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는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매지컬 모모와 백토를 위시한 마법소녀의 상징물은 토끼. 2기로 돌아온 마법소녀 인원에도 변화가 생겼다. 레아와 캐럴이라는 새 친구는 소위 바니 걸이라 불리는 차림새로 육감적인 몸매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사령관으로서 한 사람의 남자로서 보약 같은 광경이었으나 아이들에겐 어떨지. 오드리 드림위버는 사령관의 걱정을 일축했다.

 



“전에 말한 대로 멸망 전 인간님들이 토끼를 형상화한 미풍양속을 재현한 빼숀이랍니다.”

 

자신만만하게 설명하는 오드리에 사령관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게 아니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신 이프리트를 입에 담았다. 스틸라인 전투복이 선정적이되, 이프리트의 토끼 후드는 건전하다. 자세히 설명하기도 전에 오드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굿.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귀를 만드는데 써전트 이프리트의 도움이 있었답니다.”

 

예상외의 발언이었다. 노출이 적은 토끼의 예시로 가리켰는데 바니 걸에 이프리트의 지분이 있다니? 허를 찌르는 변화구에 놀라는 표정을 짓자 오드리가 자초지종을 밝혔다.

 

“일손이 부족할 무렵 스틸라인의 최고참 써전트에게 과자를 바치면 옷을 커스텀해준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호기심이 일어 찾아가 실력을 봤죠. 결과는 어메이징. 오랫동안 전투복을 수선해 자연스레 익혔다더군요. 믿기지 않는 솜씨에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손색없는지라 손이 부족하면 종종 도움을 받고 있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도제로 들이고 싶다고 덧붙인 발언에 사령관은 다시금 놀랐다. 이프리트라 하면 믿음직한 병사면서 동시에 임펫의 골칫덩이란 인상이었다. 임펫 왈 실력은 의심할 여지 없는 특A급. 하지만 전역을 입버릇으로 달고 다닌다.


진심으로 전역을 원한다면 막을 생각은 없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역한 후에 마냥 쉬게 해줄 수는 없었다. 반드시 노동이 따랐고, 섬에 의류 생산 종사자는 없다. 이프리트만 원한다면 향후를 위해서 오드리의 도제로 들어가는 일이 서로에게 형편 좋으리라.


사령관은 스틸라인 생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이프리트 병장님.”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이프리트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만 돌려 빤히 보았다. 졸린 얼굴은 금방 화색이 됐다. 브라우니가 양손 가득 과자를 들고 있었다.


이프리트의 토끼 귀는 다른 병사들과 차별화하는 특징이었다. 많은 병사가 이프리트의 솜씨를 부러워해 과자를 바쳤다. 이프리트 중에서도 그의 솜씨는 최고라고 정평이 나 타 부대에서도 주문이 있었다. 오드리도 칭찬하는 기술을 어디서 배웠는가? 최고의 파파라치 스프리건이 뒤를 캤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성행하던 이프리트 공방 군복 커스텀은 레드후드 눈에 띄는 바람에 중지됐으나 최고 고참의 재능은 재봉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두루 있었다.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복무가 끝나질 않으니 시간 죽일 취미를 두루두루 섭렵했을 뿐. 어느새 일반인이 보기엔 고수가 되어버린 그의 그림 솜씨를 흠모하는 추종자들이 종종 공물로 과자를 바쳤다.

 

“이프리트 병장님 제 활동복이 캔버스로 이용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브라우니를 비롯한 병사들의 외모는 동일 개체라면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했으므로 같았다. 완전히 같진 않았다. 머리를 길러 멋을 내는 등 근소한 작은 차이가 존재했다. 방법은 다르나 활동복에 그림을 새기는 일도 궤는 같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수단.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만큼 활동복 개조는 인기였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심리를 파악한 이프리트는 같은 개체끼리 그림이 겹치지 않게끔 신경 썼다. 다른 개체끼리 그림이 겹치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그가 귀찮아서는 아녔다.

 

“레프리콘 상병이랑 반대 날개로 부탁드립니다.”

“나란히 서면 한 쌍의 날개? 나중에 후회한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다투더라도 반드시 화해할 겁니다. 폼으로 함께 사선을 넘어온 게 아닙니다. 비밀의 방에 불려갈 때도 함께라고 약속했습니다.”

 

싸웠을 때 얘기가 아니라 전사했을 때. 산통 깨기 싫어서 말을 삼켰다. 어디까지나 두려운 상상. 현실이 아니다. 과한 걱정이다.

 

“처음으로 3명 희망? 브라우니만 변태인 줄 알았는데 레프리콘 제법이네.”

