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 여기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기보다, 레오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평상시의 약간 나른해 보이는 관심 없는 표정이 아닌, 더없이 진중하고 결의에 가득 찬. 그야말로 결사의 태도. 나는 순간 몸을 굳혔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였던 어떤 태도보다도 진지한 모습으로 그녀가 말했다.

“사령관,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같이 지낸 게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

처음 그리폰과 콘스탄챠가 나를 발견하고, 오르카가 본격적으로 발진할 때부터 레오나는 함께 있었다. 비록 전투를 진행할 때에는 크게 나온 적이 없을지 몰라도, 그녀와 그녀의 부대인 발할라 자매단은 항상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능력으로 오르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운 원동력이기도 하다. 항상 그런 그녀의 지휘와 배려에 감사하고 있었다. 처음 함께 몸을 겹쳤을 때, 밖에 내리고 있던 눈의 차가움과 그녀의 떨림, 그리고 마치 눈을 닮은 듯한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사령관이 과연 나에게 첫 번째로 반지를 줄까? 그 부분은 알 수 없어. 왜냐하면 내 전투 모듈은 그야말로 전투에 관한 것을 계산하는 거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여기에서 사령관을 기다린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야.”

백금발 밑에서 빛나는 사파이어가 불을 내뿜는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무수히 많은 ‘추가 개조’를 통해서 지금의 냉철한 성격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녀의 유전자의 원형은 황금의 왕, 북방의 사자라 불린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 그의 최후는 전장 한 가운데에서 지휘하던 병사들과 함께였다. 누가 그녀를 냉정하다고 했는가, 그녀 안의 불꽃은 차가운 불꽃 그 자체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사령관은 결정하지 못 할 테니까. 만약 사령관이 나에게 반지를 주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 반지, 내가 받겠어. 걱정하지 마. 그 누구도 내가 받은 이 증표를 다시 빼앗지는 못할 테니까. 하지만 사령관의 마음에 누군가 있다면, 그래서 그걸 위해서 반지를 주지 못한다면…”

“그냥 넘어가 줄 거야?”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웃음을 지으면서, 황금의 왕의 후예가 말했다.

“아니, 뺏을 거야. 원래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하잖아?”

“응, 그렇겠지.”

하긴 여기에서 그냥 네~ 하고 넘어가 줄 거라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진형을 짜고 기다리지는 않았겠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사령관. 난 사령관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지 않아. 사령관이 다치는 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얌전히 반지를 주지 않겠어?”

발할라의 지휘관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결의를 다지며 말했다.

“언젠가, 레오나에게 반지를 준비할 거야. 하지만, 이 반지는 주인이 있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사령관, 그러면 이 진형에서 빠져 나갈 자신은 있어?”

촘촘하게 짜여진 2중, 3중의 포위망.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어떻게?”

“이쯤이면, 올 때가 됐다고 생각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장 위로 어마어마한 빛의 기둥이 쇄도했다.

“!! 이건, 에이다?!”

“AGS들은 즉시 컨트롤 할 수 있으니까! 무력화 하는 선에서 끝내줘, 에이다!”

[명령권자의 요청을 수락합니다. AGS 전투대대. 전장 내 바이오로이드들의 무력화가 목적. 포획탄과 행동불가 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바닥에서, 위에서 무수히 많은 메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도크가 사실 스파르탄즈의 강하 포드 쪽에 있으니까. 레오나가 펼친 진형이 나를 구속하기 위한 포위진이라는 것을 안 시점에서 이미 패널을 조작, 스파르탄과 AGS 부대를 이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레오나의 말을 듣고,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의 진심은 내 마음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흔들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말한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100%의 진심으로 나에게 부닥쳐 왔다. 그렇다면, 나도 그들에게 그와 같은 진심으로 화답해야 한다. 난 레오나에게 살짝 사과의 의미를 담아 손하트를 날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레오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뭐, 그 와중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은 확인했지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감도가 높은 걸까. 같이 누울 때도 그런 부분을 자극하면 뭐랄까 배덕감이 엄청 느껴진다.

 

AGS들의 대거 투입으로 발할라 자매단의 공격을 막은 상태에서 나는 패널을 통해 현재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반지를 획득하기 위해 여러 부대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부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발할라 자매단이 움직였다 한다면 그에 비슷한 수준의 다른 부대들 또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군. 사용할 수 있는 부대는 AGS에 컴패니언 정도. 하지만 이미 AGS는 발할라 자매단을 막기 위해 투입했다.’

“컴패니언 시리즈, 현재 위치 보고 부탁해!”

나는 패널을 통해서 컴패니언 시리즈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아마도 이 통신이 도청된다고 한다면 분명히 내가 어디 있는지 다른 부대들도 알게 될 것이고, 그 말은 다른 부대들끼리 싸움을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가진 반지는 한 개니까.

[블랙 리리스 현재 위치 보고합니다. 현재 배기 통로를 통해서 사령관이 계신 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CS 페로 현재 위치 보고합니다. 현재 리리스 언니와 함께 행동 중입니다.]

[펜리르는 현재 외곽에서 이동 중이야! 페로한테 외곽의 바이오로이드 무력화를 지시 받았어!]

역시 컴패니언 시리즈이다. 특별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반지 쟁탈전에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마워, 모두들. 현재 내 위치는 통신으로 송신 받았을 것으로 판단했으니 해당 위치로 즉시 이동해 줬으면 해!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신속하게 이동해 줘!”

[네, 알겠습니다.]

[후후, 주인님. 이 값은 진짜 비싸게 받을 거에요~]

[웅! 해당 위치로 이동 시작할게!]

나 참, 아군일 때에는 든든했는데 적이 되니 진짜 곤란하다는 표현이 맞다. 자, 그러면 다른 부대 중에서 내 편을 들 부대에 또 연락을 해 볼까?

“닥터! 거래를 하자!”

[어머, 오빠! 무슨 거래를 하고 싶은 건데?]

“지금 상황들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아니까! 도대체 왜 애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토끼몰이 하고 있는 거야? 해당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면, 나중에 데이트 해줄게!”

[에~ 그러면 나는 반지를 안 주겠다는 거야? 부부~ 닥터는 아무것도 모루겟소요~]

닥터가 볼멘소리를 한다. 난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반지를 준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진실된 말을 해야 하나?

“닥터, 나는…!”



네 이제부터는 진짜 새 내용이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