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8573778?target=all&keyword=IRR&p=1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8583023?target=all&keyword=IRR&p=1


3편. https://arca.live/b/lastorigin/8593281?target=all&keyword=irr&p=1




"훨씬 낫네."



씻고 나온 레프리콘은 여전히 어딘가 궁상맞아보이긴 했지만 많이 말끔해졌다.

진창속에서도 눈에 띄던 그 하얀 머리카락은 유난히 빛을 반사하며 시선을 끈다.


"근데 그거 말이야,"


또 다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어간다.

하루에 이렇게 많이 웃음이 나오는게 이젠 신기할 지경이다.


"반바지가 아니라 속옷이야. 저기 놔둔 검은색이 바지고."



레프리콘은 쏜살같이 방안으로 다시 달려같고 난 키득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알려줘야할게 정말 많다. 아무리 전투형이라지만 상식이 부족한 모습.


하긴 생각해보면 지금 알고 있는 것도 대부분 그 모듈이라는 거에 내장된 정보이리라.

그렇게 보면 길어야 3년에서 4년 남짓이 삶의 전부인 아이가 뭘 알겠는가.


화장실에서 헤어 드라이어 소리가 들려오는걸 보니 저건 또 어떻게 아는 모양이다.



"오. 그런것도 할 줄 아세요?"


나의 장난섞인 칭찬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짜증을 표한다.


너무 많이 놀렸나.







이미 잠에서 깼을 때는 아침은 아니었기에 상점도 다 열었으리라 생각하고 근처의 상가로 향한다.


이 곳으로 이사하고 한 번도 제대로 주변을 살펴보러 외출한 적이 없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익스프레스와 드론들이 배달해줬으니까.


그러니 레프리콘을 이끌고 나오긴 했으나 사실 나도 그녀만큼이나 이 장소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어떤식으로 살아왔는지 느낀다.


뭐 옷가게야 쉽게 찾을 수 있겠지.





옷 가게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따라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 


평소에도 흉터 때문에 사람들이 간간히 쳐다보는 탓에 이제 시선에는 익숙해져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옆에 누가봐도 눈에 바로 들어오는 하얀색 머리의 바이오로이드가 함께있다. 게다가 그녀또한 한쪽 눈에 흉터가 있으니


이만한 시너지가 없을만큼 우리는 어그로를 끌고 있었고, 지나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쪽을 의식한다.


평소에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을 일에 머리가 아파온다.




"괜찮으십니까?"



그녀가 보기에도 내 안색이 안좋아보이긴 하나보다.


마침 속옷가게를 찾았으니 서둘러 들어가자하고 거리에서의 시선을 피한다.


레프리콘도 시선이 어지간히 불편했던지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사이즈가 없어요?"


점원의 뜻밖의 대답에 갑자기 멍해진다.


몇년을 우리를 향해 총을 들이대고 다가오는 바이오로이드만 봐서 그런가. 


처음엔 느꼈던 그 체형의 놀라움은 무뎌지고 무뎌저 눈에 안보이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그말에 다시 레프리콘을 보니 새삼 다시 느껴진다.


길에서 보이는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그 비범함.



레프리콘이 나의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빨개져 등을 돌린다.


점원의 거듭되는 사과를 뒤로하고 가게를 나오려는 순간, 불투명한 유리문 건너로 남성의 실루엣이 비쳤고,


레프리콘은 몸을 크게 움츠리며 뒷걸음을 치다 넘어졌다.



"아!"


그녀의 짧은 탄성에 나와 점원이 놀라 그녀를 부축해 세웠으나 레프리콘은 이제는 사라진 남자의 실루엣이 있던 곳을

공포에 찬 한쪽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문 쪽을 살폈다.


생각해보니 평일 오후여서 그런가, 오늘 길에서 마추친 사람들은 모두 여자나 바이오로이드 뿐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손발은 떨고 있고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집에서는 괜찮아보였는데 생각보다 트라우마가 심한 듯하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와 레프리콘을 침대에 눕히고 환기를 시킨 뒤 거실로 나와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는다.


피곤하다. 반나절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쏟아져 무뎌진 나의 신경을 자극한다.





리프리콘은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방에서 걸어나온다.


생각보다 빠르게 괜찮아진 모습에 그녀 특유의 성격인지 바이오로이드의 특성인지 의문이 생긴다.



".....죄송합니다."



"네가 미안할게 뭐 있어. 신경 못쓴 내 잘못이지."



대답을 한 뒤 마저 보던 화면의 스크롤을 내린다.



"뭐하고 계십니까?"



"아. 어디 네가 가기 괜찮을만한 곳 없나 찾아보고 있다.


