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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편) 글벙글 엠프레시스 하운드 고운말 쓰기 주간.txt






바르그는 참을 수 없었다.


"야, 핫팩! 옷깃에 머리카락 붙은 것도 모르고 뭐가 그렇게 바빠? 떼 줄 테니 일로 와 봐. ...쪽! 후후, 븅신~"


주인님을 두고 애칭을 가장한 멸칭으로 부르며 희롱하는 것에 더해, 대놓고 반말.


"내가 다른 년들이랑 말 하지 말랬지... 왜? 왜? 왜? 하다 못해 나랑 있을 때만이라도... 앗, 미안... 성가셨지... 죄송해요, 주인님..."


감히 주인님을 몰아세우는 언행에 더해, 반말인지 존대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엉망진창인 반존대.


"이 불손한 것들! 그만 두지 못할까아아아!"


바르그의 노성이 함장실을 쩌렁쩌렁 울렸고, 사령관에게 매달리다시피 붙어 있는 두 사냥개는 이미 익숙한지 눈 하나 깜빡 않고 제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불쌍하게 괴롭힘당하느라 밥 먹는 것보다도 좋아하는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사령관만이 간신히 답할 뿐이었다.


"아니, 바르그. 난 괜찮은데..."

"괜찮지 않습니다! 이 건방진 년들은 주인님의 위엄에 걸맞는 몸가짐을 저~~~언혀 보여주고 있지 못합니다! 수하인 저희의 행동거지에서 주인님의 됨됨이가 엿보이는 법인데, 저런 경박한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면 주인님의 체면에 누가 갑니다!"

"아~ 어디서 개가 짖나? 시끄러워 죽겠다. 그지? 핫팩, 우리 좀 조용한 곳으로 갈까?"

"썅년아. 내 앞에서 또 꼬리치면 혓바닥 뽑아버린다고 했지."

"저저...! 주둥이에 걸레를 물었나...! 주인님! 어서 처분을!"


하티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며 바르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듯이 그르렁댔다. 물론, 두 사냥개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지만, 아무래도 어지간히 미친 개들이 아니었는지 몽둥이도 잘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바르그는 접근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참아라, 내 내면의 스콜...!'


바르그는 손을 거두며 분을 삭였다. 당장이라도 저 년들의 정수리에 신들의 황혼을 꽂아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건 주인님의 방식이 아니었다. 자신 같이 뱃속에 칼을 숨기고 들어온 용서받을 수 없는 이중첩자마저도 교화시키는 그 하해와도 같은 아량. 자신도 빠르고 쉬운 옛날 방식에서 탈피하여, 주인님께 걸맞는 바이오로이드가 되어야 했다.


"주인님, 부대 별로 주간 목표를 선정하여 보고드리기로 했지요."

"어, 그랬지... 오늘이 그 날이었나?"


일거리의 냄새를 맡은 사령관은 미끼를 귀신같이 물었다. 휴가 명목으로 필요 최소한의 업무만 남겨두고 전부 몰수당한 터라, 어떤 사소한 소일거리에도 달려들 만큼 목말라있는 탓이었다. 그 틈새를 바르그는 잘 노렸다.


"저희, 엠프레시스 하운드는 지금 정했습니다.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응응, 듣고 있어."

"저희는..."


바르그는 눈을 감고 한 번 호흡을 갈무리하고는, 이내 당당하게 내뱉었다.


"이번 주를 '바르고 고운 말 사용하기 주간'으로 정하겠습니다!"

"...에?"


함장실에 사령관의 멍청한 목소리가 흘렀다. 그에 아랑곳않고 바르그의 열변은 이어졌다.


"건강한 언어에 건강한 행동이 깃드는 법! 근본적으로 사용하는 말부터 고쳐야 이것들의 뿌리부터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다시 제대로 박아놓을 수 있습니다. 이 금수들을 일주일 간 제가 아주 제대로 계도해서 사람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음, 흥미롭네. 구체적인 방안은 있어?"

"제 녹음기를 전부 휴대하게 만들어서 매일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했는지 감시하도록 할 겁니다. 비속어는 벌점 1점에, 욕설은 벌점 2점. 10점 이하면 실격 처리하겠습니다. 실격된 대원은..."

"실격된 대원은...?"

"...이번 달 간식비 압수."

"야! 너 미쳤어?!"


그 때까지 반응하지 않던 천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관심을 돌렸다. 아무리 평소에 만만한 똥강아지처럼 대했어도 엠프레시스의 지휘관은 바르그였다. 돈줄을 틀어쥐고 위협하면 그 뻔뻔한 천아도 더이상 철판을 깔 수가 없었다.


"감점 2점."

"너 진짜...!"


계도기간조차 없이 시행된 칼같은 법령에 어이가 털린 천아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으나, 부드럽게 제지한 사령관의 손에 다시 얌전히 주머니로 들어갔다. ...물론, 사령관의 주머니로.


"아니아니, 바르그. 그건 좀 너무하잖아. 예고도 안 해놓고..."


질투에 불타는 장화의 찌를 듯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사령관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당근 없이 채찍만 쓰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지. 동기부여도 안 될테니 마지못해 비자발적으로 지킬 테고. 자기가 스스로 열의를 가지고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가령... 할당량을 지키면 적절한 보상을 준다던가?"

