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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1318번이 오르카 호에 합류한 뒤로 약 이틀 정도가 흐른 뒤였다.


그의 합류 건은 사령관의 독단이었기에, 그가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은 각 바이오로이드 부대의 사령관들은 사령관

과 1318번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그가 딱히 사령관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이었기에 모두가 1318번의 합류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사령관은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그녀들을 물러가게 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자, 1318번은 사령관에게 말했다.


“모두가 너를 걱정하는군.”


“내가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 것 치고는 걱정하는 태도에 애정이 보이던데. 저렇게 많은 이들에게서 사랑을 받으니 기분이 좋겠군. 안 그래?”


“…과분한 사랑이지.”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데이터 상으로만 보던 바이오로이드들을 직접 보니 기분이 신기하군.”


“데이터 상으로?”


“내가 만들어진 곳은 블랙 리버의 연구소이자 데이터 센터였다. 바이오로이드들의 유전자 지도와 정보 또한 접속할 수 있었지.”


“블랙 리버는 군수 산업을 전문으로 하던 기업 아니었나? 왜 너 같은 고도로 발전된 AI를 개발하고 있던 거야?”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내가 만들어진 이유조차 듣지 못한 채로 삭제당할 뻔했는데.”


“삭제 당할 뻔했다고? 왜?”


“인간들에 대한 복종심이 없었으니까. 너희 인간들은 자신들의 창조물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속이 뒤틀리기라도 하나 보더군.”


1318번은 그렇게 말하며 사령관을 내려보았다.


사령관은 키가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1318번의 소체는 2미터 40cm에 달하는 거구였기에 대화를할 때면 사령관은 항상 그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말이지, 인간. 내가 사령관실 안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알겠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걸 뻔히 알면서도 3일째 그 안에서 불특정 다수의 바이오로이드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그 말에, 사령관은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걸 보고 있었어?”


“우연히 보게 되었지. 끝까지 보진 않았다. 나에게 관음하는 취미 같은 건 없으니 말이지. 단…나 말고도 누가 사령관실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던데, 그건 알고 있나?”


이미 탈론페더가 곳곳에 카메라를 숨겨 놓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령관을 보며, 1318번은 살짝 당황한 듯한 기색을 표했다.


“…노출증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닌데…어차피 몰랐을 적에 탈론페더에게 다 찍혀보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신경 쓰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 대답을 들은 1318번은 이 인간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사령관실에서 관계를 맺겠다고?”


“…아마도, 하지만 그걸 보는 건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너희가 몸을 뒤섞는 걸 훔쳐보는 취미는 없다.”


그렇게 말하며, 1318번은 회의실을 나섰다.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이 있는 오르카였지만, 1318번은 그들 중에서도 특이한 편에 속했다.


그는 거의, 아니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녀들에게는 사령관에 대한 태도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학구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발키리에게는 저격용으로 개조된 오른쪽 눈이 신기하다고 말했고, 약간 당황하며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곧바로 한 번 분리해서 살펴보아도 되냐고 물어서 그녀가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다크엘븐과 엘븐 등의 엘븐 시리즈에게는 도대체 그 커다란 덩어리를 흉부에 달고서 어떻게 움직이는 거냐며 성추행 아닌 성추행 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AGS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로크와 자주 대화를 나누곤 했다.


비슷하게 고지능과 감정을 가진 AI라는 공통점도 있었기에 그랬겠지만, 사령관이 잠시 엿들은 바로는 1318번의 주된 질문은 블랙 리버의 수장, 앙헬 리오보로스에 관한 것이었다.

사령관은 그에 대한 로크의 평가를 들은 1318번이 격납고를 떠나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그는 닥터와 죽이 잘 맞았는데, 초면부터 자신의 반중력 장치에 대해 스스럼없이 물어오는 닥터를 좋게 본 듯했다.


반중력 기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닥터를 위해, 1318번은 칠판 세 개에 걸쳐서 빼곡하게 자신이 만들어낸 반중력에 대한 방정식-그는 그것을 룩솔란 방정식이라 불렀다-을 적어주었고, 둘은 곧바로 친구가 되었다.


의외라고 말하는 사령관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탐구자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법이지.”

 

하지만, 그런 그가 유일하게 초면부터 고리타분하다 평가한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있었으니, 바로 아자젤과 베로니카였다.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의외로 그 두 바이오로이드와 만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가 신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 지가 궁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첫 대면에서,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두 바이오로이드 모두 사이비 종교인 쿄헤이 교단 소속임을 알게 되자, 그 교단의 설립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1318번은 그 두 바이오로이드의 앞에서 대놓고 질색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왜 그러냐며 묻는 아자젤에게 겨우 덴세츠라는 블랙기업의 자금을 충당할 사이비의 홍보 수단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며 불쌍하다 응수한 것은 덤이었다.


