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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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6편

7편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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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인물이군 그대는. 곧 저녁식사 시간인데, 아마 이곳으로 올거요."

"그럼 그때까진 이것을 읽어봐야겠군."


마일로스는 가슴에 얹은 책을 바라보며 약간 쌓여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제목을 읽어내렸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코스모스. 마일로스는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그가 사관학교에서 배우길, 이는 고대의 테라에서 사용한 언어로 질서라는 뜻이며, 이 언어를 사용한 이들은 이 우주가 불변의 질서를 가진 것이라 생각했기에 우주라는 뜻으로도 사용했다고 했다. 마일로스는 방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파워 아머로 감싸인 두꺼운 손가락은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섬세한 동작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책은 아주 기초적인 우주 지식으로 쓰여있었고, 마일로스의 지식과는 다르거나 아예 사실과는 틀린 지식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책과 저자를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순간마다 변화하는 우주의 수 많은 현상과 수 많은 관점을 한 명의 개인이 책 한권에 정확하게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 점을 중요시하며 마일로스는 페이지를 넘겨갔다.


[현대의 과학은 고대 세계가 알고 있던 과학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자료에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이가 빠진 듯 여기저기 뚫려 있다.]


마일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기술력은 분명 행성에서 벗어나지조차 못한 고대의 기술과 과학보다는 뛰어날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기술의 암흑기, 투쟁의 시기는 몰론, 시간에 의해 잊혀진 수 많은 사건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와 과학, 기술은 채우지 못할 공백으로 가득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우주에선 흔한 일이였다. 인류와 제국뿐만이 아니라, 엘다같은 제노들도 이러한 공백을 가지고 있고. 은하계 전체를 통틀어도, 변방의 이름없는 페럴 월드마저도, 역사에는 언제나 공백이 존재했다. 마일로스는 이 모든것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지우고 없던 일로 만드는 일을 반복하는 실수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존재로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함을 믿었다.


그가 과거의 지식과 관점을 음미할때, 칸이 노크를 했다. 저녁식사가 도착한 것이리라. 


"마일로스, 식사가 도착했는데. 먹을건가?"

"호의를 마다할 순 없지."


방의 문이 열리고, 흰 장발의  바이오로이드가 들어섰다. 그는 자신을 소완이라 소개하고선 오르카의 주방장으로써, 유이한 인간님께 드리는 식사를 직접 대접하고자 방문했다고 말했다. 곧이어 수많은 요리와 꽤 멋들어진 식기가 함께 마일로스의 방에 도착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갑판으로 자리를 옯겨야했을 정도였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몰라, 소첩이 할 수있는 모든 요리를 드리니, 부디 귀하께서 마음에 드시길 바라는 바이옵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많은 호의를 받는게 아닐지. 감사하오."


사실 마일로스는 자신 한명에게 이 거대한 식탁과 만찬들을 대접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는 이 앞에서 표정을 찡그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일부러 웃었다.


그리고 한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면, 그의 파워 아머였다. 파워 아머가 입혀진 손으로 식사를 하자니 상대가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갑옷은 나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여서 함부로 벗을 수 없다오, 귀하가 마련해준 음식을 이렇게 먹는데 사과드리오."

"..아니옵니다. 소첩이 오해했사오니 용서를."


그런 어색한 대화가 끝나고, 마일로스는 각종 채소와 허브로 장식된 커다란 고기덩어리부터 먹기 시작했다. 한가지 메뉴를 먹을때마다, 소완은 그것이 어디서 온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든것인지 마치 설계도를 설명하는 테크 프리스트처럼 지나치게 상세한 것까지 설명했다. 보건데 아마 귀족들의 취향에 맞도록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일 것이다.





2시간에 가까운 식사끝에, 억지로나마 음식들을 모두 먹어치운 마일로스는 역류하는 듯한 위장을 달래며 소완에게 감사를 표하자, 소완은 무언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미식이 독보다 위험할줄은 몰랐군."

"정말 독일지도 모를 일이지."


마일로스가 칸을 째려보자, 칸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냐는 듯이 별들이 떠오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다 한 가운데, 주변 함선들도 기도비닉을 위해 소등하자 은하수가 아름답게 빛났다. 


마일로스의 턱선이 굳고, 눈이 경악으로 채워져갔다.

은하수가 아름답게 빛났다. 그것이 문제였다. 41번째 천년기 막바지에 일어난, 전 은하를 가르지르는 워프폭풍이 보이지 않는 것이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늘에서 워프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일로스는 비록 네비게이터나 사이커는 아니였지만, 워프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감지하는 법을 배운 자였다. 그런데 그의 감각이 하늘에 어떤 곳에서도 워프가 없다고 하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 된 것이다.


"칸, 먼저 방으로 가겠소."


그는 구토가 나오는 것을 참아가며 방으로 돌아가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처음의 섬세한 손길은 어디가고, 종이가 찢길정도로 거세게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다음 책을 집어들고, 다음 책을 집어들었다. 페이지를 넘길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가설이 틀리기를 바랬다. 잘못된 가설이라 생각했다. 아주 멀고도 멀어서, 워프균열이 보이지 않는 또다른 은하에 있는 인류와 유사한 문명인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스타르테스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나이츠 인덕터의 마린이다. 그의 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페이지속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기억하게 만든다.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든다. 현실과 가설이 일치함을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가설은 진실이 된다.


마일로스는 코스모스를 다시 집어들고 거기 적힌 날짜를 다시 읽었다.


2172년 8월 복원.


페이지를 넘겨 이곳의 행성계와 행성, 위성의 이름을 읽었다.


태양계, 화성, 목성, 타이탄, 세스나.


그리고 흙(Earth)이라는 이름의 창백하고 푸른 행성.


흙은 하이 고딕으로 테라.


마일로스는 그제서야 이 행성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은 이유를 깨달았다. 긴 시간동안 언제나 홀리 테라로만 불리며 잊혀진 이름이였던 것이다.


그는 과거로 왔다.

그는 세번째 천년기의 홀리 테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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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질질 끄는거 같아서 억지로 급전개 했음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