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견

 

탐색조에 편성된 그리폰은 근 몇 주 동안 연달아 출격한 탓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맨날 고물이나 뒤지고 오라니, 우리 스카이나이츠의 기동력을 뭐로 보는 거야?”

 

“사령관님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자원이 가뜩이나 부족해지고 있었는데 이번 작전도 브라우니들이 다칠까봐 중지했으니.......”

 

“그렇게 겁쟁이니까 전대장이 속이 터질 것 같다고 하지. 아으, 진짜 짜증나! 블랙하운드는 인간을 너무 감싸주는 것 같아.”

 

“요즘 조금 힘들어지긴 했지만 사령관님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아. 적어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일은 없어졌고.......”

 

“그 인간이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지만 않았어도 난 지금쯤 편의시설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텐데. 항상 찾아가면 책상에 엎어져 있다가 다크서클이 잔뜩 낀 채로 헤실헤실 웃기나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남이 걱정은 안 하게 잠은 제대로 자야 할 거 아냐.........

 

“우리가 자원을 많이 모으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야. 오늘 탐색만 마무리되면 며칠 푹 쉬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사령관님을 믿어보자.”

 

“알았어, 알았어....”

 

마지못해 날아가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리폰의 눈 구석에 무언가가 비쳤다.

 

금속 재질의 무언가가 햇빛을 반사하며 개활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작은 크기의 파편이었으나, 역장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뿜어내는 듯 했다.

 

그리폰이 하강하자 블랙하운드도 뒤따랐다. 착륙하여 물체에 가까이 가니 주변에 역장을 두른, 합금 조각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물건이지? 혹시 최근에 이 지역을 덮친 태풍에 의해 멀리서 날아온 기계 파편인가?”

 

“아니, 그보다는......”

 

그리폰이 물체에 손을 뻗는다.

 

“어딘가의 철문 조각 같이 생긴 것 같은데?”

 

치지직.....지직

 

그리폰이 물체에 손을 대자마자 역장이 크게 흔들리며 형태를 순간 잃는다. 그리고 뒤이어 옆에서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그리폰과 블랙하운드가 순간적인 굉음으로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주변을 살펴보니, 그들 앞에는 큰 문이 개활지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6. 군사기지

 

“이.......이게 뭐야?”

 

“블랙리버사의 군사기지 출입구처럼 생겼어. 하지만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는데....!”

 

눈앞의 출입문은 기지를 둘러싼 듯한 거대한 역장이 불안정하게 어른거리면서 모습을 보이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문은 크게 갈라져 손상되어 있었고, 파편의 역장이 깜박임에 따라 일렁거림을 반복하다가 역장이 사라지면서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잭팟인가?”

 

그리폰의 농담을 무시하고 블랙하운드는 조심스레 문에 손을 댔다.

 

“바이오로이드_식별_스카이나이츠_P/A-8_블랙하운드”

 

“아군의_치직_출입을_허가합니다”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이윽고 기지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네.”

 

“굉장히 잘 관리된 시설이야. 꽁꽁 숨겨놓은 걸 보면 아마 멸망 전에 인간님들이 방공호 같은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 같아.”

 

두 바이오로이드는 이리저리 흩어져서 기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쪽은 무기고 같아! 메이가 쓰는 미사일이나 블랙리버제 탄약이 가득 있어! 히히, 인간한테 오랜만에 맛있는 거나 좀 요리해 달라고 할 수 있으려나?”

 

“여기는 전투식량이나 유통기한이 긴 음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이걸 보고하면 모두 분명 기뻐할 거야!”

 

그리폰은 꽤나 넓은 지하 시설을 신나서 헤집고 다니다가, 어느 문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철충?”

 

“그리폰? 철충이라고? 그쪽에 철충이 있는 거야?”

 

“여기 이 문 뒤에,........인간 뇌파가 느껴져.”

 

“뇌파라고?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블랙하운드의 다급한 말이 무색하게 그리폰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앞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밝은 빛에 그리폰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설마 섬광탄을 터뜨리는 철충에 공격에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르게 무장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눈을 뜬 후 이윽고 보게 된 것은 방 전체를 뒤덮고 있는 기계 장치들, 의료 도구, 잘 다려진 제복과 모자, 그리고 액체 속에 담겨 방의 정중앙에 위치한 인간 남성이었다.

 

 

 

7. 메이나앤

 

한편, 메이는 회의실을 나선 뒤 둠브링어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휴, 이 얼빠진 놈이 진짜......”

 

“대장님이 왜 맨날 답답하다고 하는지 확실히 알겠네요.”

 

어느새 나이트엔젤이 스텔스 위장을 풀고 곁에 서 있었다

 

“역시 듣고 있었구나. 다른 지휘관들도 다 눈치 챈 것 같던데.”

 

“뭐 우리 사령관님이 회의 좀 엿들었다고 혼내실 분 아니잖습니까?”