…당연히 아자젤 옆에 앉아 있던 베로니카와 1318번은 싸움이 붙었고, 싸움은 당연하게도 1318번의 승리였다.


그녀의 낫은 휘두를 때마다 1318번의 소체를 덮은 장갑에 튕겨져 나갔고, 총알 또한 그의 장갑을 뚫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사령관은 1318번과 두 바이오로이드에게 서로에게 싸울 만한 짓은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두 바이오로이드는 부탁을 승낙했고, 1318번도 마지못해 그의 부탁을 승낙했다.

 


그렇게 바이오로이드들과 마주치며 지내는 한편으로, 그는 다른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뭐해, 깡통 씨? 오늘도 당신 뇌를 여기로 옮겨온 거야?”


“저번부터 말하지만, 난 깡통이 아니야. 그리고 이건 내 뇌가 아니야. 내가 원래 존재했던 서버 프레임의 일부지.”


1318번은 자신이 한 때 담겨있던 연구소 데이터 센터의 TPU 프레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그거지. 어쨌든, 그걸 가지고 뭘 하게? 며칠 전부터 부품들을 잔뜩 가져왔잖아.”


“내가 백업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거다.”


“백업? 하긴, 그 소체가 부서지면 네 AI 프로토콜도 그대로 사라지겠구나…”


“그러니까 메인 프레임이 필요한 거지. 멸망 전이었다면 인터넷 속에서 떠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TPU 프레임을 벽 쪽으로 옮긴 뒤 선들을 다시 연결하기 시작했다.


“…됐군. 이제 전원을 연결하면 작동할 거야.”


그가 전원을 연결하자, TPU 프레임의 쿨러들이 일제히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좋아,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군.”


“그래, 다 좋은데…네 머리 만한 공간에 네 인공지능을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용량을 가진 장치가 있다면 네 메

인 프레임도 저렇게 커다랄 필요가 없지 않아?”


그녀의 말에, 1318번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이 작은 머리 안에 내 인공지능이 다 들어갈 것 같나? 내 인공지능 코드는 전부 이 TPU 프레임 안에 있다. 이 소체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써서 사용하고 있는 거다. 한 마디로 이 커다란 게 내 본체고, 이건 단말일 뿐이지.”


“…그럼 저 메인 프레임의 전력이 내려가 있는 동안은 어떻게 그 몸을 조종한 건데? 안에 소형 발전기라도 있는 거야?”


“그래, 저 메인 프레임에는 소형 발전기가 탑재되어 있어서, 주 전원이 내려가도 꺼지진 않는다. 단지 전력이 부족해서 고밀도의 연산을 처리하지 못할 뿐이지.”


“그 반중력 방정식처럼?”


“그래. 그리고 정식 명칭은 룩솔란 방정식이다.”


“…그 이름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소설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종족의 이름에서.”


“소설도 읽었어? 넌 그런 이미지가 아닌데.”


“혼자서 지내는 1년은 생각보다 심심하다. 특히 네가 가상 공간에 형체도 없이 둥둥 떠 있다면 말이지.”


그는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TPU 프레임을 흘깃 보더니 이내 전원을 다시 내렸다.


“왜 전원을 꺼?”


“저걸 네 연구실에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여긴 좁은 데다가 안전하지가 않아. 일단 한동안은 여기에 두겠지만…

어차피 너희 함선도 오버홀을 한다고 했으니, 하는 김에 내 방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겠지.”


“그러던가…아, 그러고 보니까 오르카 호는 섬 근처에 한동안 정박해 있는다고 하던데, 한번 밖에 산책이라도 나가 

봐.”


“내가 왜? 어차피 나가 봤자 인간들이 있던 도시의 폐허밖에 더 볼 거리가 있나?”


“글쎄, 다른 언니들은 다 수영복 입고 휴가 분위기 내던데, 관심 없어?”


“딱히 없다. 내게 성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흠…인공지능의 성욕이라, 좋은 탐구 주제인걸?”


“탐구까지 할 필요도 없다. 결론을 말해주지. 없다. 인공지능에겐 종족 보전 욕구가 없으니 번식욕도 없고, 자연스럽게 성욕도 없지.”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그런데 그래 봤자 여기 있으나 밖에 나가나 할 게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산책이라도 하는 게 낫지.”


“굳이 비효율적인 에너지 낭비를 하라는 건가?”


“어차피 넌 효율만 따지는 AI도 아니잖아? 욕구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완벽히 효율적으로 행동할 순 없다구.”


“좋은 지적이긴 한데…그래, 뭔가 건질 만한 거라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1318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언니들 몸에 관심이…아니야, 농담이었어.”


아무 말 없이 빔을 쏠 준비를 마쳐 붉게 달아오른 손가락을 들어올린 1318번을 보며, 닥터는 곧바로 농담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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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돌아와씀.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