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4 미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길고 새하얗고 차가운 손가락. 바이오로이드의 완벽한 육체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손가락이었다. 미호는 그 사실이 제법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을 바라보는 버릇은 최근 들어 생긴 것이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말려주지 않는다면, 미호는 숙소의 침대에 꼼짝 않고 앉아 몇 시간이고 자신의 손가락을 응시하곤 했다. 그렇게 하다 최종적으로는 그녀의 의지대로 손가락을 몇 번 까닥여보고는 곧장 쓰러지듯 잠드는 것이 ‘일상적인’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다.


버릇은 위화감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일상생활을 하거나, 심지어는 작전 도중에도 미호는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기묘하고 불쾌한 위화감. 그런 위화감이 그녀를 엄습할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그녀를 구성하고 있는 감각 모듈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정밀검진을 신청해보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히 적힌 검진결과표는 그녀의 몸이 이제 막 공장에서 출시된 것만큼이나 건강하다는 사실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알려줄 뿐이었다.


‘정상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네.’


미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미호는 검진결과표를 믿지 않았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숙소에 앉아 정신을 좀먹는 것 같은 기묘한 위화감과 싸우다, 편집증적인 강박으로 자신의 손가락만을 바라보며 안정을 되찾는 것을 ‘정상’이라 표현한다면, 그 정상이라는 것은 분명 우스운 개념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은 미호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아니, 어쩌면 이런 세상에선 그런 게 정상일지도 모르겠네.”


무너져 내려가는 우중충한 회색빛의 콘크리트 벽 사이로 보이는 삭막한 풍경을 보며 미호는 시니컬한 말투로 뇌까렸다. 창문 너머로는 그녀와 그녀의 팀이 파견되어 있는 지역, 평양시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빛을 잃은 회색빛의 도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폭격을 맞아 박살난 주택, 인간의 갈비뼈 마냥 무너져 내린 잔해 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는 철근들까지.


체제전복이후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러니까 통칭 북한은 파괴와 범죄가 들끓는, 그야말로 생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이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애타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싣고 내달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의 평양에서 그런 일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옥이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였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천박한 농담으로 여겨지는 세계. 블랙리버에서 파견된 바이오로이드로서 그녀의 임무는 이곳, 북한 평양지역 일대의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원칙은 그렇다는 뜻이다.


거듭되는 폭력의 나날 속에 미호의 마음속에서 최초에 품었던 헌신과 박애의 마음 따위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미호는 그저 그녀의 팀 이름의 모티프가 된 몽구스처럼 테러리스트들을 사냥할 뿐이었다. 그 모습만 떼어놓고 본다면 제법 목가적인 삶이라고 불러도 무방할만한 나날이었다.


“요! 여기는 핀토. 미호대원 응답하라.”


무전기로부터 흘러나오는 팀원의 목소리에 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유쾌한 기분이 된 미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뒤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여기는 미호. 무슨 일인가 핀토 대원.”


“여기는 핀토. 방금 통신으로 미호가 뭐라고 했잖아. 그걸 물어보려고 통신했다 오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미호는 자신이 통신을 시작할 때 따로 전원을 켜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작전지역에 도착한 뒤 전원을 꺼두는 걸 깜빡한 탓에 혼잣말이 팀의 통신채널에 전달된 모양이었다. 아예 편한 자세로 고쳐 앉은 미호는 건들건들한 자세로 말했다.


“아아 그거 말이야? 작전구역이 지저분해도 너어어어어무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오버. 그런 김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대청소를 좀 하려는데 누구 먼지털이 남은 거 있으면 좀 가져다달라 오버.”


한껏 실없는 소리는 늘어놓은 미호는 소리죽여 웃었다. 핀토라면 분명 그녀의 놀이에 장단을 맞춰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핀토는 그런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기는 핀토. 청소 좋지! 이왕 가져가는 김에 리본이랑 장미도 좀 가져갈까? 한 열 송이 정도 쯤 말이야. 청소가 끝나면 장식을 해야지.”


“여기는 미호. 이왕 가져오는 김에 초콜릿도 부탁한다. 이상 통신 끝!”


미호는 낄낄대며 다음에 이어질 무전을 기다렸다. 무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핀토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듯 잠시 후 핀토보다도 훨씬 더 활기찬 목소리가 무전기로부터 흘러나왔다.


“오! 뭐야 뭐야. 어디서 파티라도 여는 거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반응에 미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미호와 같은 몽구스 팀 소속의 바이오로이드 AS-12 스틸 드라코의 목소리였다. 미호는 정신없이 웃느라 살짝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어휴 늦었어 이 바보야. 이미 너만 빼고 다 시작했다고.”


