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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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칼을 휘날리는, 오드아이를 가진 여성이 그를 경악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일로스는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방법이 굉장히 이상함을 느꼈다.

님. 보통 누군가를 존칭으로 부를때 쓰는 단어, 이름이나 성 뒤에 붙여 부르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일로스가 이름을 밝혔음에도 '인간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본인은 인간님이 아니라고 했다.  마일로스는 정보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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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가 인간이라면, 굳이 인간님이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으며.
자신이 인간님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을것이다.


가설. 인간보다 낮은 계급일것이다.
호칭을 봤을때, 어떠한 인물을 섬긴다기 보단, 인간자체를 섬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설. 인간과 매우 유사하게 생긴 존재이며, 이들은 인간보다 하등계급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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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T-8W 발키리라고 소개한 존재가 눈을 두번 깜빡이는 동안, 마일로스는 가설을 정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존재했다.

"인간님?"

T-8W 발키리가 다시 한번 묻자. 뒤편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에도 마일로스가 모르는 언어였다.

"저들은 누구지?"
"네, 제 동료들입니다. 인간님."
"불러라. 내 앞에 서도록."
"죄송합니다. 인간님은 저희에 대한 명령권을 인가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사령관님의 명령에만 복종하라 명령받았습니다."

T-8W 발키리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수신호를 보냈다.
2명이 추가로 나타나 마일로스 주변을 포위하고 조준했다.
이전부터 마일로스는 이미 그들이 어디있었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키가 크고, 목도리를 두르고, 모래색 오토건을 든 개체가 어딘가로 통신을 보내는듯 보였다. 마일로스는 초월적인 청력으로 그것을 몰래 들어보았지만, 역시나 알아듣지 못했다.

키가 작고, 흰색머리에 머리띠를 쓰고, 방패를 든 쪽은 일반적인 제국민이 아스타르테스를 보듯, 경외가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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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사령관'이라는 자가 이들을 지휘하며, 그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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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로스는 말없이 볼트피스톨을 홀스터에 다시 집어넣고서 가만히 서서 셋을 관찰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미형의 외모와 지나치게 큰 유방. 영하 20도의 날씨임에도, 키가 작은 개체를 제외한다면 방한 효과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복장을 입고 있었고, 부상당하기 쉬운데다 중요한 혈관이 흐르는 허벅지는 아예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피부는 변색은 커녕 소름도 돋지 않았고, 적외선 센서는 그들의 체온이 정상임을 표시했다.

"일단,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군. 너희의 지휘관은 인간이고. 그렇지?"

셋은 조준을 유지한채 서로를 바라보더니, 마치 이런일이 예전에도 있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선, 목도리를 두른 쪽이 로우 고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는 오르카 소속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T-12 칼리아흐 베라 23호라고 합니다. 사령관께서 인간.."
"마일로스라고 부르게."
"네, 마일로스님을 만나보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와 동행해주시지요."
'T-12,T-8W, 23호. 마치 자신들이 제조품인것처럼 말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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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이들은 인간과 유사하며, 인간을 섬기기 위해 제작된 공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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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하겠다. T-12 칼리아흐 베라 23호. 하지만 무장해제는 하지 않겠다. 아직 너희들을 믿을수 없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냥 베라라고 불러주십시오."

베라는 다시 통신을 열어 상부에 보고하고, 지시사항을 받았다.
마일로스는 그제서야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이 행성의 이름은 무엇인가?"

셋은 상상도 못한 질문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다가, 베라가 입을 열었다.

"...지구(Earth)입니다."
"흙(Earth)? 특이한 이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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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사는 트포2에서 샘이랑 제트파이어가 한 대사에서 따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