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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 [7화]




 

에밀리와 함께 잠자리를 가지고 또 며칠이 지났다. 이제 에반은 오르카 호의 생활에 익숙해져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들과 어색하지 않게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경계하던 바이오로이드도 더러 있었지만 귀여운 외모와 바이오로이드를 인격체로 대우해 주는 모습에 경계심을 풀었다. 특히 에반이 똑똑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 지휘관 개체들의 공이 컸다.

하지만 대부분도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소수의 대면조차 하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들도 있었다. 특히 수복실 내 중환자실에는 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수복실에 갈 일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용무가 있어도 중환자실에는 신경도 못 썼기 때문이었다.

단지 누가 있기는 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인 에반은 기회가 생기면 언젠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전투원들과도 친해질 수 있다면 친해질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조금 쓰라릴 거예요. 금방 끝나요.”

아얏…!”

 

에반은 소독약이 상처에 닿자 표정을 찡그리며 괴로워했다. 복도를 뛰다가 일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생긴 탓에 수복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다프네는 능숙한 손길로 무릎에 난 상처를 소독해 준 뒤 면봉으로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 처치를 끝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으셔도 복도에서 뛰면 안 돼요.  주위 잘 살펴보고 다니시구요.”

히히…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그만…”

 

약간 쑥스러워하며 몸둘 바를 몰라하는 에반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다프네는 수복실 입구 쪽으로 들어오는 레아를 보며 이야기했다.

 

어, 레아 언니. 무슨 일이에요?”

주인님이 지금 너랑 같이 볼 일이 있다고 하셔서 데리러 왔어.”

아, 그래요? 그럼 서둘러야겠네요.”

 

사령관이 호출했다는 사실에 다프네는 바로 대답하면서 방금 상처를 치료하고 일어난 에반에게 다시금 주의를 줬다.

 

제가 말한 거 잊지 않으셨죠? 또 뛰다가 넘어지면 그땐 정말 치료 안 해 드려요?”

알았다니까요. 얼른 가 보세요.”

 

에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다프네는 레아와 함께 수복실을 빠져나갔다. 에반 역시 수복실을 나가려다가 수복실 한 켠에 있는 중환자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에 시선이 갔다.

에반은 수복실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궁금해했다. 저 중환자실에는 누가 있을까? 다프네가 가끔 출입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 있기는 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누가 있는지는 몰랐다.

다프네도 없고, 수복실에 있는 소수의 바이오로이드는 전부 자고 있는 상태… 지금이  저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적기라고 생각하면서 에반은 중환자실로 향했다.

조심스레 중환자실의 문을 열자 고요하지만 미약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역시 누군가가 지내고 있긴 하구나…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가자 커튼으로 가려진 침대가 하나 보였다.

그 안에는 역시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하나 있었다. 에반은 잠시 시선을 돌려 침대 난간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확인한다.

 

[X-00 티아멧]

 

에반은 이름표에 쓰여진 티아멧이란 이름을 입 속으로 몇 번 되뇌어본다.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름이다. 에반은 살며시 커튼을 젖혀서 그 안에 있는 티아멧이란 이름의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

푸른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외모의 바이오로이드가 안정을 취하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오랫동안 병을 앓았는지 상당히 야위어 있는 모습이 에반을 안타깝게 했다.

허락 없이 들어왔는데 함부로 만지거나 하기에는 너무 실례라고 생각한 에반은 잠시 동안 티아멧이 자고 있는 모습을 응시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야윈 채로 중환자실에 있는 걸까?

 

끄으응…”

 

겉으로 보기에 심각한 상처는 없어 보여서 더욱 의아해하던 에반은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티아멧이 깨어나는 것을 보았다.

티아멧이 눈꺼풀을 열자 생기가 없는 보랏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생기가 없는 눈동자를 처음 본 에반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드디어 눈을 떴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느라 그런 것을 신경쓸 수가 없었다.

티아멧은 그 생기가 없는 눈동자를 깜빡이면서 천장을 응시하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반쯤 일어난다. 아직 조금 졸음기가 남아 있는지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하품을 한다. 에반은 졸음을 쫓고 있는 티아멧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아…”

 

에반이 입을 열자 티아멧은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생기가 없고 먼산을 바라보는 듯한 보랏빛 눈동자가 에반을 인식하려는지 스캔하듯 위아래로 흔들린다.

 

이 사람은… 인간… 그리고 남자…’

 

인간… 그리고 남자…?

