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xx 어느 겨울, 홀로 잠든 좌우좌의 품에는 도끼 한자루가 쥐어져있었다. 어린 소녀가 가지고 놀기엔 너무도 위험해보이고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그것을 곰인형 마냥 끌어안고 있던 좌우좌는 계속해서 이것만은 안된다고 중얼거렸다.


기다리기만 하면 본부에서 도와줄 이를 보내줄거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포기하게 된 것도 벌써 10년전의 일이다.

심심풀이로 읽던 용살자전설은 책 사이사이가 너덜너덜해져 낱장이 될때까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몇 페이지에서 무슨 대사가 나오는지까지 외워질 즈음 다 떨어진 연로를 대신하여 한줌의 재가 되었다. 


나무를 비롯해 옷, 책, 그리고 연료가 되어 줄만한 것들을 계속해서 벽난로에 밀어넣었던 그녀는 마지막 남은 이 도끼만큼은 뗄감으로 쓰기 싫은 듯 얼어붙을 듯한 추위를 견뎌내며 자신의 품 안에서 놓아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만해. 이러다 너까지 죽어'


몽롱해지는 의식 사이로 그녀의 도끼가 말을 건낸다. 


"짐은 이 정도 추위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음...음하하...콜록.....콜록....."


논리회로의 오류인지, 아니면 추위에 의한 쇼크성 환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좌우좌의 귀에는 그녀의 도끼가 건내는 말이 분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미 날도 상했고, 손잡이는 너덜너덜해져서 장작을 패면 니 손이 다치잖아. 이대로 화로에 넣어줘'


반쯤 깨진 창문틈으로 날이 선 바람이 밀려들어오고 조그마한 좌우좌의 온몸 구석구석을 스치며 그녀를 괴롭힌다.


"아니야....나 정말 괜찮아....그러니까...그런 소리하지마..."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저체온증으로 말이 아닌 상황, 벽난로의 불씨는 점점 사그라들어갔고 계속해서 다음 희생자를

갈구하고 있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어느새 벽난로 앞에 도끼를 들고 간 좌우좌는 추위에 몸을 떨었고 도끼를 든 두 손은 경련하듯 요동쳤다.


'그쯤하면 됐어, 도구는 도구 답게 사용되야 하는거야'


"미안....역시 못버티겠어"


좌우좌는 얼어붙은 눈물과 콧물을 소매로 긁어내며 결국 벽난로에 도끼를 던져넣었다. 자신의 주인을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깃들어서였을까? 그 어느때보다 장렬하게 타들어가 산화한 도끼는 도끼머리만을 남기고 그녀를 지키는 불이 되어 사라져갔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살아남은 좌우좌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헷갈리지만 그날 자신을 구해준 것은 그녀가 아끼고 사랑했던 그녀의 도끼 '드레곤슬레이어' 였던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