,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키리시마 파가 자민당을 지배하고 있는 형편이오. 나머지 파벌은 생색내는 정도에 불과하지. 

왜 이렇게 됐냐고? 정치에 무관심한 민중에 의해 이렇게 되었다는 뻔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오. 아니, 그것 또한 사실이지.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소.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씀은?

 

(사카모토 의원은 잠시 입술을 오므리더니 어쩐지 초조한 기색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즐거운 토모>가 있었다.)

 

내가 왜… 내가 왜 집안에 바이오로이드를 들여놓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아시오?

 

-키리시마 법 제정 이전부터 바이오로이드 산업의 규제를 강화해야한다고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오. 나는 말이오, 기자 양반. 

 

(목이 매인 듯 타이를 느슨하게 한 의원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바이오로이드, 그것도 덴세츠의 바이오로이드가 무섭소. 

 

-그 말씀은…?

 

이들은 오락과 문화를 무기로 자국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왔소. 뉴미디어의 힘은 강력하지. 정치인이라는 작자들이 이게 맞다, 저게 맞다 하며 서로 싸우는 따분한 뉴스에 관심 가질 시간에 마치 스크린에서 걸어 나온 듯 아름다운 바이오로이드들이 벌이는 색정적인 행위에 눈을 돌리게 되는 건 당연한 거요. 

그럼 이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소? 

이 자들은 국민들의 시선과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에…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의원의 말에 <즐거운 토모>는 얼굴을 굳히고 커튼 사이로 창밖을 확인했다.)

 

이 나라는 덴세츠란 이름의 거대 기업에게 좀 먹히고 있소. 기존의 관료들부터, 이번에 선출된 참의원, 중의원에 이르기까지. 

고명하신 기자 양반. 진심으로 조언컨대, 키리시마 중의원의 뒤를 캐는 건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요. 

내가 알고 있는데 그들이라고 당신을 모르겠소?

이건 단순히 중의원 중 누가 성상납을 받았냐, 받지 않았냐의 문제가 아니오. 지금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부터가 사실은 위험한 일이란 말이오. 

 

(의원은 떨리는 숨을 삼키며 이제는 <즐거운 토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기자 양반, 우린 말이오. 바이오로이드… 바이오로이드 같은 것을 만들어선 안됐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절세의 아름다움을 담았으나 순종적이고, 인간의 조형을 하였으나 결코 인간일 순 없는 완벽한 도구.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마른세수를 했다.)

 

인간이 타락하기에 이보다 탐스러운 선악과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이 인터뷰가 있었던 날로부터 1주 뒤, 사카모토 중의원은 자택 침실서 숨진 채 발견된다. 경찰 측은 타살의 정황이 없어 이를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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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창작으로 실제 일본의 정치 환경과는 차이가 있으므로 걸러 읽을 것.

본 인터뷰 기록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단체, 인물, 바이오로이드, 지명 등은 실제와는 일체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