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다. 아니, 처음부터 이용당한거다.

사령관은 오르카를 빠져나오며 이를 갈며 되뇌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3달 전 정도, 에바가 보내준 좌표에서 새로운 인간을 찾았을 때였다.

새로운 인간은 새로운 가능성이라 생각했던 사령관 또한 기뻐하였으나 머지않아 무언가가 잘못 되어가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발견한 인간은 자신과는 너무나 달랐다.

단순히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있었던 전투에 관한 정보가 전무하였다.

그러나 그는 남을 설득하고 공감해주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타고난 정치가.

곧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사기진작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 사령관은 좋은 현상이라 믿어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 반정도가 지난 후에는 오르카의 분위기는 너무나 바뀌어있었다.

새로운 인간은 평화를 논하며 철충과 싸우지 않고도 싸울 수 있다며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싸움에 지쳐있었던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서 그의 말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갔고, 머지않아 사령관은

자신의 지배를 위하여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전쟁광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사령관이 이러한 변화를 눈치챘을 때는 너무 늦었었다.



허가하지도 않은 지휘관 회의에 멋대로 참석하는 인간, 그리고 메이와 나이트앤젤을 비롯한 둠브링어와 리리스 외에는 회의에서조차 사령관의 편이 없었다.

메이는 다른 지휘관들을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 없었고, 리리스는 조용한 눈으로 상황을 바라볼 뿐.

새로운 인간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을 쳐다보았고, 사령관은 알 수 없는 감정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애써 참으며 회의장에서 나갔다.



그 후 새로운 인간이 지휘 연습을 이유로 자신에게 지휘권을 한 번 넘겨달라 부탁했고, 사령관은 별다른 의심없이 그에게 철충 잔당 처리를 부탁하였다.

별달리 어려울 것도 없는 평범한 마무리 작업이어야했다.

업무에 치여 부대의 편성인원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분명 사령관의 실수였으나, 이것이 실수임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었다.

작전에서 결추당한 메이의 유폭에 휘말려 부대 전원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채 잿더미가 되었고,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기존 사령관의 잔여 세력을 없애기 위한 핑계였던 지휘연습.

사망자 명단을 확인한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고, 곁에 있는 리리스 말고는 이제 오르카의 그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토할거 같은 어지럼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에바.

왜 여지껏 몰랐을까.

오르카는 실험장이다.

추후 인류를 이끌 지도자를 선별하기 위한 실험장이고

자신은 약소했던 저항군을 키워내기 위해 보내진 실험체였다.

그리고 이제 실험장이 충분한 규모로 완성되자 다음 실험체를 보낸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특질을 가진 다른 인간.

처음에는 지휘능력외에는 전무하던 자신. 다음에는 뱀의 혀를 가진 정치인. 그 다음엔 누구인가, 공포를 이용할줄 아는 독재자?

그리고 이곳 내에서의 경쟁 후 도태를 반복하여 추후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에바의 계획.

그도, 자신도, 그리고 이곳에 있는 바이오로이드 또한 이 실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쌍년이...."


그가 욕설을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리리스가 놀라며 그를 쳐다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생기는 새로운 깨달음.

어쩌면 사령관은 실험체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약소했던 오르카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보내진 도구.

실험장의 초석.

전투 지식외에는 백지나 다름없었던 사령관이었고  그리고 그 다음이 하필 설득의 힘으로 아군을 와해시키는 자인 것을 보았을 때

에바는 분명이 사령관이 도태되는 것을 의도하였을 것이다.

결심이 선다. 이곳의 모두를 사랑했던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차피 이 배는 가라앉을 것이고, 에바의 이 미친짓에 어울려줄 생각따위는 없다.




"리리스,"

그가 나지막히 다가온 리리스에게 말을 건다.


"떠나자."


리리스는 조용히 그가 언젠가 이러리라 생각했다는 듯이 대답한다.

"이미 준비해뒀어요. 자정에 3번 출구로 나가죠."





자정,

경계를 서고 있던 브라우니 옆으로 사령관과 리리스가 지나간다.

"어..어.. 승리! 어디가십니까 사령관님!"


팬텀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짐을 맨 두사람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브라우니를 보고 사령관이 대답했다.

"난 떠난다. 너도 건강해라. 그리고 되도록이면 너도 기회를 봐서 여길 떠나."


"잘못씀다?"


"브라우니, 우리가 나갔다는 걸 2주 뒤까지 보고하면 안돼. 그리고 너도 네 생존을 챙겨야 한다. 이게 내 마지막 명령이야."

브라우니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사령관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후드를 뒤집어 쓴 리리스가 뭍는다.


사령관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북쪽으로 가면 블랙리버의 산업단지가 있어. 너무 내륙이라 오르카에 발이 묶여있을 땐 가지 못했을 곳이지만,

거기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다. 이번엔 그 어떤 간섭없이 나만의 집으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힘들거다."

한참을 걷다 그가 말을 꺼냈다.



"알고 있어요."



"인프라도 적고 인원도 없을거야. 우리가 직접 뛰어야 하는 일도 많을거고."



"그것도 알아요."



"리리스,"



"네."



"넌 절대 날 떠나지 마."


리리스는 자신이 그를 필요로 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주는 행복감에 온 몸을 휘감는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세상 끝까지 같이 갈게요."

















얼마 후 오르카는 사령관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바로 새로운 인간을 사령관의 자리에 올렸다.

그러나 서로 다른 부대의 인원을 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은 기존 사령관 특유의 장기였고, 이는 그는 물론 지휘관 모델들은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만약 기존 부대로만 철충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다면, 인류가 철충에게 지는 일 또한 없었으리라.



늘 승리만 해오던 인원들에게 연이은 패배와 전멸에 가까운 피해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쌓여왔고,

새로운 사령관은 겁에 질려 이를 메꾸기 위해 바이오로이드 제조에 부족한 자원을 쏟아부어 오르카는 자원부족과 넘쳐나는 전사자로 악순환에 빠졌고,


이 후에 새 사령관이 철충의 기습으로 죽고, 소수의 인원만 살아남아 도망쳤다는 소식이 사령관의 새로운 기지에 날아왔다.










어제인가 누가 쓴 사령관 탈주하는 소설보고 삘받아서 30분 대충 써옴.


나중에 적대세력으로 만나면 재밌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