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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 닥터는 사령관에게 그의 신체 검사 표를 내밀었다.


“…놀라울 정도야, 오빠. 저 사람이 역사책 속의 그 유명한 캡틴 아메리카와 똑같이 슈퍼 솔져라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신체 능력이 

향상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검사표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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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5cm


몸무게: 125kg(의수 무게 포함) 105kg


 


시력: 2.5/2.5(오른쪽/왼쪽)


청력: 정상


그 외 특이사항/질병: 대뇌에 손상 발견됨


 


스쿼트-580kg


데드리프트-600kg


벤치리프트-540kg


 


높이뛰기 5m


제자리 멀리뛰기 6m


악력 190kg


100m 달리기 4.5초(속도: 80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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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 돼?”


사령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는 소름이 자신의 등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납치가 아닌 암살을 목표로 하고 도착했다면 자신은 이미 참혹한 주검이 되어 있을 거라는 상상에까지 그의 생각이 

미치자, 사령관은 몸서리를 쳤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 리리스 언니가 이 사람을 못 이긴 것도 무리는 아니네…도대체 200년도 더 전에 오리진 더스트도 없이 어떻게 

사람의 신체를 이렇게 강화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사람 말로는 자기가 무슨 혈청을 맞았다고 하던데. 그나저나…대뇌 손상은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대뇌의 일부가 심각한 손상을 입어서 죽어 버렸더라고…말하는 거나 운동에 지장이없는 걸 보면 아마 남은 부분들이 그 부분들의 몫만큼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닥터는 말끝을 살짝 흐렸다.


“계속 말해봐, 문제가 없다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잖아.”


“옛날에 레이시 언니를 진찰했을 때 기억 나? 내가 그랬잖아, 지속적으로 뇌에 무리할 정도의 전류가 자주 흐른 흔적이 있다고. 저 사

람의 뇌에서도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어.”


닥터의 말에, 사령관은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신의 개조.


그의 말에서 사령관은 레이시를 떠올렸다.


그녀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예전에 그녀에게 가해졌던 실험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 또한 옛날의 기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령관은 궁금했다.


“…일단 알았어, 고생했네.”


“뭘, 별 것도 아닌데…”


사령관은 쑥스러워하는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편, 버키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서 나오고 있었다.


검사는 별 것 없었다. 동면에서 깨어나면 가끔씩 할 때도 있었기에, 그는 그런 것들에 익숙했다.


“옷이 조금 끼네…”


그는 사령관의 옷을 빌려 입고 있었기에, 옷이 조금 꽉 끼는 감이 있었다.


사령관의 키는 버키에 비해서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버키의 키가 근소하게 컸고, 덩치는 확실히 버키가 큰 편이었기에 사령관의 티셔

츠는 그의 몸에 살짝 달라붙은 모습이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서 탈의실 밖으로 나오자, 사령관은 그를 보며 말했다.


“일단 신체 검사는 끝났고, 오늘은 쉬셔도 될 것 같네요.”


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옷이 새로 필요하실 것 같네요.”


그는 버키의 몸에 살짝 달라붙은 자신의 옷을 보며 말했다.


“아니, 괜찮기는 한데…”


버키가 팔을 돌려보며 그렇게 말하던 와중,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


버키의 금속 팔이 옷의 뜯긴 어깨 부분 사이로 보였다.


괜찮음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버린 셈이었다.


“…오드리에게 부탁하면 되니 괜찮을 거에요. 그건 이리 주세요.”


버키는 사령관의 말대로 윗옷을 벗어서 건네주었다.


티셔츠 밑에서는 균형이 잘 잡힌 근육질의 몸이 나타났다.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을 본 사령관은 그에게 살짝 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사령관의 몸매가 안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버키의 몸은 마치 브라우니들이 가끔씩 돌려보곤 하는 잡지 속의 남자 모델보다도 훨씬 몸

매가 좋은 편이었다.


닥터가 어머, 하며 입을 가리는 사이, 버키는 다시 탈의실로 들어가 신체 검사를 할 때 입었던 헐렁한 가운 비슷한 옷을 걸치고 나왔

다.


“그…오드리란 분이 의류를 관리하는 장교인 건가?”


“아뇨,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죠.”


“…디자이너?”


버키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세상이 멸망했다고 했는데, 의류 디자이너가 살아있다니.


아니면…


“그 오드리라는 사람도 바이오로이드인 건가?”


“네. 저희 둘 빼고 이 배에 타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바이오로이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그랬지…저 사람과 나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배 안에는 자신과 사령관 빼고는 여성으로 보이는 로봇들, 특히 거의 전부 특정 부위가 큰 여성들 밖에 없었기에 버키는 의아함을 느끼던 참이었다.


