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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 [11화]



 

오르카 호에 토요일이 밝았다. 토요일에는 에반의 모의 전투는 물론 이론 교육 역시 없다. 말 그대로 쉬는 날이다. 며칠간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에반은 주말에 맞는 휴식이 오랜만에 느껴지면서도 반가웠다. 세레스티아가 충고한 뒤로는 업무와 휴식을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푹 쉬기로 했다.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조금 느지막한 아침 식사를 마친 에반은 식당에서 걸어나오며 최근 즐겁게 보고 있는 매지컬 모모의 주제가를 흥얼거린다. 한 번 인사한 적이 있었지만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은 없어서 언젠가 제대로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에반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제대로 뒤를 보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린 덕분에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어머~ 오르카 호 귀염둥이네? 반가워.”

아, 하르페이아 누나, 안녕하세요. 슬레이프니르 누나랑 린티 누나도 오랜만이에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에반이 예상한 대로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이었다. 에반을 귀염둥이라고 칭하는 하르페이아의 말에 린트블룸은 금방 핀잔을 준다.

 

잠깐, 하르페이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린티를 두고 무슨 말이야?”

넌 어린애한테까지 그런 걸로 질투하는 거야?”

물론이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건 이 린티라구! 이건 절대 양보 못 해!”

냅둬~ 저 녀석은 귀엽다는 거에 엄청나게 자부심 있으니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누구보다도 친해 보여서 에반은 저도 모르게 웃는다. 처음에 왔을 땐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생활에 적응하고 나자 모두의 표정이 밝아진 느낌이 들어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셋이 싸우는 것도 말릴 겸, 에반은 화제를 돌렸다.

 

오늘 쉬시나 봐요? 어디 가세요?”

아, 응. 오랜만에 비번이거든. 그래서 셋이서 같이 놀러다닐까 했는데… 어때? 같이 다닐래?”

 

에반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르페이아는 린트블룸과의 입씨름을 멈추곤 허리를 숙여 에반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에반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여러 명과 같이 노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도 하고 자신을 동생처럼 대해 주는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이 마음에 들었다.

 

네, 같이 놀아요. 마침 심심하던 참이었어요.”

좋아. 잘생긴 에반이 끼면 분위기가 훨씬 살겠는데?”

 

하르페이아를 비롯한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 역시 상냥한 성격의 에반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에반은 스카이 나이츠 무리에 합류하여 그녀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잠시 후 스카이 나이츠와 에반이 도착한 곳은 오르카 호의 도서관이었다. 학술적 논문부터 시작해서 문학 작품, 각종 유명 잡지들까지 두루 갖춰져 있어 꽤 웅장한 크기를 자랑했다.

에반은 여기에서 성 관련 책을 가져왔던 기억 때문에 조금 부끄러웠지만 손을 잡고 도서관 안으로  끌어당기는 하르페이아의 손길에 금방 부끄러운 기억은 지워졌다.

 

도서관을 노는 장소로 정하다니, 하르페이아답다고 해야 할지…”

뭐 어때요~ 딱딱한 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책들도 많잖아요.”

 

린트블룸은 여성향 러브코미디 만화책을 뽑으며 이야기했다. 다같이 즐길 만한 오락시설도 별로 없는 걸 알고 있는 슬레이프니르도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웃는 표정으로 잡지를 두세 권 뽑아들었다.

 

좋아, 그럼 난 이걸 읽어볼까나.”

으음~ 에반은 혹시 읽고 싶은 책 있어?”

 

하르페이아는 문학 작품들이 꽂혀 있는 곳에서 고민하다가 에반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에반은 갑자기 얻게 된 결정권에 놀라며 자신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저요?”

응, 어차피 웬만한 건 다 읽어봤으니까 에반이 좋아하는 걸 읽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하르페이아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자 에반은 호의를 거절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어린 왕자》라는 책을 뽑았다.

 

이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보는 눈이 있네. 훌륭한 선택이야.”

 

하르페이아는 에반의 안목을 칭찬하면서 그가 뽑아든 《어린 왕자》를 받아 품에 낀 다음 손을 잡고 열람실 쪽으로 걸어갔다.

열람실에 도착한 에반과 스카이 나이츠는 집어든 책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책을 읽었다.

린트블룸은 이따금씩 키득거리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겼고, 슬레이프니르는 관심이 가는 의상이나 연예인이 나타날 때마다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잡지를 탐독했으며, 하르페이아는 에반이 이해하기 쉽도록 또렷한 발음으로 자상하게 《어린 왕자》의 내용을 읽어 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오르카 호의 도서관에 감돌았고,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이 씨발년들 봐라? 전체 기상, 전체 기상!!!”