“뭐어? 그럼 나만 빼놓고 맛있는 거 먹고 있는 거야? 다들 너무해! 우리는 일심동맹인 줄 알았는데!”


스틸 드라코의 억울하다는 목소리에 미호는 다시금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던 드라코가 무전의 ‘파티’라는 말만 듣고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미호는 굳이 정정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엔 무전기로부터 어쩐지 나른하게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쯤 해두지 미호.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드라코는 네 말을 진짜인 줄 안다니까.”


“아닌데. 장난 아니고 진짜로 우리끼리만 파티하고 있는데.”


“어휴……”


뚱한 목소리의 주인, 즉 몽구스 팀의 T-60 불가사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불가사리는 한숨만 내쉴 뿐 미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영리한 그녀는 구태여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체 누가 작전 중에 무전으로 잡담을 해도 된다고 했죠?”


차디찬 목소리에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어 버린 것 같았다. 작전관 홍련의 무전이었다. 홍련의 무전이 시작되자 지금껏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미호는 하얘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작전관님. 제가…….”


“그만,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미호 당신은 작전이 끝난 다음 내 방으로 오세요. 알겠나요?”


“…… 알겠습니다.”


미호는 잔뜩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 작전이 끝난 뒤 지루하고 긴 설교 시간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미호는 무전기에 대고 아주 작은 소리로 몇 번 툴툴댔지만 홍련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깨끗이 무시한 뒤 사무적인 어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번 작전 역시 평소의 작전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작전이었다. 지금껏 몇 번이나 반복해온 지침과 작전들이었다. 브리핑을 듣던 미호는 다음에 이어질 홍련의 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언제나 그렇듯 작전의 골자는 동일했다. 우선 핀토가 우월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작전 지역으로 날아가 테러리스트들을 교란한 뒤 건물 아래의 하수도에 위치한 불가사리가 진입을 위한 천공작업을 실시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그 즉시 스틸 드라코와 홍련이 진입하여 옥외의 핀토와 함께 테러리스트들을 앞뒤로 압박하며 궁지로 몰아넣으면 끝. 퍽 간단한 작전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이미 수십 번의 동일한 작전을 진행하면서 몽구스 팀은 아주 작은 피해조차 입지 않았던 것이다.


미호의 역할은 저격수로서 작전구역 전체를 감시하고, 위협요소가 나타나는 즉시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할에서 긴장감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완전히 붕괴된 북한의 무장조직이 우월한 신체능력의 바이오로이드로 구성된 몽구스 팀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만약 몽구스 팀의 문제가 있다면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거부감 뿐이겠지만, 그녀들에겐 그런 것조차 없었다. 몽구스 팀의 감정모듈은 기본적으로 한 번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인물들을 공격하는데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못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으로 접근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조준한 미호는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미호가 발사한 고무탄에 맞은 테러리스트는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테러리스트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한 미호는 무전기를 켰다.


“A포인트 27에 나타난 테러리스트 클리어. 감지되는 위협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감시 이어나가겠습니다.”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목소리로 보고를 마친 뒤 미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고가는 무전으로 미루어보아 작전은 언제나 그렇듯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살펴본 뒤 당분간 누군가 접근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을 내린 미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미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초겨울 바람에 노출되어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손가락은 마치 그녀의 신체가 아닌 것처럼만 느껴졌다. 얼굴에 와 닿는 싸늘한 느낌이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호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감싸 쥔 자신의 얼굴을 뜯어낼 것 같은 기세로 움켜쥐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그녀의 몸에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무언가를 뜯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 속을 짓누르는 답답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얼얼해진 얼굴의 피부와 힘을 주느라 뻐근해진 손가락뿐이었다. 얼굴에서 손을 뗀 미호는 침울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저 사람도 죽고 말겠지.”


‘대테러 장비를 사용하는 몽구스 팀은 테러진압에 있어 불필요한 사상자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녀를 만든 인간들이 몽구스 팀을 대중에 소개할 때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세계였지만,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 끈덕지게 남아있는 소위 ‘인권운동가’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내세운 정책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기업에서 보조금 같은 것을 더 받는다는 것 같기도 했다.


미호는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발사하는 고무탄의 위력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강하며, 반대로 인간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쉽게 죽는다. 그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진 결과 미호는, 몽구스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간들을 헤치고 있었다.


“…… 망할!”


