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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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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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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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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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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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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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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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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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콰앙!

  

  아스널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아탈란테를 방패째 걷어차 날려버렸다. 나무에 처박힌 아탈란타를 향해 아스널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런!”

  

  아탈란테가 위험해 진 것을 안 요안나가 재빨리 달려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방패를 비스듬히 세운 요안나가 간신히 아스널의 총알을 빗겨냈다. 허나 충격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는지 요안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렸다. 무릎을 꿇은 요안나를 향해 아스널이 저격총을 겨누었다. 검에 화염을 두른 카엔이 아스널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살짝 몸을 기울여 화염의 검을 피해낸 아스널이 총을 들어 개머리판으로 카엔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뻐억!

  

  머리가 박살 나지 않았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카엔이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쓰러지는 카엔에게 아스널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차에 치인듯한 충격과 함께 카엔이 나무를 박살 내며 숲에 처박혔다. 아스널이 카엔의 불에 타버린 앞머리를 만졌다.

  

  “앞머리가 타버렸지 않나. 가상 현실이라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령관에게 사랑받지 못할 뻔했어.”

  

  아스널이 대물 저격총을 어깨에 걸치고 능청스레 말하며 반응을 살폈다. 도발해도 반응이 없다. 빈틈을 보여도 달려들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군.’

  

  대물 저격총을 겨눈 아스널이 아르망을 바라보았다. 싸움에 의욕이 없어 보인다. 공격을 피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일부러 빈틈을 보여도 들어오질 않는다.

  

  애초에 자신들을 이기기 위해서 이 인원으로 찾아오는 것이 말이 되나? 덴세츠 사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디로 갔지? 처음에는 기습할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아무리 틈을 보여도 나타나지 않는다. 정말로 이 인원으로 나타났다고? 도대체 무엇이 노림수지? 아스널이 아르망을 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이냐.”

  

  아스널의 물음에도 아르망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곧이어 박살 난 나무를 헤치며 카엔이 걸어 나왔다. 튼튼하군. 팔다리 하나 정도는 날려버려야 무언가 반응이 나오려나?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조용한 아르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에 하늘에서 레이븐과 싸우던 제로도 연을 접고 아르망의 옆으로 내려왔다. 제로가 땅에 무언가를 던지자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파니가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폭발로 흩어진 연기 사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역할이라고?”

  

  아스널이 아르망의 말을 곱씹었다. 역할? 역할이라고 했나? 노림수가 무엇이었지? 곰곰이 생각하던 아스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싹함에 제자리에서 굴렀다. 칠흑의 검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내가 알려줄까? 그들의 역할이란 거.”

  

  검이 칠흑의 뱀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아스널이 자신의 아랫배를 만져보았다.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아스널이 작게 혀를 찼다.

  

  “대장 클래스가 있는 부대를 찾으면 내게 알려달라 했거든. 마법 소녀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거래하기로 했지.”

  

  “가상이라고 해도 이런 곳을 노리다니, 성격 한번 고약하군.”

  

  칠흑의 뱀을 두른 에키드나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뱀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혀를 날름거리며 아스널을 바라보았다. 에키드나가 차가운 눈빛으로 아스널을 바라보았다.

  

  “사령관에게 너희 같은 것들은 필요 없어. 너희는 방해만 될 뿐이야. 그의 옆에 가장 어울리는 여자는 바로 나야. 그걸 오늘 증명하겠어.”

  

  “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애정결핍 어린아이의 떼쓰기인가!”

  

  에키드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에키드나를 감싼 두 마리의 뱀이 아스널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뱀이 아스널에게 달려들자 비스트헌터가 에키드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에키드나를 향해 날아가던 포탄이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뱀의 칼날에 베여 폭발했다. 화염과 폭풍이 불어닥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스널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나갔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뱀을 밟고 에키드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자욱한 연기 사이를 헤치고 나타난 아스널이 에키드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닿기 직전 펼쳐낸 철벽에 맞아 강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스널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뱀들을 피해 뒤로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은 아스널이 그대로 에키드나를 향해 총을 쏘았다. 에키드나가 다급히 뱀을 움직여 아스널의 총알을 막아냈다. 땅에 내려앉은 아스널이 그 모습을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아쉽군. 자궁을 뚫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이… 버러지 같은 년이!”

  

  불꽃이 튀어 오르는 에키드나의 눈을 본 아스널이 씨익 웃었다.

  

  “나는 사령관을 독점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네년 같은 천박한 여자가 그 남자를 차지하게 둘 수는 없지. 누구에게도 사령관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지랄 맞은 꼬마는.”