 

성큼성큼 다가오던 발자국이 멈추자 날벼락 같은 목소리가 열람실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냉각시켰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열람실 안에 울려퍼졌다.

에반을 제외한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은 전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짓장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들과 압도당한 분위기에 에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번이면 씨발, 여기서 탱자탱자 쳐놀고 있어도 되는 거냐? 어?!”

아… 아… 아닙니다!”

 

스카이 나이츠는 모두 그 말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애초부터 바이오로이드를 폭행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핑계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전대장인 슬레이프니르만이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니년이 전대장 달고 제대로 안 하니까 밑에 년들이 죄다 군기가 빠진 거 아니야? 어어?!!”

죄… 죄송합니다!”

하… 씨발, 이래서 젖통이랑 엉덩이만 큰 섹스돌 년들은 그냥 섹스용으로 놔두고 전투는 AGS한테 맡기려고 한 건데…”

 

사령관은 이마를 한 손으로 짚으며 얼굴을 찡그렸고 슬레이프니르를 비롯한 스카이 나이츠는 곧바로 들이닥칠 일에 대한 공포감에 몸과 손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에반은 이대로라면 큰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하긴 씨발, 아이돌인지 뭔지 한답시고 싸구려 창녀같은 의상 입어댈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슬레이프니르는 자신이 품어 왔던 꿈을 무참히 짓밟는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입술에서 피가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목구멍 안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령관은 그것을 간파해냈다.

 

질질 짜네? 야, 뭘 잘했다고 질질 짜? 이 씨발년이…!”

 

사령관이 눈을 홉뜨며 오른손을 위로 올린다. 곧바로 저 끔찍한 손으로 따귀를 맞을 것이란 공포감이 극도로 치달을 때쯤, 슬레이프니르의 뒤쪽 방향에서 별안간 큰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에반이었다.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사령관은 독기 서린 시선을 에반에게 돌렸다. 슬레이프니르를 비롯한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도 놀랐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못했다.

 

제가 오자고 했어요. 누나들은 바쁘다고 했는데 제가 떼써서 같이 놀아달라고 했어요.”

 

에반은 스카이 나이츠를 변호하면서 천천히 걸어나가 사령관과 스카이 나이츠 사이에 위치한다. 그리고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치켜들어 사령관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누나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 혼내시려면 저를 혼내세요.”

 

손을 치켜든 사령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령관에게 에반은 지휘를 대신 맡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존재였지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반발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반감을 가지게 했다간 언제든지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반감을 사서 전혀 좋을 것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은 에반도 그런 속내를 알고 있었기에 사령관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들은 대로,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를 생각할 줄 아는 물건이나 성욕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열람실 안에 적막이 흘렀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에반이 크게 침을 삼켰을 때 사령관은 결국 따귀를 때리려던 손을 내리고선 잔뜩 일그러졌던 표정을 다시 폈다. 하지만 아직 노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를 악문 티가 잔뜩 나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에반을 봐서 이번엔 봐 준다. 다음에 또 좆같이 하다가 걸리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둔다. 으응?”

“…알겠습니다.”

“…씨발…”

 

사령관은 침과 함께 짧게 욕설을 뱉고선 발소리를 크게 내며 하릴없이 도서관을 나갔다. 시간이 지나 그 기척이 희미해지자 스카이 나이츠의 앞을 막아섰던 에반의 자세가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밀었다.

 

후아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에반…”

 

긴장을 풀고 있는 에반의 뒤에서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이 자신보다 한참 작은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만약 이 소년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또다시 자신들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가장 작은 소년은 스카이 나이츠의 눈에는 가장 크게 보였다.

그 모습에 놀랐지만 하르페이아와 린트블룸은 금방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한번에 너무 많은 압박감에 짓눌려 버린 슬레이프니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털썩 하는 소리가 들리자 에반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 괜찮으세요?”

흐읍… 흡… 흐읍… 흐아아아아아아앙…!”

 

슬레이프니르는 얼떨결에 자신을 마주보고 있는 에반을 품에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 폭력은 그런대로 익숙했다. 참으면 되니까. 하지만 마음 속에서 키우고 있던 꿈이 난도질당하듯 갈갈이 찢겨 버린 서러움이 북받쳐 참았던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꿈을 잘 알고 있는 하르페이아와 린트블룸은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의 전대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흐윽… 미안해… 울기나 하고… 크응…! 옷도 다 버려버렸네…”

괜찮다니까요.”