 

아… 아아아…”

 

눈을 뜬 순간부터 생기가 없던 티아멧의 눈동자에 별안간 생기가 돌아왔다. 티아멧이 무어라 대답하기만을 기다리던 에반은 자신을 바라보는 티아멧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이 보이자 또다시 입을 연다.

 

안녕하세요, 티아멧… 누나…?”

 

그리고 티아멧이 인간 남자, 그러니까 에반을 또렷하게 인식한 다음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중환자실 안을 울렸다.

 

싫어요죄송해요때리지말아요다음부턴잘할게요아파요싫어요힘들어요오지말아요맞는건싫어요너무아파요싫어요무서워요괴로워요두려워요여기가너무아파요싫어요하지말아요싫어요싫어요싫어요싫어요……”

 

티아멧은 몸을 심하게 떨면서 에반에게서 일 미터라도 더 떨어지기 위해 침대의 구석진 곳으로 도망치곤 몸을 잔뜩 웅크리더니 마치 고장난 스피커에서 온갖 잡음이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것처럼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입 안에서 있는 대로 쏟아낸다.

에반은 비명소리와 이어서 들리는 티아멧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티아멧의 입 안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는 말은 두려움과 괴로움 그 자체였다.

정신이 산산이 부서진다면 저렇게 되는 걸까,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단지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리도 망가질 수가 있는 걸까. 에반은 궁금했지만 애달프게 느껴질 정도로 파들파들 떠는 티아멧을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기에 그저 그렇게 패닉에 빠져 있는 티아멧을 안타까운 눈초리로 수 분 동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싫어요싫어요때리지말아요… 아파… 응…?”

 

평소대로라면, 보통의 인간이라면 아무리 애원하더라도 여기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을 것이지만 수 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떨고 있음에도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티아멧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시나무처럼 파들파들 떨던 티아멧의 몸이 일순간 멈췄다.

그리고 조금씩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피던 티아멧은 불안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방금 봤던 인간 남자, 그러니까 에반은 자신을 해치려 하지 않고 그저 안타까워하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왜 해치려 하지 않는 거지? 왜…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지…?’

 

티아멧은 아무리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 해도 처음 보는 어린 남자아이에게 쉽게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저러다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자신을 해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으니까. 인간이라는 생물은 절대 함부로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고 티아멧은 사령관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부터 확신했다.

에반은 당혹스러웠다. 멋모르고 다가갔다간 티아멧이 두려워할 것이 뻔하고, 또 가만히 있자니 살이 많이 빠져 심하게 야위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둘 중 뭘 하더라도 곤란한 상황. 하지만 저런 모습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을 가만히 놔 두는 건 에반의 성격상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왜 절 안 때리는 거예요…?”

자아… 일단 진정하세요… 진정…”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앞에 있는 소년이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티아멧은 진정하라는 에반의 목소리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에 띄게 거칠던 티아멧의 숨소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하지만 조금 생기가 돌아온 티아멧의 눈빛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때리거나 못살게 굴지 않으니까요… 자아…”

 

에반은 왼팔을 몸에 붙이고 티아멧에게 정중히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행여나 다른 팔로 때릴까 하고 걱정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티아멧은 머뭇거리며 정중하게 내밀어져 있는 에반의 오른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방심하지 않는다.

 

손 잡아주셔서 고마워요. 전 에반이라고 해요.”

“…티아멧.”

 

티아멧은 아직 인간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었지만, 웃는 표정으로 정중하게 내미는 에반의 손길을 거부하기가 내키지 않았다. 거기다가 혐오한다고는 해도 인간은 인간.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고, 티아멧에겐 그 뒤에 따라올 후환이 더 두려웠다.

 

“… 처음 보는 얼굴인데… 게다가 남자…”

아, 오르카 호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제가 또다른 인간 남성 생존자라나 봐요. 그래서 얼떨결에 부사령관까지 되어 버리고…”

“…….”

 

자신이 중환자실에서 누워 있는 사이에 또다른 인간 남자 생존자가 발견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납득이 되었다. 티아멧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해 온 모진 일들에 대한 앙금의 화살은 역시 같은 인간인 에반에게 향했고, 그 앙금은 고작 에반의 손을 잡는 것으로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티아멧은 이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무슨 볼일인가요? 별다른 용건이 없다면 나가 주셨으면 하는데…”

그게… 대화를 좀 하고 싶어서…”

별로 대화 나눌 것도 없지 않나요? 바이오로이드는 그저 인간이 내키는 대로 갖고 노는 장난감. 그런 장난감이랑 무슨 대화를 하시겠다는 거죠?”