“레프리콘 상병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알고 보면 저보다 한 수 위입니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니까요.”

“아니, 브라우니에 비하면 멀었어. 둘이 합쳐서 한 쌍의 가슴으로 그려달라는 브라우니 자매가 있었거든. 간부한테 들키면 꿀밤 정도론 안 끝날 것 같아서 뜯어말리느라 욕봤다.”

 

간부들은 활동복 커스텀이 보이지 않는 선만 지키면 관대했다.

개인정비로 한숨 돌리고 오면 완성해두겠다 공언해 브라우니를 돌려보낸 이프리트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고무 캡이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처럼 남은 공간 없이 밀착했다.


날개라 하면 가장 먼저 창공을 힘차게 가로지르는 맹금이 연상됐다. 모티브로 하늘의 제왕이라면 노래도 엄선해야 마땅. 제왕에 걸맞은 노래는 웅장미를 갖춰야 한다. 주유하듯 음악이 이프리트의 육신을 가득 채웠다.

웅대한 음색을 원료로 태워 브라우니의 회색 활동복이란 캔버스에 힘차게 획을 그었다. 기세를 고스란히 담은 붓은 유성 매직으로,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기에 채택했다.


완성을 목전에 두고서 군장 안에 간직한 활동복이 생각났다, 다시는 꺼낼 일 없는. 잡념이 끼자 피로가 몰려왔다. 집중한 눈이 뻑뻑하고 누워서 그리느라 하중을 고스란히 지탱한 팔이 저렸다. 스트레칭을 위해서 일어나면 불청객이 지그시 보고 있었다.

 

“사령관님, 왔으면 얘기를 하지. 황금 같은 휴일에 누추한 곳까지 무슨 일이야?”

“이프리트의 다재다능함에 놀라고 있어. 전장에서 유능함은 익히 알았어. 바느질에 능한 건 오드리를 통해 알았지. 그림을 잘 그린단 건 지금 처음 알았네.”

“어? 사령관님, 뭐라고? 안 들려.”

 

사령관이 무성영화처럼 소리 없이 입만 뻥끗해 되물었다. 사령관은 이프리트의 한쪽 이어폰을 뽑아서 자신에 귀에 가져갔다.

 

“이제 잘 들리지? 음악만큼 좋은 그림이라 했어.”

 

마주 보고 한 이어폰을 나눠 들으니 거리가 가까웠다. 둘이서 한 개의 이어폰에 이프리트는 심란해졌다. 내색하지 않고 칭찬을 되새김질했다.

 

“사령관님이 보기에도 잘 그렸어? 전역하면 화가나 할까.”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고 왔어. 이프리트는 정말로 전역하고 싶니?”

 

사령관의 질문은 나긋나긋하나 선명한 힘이 있었다. 이프리트는 긍정하면 정말 제대시켜주리라 직감했다. 평소 입버릇은 진심이었다. 전쟁은 지긋지긋하니까.

긍정하려 하니 제동이 걸렸다. 마음이 브라우니의 활동복에 새겨진 반쪽 날개처럼 나뉜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가증스런 철충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놈들이 앗아간 동료를 셀 수 없다. 둘 합쳐 온전한 이프리트의 마음인 거야.

 

“하고 싶지. 하고 싶은데 막상 물어보니까 잘 모르겠어. 어렵네. 사령관은 어때. 날 전역시키고 싶어? 정해주면 따를게. 병사는 뭐든 시키는 대로 해.”

 

사령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프리트 병장님, 완성됐습니까? 우와악, 충성!”

“브라우니! 이럴 때는 선임병인 내가 경례하는 거야!”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중 후임병들이 복귀했다. 이프리트는 브라우니의 활동복을 들어서 보였다. 반쪽 날개, 서로 지탱해서 1인분. 매사 참 위태위태하다.

 

“정했어. 사령관님. 나는 남을래. 저 녀석들 두고 전역하기엔 불안한걸.”

 

오늘 이프리트는 군장 밑바닥에 잠자던 활동복 한 벌을 꺼냈다. 뒤에는 이어폰이 있었다. 둘이 나란히 서면 하나가 되는 이어폰. 한쪽은 이제 없으나 상처가 아물면 더 꼿꼿이 일어나리라. 왜냐? 후임들이 끔찍한 경험을 겪지 않도록.










이프리트가 스틸라인 온라인 미드빵 내기를 했다가 참패해 임관한 건 3개월 뒤의 일이었다




막차 탐

최근 바빠서 글을 못 썼다


오랜만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