 

자신의 방으로 옮겨진 슬레이프니르는 티슈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면서 에반에게 사과했다. 에반의 옷은 슬레이프니르의 눈물과 콧물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슬레이프니르를 위로해 주었다. 옆에서 같이 달래주던 하르페이아가 볼을 부풀리며 이야기한다.

 

원래 말을 막 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 너무했어.”

맞아, 맞아.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린트블룸도 같이 맞장구를 쳤다. 세 사람의 긴 시간을 들인 위로에 이제서야 진정이 된 슬레이프니르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티슈로 닦고선 에반의 손을 살며시 잡고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야기했다.

 

에반, 정말 고마워. 너무너무…”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에반이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양 옆으로 젓자 슬레이프니르는 더 세게 도리질하며 에반과 자신의 손을 깍지 끼듯 잡는다. 자그마한 손이지만 부드러운 촉감과 기분 좋은 온기가 혼란스러웠던 슬레이프니르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슬레이프니르는 이어서 말한다.

 

네가 없었다면 우리 셋 다 수복실 신세를 져야 했을지도 몰라. 앞장서서 우릴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걸까. 이제는 세기도 힘들 정도지만 여전히 낯간지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볼을 긁적이다가 사령관이 이야기했던 ‘아이돌’이라는 말을 떠올린 에반이 물었다.

 

슬레이프니르 누나, 혹시 가수 같은 거에 관심 있으셨어요?”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서 읽던 책도 패션이나 연예인들을 다룬 잡지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당장의 모습만 보면 아이돌이나 가수랑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멸망 전에 팬도 많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지만 개인이 그런 희망을 가지는 건 별개의 일이다.

 

아아… 으응… 맞아.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었어.”

 

슬레이프니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구해 주다시피 한 은인에게 이런 것쯤은 대답해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슬레이프니르는 살짝 위를 바라보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이 좇고 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철충과의 전쟁이 끝나면 아이돌 가수로 한 번 데뷔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의상도 마련하고, 쉴 때마다 멸망 전에 유행했다던 노래도 틈틈히 연습했는데… 최근엔 할 시간이 없었네.”

 

점점 많아지는 임무와 작전은 둘째 이유였고, 그딴 거나 할 시간에 작전이나 제대로 하라는 사령관의 명령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져 꿈을 한동안 접다시피 하고 있었다. 벽 한쪽에 걸려 있는 무대 의상의 모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스카이 나이츠 그룹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지금은 노래 같은 것보단 전쟁이 더 중요하니까. 응, 아무래도 꿈은 접어야겠지.”

전대장!”

전대장님!”

 

이야기를 듣던 하르페이아와 린트블룸이 동시에 외친다. 슬레이프니르의 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이었기에 그 발언은 폭탄 그 자체였으리라. 자신의 부하들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슬레이프니르는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한다.

 

아냐. 지금 같은 때에 아이돌이 무슨 의미가 있어. 마련했던 의상도 그냥 처분해 버릴까 봐.”

 

사령관에게 받은 충격의 여파가 꽤 컸는지 슬레이프니르는 꿈을 접을 마음을 먹고 있었다. 철충들이 시시각각 위협해 오는 지금 한가하게 노래나 부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전장의 아이돌이라면 모를까, 가수는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다. 그렇게 마음을 굳힐 때쯤 에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보고 싶어요, 슬레이프니르 누나가 노래하는 모습.”

응?”

구해 드린 보상은 그걸로 받을게요. 누나가 아이돌 의상 입고 공연하는 모습, 꼭 보고 싶어요.”

 

느닷없는 콘서트 요청에 슬레이프니르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상대는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다. 그리고 보답으로 자신의 공연을 보고 싶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슬레이프니르는 한숨을 쉬곤 에반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응시하며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이번 딱 한번만이야?”

네!”

그러면 옷 갈아입고 소극장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줘. 금방 준비해서 갈 테니까. 하르페이아랑 린티는 어떻게 할거야?”