 

티아멧의 태도는 완고했다. 더 이상 인간 같은 건 믿고 싶지 않았다. 온갖 잔혹한 테스트를 받으며 겪어야 했던 고통은 아직 가끔씩 티아멧의 꿈에 나와서 그녀를 괴롭혔고, 오르카 호에 합류하여 맞닥뜨리게 된 다른 인간인 사령관은 처음엔 전투, 탐색, 정찰 등의 임무를 혼자 해낼 수 있었기에 그녀를 중용했고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다. 심신이 지쳐 있던 티아멧은 그 때까지만 해도 사령관이 자신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 사령관이 고성을 지르며 임무에 실패하고 돌아온 캐노니어 대원들을 폭행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티아멧은 자신이 구세주라 믿었던 사령관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다.

아, 저 사람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잘 하니까 그렇게 대해줄 뿐이고 임무에 실패하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저렇게 다뤄지겠구나. 내가 지금까지 저 사람에 대해 믿어왔던 모든 것은 거짓이었구나. 저 사람은 내 앞에서 그저 가식만 부리고 있을 뿐이었구나.

티아멧은 그 순간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 티아멧은 임무가 있어도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저 멍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앉아만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이제까지 티아멧에게 주요 전력으로 여기며 자율을 부여하던 사령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사령관은 티아멧의 방에 들이닥쳐 티아멧을 참혹하게 폭행했다. 방 안의 물건들이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은 콘스탄챠와 리리스가 달려들어 말리지 않았다면 티아멧은 영영 수복 불능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핏자국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방 안에서 쓰러졌다.

이후 수복실에 마련된 중환자실에 실려간 티아멧은 불행 중 다행으로 수복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의 상처는 전부 낫게 되었지만, 티아멧의 마음은 영영 아물지 못할 정도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 때부터 티아멧은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고 단지 수복실의 중환자실 한 켠에서 멍하니 있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뜬금없이 다른 인간이 나타나 악수를 청하질 않나, 대화를 하질 않나. 배신당하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저 모습도 분명히 가식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티아멧은 더 이상 에반과 말을 섞기 싫었다. 티아멧은 한숨을 쉬면서 침대의 커튼을 친 뒤 커튼 너머로 이야기한다.

 

혼자 있고 싶어요. 나가주세요.”

“…아니 그게…”

나가 달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에반은 곤란해했지만 대화를 거부하는 상대에게 더 이상의 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한 발 물러서기로 한 에반은 커튼 너머에 있는 티아멧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그래도… 가끔 와도 되죠?”

하아… 마음대로 하셔도 좋지만 방해되지 않게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에반은 티아멧의 체념한 듯한 대답을 듣고선 뒤로 돌아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나간다. 에반이 나간 것을 확인한 티아멧은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쉰다. 조금 더 쉬고 싶었다. 조용히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티아멧은 다시 잠에 빠져들기 위해 의식을 흐렸다.

 

다프네 누나… 티아멧 누나는 어쩌다 저렇게 된 거예요?”

티아멧 양이라면… 혹시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던 건가요?”

 

심란한 마음으로 있던 에반은 잠시 후 수복실로 돌아온 다프네에게 티아멧이 저렇게 된 데에 대한 자초지종을 물었다. 다프네는 중환자실에 에반이 중환자실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놀라며 되묻는다.

 

안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갔어요. …아무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게… 그러니까…”

 

다프네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티아멧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잔혹한 실험을 수도 없이 당한 이야기부터 사령관에 폭행당해 중환자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야기까지. 야윈 것을 제외하면 몸 자체는 건강해서 이미 수복실에서 나와도 될 정도의 몸이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무너졌다는 이유로 중환자실에 계속 있다고 밝혔다.

에반은 그 동안 사령관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었지만, 그렇게 잔혹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령관에 대해서는 에반이 함부로 왈가왈부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을 거둬들여준 사람이기도 하고 일단은 티아멧의 깊게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 주는 게 급선무였다.

 

될 수 있으면 당분간 티아멧 누나의 식사는 제가 가지고 들어가고 싶은데…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네? 상관은 없지만…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장담 못해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다프네 누나.”

