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서로 섞일 수 없는 인간과 괴이일지라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우릴 손가락질하고 모욕할지언정.
 
단 한번도 사랑에 대해 논하지 않은적이 없었고.
 
결코 서로를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으며.
 
밤하늘의 달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코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언제까지고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괴이이고 인간인 이상, 이 모든 것의 끝은 결국 파멸일 수밖에 없기에.
 
그것은 한여름 밤의 꿈, 찰나에 사라질 거품이었으며.
 
우린 필연적인 끝을 알면서도 꿈만 같던 시간을 거닐었으나.
 
꿈은 애석하게도.
 
언젠가 깨기 마련이었다.
 
 
 
****
 
 


이 나라는 결코 그녀와 같은 괴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 怪力亂神)의 이치는 준엄했기에.
 
이미 수많은 괴이들이 조정의 군사들에게 토벌된 와중에.
 
그들의 칼끝이 그녀를 향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도망쳐!!!’
 
그리고 피묻은 칼날이 서서히 다가와 그녀의 차례를 가리켰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그녀가 달아날 수 있게 그들에게 맞서는 것밖에 없었다.
 
허나 무장한 군사들에게 혈혈단신으로 맞선다는 건.
 
결코 적지 않은 대가를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고.
 
“어리석은 사람…!! 바보 같은 사람…!!”
 
온몸은 칼날에 무참히 난자당하고 수없이 많은 화살에 꿰뚫리고 말았다.

간신히 그녀를 데리고 군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으나.
 
이미 몸 상태는 살아있는 것조차 기적일 정도로 처참했다.
 
아직 이 숨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주술이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내 숨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한계를 진작에 넘은지 오래였고.
 
시간은 이제 온전히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내겐 애타게 날 부르는 그녀의 뺨을 닦을 힘조차도.

그녀의 모습을 이 두 눈에 온전히 담을 여력조차도.
 
이젠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커억, 쓰읍, 하아…. 하아….“
 
마시고 내뱉는 숨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무겁기 그지없었다.
 
초점은 고정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럼에도 내 시선은 줄곧 그녀의 모습에서 떠나질 않았다.
 
단지 구미호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을 짊어진 그녀.
 
그리고, 이젠 내가 없는 세상을 평생 홀로 쫓기며 살아가게 될 그녀.
 
세상은 결코 그녀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을 테고, 몇 번이고 더 칼을 겨눌 것이 분명했다.
 
만일 내게 이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서도.
 
“제발 죽지 말거라…. 소첩을…. 나를 남겨두고 떠나지 말란 말이다!!”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그녀를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전한다.
 
“살아, 줘….”
 
밤하늘의 달 아래서 우린 약속했기에.
 
언제까지고 저 하늘의 달이 우리를 비추는 한 결코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설령 죽음이 우릴 갈라놓더라도.
 
우린 필시 다음 생에서라도 다시 만날 것이며.
 
억겁의 시간을 넘어, 무량대수에 가까운 윤회 속에서 분명 수없이 많은 만남을 이어갈 테니.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會者定離)
떠난 이는 언젠간 다시 돌아온다(去者必返).
 
우린 다시 있을 영원한 만남을 위해 찰나의 이별을 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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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온통 한바탕 꿈이라고들 하지만...
 
정말이지 참으로 지독하게 달콤한 꿈이었구나...
 
첩에게도 그리고 그대에게도...
 
그대여...
 
이 억겁과도 같은 세월과 무량대수의 윤회속에서.
 
만약 그대와 첩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다시 한번 더 저 달을 바라보지 않겠느냐...?
 
저 달 아래서 못 다한 얘기를 마저 나누고 싶구나.
 
그래...  우린 분명 그것만으로 충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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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