 

“그 물러빠진 놈 얘기는 그만하자.”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폭탄 발언은 뭡니까? 갑작스러워서 제때 말리지도 못했어요.”

 

“머릿속에 이상만 가득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질 못하잖아. 잔뜩 구출해놓고서는 복지니 뭐니 해서 편의시설이나 만들고 있고. 정작 이겨야 할 전쟁이 코앞에 있는데.”

 

“더 잘할 수 있으면서 그러고 있는 게 답답해서 그러지......”

 

“테마파크를 찾았을 때 길길이 날뛰다가 전술핵을 2개나 낭비한 사람이랑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안 믿길 지경이야.”

 

“자기가 직접 부수겠다며 망치를 휘두르다가 애꿎은 팔만 다친 것도 충격적이었죠. 그때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2세 계획도 없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똑같은 얼굴을 봐야 하잖아. 빨리 정신 차리라고 내가 충격을 조금 준 거야.”

 

“뭐 조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긴급 메시지가 왔네요?”

 

“뭔데? 나도 보여줘 봐”

 

“......다른 인간님을 찾았다고?”

 

 


8. 새 인간

 

그런 메시지를 받은 이상 사령관은 더 이상 절망에 빠져 회의실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지구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철충의 습격과 휩노스병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인간이 두 명 이라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왜 살아남았는지도 규명해내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기이한 일이였으며, 메시지가 틀리지 않았다면 오르카호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건이었다.

 

사령관은 경호도 없이 달려가 잠시 정박한 오르카호 밖으로 나왔다.

 

오르카호와 인접한 스틸라인 막사가 눈에 들어오며, 평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저녁노을이 비추고 있었다.

 

탐색조가 귀환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장소에 지휘관들을 포함한 소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시지를 받고 모였고, 그 소규모의 집단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관심을 끌어 어느새 군중이 되어 있었다.

 

사령관은 애써 그 사이를 비집고 탐색조가 날아오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폰과 블랙하운드가 저마다 전투식량과 탄약을 한아름 안고 날아오고 있었고, 린트블룸, 하르페이아, 흐레스벨그가 마치 관 같이 생긴 긴 원통형의 물체를 세 방향에서 받치고 있었다.

 

지상에 가까워지자 그 주변을 보호하듯이 돌던 슬레이프니르가 우아하게 정중앙으로 날아들면서, 마치 편대 비행과 같은 배치로 스카이나이츠 전원이 속도를 줄이며 착륙했다.

 

“대장, 저건.........”

 

“블랙리버의 생명 유지 캡슐이야.”

 

이 광경을 눈을 빛내며 구경하던 닥터가 나이트엔젤의 질문에 대신 대답했다.

 

“블랙리버의 고위직들이 위중한 상태가 되었을 때 가사 상태로 만들고 해결할 방법이 생길 때까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치야. 멸망 후에도 이걸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스카이나이츠가 전원이 당당하게 구경꾼들 쪽으로 걸어왔다.

 

“사령관, 네가 회의실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는 동안 우리 자랑스러운 스카이나이츠가 한 건 했어.”

 

“여기 있는 이 캡슐, 안에 블랙 리버 군 조직의 간부가 자고 있으니까 어서 안으로 옮기자고.”

 



9. 젭이

 

캡슐 안에 잠들어 있는 남자는 너무나도 완벽해 보였다. 근육질의 몸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미남의 외모를 지닌 그는 사령관이 자기 자신의 겉모습을 돌아보게 하였다.

 

캡슐을 옮기는 동안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진귀한 광경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빗발치는 질문과 마이크를 쥐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스프리건이 방해가 되자 결국 토미워커에 실어 사령관실로 무사히 옮길 수 있었다.

 

“저 캡슐은 동력이 끊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안의 인간님이 가사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되었어. 지하 시설에서 꺼내올 때부터 동력 공급이 멈추었을 테니 곧 깨어날 것 같아.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 할게.”

 

닥터는 여러 기계 장치를 캡슐에 연결하고, 태블릿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 캡슐 가져오느라 힘들었어. 인간님이다 보니 철충들 꼬이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사령관실로 데려온 슬레이프니르가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은신 상태였던 멸망 전 블랙리버 군사시설을 찾았어. 지금까지 못 찾은 거 보면 숨기는데 대단히 애를 썼나 봐. 안에 물자도 가득 있던데, 그걸 다 긁어오면 뭐.......어느 정도 메꿀 수 있지 않을까?”

 

지친 사령관은 그제서야 사건의 전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탐색을 나간 블하와 그리폰이 블랙리버의 시설을 발견하고 생존한 인간을 찾아내기까지 했는데, 왜 통상적인 보고의 형태가 아닌 긴급 메시지로 주요 인물들에게 알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하였을까?