 

에반은 그렇게 그 날부터 중환자실로 직접 티아멧의 식사를 가져가는 일을 맡게 되었다.

 

“…하아, 또 오셨어요?”

당분간은 제가 식사 담당이니까요.”

 

이틀 동안 에반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아침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점심과 저녁 두 번, 티아멧의 식사를 들고 들어갔다. 그리고 삼 일째 되는 오늘 점심도 에반은 먹음직스러운 식사가 들어 있는 쟁반을 들고 티아멧이 있는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처음 이틀 동안은 식사를 가지고 들어와도 본 체도 않고 입을 꽉 다문 채 침묵으로 일관하던 티아멧은 이제는 지쳤다는 듯이 쏘아붙이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에반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들고 티아멧이 앉아 있는 침대로 향한다.

 

이런다고 에반 님을 믿을 마음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알아요. 알고 있으니까 빨리 식사하세요.”

 

티아멧은 자신의 마음이 바뀔 일은 없다는 것을 피력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식사를 내려놓으며 스푼을 자신에게 내미는 에반이 이상하게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명령으로 식사를 하게 할 수 있는데도 에반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명령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입을 다물고 무반응으로 일관해도 그저 쟁반을 놓은 채 나가니, 더욱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푼을 주는 손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고, 받지 않자니 숟가락을 내밀고 있는 에반이 계속 저대로만 있을 것 같아서 티아멧은 하는 수 없이 스푼을 받고선 침대에 달린 접이식 탁자에 놓인 식사가 담긴 쟁반을 바라본다.

크림수프와 채소와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 그리고 오렌지 주스 한 컵이 놓여 있는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식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티아멧은 머뭇거리며 수프에 숟가락을 찔러 넣다가 이내 스푼에서 손을 떼고 그 손을 내려놓는다.

에반은 한숨을 쉬면서 스푼을 집더니, 거기에 수프를 가득 담아 티아멧의 얼굴 앞에 가져가고선 이야기한다.

 

오늘 점심은 소완 누나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환자식이니까 다 드실 때까지 절대 안 갈 거예요. ‘부디 맛에 대한 평을 전달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라고 이야기하셨어요.”

“…나중에 다프네 씨를 통해서 전해드리도록 할 테니까 이만 놓고 가셔도 돼요.”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티아멧은 이러고 싶진 않다는 말에 움찔했다. 실험실에 있었을 때 인간들이 몇 번씩 중얼거리듯 했던 말. 그 말 뒤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런 실험이 따라왔다. 티아멧은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양 팔로 감싸쥐었다.

 

“…제발 …제발 …아픈 건 싫어요 …괴로워요…”

 

티아멧의 머리가 들려진다. 아, 이제 지독한 고통이 따라오는 거구나. 자연스럽게 몸서리가 쳐졌다. 망연자실하게 입을 벌리며 역시 인간은 믿을 생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려 했다. 그러나 그 뒤에 따라온 것은 고통이 아닌 입 안에서 느껴지는 스푼의 감촉과 따뜻한 수프의 맛이었다.

 

하웁…?”

 

티아멧은 반사적으로 자기 입 안에 들어온 수프를 삼킨다. 이제까지 에반이 가져온 식사들을 조금 깨작거리다가 말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음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뱃속에 따뜻한 수프가 들어오자 그 온기가 그대로 목을 타고 내려가 티아멧의 위를 따뜻하게 뎁혔다.

 

천천히 드세요. 한꺼번에 많이 삼키지 마시구요.”

“…아프게 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예요? 식사 안 하시니까 강제로 먹여 드리는 거잖아요. 자, 또 들어가요.”

 

에반은 별 소리를 다한다는 표정으로 다시 수프를 떠서 벙쪄 있는 티아멧의 입 안에 넣는다. 티아멧은 먹지 않으려 해도 이미 한 번 수프의 맛을 본 공복 상태의 몸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꿀꺽꿀꺽 삼켰다.

 

꿀꺽… 꿀꺽…”

옳지, 옳지. 잘 드시네요. 다 드시고 어땠는지 말만 해 주시면 금방 나갈 테니까 빨리 드세요.”

 

에반은 마리아에게서 보고 배운 방식대로 티아멧을 칭찬해 주면서 그녀가 식사를 제대로 마치게 하기 위해 독려해 준다. 티아멧은 에반의 말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의심하면서 에반이 떠 주는 수프를 계속해서 먹었다.