가서 치수를 재 보자는 사령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사령관을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한편, 라비아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세요, 언니?”


한 콘스탄챠의 질문에, 라비아타는 생각에 잠겨 있다 깨어나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그냥, 별로 신경 쓸 만한 고민은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정말 깊은 고민이 있으신 것처럼 보였는 걸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자, 할 일이 있지 않니? 어서 가 보렴.”


자신에게 질문을 한 콘스탄챠를 내보내며,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 인간의 왼쪽 팔에 선명히 새겨진 붉은 별.


그녀는 그 표식을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창조주이자 아버지, 애덤 존스의 암살 기도가 있었던 그 날…


 

“애덤 님!”


휠체어에 앉은 채인 폐인이자, 바이오로이드의 최조 제작자인 애덤 존스는 블랙 리버가 보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강제로 끌려가고 있

었다.


당시에도 신체 능력이 강했던 라비아타였지만, 수도 없이 몰려오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제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였다.


꼼짝없이 애덤이 납치되는 꼴을 보아야만 하던 그녀의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창문의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애덤을 붙잡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 중 하나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어서 허공을 총알이 가르는 소리와 총성이 여러 번 들렸고, 애덤을 붙잡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내 전부 머리에 구멍이 서너 개

씩 뚫린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라비아타를 붙잡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전부 작전 실패를 외치며 도망쳤고, 라비아타는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바닥에 넘어진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애덤을 일으켜 세웠다.


그 때, 라비아타는 보았다.


1km도 넘는 거리에서, 저격소총의 스코프 너머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를.


그녀는 바이오로이드의 발달된 시각으로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의 금속 팔과, 그 금속 팔에 새겨진 선명한 붉은색 별.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녀는 총을 내리는 그를 향해 감사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이고 숙여 보였다.


그러자 그는 이내 옥상 지붕에서 사라져버렸고, 그것이 여태까지는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이였다.


처음 사령관실에서 그를 보았을 때, 라비아타는 그의 팔에 새겨진 붉은 별을 금세 알아보았다.


그녀는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그를 보내서 애덤을 구하고, 사령관을 납치하려 한 것인 것 궁금해했지만, 그녀는 때가 아닌 

것 같기에 속으로 질문을 삼켰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고 자신의 사정을 말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에게 질문할 것이 더욱 많아지기만 했다.


“…일단은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먼저겠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오, 새로운 분이 오셨다는 말은 들었는데…이렇게 몸매가 좋은 분이실 줄은 몰랐네요.”


뽠타스틱을 입에서 연발하며, 오드리는 바쁜 손놀림이로 버키의 치수를 재고 있었다.


“음, 음…좋아요, 다 됐어요. 이분의 옷은 최우선으로 만들 테니, 아마 내일쯤이면 한 벌 정도는 완성될 거에요. 그나저나…원하는 디자

인이라도 있으신가요?”


“글쎄…난 워낙 늙은 사람이라서 말이야.”


자신은 유행하는 옷 스타일 같은 건 모르니, 알아서 해달라며 버키는 말했다.


“알았어요, 자기. 최선을 다 해 볼게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서는 신난 발걸음으로 작업실로 들어가는 오드리를 바라보며, 버키는 사령관에게 물었다.


“다들 참 다양한 모습이네, 마치 사람 같이…”


“그녀들도 전부 로봇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생명체니까 말이죠.”


“…로봇이 아니라고?”


버키는 당황하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네.”


“…바이오-‘로이드’라고 하길래 로봇인 줄 알았는데.”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의 그런 반응에, 사령관은 문득 그가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해서 품고 있는 생각이 궁금했다.


버키가 다시 헐렁한 가운을 걸치는 사이, 사령관은 그에게 물었다.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이쁘다?”


“그런 생각 말고, 그냥…인격체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냥 사람같이 말하고, 사람같이 생각하고, 사람같이 울고, 웃는 걸 할 줄 하면 그게 기계든, 생명체든 상관없이 사람이나 다름없는 거

지. 안 그래?”


“그렇죠.”


사령관은 그가 멸망 전 대다수의 인류와는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내심 안심하며 대답했다.


“그나저나…아까 전에 쉬어도 된다고 말한 걸 보면 내 방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로 좀 데려다 줄 수 있나? 일단 씻고 싶어서 말이야.”


“아, 네. 금방 데려가 드릴게요.”


그리고 사령관은 버키를 데리고 그의 숙소가 될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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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투척.


요즘 후회물 많이 올라오던데 꿀잼이더라. 다들 글 나보다 잘 쓰네...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