 

답은 꽤나 간단했다. 그리폰과 블하가 가지고 온 식량과 탄약은 물자가 풍부한 군사 시설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함이며, 전대장이 직접 넓은 영역을 미리 정찰하는 수고를 들이면서 다른 부대의 도움 없이 인간을 공중에서 옮기는 위험을 감수한 것도 스카이나이츠의 공을 부각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매우 무모했으나, 6명 전원이 방어 역장을 소지한 것을 보면 이는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에어쇼나 다름없는 뗑컨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감사해요. 슬레이프니르 씨. 스카이나이츠 모두가 오르카호의 은인이에요.”

 

“6명 전부에게 포상휴가와 대량의 참치캔을 지급하고, 카페테리아를 포함해서 함 내 편의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다들 탐색 나가느라 힘들었는데 포상휴가라니 정말 고맙지만.......갑자기 시간이 비니 뭘 할지 잘 모르겠네........”

 

슬레이프니르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사령관을 쳐다봤고, 말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그는 주머니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물론 휴가 기간 동안 볼게 없으면 심심하실까봐 준비해 놓은 게 있죠.”

 

“내용은?”

 

“남아있는 멸망 전 기록 중 직캠, 공식 라이브 등 아이돌에 관련된 영상물의 총집합.”

 

“좋았어, 고마워 사령관~”

 

슬레이프니르는 사령관이 던져 준 USB를 멋지게 잡아내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유유히 사령관실을 나섰다.

 

포상휴가 소식을 듣고 신이 난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은 아이돌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듯 했다.

 



10. 염려

 

그는 사령관실 의자에서 밤을 지새우고자 했다.

 

블랙 리버의 간부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 때문에 닥터를 무릎에 앉히고 같이 태블릿 화면을 지켜보았다.

 

사령관이 온 이후 처음으로 사령관실 출입을 통제하였기 때문인지 닥터와 사령관의 말소리만 조용히 울려퍼졌다.

 

“있잖아, 오빠는 어떨 거라고 생각해?”

 

“응?”

 

“저 인간님 말이야. 어떤 성격일까?

블랙리버 군 간부면 지휘는 엄청 잘할 것 같은데. 오빠를 잘 도와주면 진짜로 철충을 쫓아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블랙리버 군 간부. 당연히 지휘능력은 뛰어날 것이다.

 

게다가 지하에 역장으로 숨겨놓고, 어떠한 전파도 통과할 수 없도록 설계한 시설이라면 내부에 잠들어 있는 인물은 필시 철충 사태와 같은 재앙에 대비하여 보존할 정도로 귀중한 인재라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가 싸움에 임하는 방식은 사령관과 같을까? 사령관처럼 말단 병사들의 생사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총 지휘권자는 전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멸망 전에 그러한 자가 있었다고 해도, 여러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 확률은 너무나 낮다.

 

현재 사령관은 레오나, 마리 등 유능한 지휘관들의 가르침과 도움으로 이곳에 있다.

 

어쭙잖은 지휘 능력을 보완해 나가며 철충 연결체들을 격파하고, 언더와쳐까지 파괴하면서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었다.

 

또한 오르카호에 사령관이 도착한 이래로 현재까지의 사망자는 전혀 없었다. 기적적인 결과이지만, 이것에 스스로가 얽매여 이제는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글세, 닥터.......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하는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어. 철충을 잡는 건 나보다 훨씬 잘하겠지.”

 

“........오빠 지금 걱정하고 있구나? 괜찮아. 다들 비슷한 심정이니까.”

 

“아까 잘생긴 인간님이 왔다고 좋아하던 언니들도 걱정하더라. 혹시 바이오로이드를 막 부려먹는 무서운 인간님은 아닐까, 아니면 오빠랑 싸우면 어떡하지, 같은 거 말이야.”

 

“그래도 오빠는 이 닥터님이 도와줄 테니까 힘내서 앞으로도 언니들한테 잘 대해줘.”

 

“오빠가 사령관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언니들도 많으니까.”

 

사령관은 고마움의 표현으로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좋은 분일거야. 그리고 싸울 일은,

.........싸울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 마.“

 

그렇게 사령관실의 밤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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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무언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로 사령관실 책상에 엎어져 잠들고 말았던 모양이다.

 

어깨에 살짝 느껴지는 무게는 같이 잠들어버린 닥터였다.

 

눈을 비비자 사령관실의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사뭇 다른 점이 있었다.

 

“자네가 이 잠수함의 함장인가?”

 

눈앞에 제복을 입은 사내가 모자를 고쳐 쓰고 있었다.


1. 소설이라고 하기도 뭐한 처음 써보는 글입니다 =>오타, 개연성 지적 등 피드백 대환영

2.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하지 못하고 그냥 글자를 많이 써버린 레후

3. 이번 편은 부족하지만 상냥한 사령관을 좋아해주는 바이오로이드는 언제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