티아멧은 에반이 샌드위치까지 집어서 입에 대 주는 바람에 샌드위치까지 다 먹어버렸다. 목이 막힌 듯한 표정을 지으면 에반은 먹여주는 것을 멈추기도 하고, 가끔은 주스를 먹여 주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티아멧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티아멧은 오랜만에 뱃속 가득히 느껴지는 포만감에 조금 표정이 풀어질 뻔했지만, 에반이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탓에 애써 풀어지러던 표정을 바로잡으며 이야기한다.

 

맛있었어요… 소완 씨에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맛있었다니 다행이네요. 아, 잠시만요.”

 

에반은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싱글거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사탕 하나를 내민다.

 

자, 이건 제가 주는 ‘참 잘했어요’ 사탕이에요. 앞으로 식사 제대로 하실 때마다 하나씩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티아멧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사탕을 받아든다. 티아멧이 그 사탕을 받아들자마자 에반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 티아멧의 식사가 담겨 있던 쟁반을 들고 티아멧을 잠깐 바라보고 인사하며 나간다.

 

그럼, 저녁에 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티아멧은 우물쭈물하며 인사하려 했지만 그 때 에반은 이미 중환자실에 없었다. 에반의 흔적은 방금 주고 간 ‘참 잘했어요’ 사탕밖에 없었다. 별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탕인데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있게 그런 걸 말할 수 있는 걸까?

티아멧은 말없이 사탕의 포장을 벗기더니 그대로 입 안에 넣는다. 레몬 맛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침샘을 자극시켜 티아멧의 입 안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사탕을 입 안에서 녹이며 티아멧은 자신의 굳건했던 신념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입 안에서 느껴지는 새콤달콤한 맛의 ‘참 잘했어요’ 사탕을 차마 뱉어버릴 순 없었다.

 

정말… 정말 너무나도 이상한 사람…’

 

에반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탕이 입 안에서 전부 녹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제대로 전투를 할 수조차 없는 쓸모 없는 바이오로이드인데도… 티아멧은 다시 한 번 느껴지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와 식곤증에 졸음이 밀려왔다. 에반에 대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티아멧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 잠을 청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저녁이에요.”

 

저녁이 다가오자 에반은 어김없이 중환자실로 티아멧의 저녁을 가져왔다. 티아멧의 인사는 낮 때보다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에반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식사가 담긴 쟁반을 침대에 달린 탁자에 놓는다.

저녁 메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쇠고기 스테이크였다. 점심에 먹은 것으로 소화기능이 제대로 돌아왔다고 판단한 소완이 티아멧의 원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만든 요리였다.

 

소완 누나가 역시 좋아할 줄 알았다면서 기뻐하시던데요. 그래서 저녁도 특별히 신경썼대요.”

“…감사합니다.”

 

티아멧은 이번엔 스스로 식사를 한다. 한입 크기의 고깃조각을 포크로 찍더니,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씹는다. 적당히 느껴지는 육즙과 함께 부드럽게 씹히는 맛은 역시 항상 지고의 맛을 추구하는 소완의 요리라는 게 느껴졌다.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얼른 드세요.”

 

언제부터 이렇게 풀어져버린 거지… 티아멧은 자신도 정말 물러터졌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사령관에게서 뼈저리게 배운 가식이라는 가면. 분명 자신을 나중에 좋을 대로 부려먹기 위해 당근을 주는 것뿐이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찬 티아멧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에반 님, 정말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티아멧이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던 에반은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다프네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즉각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이에요?”

수복재 분류해서 옮기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웬만해선 혼자 하는데 이번엔 조금 많이 와서요.”

그래요? 네, 맡겨주세요.”

 

에반은 흔쾌히 대답하면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티아멧을 놓고 가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주머니에서 ‘참 잘했어요 사탕’ 세 개를 꺼내며 미안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잠깐만 다녀올게요. 혼자 잘 드셨으니까 특별히 참 잘했어요 사탕은 세 개 드릴게요.”

“…네, 다녀오세요.”

 

보통이라면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에게 저런 부탁을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사령관에게 저런 부탁을 했다가는 곧바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저 에반이라는 인간은 오히려 기뻐하는 표정으로 수락하면서 자신에게 미안하다며 사탕을 더 주고 바이오로이드를 도와 주러 간다.