  

  아스널이 어깨에 대물 저격총을 걸치고 에키드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스널이 으르렁거리며 에키드나에게 말했다.

  

  “엿이나 처먹으라지.”



  *

  “괜찮나요, 카엔!”

  

  AA 캐노니어와 얼마나 멀어졌을까. 갑자기 카엔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넘어진 카엔을 향해 아르망이 급하게 달려갔다.

  

  “응. 카엔, 튼튼해.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카엔의 얼굴은 그리 괜찮지 않아 보였다. 역시 아스널의 그 일격이 치명적이었던 걸까요. 자리에 멈추어 숨을 몰아쉬는 요안나도 아탈란테도 얼굴색이 밝지 못하다. 아스널의 총알을 가장 많이 막아낸 요안나는 팔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아스널의 총알을 막아내는 건 역시 무리였다. 중장형 철충도 단번에 꿰뚫는 아스널의 총알. 방패가 박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쯤이면 에키드나가 캐노니어 분들과 전투를 시작했겠죠. 당분간은 아무도 이 근처로 지나다니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조금 쉬도록 해요.”

  

  “안타깝지만 그건 안될 것 같다.”

  

  제로가 단검을 들고 싸울 채비를 했다. 카엔도 대태도를 치켜들었다. 요안나도 아탈란테도 방패를 들고 그녀들의 앞에 섰다.

  

  “서로 웃는 얼굴로 헤어지자고 하고 싶지만…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 같군.”

  

  커다란 나무 뒤에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검은 코트, 검은 모자. 웃는 듯 화내는 듯 기묘한 나무 가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가볍게 허공에 휘두르던 그림자가 순식간에 달려와 검을 찔렀다. 검을 막아낸 요안나가 힘을 실어 밀어내었다.

  

  ‘이 찌르기… 샬럿의 검술과 비슷하다!’

  

  요안나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뒤로 뛰어오른 그림자가 허공에서 활을 뽑아들었다. 그림자가 활시위를 당겼다.

  

  “이런!”

  

  퉁!

  

  화살이 날아왔다. 요안나가 화살을 바라보았다. 요안나가 방패를 들고 화살 앞을 막아 들었다. 확실히 막을 수 있는 위치다. 허나 요안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총이 아니라 화살을 쏜 이유가 뭐지?

  

  순간 화살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방패 위로 날아갔다.

  

  “뭐!”

  

  미꾸라지처럼 방패를 빠져나간 화살이 그대로 아르망의 가슴을 꿰뚫었다.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아르망이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아르망!”

  

  모두가 당황해 아르망을 바라보았다. 아르망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다니. 허나 언제까지 한눈팔고 있을 수 없다. 아탈란테와 요안나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허공에서 두 자루의 권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 두 자루의 해머를 맞닿게 하는 자세. 블랙 리리스가 자주 취하는 자세. 그림자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

  “피곤해애…”

  

  수십 개의 스크린을 눈앞에 둔 닥터가 비커에 담은 커피를 홀짝거렸다. 이번 가상 현실을 구현하느라 너무 밤낮으로 일했다. 그렇게 일하고도 가상 현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체크하고 몬스터를 출현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피곤한 눈으로 커피를 홀짝거리던 닥터가 느닷없이 날아온 알림에 놀라 커피를 뿜었다.

  

  “케엑! 이게 뭐야!”

  

  [아르망, 요안나, 아탈란테, 제로, 카엔. 프로그램 A와 전투 후 패배.]

  

  “이게 뭐야아아!!”

  

  닥터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요안나, 아탈란테, 카엔, 제로. 다들 전투력이 절대 낮지 않은, 오히려 뛰어난 편인 바이오로이드들이다. 그런 네 명에 아르망까지 있는 팀이 전투 한 번에 전멸?

  

  “너무 오버 밸런스잖아!!”

  

  지금이라도 프로그램에 손을 대야 할까? 그랬다가 혼나면 어떡하지? 닥터가 재빨리 로그를 살펴보았다. 과연. 사전에 캐노니어와 격돌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던 건가. 그래도 이건 너무 강하다.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하던 닥터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에이, 다들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하겠지.”



  *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칸이 나직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레오나가 놀라며 되물었다.

  

  “답지 않게 약한 소리네. 우리에게 정보를 숨길 셈?”

  

  “약한 소리를 할 생각도, 정보를 숨길 생각도 없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접근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공격을 하려고 해도 한 수 앞서 내 공격을 차단하더군. 나와 싸우는 와중에도 카멜과 탈론페더를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에엑? 그랬었어, 대장?!”

  

  카멜이 깜짝 놀라며 칸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알비스의 볼을 잡아당기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강한 상대였나 보네.”

