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그의 잠을 깨운다.


최후의 인간답지 않게 그는 잠시 누워 게으름을 피우다가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눈을 비벼 잠을 조금 떨치고 난 후 그의 눈 앞에 보이는 거울.


실내화를 신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가장 먼저 까치집마냥 산발이 된 머리가 눈에 띈다.


이 잠버릇은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고쳐지지 않는 듯하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정돈하고 나서야 눈을 비비면서 잘못 건드린 여드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양쪽 볼에 빼곡하게 난 여드름은 이마까지 퍼져있는 것도 모자라 미간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얼굴의 기름기를 확인하고 화장실로 향한 그는 물로 한 차례 행군 얼굴에 클렌징폼을 바르려다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다시금 볼 수 있었다.


혐오감이 들 정도는 아니지만, 절대로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평균 이하의 외모. 170이 조금 안 되는 키, 그리고  동그란 얼굴형과 납작한 코는 그로 하여금 외모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하였다.


적어도 멸망 전 인류의 기준에서 판단하기로는 그랬지만, 현재도 그 기준에는 일체의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령관 본인은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였으나, 다이어트라든지 패션에 변화를 주든지 하는 것을 남모르게 시도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해왔다.


세안을 마치고 온수샤워를 하며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는 손목의 디바이스로 걸려오는 메이드장의 전화에 급히 목욕을 마무리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주인님, 좋은 아침이에요.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나요?”


그는 언제나 상냥하게 아침인사를 전해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한층 나아지는 것 같았다.


“네. 오늘 회의도 있는데 잠을 설칠 순 없죠.”


그는 항상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경어를 쓰며 대했다.


공손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사회초년생의 습관이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모르지만,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들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처럼 대하곤 했다.


“역시 기억하고 계셨네요. 이래서야 제가 매일 아침 전화하는 의미가 없어지잖아요...후훗”


“그야 이제는 콘스탄챠 씨 전화가 없으면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안 나니까 부탁드리는 거죠. 이런 식으로 콘스탄챠 씨 목소리도 듣고 얼마나 좋아요.”


“주인님도 참....회의 시작 시간이 3시라는 것도 알고 계시죠? 저번처럼 정신없이 업무 보시다가 잊어버리시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콘스탄챠 씨.”


“참, 오늘은 부관이랑 너무 많이 노시는 것도 안돼요. 그 아이도 철이 좀 들어야 하는데...”


“걱정 마세요. 이번에는 참치가 없어지지 않게 잘 관리할게요.”


“전 제 자매들과 카페테리아 청소를 하고 있을 테니 도움이 필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그리고......”


“.........”


“너무 걱정 마세요, 주인님.”


“저는 항상 주인님의 편이에요.”


통화가 끝난 후 오늘 회의가 소집된 이유가 떠오른 그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사령실을 향해 걸음을 옮겨나가기 시작했다.


2. 일상


사령실로 향하는 길은 꽤나 복잡하다.


개인 침실을 나선 후 여러 번의 직진과 모퉁이를 도는 것을 반복해야만 큰 책상과 의자가 놓인 익숙한 그 방을 찾을 수 있기에, 그 여로는 때때로 길게 느껴지곤 한다.


그 때문인지 도중에 그는 여러 명의 바이오로이드와 마주치며,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밝은 얼굴을 보이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구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다수의 바이오로이드가 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는 브라우니와 옆에서 당황하는 레프리콘 등 다양한 반응을 거쳐 이제는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전투원들의 반응이 조금 미묘했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그는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을 기억하고는 발을 재촉했다.


사령관실 문을 열기 전 옆의 소원수리함에 쌓여 있는 쪽지들을 꺼낸 그는 ‘기돈곤격기’라는 굵은 글자가 비쳐 보이는 종이 한 장을 펼쳐볼까 생각하다, 각 대원의 사생활을 고려해 개인 침실에서 하나하나 펼쳐 보기로 하였다.


사령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늘의 부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령관이 종이들을 책상에 내려놓자마자 LRL이 달려와서 사령관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권속이여! 오늘은 짐이 부관이노라!”


“어서 참치를 내놓지 않으면 짐의 사안의 광휘를 맛보게 해주겠노라.....꺅, 히힛 그, 그만해애!”


사령관은 LRL을 장난기 어린 얼굴로 바라보더니 달려들어 간지럽혔다.