사탕을 받은 티아멧은 지금까지 믿어 왔던 자신의 가치관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저런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는데… 인간은, 참으로 추악한 생물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두 번이나 겪어 왔는데…

티아멧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스테이크 조각을 계속 포크로 찍어 입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에반이 채 닫지 않고 간 탓에 활짝 열린 중환자실의 문 너머로 웃는 표정을 한 채 수복재의 분류 작업을 하는 에반과 다프네가 보인다.

에반은 열심이면서도 즐거워하는 표정이었고, 이따금씩 다프네를 바라보며 입모양이 바뀌는 걸 보면 다프네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티아멧을 놀라게 한 건 다프네가 에반과 담소를 나누며 숨김 없는 미소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티아멧은 오르카 호에 합류한 후로 바이오로이드가 저렇게 활짝 웃는 표정을 보는 것은 처음 봤다.

다프네의 천성이 친절하긴 하지만, 강제로 저런 웃음을 짓는 바이오로이드는 아니다. 다른 고급 바이오로이드라면 모를까 인간이 한낱 수복실을 담당하는 바이오로이드에게 저렇게 다정하게 대해 줄 이유 따윈, 티아멧이 생각하는 인간의 범위 안에서는 없었다.

저 인간은 진심일까? 한 번만 더 믿어 봐도 되는 걸까? 인간이라는 생물을… 다시 한 번 믿게 해 줄 수 있을까? 티아멧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식사를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있었다.

에반은 그리 오래지 않아 일을 마친 뒤 중환자실로 되돌아온다. 식사는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자신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티아멧을 보자, 에반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봐요? 식사도 거의 안 하시고… 얼굴에 뭐가 묻었나…?”

 

그렇게 말하며 침대 곁 탁상에 있는 거울을 보며 얼굴을 살피던 에반을 바라보던 티아멧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에반 님. 에반 님은 저의 뭐가 그렇게 좋아서 이러시는 거예요?”

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저는 수복실 자리나 축내는 짐덩어리예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거기다가 그제랑 어제는 가져오신 식사를 거의 먹지 않고 버렸어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왜 사탕에 ‘참 잘했어요 사탕’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저한테 주시는 거죠? 인간이라는 생물은… 쓸모가 없어진 바이오로이드 따윈 버리는 생물 아니었나요…?”

 

티아멧은 에반에게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티아멧의 입술과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동안 담아두었던 울분까지 터져 나와 울먹거리는 티아멧은 울 것 같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 강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요… 이렇게 사람 좋은 척 대해 주면서 나중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거죠…? 더 이상 속지 않아요.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속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해요.”

 

에반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티아멧이 갑작스레 포크를 들며 큰 소리로 이야기했기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자… 이 포크로 찌르면 분명 본성이 나오겠죠? 헤헤헤… 분명 그럴 거예요. 절 속일 수는 없어요… 더 이상 속지 않는다구요…”

 

티아멧은 자신의 신념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인간인 에반을 보자 인지부조화에 걸린 건지 반쯤 실성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에반은 티아멧이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자 티아멧은 질겁하며 눈을 꼭 감고선─

 

오지 마… 오지 마…! 저리 꺼져!!!!”

 

티아멧의 포크가 마침 가까이 다가오던 에반의 얼굴을 힘차게 긁었다.

포크에 긁힌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이내 눈을 뜨고 고개를 든 티아멧이 붉은 피가 흐르는 에반의 얼굴을 보자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녀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이라면 건방진 년이라며 자신을 사정없이 구타할 터였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미약하게라도 덜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다음에 찾아올 고통을 대비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착하지, 착하지.”

“…응?”

 

그러나 돌아온 것은 끔찍한 고통이 아니라 지극히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티아멧은 자신의 머리가 에반의 양팔로 감싸 안아지고, 이내 머리카락이 쓰다듬어지는 기분에 당황했다. 에반은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전 티아멧 누나의 고통을 이해할 순 없어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에반은 자그마한 손으로 티아멧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티아멧을 달랬다. 전혀 노여움 같은 건 없고 오히려 지극히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티아멧은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쓰다듬는 것을 멈춘 에반은 티아멧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약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한 다음, 에반은 티아멧의 얼굴을 들어 자신 쪽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꾸밈 없는 미소를 보이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전 절대로 누나를 버리거나 배신하지 않아요. 약속할 수 있어요.”

정말이예요…? 입에 발린 거짓말은 아니죠?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네, 만약 배신할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누나의 무기로 절 죽여도 좋아요. 정말로요.”

