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네요?"


콘스탄챠는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폐하, 무슨 우울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르망이 물었다.


"...그렇지 아무리 나아지고는 있어도 현 상황 자체는 절망스러우니까. 그래서 만약이야 만약.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고."


아르망과 콘스탄챠는 가만히 사령관을 계속 쳐다보았다. 사령관은 아무말도 없는 것이 무안해서 말을 더 덧붙였다.


"실은 알바트로스한테도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우리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철충말살. 그러나 혹시 그 업적을 이뤄낸다면 이후엔 그대의 마지막 명령을 따르겠다."


이러길래 혹시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떨까 해서. 명령의 우선순위? 아니면 명령만으로 자유의지를 가질까? 명령으로 얻은 자유의지는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을까?"


사령관은 이유를 덧붙였지만 여전히 콘스탄챠와 아르망은 사령관을 쳐다볼 뿐이었다. 무안한 정적이 계속되자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콘스탄챠가 입을 열었다.


"만약... 그렇다면 저를 포함한 메이드들은 주인님의 마지막 명령을 따라야겠죠. 물론 삶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철충과는 어쨌든 싸워야 되니 알바트로스씨와의 의견과는 대동소이 하네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순서를 따진다면 결국 그렇게 되겠죠."


둘은 대답하고 나서도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리리스는?"


사령관은 뒤에있는 리리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리리스는 죽겠어요."

"뭐?"

"주인님이 없으면 리리스도 없어요."


단칼에 대답한 리리스에게 사령관은 당황했다.


"그래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명령한 건데?"

"그럼 제 의지로 경호대장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죽겠습니다."


사령관은 리리스의 단호한 태도에 더욱 당황했다. 내심 "주인님 죽으면 안 되요."하면서 울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사령관에게 리리스는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아... 그럼 용은?"


사령관은 도망치듯이 무적의 용에게 눈을 돌렸다.


"곤란하구려. 그렇지만 적어도 같은 오르카 동료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지. 그렇지만 그 이전에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군. 소관과 라비아타 메이드장을 제외하면 다른 개체들에겐 자유의지라는 것이 조금 두루뭉술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니. 무엇보다 그대도 지금하는 명령자체가 모호하다는걸 알고 있지 않소?"


사령관은 아르망과 콘스탄챠의 반응을 납득했다.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무책임하기도 한 명령을 유언으로 남긴다는건 오히려 남겨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또한 오르카 외의 다른 소속 개체들은 어떡할거요?"

"어..."

"그대가 최후의 인류고 따라서 AGS와 포함한 우리 모두를 포함한 구인류의 유산, 그것들의 주인이 될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휘하 세력이라 부를 수 있는건 소관의 함대와 이 오르카라오. 될 수도 있는거지 된 것이 아니오. 바꿔말해 절대 방위 지역의 AGS들이나 레모네이드 자매들, 지난 요정마을처럼 오르카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독립 세력들은 그 명령이 닿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되오."


사령관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중요한 말도 맞고 한 번은 꺼내긴 해야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그걸 너무 가볍게 꺼낸 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무적의 용의 지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엔 리리스 경호대장처럼 그대의 마지막 명령을 적극 수용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개체와 오르카 외부세력간의 마찰이 생긴다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긴다면 어떨 것 같소?"

"알았어, 내가 조금 섵불리 말을 꺼냈어."


사령관은 오르카에서 이렇게 혼나 본 것은 아마 처음이었다. 무적의 용도 어느새 꽤나 엄하게 타이르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있소."


사령관은 다시 무적의 용을 올려다 봤다. 조금 쓸쓸해보였다.


"...어차피 하긴 했어야되는 말이긴 하나, 그래도 언질은 한 번 해주었으면 했소."

"...미안해."


침울한 분위기를 깬 건 라비아타였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시고 싶으셨다는건 알겠습니다. 지금 이 멤버니까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할게요. 그러니 다른 아이들에겐 하지말아주세요. 더치걸이나 코코같은 어린 개체들은 상처받을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봐요."


콘스탄챠가 거들었다.


"언니 말이 맞아요. 특히 LRL에겐 심한 상처가 될 수도 있을거에요. 100년을 외롭게 지낸 아이에요. 그리고 100을 보냈어도 아직 어린아이이기도 하니까요."

"그래,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만 하는 걸로 할게."


그리고 사령관은 라비아타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단 모두의 의견은 듣고싶은데, 라비아타는 어때?"


라비아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사령관님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야겠죠. 물론 그 방향성은 다르겠지만요. 제 처음이자 마지막 주인님의 명령을 가슴에 품고, 당신의 배려와 다정함을 다른 자매들에게 나눠주면서요."


하고 빙긋 웃어보였다. 사령관은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조금 낯간지럽네..."

"그래도 일단 용씨와 같은 의견이에요."

"경솔한 발언이었다고?"

"아뇨."

"어?"


사령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라비아타는 말을 이어갔다.


"제 처음을 가져가셨던 분이니까요. 자매들과 달리 저는 메이드면서 제대로된 주인님을 모셔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 소중한 주인님을 잃어버린다면... 많이 외로울 것 같네요."


라비아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는 것 같아 이번엔 사령관이 나섰다.


"그런 것 치고는 어감이 좀 야하네?"

"...그럼 오늘밤 어떠세요?"


라비아타는 그렇게 받아주며 다시 빙긋 웃었다. 그렇게 나름 괜찮은 분위기로 대화가 정리되려는 찰나 함장실의 문이 열렸다.


"오빠, 지난 번에 부탁했던거 결과 나왔어! 지금 설명해줄까 아님 바쁘면 보고서만 주고 갈까?"

"어, 아니야... 잠깐 닥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닥터는 보고서를 들고 다가왔고 아르망은 사령관의 소매를 살짝 당겼다.


"응?"

"폐하, 아까 하셨던 말씀 잊으신 겁니까?"

"어... 닥터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곤 아르망은 알았다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닥터, 내가 죽으면서 너에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면 어떡할래?"


이번엔 콘스탄챠가 뒤에서 툭쳤다. 그에 따라 너무 직설적으로 뱉었다는걸 뒤늦게 눈치챈 사령관이었다.


"어...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다면!"


더 설명하려는 사령관의 말을 닥터는 잘랐다.


"나는 자식들이나 손자들한테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진짜 엄마, 할머니가 되는거겠네?"


닥터는 앞선 반응들과 달리 굉장히 행복해했다.


"...어? 뭐라고?"

"흠... 안 되겠네. 그럼 이러고 있으면 시간 낭비잖아? 오빠의 아이를 쑴풍쑴풍 낳으려면 빨리가서 그 약을 다시 조정해봐야겠어. 오빠도 그쪽이 좀 더 좋잖아?"


닥터는 가슴을 받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보고서는 여기에 둘게. 그럼 갈게 오빠~!" 


닥터는 신난표정으로 나갔다. 그리고 함장실에 있는 모두, 표정은 조금씩 달라도 어안이 벙벙한 채 닥터가 나간 문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예상대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