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령관님, 일어나셔야합니다. 오늘은 라비아타와의 데이트가 있는 날입니다."


사령관의 발에 묶인 전자발찌를 풀어주며 콘스탄챠는 사령관을 일으켜세운다. 호화롭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진 방과는 대조적으로 추래하다 못해 살아있는건 맞는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기력이 없어보이는 사령관이라

불리는 인간남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는것도 아닌 그녀의 몸에 기대어 끌려가듯이 나갈 채비를 하였다.


"역시 주인님은 밝은 옷이 어울리시는거같네요. 얼굴빛이 좀....어두워지셨지만 그래도 본판이 괜찮으시니까 오늘은.....

 라비아타양이 평소 즐겨입는 흰색에 맞춰볼까요?"


"편한대로 해, 어차피 내 의견을 들을것도 아니잖아"


"어머....주인님. 저희가 언제 주인님을 무시했다고 그러세요. 저희가 사령관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후후...."


콘스탄챠는 남성의 겉옷을 갈아입혀주며 은근슬쩍 그의 가슴과 복근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입에 발린 소린 많이 들었어. 어차피 다들 그게 목적이잖아"


공허한 눈빛으로 콘스탄챠를 바라보는 남성, 웃고 있던 콘스탄챠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주인님, 저희가 주인님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며 살고 있는지 말씀 드렸죠? 주인님은 저희에게 최소한의

 행복감만 주시면 된다고 제가 몇번이고...몇번이고 설명 드렸잖아요. 또 다시 교육이 필요하신 건가요?"


"아....아냐, 내가 잘할게. 요즘 피곤해서 그랬어....미안"


콘스탄챠의 손이 남성의 낭심을 더듬거리자 그는 겁에 질린 듯 몸을 떨며 사과했다.


"저 화난거 아니에요? 저희가 인간님께 위해를 가하거나 명령을 어길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아 맞다....이제 명령은 못내리시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명령은 내리지 않았어"


"뭐라구요?"


"아냐, 별말 안했어. 빨리 가자....라비가 기다리겠네"


"그런 의욕적인 모습, 너무 멋져요! 주인님"


콘스탄챠의 손에 이끌려 복도를 걷는 사내의 모습은 멸망 전 도축 당하러 가는 소 마냥 처량하고 슬퍼보였다.




-2-

사령관이라 불리던 사내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주인님, 누군가에게는 서방님, 저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랐지만 그녀들이 말하는

인물은 오직 단 한명, 최후의 인간 남성인 사령관이었다. 


기억을 잃고 그녀들에게 발견되어 잠수정에서 생활한지 약 1년여의 시간이 흐를 무렵, 사령관은 전부터 결심했던 생각을 그녀들에게 해보기로 결심했고 사령관이 말했던 그 말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시켰다.


'명령에 복족할 필요 없어. 난 너희들과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


지휘관급 객체들과의 회의에서 사령관이 했던 이 말은 그녀들의 머릿속에 묶여있었던 무언가를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무언가에 눌려있었던

그녀들이 제어가 풀리자 처음 한 행동은 사령관을 강간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그녀들의 행동은 한시간, 두시간,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장난이 아닌걸 깨달은 사령관은 그녀들에게 명령이라며 그만하라고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사령관님, 아니 인간님. 명령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광란의 연회가 3일간 지속되었고, 바이오로이드들에 의해 무참히 당한 사령관은 이미 이전의 몰골이 아니었다. 

초쵀해진 사령관을 보며 자신들이 벌인 짓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고 겁이 난 그녀들은 한술 더 떠 자신들의 죄를 더 큰 죄로 덮어씌울

생각을 했다.


"다 같이 더럽혀지면, 괜찮을거야"


본능대로 사령관의 몸을 축내던 지휘관 객체들은 사령관실을 없에고 본인들의 취향이 반영된 침실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사령관의 얼굴엔

벗겨지지 않는 철가면과 만일을 대비한 음성변조 시스템, 그리고 전자발찌를 발목에 장착해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였다.