 

그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발언이었지만, 티아멧은 에반의 그 말에서 이제까지 다른 인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이렇게 얼굴에 상처를 냈는데도 보듬어 주는 이 사람의 말이라면… 분명히 진실일 것이다.

 

아… 아아… 에반 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른 티아멧은 완전히 꺼져 있다고 생각했던 인간에 대한 신뢰의 불씨가 다시 급격하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이전의 생기를 완전히 되찾은 티아멧의 보랏빛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이어서 에반의 품에 얼굴을 묻고선 오열했다.

 

흑… 흐윽… 흐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앙…! 흐아앙…! 흐아아아아앙…!”

네, 네. 그동안 마음 고생 심하셨죠? 마음껏 우셔도 좋아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달래 드릴게요.”

흐으으윽…! 흐아아아아아앙…! 흐아… 흐아아아아아아앙…!!!”

 

티아멧은 에반의 품 안에서 오열하면서 이제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표현하기가 어려웠지만, 얼어 있던 자신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십수 분을 울고 나서야, 티아멧은 겨우 울음을 그쳤다. 팅팅 부은 눈으로 에반의 품에서 떨어진 티아멧은 그제서야 오르카 호에 합류한 이후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에반은 안심하며 이야기한다.

 

다행이네요, 티아멧 누나. 그런데 스테이크는 다 식어 버렸네요.”

괜찮아요. 소완 씨가 해 준 요리는 식어도 맛있으니까요. 하지만…”

 

티아멧은 조금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하다가 용기를 내어 이야기한다.

 

에반 님이 먹여 준다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에반은 당연하다는 듯 포크로 스테이크 조각을 하나 찍더니 티아멧의 입에 넣어 주었다. 티아멧은 즐거워하며 그것을 받아먹고선 꼭꼭 씹은 다음 꿀꺽 삼킨다. 비록 눈은 부어 있지만 티아멧의 미소는 이제까지 에반이 본 표정 중에 가장 눈부셨다.

 

아야… 이제서야 여기가 좀 아프네… 히히…”

“…죄송해요.”

 

에반은 피가 조금 흐르는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의 근처를 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티아멧은 한없이 미안한 목소리였지만 에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다프네 누나한테 치료해 달라고 하면 돼요.”

혹시나 다프네 씨가 뭐라 하면… 제가 해명해 드릴게요.”

부탁할게요.”

네. 물론이에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티아멧은 저녁 식사를 마쳤고, 에반에게서 ‘참 잘했어요 사탕’을 하나 더 받았다. 티아멧은 그 사탕을 받자마자 입에 넣었다. 이번 건 오렌지맛이었다.

그 사탕을 입에서 녹여 먹으며 티아멧은 생각했다. 이 인간은 날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로지 이 남자를 위해서 일할 것이라고. 이 남자가 행복해한다면 목숨을 잃는 것도 불사할 것이라고. 그렇게 부서졌던 신념을 다른 방식으로 재조립한 티아멧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구세주이자 마음의 빛을 얻게 되었다.

 



혹시나 쇼타섹스를 기대했던 라붕이들이 있다면 머리 박고 사죄함. 진짜 미안하다.

한 템포쯤 쉬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구상 중이었던 소재를 강하게 원했던 라붕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티아멧이 너무 레이시 괴롭히는 혐성밈이 확산되는 걸 조금이나마 정화시키고 싶기도 했음

다음 편부터 진짜 쇼타섹스가 나올거임. 소설에서 나왔듯이 속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함.

사실 외전 대회에도 내고 싶은 스토리이긴 한데 다른 인간 생존자가 있는 시점에서 설정붕괴라 외전 대회로 내기에는 불가능할것 같다

꾸준히 봐 주면서 개추와 댓글로 반응해주는 라붕이들에겐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라다. 정말 고맙다.

오탈자나 어색한 부분도 눈에 띄면 바로바로 지적해 주면 고마울 것 같아


소재제공 역시 언제든 떠오르는거 있으면 이야기해줘. 소재가 너무 고프다. 더 많은 시츄! 더 많은 캐릭!


생각중인 소재

- 깐프여왕이 무기력or아픈 에반 간호하면서 해주는 수유대딸 및 야스

- 모모or뽀꾹이와 함께하는 꿈과 희망의 매지컬 야스

- 유전적으로 사령관을 좋아하게 설계되어 있는 리리쮸or리제가 갈등하다가 에반의 응석으로 하게 되는 야스, 그 뒤에 에반에게 굴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