 

하르페이아와 린트블룸은 에반과 슬레이프니르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도는 것을 간파했다. 서로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둘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놀라며 호들갑을 떨며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아, 맞다맞다! 오늘은 멸망 전 문학 작품을 좀더 읽으려고 했는데~ 큰일났다~”

린티도 블랙 하운드랑 같이 놀기로 약속해서 안되겠어~ 전대장님, 이만 갈게요~”

 

둘은 허둥지둥 슬레이프니르의 방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방문을 닫은 하르페이아와 린트블룸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는 둘 사이에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감, 아니 확신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부자연스럽게 사라지자 에반과 슬레이프니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둘 다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은 탓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슬레이프니르는 자신의 방에서, 에반은 소극장에서 둘만의 콘서트를 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

 

오르카 호의 소극장에는 아주 간단한 수준만의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공연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좌석에 앉은 에반은 오늘의 콘서트를 진행할 가수를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그 기다림도 잠시, 무대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오늘 콘서트의 주인공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슈퍼스타 슬레이프니르’의 단독 콘서트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레이프니르는 텐션이 한껏 오른 목소리로 마이크 앞에 서서 이야기했다. 작지만 가릴 것은 다 가리고 있는 마이크로 비키니와 역시 작다고 이야기해야 할 핫팬츠는 선정적이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에반은 슬레이프니르의 인사가 끝나자 힘껏 박수를 쳤다. 슬레이프니르는 박수 소리를 듣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도 정말 많은 팬 분들이 와 주셨는데요! 특히 1호 팬분이 자리해 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슬레이프니르는 에반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스카이 나이츠 이외에 자신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 슬레이프니르는 그래서 마음 속으로 에반을 1호 팬으로 결정했다. 에반에게 살짝 윙크를 해 준 슬레이프니르는 본격적으로 공연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손에 집어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제 최고의 히트곡, 《Gossip Boy》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모두들 준비 되셨죠?”

네!”

 

슬레이프니르와 에반은 흔히 콘서트에서 하는 것처럼 질문을 주고받았다. 기나긴 함성 소리라도 들리는 것처럼 눈을 감고 대답을 듣던 슬레이프니르는 곧바로 눈을 뜬 뒤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채 손가락을 튕기며 한층 더 올라간 텐션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뮤직 큐!”

 

곧바로 강렬하면서도 신나는 기타와 드럼 소리가 소극장 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에반은 전주가 흐르자마자 슬레이프니르가 챙겨 준 형광봉을 흔들며 자신만을 위해 공연해 주는 최고의 아이돌 가수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 너에 대해 말을 해 ♪ 너무 완벽한 남자라고♬

 

댄스가 포함된 곡은 아니었지만 신나는 락 사운드만으로도 소극장 안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슬레이프니르는 아이돌 가수를 꿈꾸던 때를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기쁜 마음으로 곡을 열창한다. 그리고 에반은 조금이나마 꿈을 이룬 슬레이프니르에게 형광봉을 흔드는 것으로 응답해 주었다.

 

♬여자들의 뻔한 시선 ♪ 너도 알고 있잖아 ♪ 어쩜 그리 모른 척하니♬

 

슬레이프니르는 열정적으로 호응해 주는 단 한 명의 팬을 보면서 접으려고 했던 꿈이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해도 느낄 수 없는 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노랫말에 실어 보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네게 웃는 내가 바보같아 ♬

 

에반은 무대를 가로지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슬레이프니르의 얼굴에 땀이 맺히는 것을 본다. 저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땀을 흘리는 그녀를 보면서 공연을 보는 것을 요청하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공연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저토록 즐거워하는 표정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책임져 너 땜에 아무것도 못 해 난♬

 

곡이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슬레이프니르는 한껏 포즈를 잡고선 곡을 끝냈다. 당연하게도 에반의 박수와 함성 소리가 소극장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물론이고 형광봉까지 흔들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슬레이프니르는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관객석을 향해, 정확히는 에반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르카 호의 소극장에서 열린 ‘슈퍼스타 슬레이프니르’의 첫 콘서트는 팬과 가수 모두가 크게 만족하며 성황리에 끝났다.



야스까지 쓰면 분량 너무 많아짐 + 기다리는 사람들 조바심나니까 여기서 일단 컷.

그리고 의외로 야스하는거보단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음.

제목부터 야설을 표방하는데 필력이 구려서 그런가싶기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기분이 묘함.

하편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거임. 늦어도 모레에는 올릴거라고 약속함.

읽어주는 라붕이들, 추천 눌러주는 라붕이들, 댓글 달아주는 라붕이들 항상 고마워

오타나 비문같은것도 댓글로 피드백해주면 바로바로 적용할게


소재도 많이 필요해.. 이 뇌절이 몇 절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일단 하는 데까진 해볼거임

덧붙여서 생각중인 소재는 이제 따로 안 쓸 생각임. 왠지 이것부터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있어서 헤메는 것 같아

그래도 댓글 항상 모니터링 하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캐릭이랑 시츄 아낌없이 적어줘. 12화도 댓글에서 소재 갖고온거니까


참고로 뗑컨이 작중에서 부른 노래는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