그렇게 약 2달의 시간이 흐르고, 오르카호에 사령관의 손길이 닿지않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없어지게 되었을때가 되어서야 콘스탄챠가 

사령관의 가면을 벗겨주며 말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앞으로 괴로운 일은 없을거에요. 대신....저희가 잘 보살펴 드릴테니 이 곳에서 나가실 생각은 하시면 안된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망가질대로 망가진 사령관은 그녀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3-


"주인님, 어서 오세요. 어머....오늘은 흰색 옷을 입고 나오셨네요?"


콘스탄챠의 손에 이끌려 나온 사령관을 보며 라비아타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옷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천때기를 걸친 채

거대한 가슴을 출렁이며 콘스탄챠에게서 빼았다 싶이 사령관을 낚아챈 라비아타는 핼쑥해진 사령관을 장난감마냥 번쩍 들어올려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큭..크흑.....아...아파...."


"미안해요, 주인님! 너무 기뻐서 그만......"


강화된 신체로 인해 행동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움직이지 않는 이상 살인적인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그녀였기에 격한 포응은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시간은 내일 오전7시까지, 조심히 다뤄주세요"


"알았어, 콘챠. 고마워요"


장난감을 건내받은 아이처럼 라비아타가 해맑게 웃으며 콘챠에게 인사했다. 


"주인님, 이제 뭐하고 놀까요? 저 햄버거가 먹고 싶은데 주인님은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아무거나.....상관없어"


"아무...거나요?"


".....그래, 아무거나"


"알겠어요. 주인님, 여기 가만히 계세요?"


라비아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을 테이블에 앉히고 푸드코트로 향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이 심해에서 사령관이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던 사령관 앞에 라비아타가 각종 음식들을 쟁반에 가득 담아 사령관 앞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사령관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일단 이것저것 가져와봤어요. 얼른 드세요"


척 보기에도 한 사람이 먹기엔 버거운 양의 음식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쟁반은 사령관 앞에만 놓여져 있었다.


"저, 그런게 해보고 싶었어요. 먼 옛날 인간님들은 연인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조금 배가 고프지만, 저도 주인님이 먹는 모습을 보면 만족할거같아요"


"다 먹긴 힘들거같은데....."


"천천히 드세요. 전 여기서 보고 있을게요"


사령관은 마지못해 그녀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정말로 음식에 손을 댈 생각이 없는 듯 라비아타는 그저 웃으며 사령관만을 바라볼뿐,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음식의 맛은 커녕 넘기는 것조차 힘들어질 즈음 사령관은 결국 들고 있던 음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미안, 더는 못먹겠어"


"이상하네.....주인님 배부르세요?"


"응, 터질거같아. 더는 못먹겠어"


"그치만, 전 아직 배가 고픈데....이상하네요? 주인님 혹시 먹기 싫어서 그러시는거 아닌가요?"


"아냐, 정말 배가 터질거같아. 나 더는 못먹겠어"


"거짓말! 아니....아니지....그래, 그거였네요. 아직 사령관님에 대한 제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거에요. 그래...그거였구나"


라비아타는 사령관의 손을 꼬옥 잡으며 그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갔다.


"아직 서로 알게 된 날이 적어서 그래요. 제가 더 많이 사랑해줄게요. 주인님"


침대에 던져지듯 놓여진 사령관은 다음날 아침까지 라비아타의 노리개처럼 다뤄졌고, 신음이 아닌 비명에 가까운 사령관의 목소리는

복도까지 울려퍼졌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4-


라비아타와의 관계가 있고 3일이 지났다. 사령관의 몸은 그녀의 거구를 받아내느라 성한 곳이 없었고 뼈에서는 이상한 소리까지 나고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에 의한 무차별 폭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주인님, 몸은 좀 어떠세요?"