조금 간지럽혔을 뿐인데 머지 않아 LRL의 항복선언을 들을 수 있었다.


사령관은 이번에도 졌다고 생각하여 칭얼대는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를 무릎에 앉혀 놓고, 책상을 뒤져 보관하던 참치캔을 두어 개 꺼냈다.


“자, 참치캔이야. 소중한 참치를 바쳤으니 자비로우신 우리 공주님은 장난친 거 용서해 주실거죠?”


“흥, 제법 쓸만하구나. 하지만 다음에는 선처 따위 없을 것이니 주의하도록!”


“공주님의 분부대로 합죠.”


금세 기분이 풀렸는지 웃으며 참치캔 뚜껑을 열고 있는 LRL에게 수저를 건내주며 사령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언듯 보면 콘스탄챠와 약속한 것을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긴 것 같지만, 사령관은 어린 대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항상 개인 소유의 참치캔을 조금씩 남겨두었다. 자칫 보급에 차질이 생겨 발할라의 귀여운 막내가 마음고생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LRL이 떠먹여주는 참치를 한 입 받아먹은 후 그는 업무를 시작했다.


결재할 서류는 넘쳐났고, 그는 건조해져가는 눈을 비비면서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게 임했다.


누구나 원하는 때에 사령관실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기 때문에 업무를 보는 중간에 찾아온 모모의 활기찬 응원의 말을 듣는다든지, 더치걸과 LRL이 같이 노는 것을 키르케와 실없는 수다를 주고받으며 구경하는 등의 일이 있었으나 식사시간 전까지 아침 업무는 대강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소박한 입맛을 가진 그의 부탁에 따라 포티아가 라면이 올려진 카트를 밀며 사령관실에 들어섰다.


미소를 지은 포티아의 인사에 따듯한 포옹으로 화답한 사령관은 곧이어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뿔뿔이 흩어져 소수의 인원만이 오르카호에 있었을 때, 사령관과 포티아 둘이서 오르카호의 모든 식구를 위해 음식의 조리와 급양을 책임졌던 때는 너무 힘들었다느니, 지금은 소완과 다른 여러 명의 포티아 개체가 있어서 다행이라느니, 그래도 그리폰한테 처음으로 칭찬을 들어봤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사령관은 식사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포티아를 사령관실 밖 복도까지 배웅해 주고 나니 1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사령관은 업무를 더 진행하고자 하였으나 왜인지 서류의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며, 긴장감이 조금씩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약속된 회의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두려움과 비슷한 감정으로도 바뀌며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 듯하여 부관이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지만, 그가 애써 표정을 바꿔 웃음을 보였기 때문에 그녀는 그 속의 근심을 알 수 없었다.


업무가 영 손에 잡히질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의 성격이 원체 소심한 탓일까? 나의 방식이 너무 안일한 것인가? 나의 목표가 잘못된 것일까?


.......


.......역시 나는 사령관으로서 부적합했던 것인가?


3. 복도


사령관은 떨리는 몸을 이끌고 회의실로 향한다. 그의 손 안은 어느새 땀으로 질척거린다. 심박수가 빨라지며, 그와 동시에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찬다. 회의를 미룰 순 없을까? 그녀들은 이미 다들 참석해 있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날 수는 없을까? 벗어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그의 생각들은 그가 회의실 문 앞에 서자 비로소 멈추었다.


경호대장이 회의실 문을 지키고 서 있었고, 무표정으로 사령관을 응시했다.


“때맞춰 오셨군요.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회의실에 들어섰다.


4. 회의

회의실 안은 소름끼치도록 조용했다.


지휘관 개체들의 자리가 각각 마련되어 있었고, 빠짐없이 채워져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방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신속의 칸, 철혈의 레오나, 불굴의 마리, 멸망의 메이, 홍련, 블러디 팬서, 슬레이프니르, 징벌의 사디어스, 로열 아스널로 구성된 9명이었다.


하지만 9명 모두의 시선은 그의 부관이나 메이드장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사령관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말을 꺼냈다.


“지휘관 분들 안녕하ㅅ....”


“어제의 전투에 대한 보고부터 진행할게.”


그의 힘없는 말은 속절없이 레오나에 의해 끊겼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스틸라인을 주축으로 한 어제의 해안가 확보 작전. 투입된 병력 2천, 제거한 철충의 수는 약 650기, 우리 측 부상자는 243명, 사망자는 없어. 대단하네.”