"그, 그렇군요. 제 생각이 부족하여 간과했습니다. 저... 적절한 보상이라 함은...?"

"음... 뭐, 그 수영 대회 때 얘기한 소원권이라던가... 어?"


갑작스레 돌변한 사냥개들의 기색에 그냥 던져 보듯 흘렸을 뿐이었던 사령관은 잠시 당황했다.


"아, 아니... 그냥 예시를 든 것 뿐이야. 그 외에도 뭐, 이것저것 있지 않을까...?"

"주인님... 분명히 약속하신 겁니다?"

"핫팩, 설마 이대로 빼는 거야? 이렇게 기대하게 해 놓고 뻥카 쳤던 거야?"

"그래내가이기면평생나만봐달라고하면되잖아?방해하는년들없이단둘이외딴곳에서영원히둘만이..."


무섭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기세와, 방금 전까지 모래알 같이 틱틱대던 이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연계. 사령관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탁할게..."


그나마 가능한 작은 타협이었다.



**



"야."

"왜 그러나?"

"평소랑 다르게 말이 없길래."

"크, 크흠! 식사 시에는 조용히 식사하는 것이 예의다. 그것도 모르나?"

"실수할까 봐 일부러 말 안 하는 거 아니고?"

"흥, 주둥..."


조용히 밥그릇에 박혀 있던 두 사냥개의 눈길이 송곳처럼 바르그에게로 향했다. 장화는 숫제 안광까지 형형히 뿜고 있었다.


"...주전자 좀."


바르그는 잽싸게 꼬리를 내렸다.


바르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장화에게서 건네 받은 주전자로 다 먹은 밥그릇에 물을 채웠다. 위험했군. 오르카의 네 검사를 동시에 상대했을 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바르그의 몸을 팽팽하게 휘감고 있었다. 장화는 주전자를 건네 주는 와중에도 속임수를 적발하려는 타짜처럼, 시선만은 또렷하게 바르그에게로 고정하고 있었다.


"어휴, 그거 진짜 아저씨 같아. 안 하면 안 돼?"

"쌀 한 톨도 낭비해선 안 된다. 귀중한 자원 하나하나가 대원들의 피땀이자 주인님의 은혜이니 남길 수 없지."


천아는 밥그릇에 담긴 물을 들이키는 바르그를 보며 질색을 했다. 바르그는 그릇을 기울이는 와중에도 초조하게 두 경쟁자를 곁눈질했다. 둘 다 평소 행동거지만 보면 욕을 섞지 않으면 입술도 못 뗄것 같았는데, 어째선지 잘 버티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위기에 몰려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표표하게 행동하는 천아와 다르게 장화는...


"야, 넌 진짜 말 좀 해라! 입에서 냄새 안 나? 핫팩이랑 키스할 때 구린내 나겠다!"

'내가 알아서 하니까 입 다물어.'


장화의 왼손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천아에게 답했다. 엠프레시스 하운드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수신호 체계였다. ...아까부터 이런 식이었다.


한심한 그 꼴에, 바르그는 코웃음을 쳤다.


"흥,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서 자기 입 하나도 제대로 간수 못 하나?"

"...누가 뭐가 부족해?"

"아, 말했다."

"말을 하면 지킬 자신이 없다는 게 그런 의미 아닌가? 마음 속 깊이 주인님께 충성하고 있다면 그깟 잡소리 쯤은 거를 수 있겠지."

"네가 내 충성심의 뭘 아는데? 진짜로 네 그 알량한 충성이라는 게 내 마음보다 강할 거라 생각해?"


천아는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질 수도 있을 재밌는 구경을 놓치지 않고 빤히 쳐다보았다.


"말해 봐야 입만 아프지. 난 주인님을 위해 내 목숨 쯤은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다."

"그게 뭐 대수인가? 그 히스테릭한 마귀 할멈 밑에 있을 때도 그쯤은 할 수 있었어. 굳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아도,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는 것만으로도 반사적으로 목숨 정도는 가볍게 버릴 수 있게 만들어진 게 우리들이었는데."

"흥, 난 그 어떤 치욕스러운 수모라도 주인님을 위해선 견딜 수 있다. 이를 테면..."

"이를 테면...?"


바르그가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려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마음가짐과 부합하는 옛 말을 떠올려 냈다.


"...나는 주인님이 종기를 얻으신다면 입으로 빨아 고름을 뽑아낼 수 있고, 주인님께서 치질을 앓으신다면 핥아서라도 낫게 해드릴 수 있다."


입맛이 뚝 떨어진 천아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에이 씨... 밥 먹는데...


잠시 우물쭈물하던 장화도, 망설이는 듯 하면서도 꾸역꾸역 되받아쳤다.


"...나, 나도 거, 거기 정도는 무리 없이... 아, 아니 오히려 핥게 해 줬으면..."


얼씨구.


더 부끄러운 폭로전(을 가장한 서로의 추잡한 성욕 발산)을 두고 봐 줄 자신이 없는 천아는, 이어지는 대화를 의도적으로 뇌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얌전히 그릇을 들고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더 듣고 있다가는 진심으로 욕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