  

  레오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냉정히 생각해 본다면, 발할라 자매단이 앵거 오브 호드와 접근전으로 들어간다면 패배할 확률이 높다. 그만큼 칸의 위상이란 건 대단한 것이다. 그런 칸과 접근전으로 호각. 도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떨어진 거지?

  

  “…아쉽게도 그림자에 관한 정보는 우리보다는 당신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네. 정체에 대한 추측 정도는 해봤어?”

  

  칸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칸이 조용히 입을 떼었다.

  

  “캐럴라이나의 말, 기억하나?”

  

  “깜짝 놀랄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했지. 당신은 그림자가 그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추측일 뿐이다만… 그 그림자는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의 데이터를 가진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한다.”

  

  “키메라 프로그램이라는 소리?”

  

  발키리에 버금가는 저격 솜씨. 금란의 총알을 베어내는 검술. 쿠노이치의 신속 기동과 릴리스의 쌍권총. 팬텀의 은신 기동. 무엇보다 자신들의 행동 패턴을 명확히 파악한 듯한 행동.

  

  기술 한 가지만 떼어놓고 본다면 잘 쳐도 원본의 9할 정도의 실력. 원본에 비견될만한 실력까지는 되지 못한다. 허나 그 모든 기술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상대를 압박해간다. 그것도 바이오로이드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파악하고 한 박자 빠르게 반응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시 싸운다면 그때는 이길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절대 그렇게 두지 않겠지.”

  

  게다가 자신이 본 것이 그림자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꺼내 다시 압박해 올지 모르는 일이다.

  

  “당신은 이제 어떡할 거야?”

  

  “우선은 포인트를 번다. 전투는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니까. 포인트를 어느 정도 벌었다 싶으면 그림자를 쫓겠다. 우승을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림자 얼굴에 총알 한 방은 먹여줘야 속이 풀리겠군.”

  

  “우리는 바로 그림자를 쫓겠어. 우선 그림자에게 당한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찾아보고 정보를 수집해야겠는걸.”

  

  그렇게 발할라 자매단이 앵거 오브 호드를 뒤로 한 채 숲으로 사라졌다. 앵거 오브 호드도 떠날 채비를 했다. 워울프가 사망한 지 7분. 곧 부활하겠군. 리볼버 캐논을 장전하는 칸에게 탈론페더가 다가와 말했다.

  

  “대장. 그림자에 관한 것, 전부 말한 게 아니죠?”

  

  철컥. 리볼버 캐논을 장전한 칸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칸이 조금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든 것을 말해줘야 할 이유는 없지.”



  *

  콰앙!

  

  푸른 번개가 검은 괴물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번개의 창은 괴물의 머리를 꿰뚫고 대지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아무리 300m에 달하는 괴물이라도 머리를 꿰뚫리는 것에는 버틸 수 없었는지 거대한 몸뚱이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간신히 물리쳤네요…”

  

  레아가 점수를 세었다. 5,000점. 초반 스코어가 1,000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꽤 높은 점수다. 이 정도라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격차를 상당히 벌릴 수 있으리라. 괴물을 쓰러트려 방심했던 것일까, 조금 지쳤던 것일까. 괴물의 등을 타고 달려오는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것이 접근하는 것을 허락해 버리고 말았다. 접근하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무슨…!”

  

  그림자가 괴물의 머리를 딛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레아의 눈앞까지 다가온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번개를 둘러 그림자를 막아보려 했지만 그림자의 검이 레아를 양단하는 것이 한발 빨랐다.

  

  “꺄아악!”

  

  반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오베로니아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오르카 호의 최강 전력 중 하나로 꼽히는 오베로니아 레아의 허무한 죽음. 레아의 죽음은 그녀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장! 대장! 큰일 났어!”

  

  “무슨 일인가요, 미호? 사주 경계는 똑바로 하는 거겠죠?”

  

  “레아가 죽었어!”

  

  “뭐라구요?!”

  

  깜짝 놀란 홍련이 언덕에서 스코프로 망을 보던 미호의 곁으로 달려나갔다. 오베로니아 레아가 죽었다고? 칸의 총알마저 번개를 이용한 자기장으로 튕겨버리는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상황 설명을 해 보세요! 어떻게 된 일이죠?”

  

  “어 그러니까. 레아가 번개로 괴물의 머리를 날려버렸는데, 괴물이 쓰러지는 도중에 숲에서 누가 달려 나와서 괴물의 몸 위로 달려가서 점프! 그리고 레아가 반응하기 전에 칼로 싹 하고 베어버렸어!”

  

  “정체는 보았나요?”

