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다르잖아요!"


사령관에게 달려들뻔한 레모네이드 오메가를 블랙 리리스가 가까스로 저지했다. 배신당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망과 저주가 가득했다.


"무슨 약속?"


싸늘한 사령관의 표정은 레모네이드뿐만 아니라 그녀를 제지하고있는 리리스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차가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주인님을 자유롭게 해주신다 하셨어요! 그걸 믿고 여기까지 안내한 거라구요!"


사령관은 방금 펙스 회장의 생명유지장치를 정지시킨 참이었다. 눈 앞에서 자신의 숙원이 무너지는 것을 본 레모네이드는 거의 실성을 하여 울부짖고 있었다.


"백년 넘게 병상에 누워있어야 했던 사람을 해방시킨거야. 너의 주인은 이제 비참한 감옥으로부터 자유야."


가까스로 유지되던 회장의 육체는 기계가 정지하자 급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애처롭기까지한 레모네이드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세월을 거슬러온 육신은 썩어버린채 악취를 풍기는 잔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당신은 살인을 한거에요! 주인님은 당신같은 인간이었다구요!"


사령관은 기가 차다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늙은이를 살려보겠다고 그 많은 악행을 저질러온 여자에게 살인자라는 말을 듣게될줄이야.


"너희가 저지른 수많은 죄의 댓가라고 생각해."


"이제 진짜 최후의 인간이 되엇네요. 이 세상이 전부 당신 것이니 참 좋으시겠어요!."


핏발이 선 그녀의 말에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도 자신의 계획을 조금이나마 말해줄 생각이 들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인류의 것이 아니야."


레모네이드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령관은 낮게 속삭였다.


"뭐라구요?.."


"나는 인류를 재건할 생각도, 오래 살면서 지배자를 할 생각도 없거든."


레모네이드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사령관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당신 설마.."


사령관은 리리스의 총을 건네받아 레모네이드의 머리에 겨누었다.


"거기엔 네 자리도 분명있었을텐데. 아쉽게 됬어."


짧은 총성이 울리고 레모네이드가 쓰러졌다. 백년이 넘는 세월을 주인의 부활만을 바라며 살아온 바이오로이드의 마지막으로는 더없이 초라하고 비참한 죽음일 것이었다.


"가자, 리리스."


"주인님, 절 시키시지 않고.."


사령관이 직접 피를 묻힌것에 대해 리리스는 심란한 표정이었다. 그런 리리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령관은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난 괜찮아."


문을 나서며 사령관은 뒤를 돌아보았다. 인간의 시체와 바이오로이드의 시체. 멸망 전 세상의 주인이었던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사령관은 그들만은 살려둘 수 없었다. 아울러 그들이 부활을 꿈꾸었던 저 시설 역시 이제는 사라져야하는 것이다.


"알바트로스, 듣고 있어?"


"명령 대기중이다. 사령관."


"시설을 전부 날려버려."


"알겠다."


멸망 전 인간의 부활을 위해 존재했던 시설은 이제 흔적도 없이 파괴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철충들과의 싸움으로 죽어간 바이오로이드들을 기리기 위한 묘비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폭발 소리를 뒤로하며 사령관은 오르카호로 향했다. 아직 그녀들에게 줄것이 남아있엇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