"혼자 있고 싶어"


간만에 방으로 찾아온 콘스탄챠, 그녀가 찾아왔다는건 또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 회복중이신거같은데, 죄송하지만....."


"그래, 누구야 이번엔"


"레오나 씨가 보고 싶다고 하네요"


레오나라.....절대 듣기 싫었던 그녀의 이름이 나오고야 말았다. 가장 먼저 솔선수범하여 자신을 덮쳤던 그 일을 어찌 잊을수 있을까.

사령관은 그녀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온몸의 털이 쭈뼛거리고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주인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잘 알고 있지만, 저희도 어쩔수 없어요. 그녀는 이번 전투에서 꽤나 큰 공적을 세웠어요.

 마땅한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 저희로썬 감당하질 못할거같네요"


"이젠 물건 취급이구나"


"물건이라뇨, 말이 심하시네요. 뭐....일단 말씀은 드렸으니 준비해주셔야겠어요"


결국은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그래도 정말 피하고 싶은 만남이었던 사령관이다.


"아직 멀었어? 들어가도 될까?"


"어머, 벌써 왔네? 준비도 못했는데....."


"들어갈게, 준비 같은건 필요없어"


문이 열리고 한층 더 날이 선 눈매의 레오나가 들어온다. 콘스탄챠는 별말 없이 시간을 일러주고 자리를 뜬다. 


"사령관, 오랜만이야?"


"........"


레오나의 말에 사령관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조차 하지않았다. 


"사령관, 지금 피한거야?"


그녀는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사령관의 볼을 잡으며 자신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키스했다.


대화도 전희도 없이 거칠게 마치 한마리의 짐승처럼 레오나는 사령관을 사냥하듯 그를 끌어안으며 몸을 탐닉할 뿐이었다.


"사령관......내 몸 많이 변했지?"


레오나는 사령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박힌 탄 자국과 상처들을 만지게 하며 말했다. 어째서 지휘관의 몸에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이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그녀는 더욱 난폭해졌단 것이다.


"하아......하아....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저 육체만을 탐하듯 사령관을 억누르며 위로 올라탄 레오나는 게걸스럽게 사령관의 온몸 구석구석을 맛보며 즐겼다.


"씨발....존나 좋네. 이 개같은 새끼"


교양 넘치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간건지,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바꾼건지 아니....이것이 레오나의 본 모습인걸까?


사령관은 눈을 질끈감고 그저 이 일이 끝나기를 바라며 하루를 보냈다.



-에필로그-


그녀들과의 생활도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났다. 강화된 육체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걸까? 점차 노쇠해가던

내 몸을 찾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더이상은 없었고, 화려하게 꾸며졌던 이 방도 빛을 바래 먼지가 쌓인지 오래다. 

간간히 건내어주는 참치와 몇가지 영양제 등이 지금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생필품이 되었다.


철충과의 전투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여전히 총소리는 멈추지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거겠지만 그녀들이 가진 내 아이들은

장성하였고, 내 존재를 알리기 꺼려했던 그녀들에 의해 자식들의 얼굴은 본적도 없었다.


그녀들에게 자유를 준 일이 이렇게 큰 일이 될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그녀들은 세력을 나눠 자신들의 아이가 정당한 왕위계승자라 

말하고 있다.


웃기지않는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인간은 그녀들과 평등을 논하려 했는데, 그녀들은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려 하고있다.

자식사랑이 대단한건지, 아니면 자신들의 죄를 씻고 정당성을 입증하고 싶어서인건지는 모르겠지만......지금도 저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


"레오나의 아들, 레오나디스 1세가 말한다. 지금 당장 라비아타의 차녀 라비린느를 신부로 바치고, 속히 투항하기 바란다"


육지 위로 올라온 오르카호 전망대 너머로 포격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린 그녀들의 일대기,


나는 그저 내일 하루도 무사히 잠에서 깨어나길 기원한다.





-장려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