  

  “모르겠어. 새카만 옷을 입고 있었는걸. 얼굴도 이상한 나무 가면 같은 걸 썼어.”

  

  “칼은! 칼은 무슨 칼을 썼죠?”

  

  “으음… 금란 언니가 가지고 다니는 칼?”

  

  레아를 칼로 베었다고? 기습이라도 그런 곡예 수준의 행동이 가능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홍련이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오르카 호에서 칼을 쓰는 사람은 다섯. 모모, 금란, 샬럿, 용, 카엔. 그 중 모모는 칼을 주로 사용하는 바이오로이드는 아니고, 카엔의 칼은 금란의 칼에 비해 길다. 베었다는 것을 보면 샬럿은 아닐 테지. 그렇다면 범인은 금란과 용. 둘 중 하나. 허나 정말 그 둘 중 하나일까? 애초에 그 둘 중 하나라면 미호가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미호. 오베로니아를 벤 자는 어떻게 되었죠?”

  

  “날지는 못하나 봐. 레아를 베고 그대로 저기 도심 쪽으로 떨어졌어.”

  

  “에?! 대장 설마 쫓을 건 아니지?!”

  

  홍련의 말에 불가사리가 물었다. 홍련이 앰풀을 꺼내 크로스보우에 장전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오베로니아 레아까지 베었다는 것은, 적을 만드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 칼이 언젠가는 우리를 향하게 될 터. 하루빨리 접근해 정보를 파악하고 팀에 끌어들일지 적으로서 배제할지 정해야 합니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도심 쪽으로 떨어졌다면 가장 먼저 만날 팀이 누구일까. 아마 둠 브링어와 만날 확률이 가장 높을 터.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둠 브링어가 이길 것이다. 허나 홍련의 마음 한쪽에 계속 둠 브링어도 그자에게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베로니아 레아를 벤 자를 쫓습니다.”



  *

  “어휴, 블랙 웜과 금란은 어디로 간 걸까요?”

  

  라비아타가 도심을 헤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대회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금란과 블랙 웜이 참가를 강하게 추진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회에 참가할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과 블랙 웜, 금란 셋이서 팀을 짜고 참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의 폭격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금란과 블랙 웜, 자신까지도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전쟁에서는 군 소속 바이오로이드에 비하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라 이런 곳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서로를 찾을 방법 따위는 없다.

  

  “동생들은 잘하고 있을까요… 언니는 걱정이네요.”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날아왔다. 검은 혜성처럼 떨어진 무언가가 낡은 건물의 벽을 부수고 처박혔다. 느닷없이 날아온 무언가에 라비아타가 대검을 치켜들고 전투 준비를 했다.

  

  ‘방금… 벽에 부딪히기 전에 벽을 베어서 충격을…’

  

  심상치 않은 상대.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검은 무언가가 나타났다. 검은 모자, 검은 코트, 웃는 듯 화내는 듯 기묘한 나무 가면.

  

  ‘저 가면… 확실히 금란이 보여준 양반탈이라는 가면…’

  

  속전속결. 라비아타가 플라즈마 제네레이터와 검을 합쳐 대검을 만들어냈다. 라비아타가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근처의 건물까지 단박에 박살 내는 대검에도 그림자는 별다른 반응 없이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휘둘러지는 대검을 밟고 뛰어오른 그림자가 라비아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재빨리 대검을 고쳐잡은 라비아타가 검에서 플라즈마 제네레이터를 뽑아 그림자를 향해 휘둘렀다. 허공에서 그림자와 라비아타의 플라즈마 제네레이터가 충돌했다.

  

  콰앙!

  

  마치 폭음이 터지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비아타가 팔에 힘을 주어 플라즈마 제네레이터를 휘둘러 그림자를 날려버렸다. 건물로 날려진 그림자가 벽을 뚫고 건물 안으로 처박혔다.

  

  ‘또… 벽에 부딪히기 전에 벽을 베어버리는 기술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저런 빠른 검술을…’

  

  그림자에게 경계를 풀지 않던 라비아타가 흠칫 놀라며 뒤로 뛰어올랐다. 발치의 폭탄. 플라즈마 제네레이터와 검이 충돌하는 그 틈에 발치에 폭탄을 던져둔 것이겠지. 라비아타가 대검을 세워 몸을 가렸다. 폭음과 함께 화염이 몰아닥쳤다.

  

  그림자가 건물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뚜둑 목을 꺾는 그림자의 가면 속에서 붉은 안광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를 악문 라비아타가 대검과 플라즈마 제네레이터를 고쳐잡으며 소리쳤다.

  

  “오세요! 전력으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한 시간 뒤. 닥터의 테이블에 라비아타가 사망했다는 알림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