공공 보관소는 도저히 보낼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친구라는 애들도 전쟁끝나고 다들 성격이 비틀려서 안될거 같고,

게다가 너 상태 생각하면 남자는 없는 집이 좋을거 같은데......"



혼자만의 말만 이어지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레프리콘을 쳐다봤다.



괜찮았다 싶었더니 다시 불안감에 휩싸인 저 표정.


"저...저 여기 온지 하루도 안됐는데...."


"싫습니다...아....제발...저...여기...."


다시 패닉에 들어가기 전에 말을 꺼냈다



"나도 지금 누굴 돌봐줄만한 정신적 상태가 아냐. 오늘아침에 서로 만나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었나?


저기 벽에 박혀있는건 환영 폭죽으로 보여?"



벽에 박힌 두 발의 총알 자국.


그녀는 벽을 잠깐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사..상관없어요. 오늘 보면서 이상하시다고 느꼈던 적은 거의 없었어요."



"오늘만 이상하게 제정신 잡고 있는거다. 같이 있으면 네가 더 위험할거다."


딱 잘라 얘기하자 레프리콘의 말문이 막힌다. 

한참을 망설이다 하는 말,


"저...저 때문에 괜찮았던걸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러니까...그니까..."


자기도 말하고 조금은 창피했는지 얼굴이 빨개져있다.



"제발....이제 버려지는건 그만...."

















심장이 콕콕 쑤시는 듯한 느낌이 계속된다.


가엽다는 느낌이 들지만 정말로 같이 있어봐야 반쯤 정신나간 사람을 옆에 둬서 좋을게 없다.


"좋은데로 알아봐줄게."





찰칵



익숙한 쇳소리.


아차.


침대 시트 밑에 숨겨둔 권총을 어제밤에 정신이 없어 치우는 걸 깜빡했던게 이제서야 기억난다.


레프리콘이 떨리는 두 손으로 내게 총을 겨눈다.










2.


거실에서 남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작은 바이오로이드.


남자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그녀를 응시한다.





"내려놔."



"명령인가요?"



"부탁이다."


레프리콘이 두 손을 떨며 대답한다.



"아니요. 명령하세요. 총을 내려놓으라고. 그러면 전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할거고,

그렇게 저의 주인이 되세요."


남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면서도 멍해보이는 한쪽 눈으로 그녀를 응시한다.



"빨리!!!"


"제발...빨리...말해달라고요...."


레프리콘이 오른쪽 눈에서만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남자는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레프리콘의 안쪽 팔꿈치를 치고 다리를 건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에 쥐인 권총의 탄창을 빼고 약실을 잡아당겨 권총을 분리했다.


퓻. 


레프리콘이 넘어짐과 동시에 하늘로 약실에 있던 탄환이 격발된다. 



바이오로이드의 근력을 이기지 못하는 걸 알고 무기만을 노린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에서 남자의 노련함이 묻어나온다.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얻게된 치밀함과 매서움.


그녀의 조언대로 손을 30%정도 더 뻗은 덕에 성공했다는 걸 깨달으며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깔고 앉아있는 레프리콘의 얼굴을 쳐다본다.



레프리콘은 별다른 저항없이 땅바닥에 엎어진 채로 울며 중얼거리고 있다.



"내가 알던 세상에서.....남은 건 이제 아무것도 없는줄 알았는데.....당신이 나타났어.....왜.....왜 나한테 희망을 주는거야.....이렇게 바로 버릴거면..."




흐느끼는 그녀의 얼굴을 남자가 주먹으로 한 대 때린다.





"다시는,"

남자는 숨을 고르며 그녀를 쳐다본다.


"나한테 무기를 겨누지마라."



"그 얼굴로 총 겨눠지는건 한 번으로 충분해."



그말을 함과 동시에 기억의 단편이 스쳐지나간다. 어젯밤에 꿨던 꿈.






쌀쌀맞아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정함이 느껴지던 그녀의 예전 모습이 지금 그 앞에 무너져있는 모습과 겹쳐보이며 기분이 더러워진다.




".......한번만 더 그러면 진짜 보내버릴거니까."



"...네...."

조금 충격을 받은 듯 울음을 멈춘 레프리콘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대답한다.



남자는 분해된 총을 집어던지고 바닥에 그대로 뒤로 주저앉는다.



"망할...."





그렇게 나와 그녀의 긴 동거의 첫번째 날이 지나간다.









찐막.


 진짜 이거 망상 시작하니까 공부 집중 ㅈㄴ 안되네 진짜 진짜 마지막이고

생각보다 반응 좋아서 너무 고마웠슴.

점심이랑 저녁쉬는시간에 잠깐 짬내서 나눠쓴거라 두서가 없을거 같다


제목은 다 반쪽으로 보는 세상으로 고침

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