“.......”


“특이사항으로는 철충 본대의 지원으로 전방에 위치한 다수의 스틸라인 소대가 위험해지자 사령관의 퇴각 명령으로 작전 중지. 과도한 보호기 배치로 소모한 자원이 막대하지만, 결과적으로 확보한 구역은 없어서 작전 실패야.”


레오나는 보고서를 찢으며 보고를 마쳤다.


한숨을 쉬거나 표정을 구기는 등 반응은 다양했으나 9명의 눈은 아직도 사령관을 향해 있었다.


“저는....”


“사령관, 사령관은 겁쟁이야?”


“...네?”


“사령관은 사망자 없이 승리한 전쟁을 본 적 있어?”


“.......”


“철충 본대의 지원이었다고 해도 소규모였고, 그대로 밀어붙였으면 해안가를 충분히 탈환할 수 있었어.”


“뭐가 그렇게 무서운건데? 대원들을 몇 명 잃는 게 그렇게 두려운거야?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서 보호기들이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투를 하면서 병력의 손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아군이 죽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문제라고.”


“나도 레오나 소장이랑 같은 의견이아.”


건너편에 있던 메이가 거들었다.


“사령관, 이제 고집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 이번 작전도 사령관이 강하게 주장하지만 않았어도 없었을 작전이야.”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거나 철충 연결체를 제거하는데 쓸 수 있는 자원과 병력, 시간을 실패한 작전에 쏟아 부었다고. 전부 해안가와 옆의 도심을 확보하겠다는 사령관의 고집 때문이지.”


“나름 원대한 꿈이 있다며? 바다에서 빠져나와 바이오로이드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이래서야 되겠어? 이번이 몇번째 퇴각인지 알기나 해?!”


순간 회의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고개를 숙인 사령관과 9명 지휘 개체의 모습은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도 메이와 동감이다. 사령관.”


“이번 작전, 과한 보호기 배치로 인한 자원 사용 탓에 당분간 캐노니어는 탄약을 아껴야 하겠지. 우리 측의 상당한 화력 손실이라는 의미다. 그대의 소극적인 태도를 더는 보기 싫군.


“탐색조를 꾸준히 편성하고 있지만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대원들에게 큰 영향이 없겠지만 곧 기본적인 급양 체계에도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그 외에도 무리한 퇴각 도중 부상당해 중태에 빠진 드라코 등 다수의 보호기 수복도 다소 지연되고 있으며, 철충의 경계가 더욱 강해져 탐색 조의 임무 성공률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육지로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지 말임다.”


“.........”


사령관의 어깨가 순간 떨렸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죄송...흐윽, 해요....”


“..흐끅,...죄송....합니다.....”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못 봐주겠네. 네가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면 철충이 감동 받아서 물러가줄 것 같아?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우리 둠 브링어는 저항군에서 탈퇴하겠어.”


“멸망의 메이, 아무리 그래도 저항군 탈퇴라니, 각하께서는 최후의 인간...”


“마리, 미안하지만 나도 메이와 같은 입장이야. 다음 전투에서도 사령관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도 오르카호를 떠날 거야.”


마리가 메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레오나는 그렇게 덧붙인 뒤 메이와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지휘관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회의실에는 칸과 마리, 그리고 조용해진 사령관 뿐이었다.


“......사령관, 전쟁의 승리에 있어서 때로는 달갑지 않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각하, 대다수의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은 각하를 모시고 인류를 재건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습니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결단을 내려 저희들이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지휘해 주십시오. 레오나와 메이는....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마리를 마지막으로 회의실 문이 닫히며 정적만이 감돌았다.


한참이 지난 후 그 정적을 깬 것은 사령관을 걱정한 그 누구의 방문도 아닌 손목 디바이스에 수신된 긴급 메시지였다.


“주인님, 또 다른 인간님을 발견했어요.”



1. 글 처음 써봄 => 오타, 개연성 지적 대환영

2. 사령관이 바이오로이드 구출을 최우선시 해서 현재 스토리로서는 6지 전 이야기지만 이벤트에 나오는 바이오로이드들 좀 등장함

3. 사령관이 좀 많이 소심하고 마음이 약함. NTR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