감각 모듈의 설정 탓에 인간을 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짐까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호는 평양 시내의 거리에 넘쳐나는 꾀죄죄한 몰골을 한 어린아이들의 눈빛을 좀처럼 지워버릴 수 없었다.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하고 슬픈 눈빛. 그것은 분명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이만이 지을 수 있는 눈빛이었고,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절대로 지어선 안 되는 눈빛이기도 했다.


“여기는 핀토. 테러리스트 진압 및 인질구출 완료! 또 한 번 정의가 승리했다고.”


미호가 괴로워하는 사이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이번에도 늘 그렇듯 몽구스팀의 낙승이었다. 무전기 너머로 스틸 드라코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럼 정의는 항상 승리하는 법이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건선지낙이라는.”


“오 건선지낙! 그 말 좋은데? 근데 그게 무슨 뜻이야?”


“몰라! 근데 저번에 작전관님이 이렇게 말하시는 걸 들었어.”


방금 전까지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호는 피식 미소를 짓고 말았다. 요즘 홍련 작전관의 책들을 몰래 읽기 시작한 드라코는 그 부작용인지 부쩍 잘못된 격언을들 사용하곤 했다. 드라코는 잔뜩 신난 두 사람을 위해 무전기를 들어올렸다.

“거기 바보 두 명 발견. 건선지낙이 아니라 권선징악이겠지. 그리고 잡담하지 말라는 작전관님 말 그세 잊어버렸어? 지금 이거 작전관님도 듣고 계실 텐데.‘


“아 참 그랬었지.”


“으아아 어쩌지? 자, 작전관님 그러니까 이건…….”


미호의 지적에 드라코의 목소리에서 당황이 묻어나왔다. 미호는 잔뜩 당황하여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드라코의 모습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만. 미호의 말대로입니다. 드라코, 핀토. 우리는 이곳에 놀러온 것이 아닙니다.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똑바로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홍련의 매서운 질책에 두 바이오로이드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홍련은 그런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이 빠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인질확보 및 작전구역 확보 완료. 부상자가 있다면 신속히 보고하세요.”


“부상자 없습니다!” 몽구스팀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의 빈약한 화기로는 최첨단 기술로 중무장한 몽구스팀에게 피해를 입히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우렁찬 소리에 놀란 듯한 홍련은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다행이군요. 불가사리는 이미 복귀중인가요?”


“예, 현시간부로 복귀 완료했습니다. 현재 숙소에서 장구류 정비중입니다.”


“그런가요. 고생했습니다. 푹 쉬도록 하세요.”


“또 불가사리한테만 저러시네.”


미호는 무전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홍련은 언제나 이상하리만큼 불가사리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작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만 하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불가사리는 천공작업만을 완료한 뒤 추이를 지켜보다 추가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대로 숙소로 복귀하곤 했다. 


미호는 몇 번이나 그러한 사실에 대해 항의하려 했지만, 선뜻 의견을 내기는 힘들었다. 어쨌든 몽구스 팀의 작전결정권은 작전관인 홍련의 몫이었다. 일개 팀원에 불과한 그녀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전을 통해 몇 가지 간단한 보고를 마친 미호는 온 몸의 힘이 빠졌다. 몽구스 팀의 역할을 여기까지였다. 본격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고 현장을 수습하는 것은 인간인 현지 경찰관들의 일이다.


미호는 그때까진 제법 시간이 남아있으니 조금 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판단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아…… 저건 또 대체 뭐람.”


미호의 예리한 시야 한 구석에 작전구역을 향해 다가오는 물체가 포착되었다. 대단히 먼 거리에 무너진 잔해의 사이로 조심스레 이동하는 듯 아직까지 제대로 된 형태가 보이진 않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테러의 현장으로 곧장 다가오는 것을 보아하니 상대의 의도는 명확해보였다. 미호는 즉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저격태세를 취했다.


“여기는 미호. 1시 방향으로부터 거수자의 접근을 포착하여 감시중입니다.”


“확인했습니다. 신원을 특정할 수 있겠나요?”


미호는 스코프를 통해 거수자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는 곧장 현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에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처럼 보였다.


“예, 이쪽으로 곧장 다가오는 중이니 곧 확인 가능할거예요. 그러니까 거수자의 신원은…… 신원은…….”


자신만만하게 보고하던 미호는 말끝을 흐렸다. 홍련은 그런 미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미호, 무슨 일이죠? 확실하게 보고하세요.”


“아무래도 어린아이…… 인 것 같아요. 9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아이라고요? 그럼 민간인 아닌가요?”


미호는 홍련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로 민간인은 아니에요. 손에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할 법한 총기를 들고 있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호는 내키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소 같았더라면 무장한 적을 쏘는 일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상대는 무장했다고는 해도 어린아이였다. 군데군데 닳아 헤진 넝마 같은 옷을 입은 아이가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소총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악착같이 현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미호는 내심 홍련의 입에서 일단 상황을 주시하라는 지시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홍련의 말은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장을 한 채 작전구역에 침범한 이상 상대는 테러리스트일 뿐입니다. 즉시 제압하세요.”


“제압, 하라고요? 아니에요 작전관님 한 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그냥 어린 아이에요. 총을 들고 있긴 하지만 그냥 어린아이라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무장한 이상 상대는 어디까지나 테러리스트입니다. 제압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에요.”


“젠장! 그냥 어린아이라니까요! 작전관님이 직접 보지 않으셔서 그렇게 말하시는 거예요. 총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아이란 말이에요! 만약 직접 보신다면……”


“T-14 미호!”


모델명을 붙여 부르는 홍련의 목소리에 미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홍련의 목소리는 마치 그녀의 머릿속을 직접 휘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호가 그 생소한 느낌에 당황하는 사이 홍련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잘 보세요. 지금 걸어오는 게 정말로 어린아이가 맞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어린아이…… 어라?”


미호는 혼란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작전구역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총을 든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느덧 총을 든 어린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총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건장한 체격의 테러리스트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이가…… 아니잖아? 어떻게 이런…… 이럴 리가 없는데. 아까는 분명…… 윽!”


순간 날카로운 두통이 미호를 엄습했다. 밀려드는 고통에 미호는 눈가를 잔뜩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다가오는 물체를 관찰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가오던 테러리스트의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크게 일렁이더니, 다시금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작전관님…… 이상해요. 너무 이상해요. 사람의 모습이 자꾸만 바뀌어요.”


꾸준히 다가온 인간의 형체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만한 거리에 이르렀다. 미호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혹시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미호는 더 이상 자신의 감각을 신뢰할 수 없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이 정말로 어린아이일까? 혹시 지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미호의 마음속에서 온갖 가능성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명쾌한 것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가능성이 정답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T-14 미호.”


또 다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목소리였다. 홍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미호는 그대로 온 몸의 힘이 풀려버리는 것 같았다. 마치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의 끝에서 너무나도 달콤한 지시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목표를 제압하세요.”


정신을 차렸을 때 미호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너무나도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그 뒤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미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호는 그저 스코프를 통해 방금 전 그녀가 사격했던 현장을 계속해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가 발사한 총에 맞은 아이는 차디찬 흙먼지 위에 쓰러져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미호의 귓가에 여전히 냉정하고 침착한 홍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현 시간부로 작전을 종료하겠습니다.”


미호는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은 가증스럽게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듯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몸 위로 쏟아지는 따듯한 물을 따라 온 몸에 피가 도는 것 같았다. 미호는 따듯한 물을 틀어놓은 채 미끈한 욕조 위에 웅크려 앉았다. 벌써 삼십 분 째였다. 이런 식으로 온수를 낭비하다간 다음 달 보급 때까지 미지근한 물로 버텨야 할 지 모르지만 미호는 괘념치 않았다. 지금 미호에게는 온기를 전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간을 쐈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일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녀의 총에 맞은 것은, 비록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어린아이였다. 아무리 비살상용 탄이라 해도 그 정도로 어린 아이가 맞았으니 분명 그 아이는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어린아이였나?


미호는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손가락을 펼쳐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그녀의 손가락이었다. 그녀의 의지대로 잘 굽혀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호는 더 이상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망설이던 그녀가 홍련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대신해서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손가락이 정말로 내 손가락인가?


미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미호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정말이지 이상해 이상하다고!”


“으악! 깜짝이야.”


“뭐, 뭐야? 누구야?”


문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미호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밖의 목소리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던 미호는 그것이 핀토의 목소리임을 깨달았다.


“핀토? 혹시 핀토 너니?”


“그래 나야. 간 떨어질 뻔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샤워실에 들어간 지 벌써 삼십 분이나 지났다고 들었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핀토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미호는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그, 그래? 정말로 미안. 샤워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하하…… 아까 무전으로도 말했지만 오늘 내가 있었던 곳이 조금 많이 더러웠잖아. 그래서 특별히 깨끗하게 씻으려고…… 그러다보니 조금 오래 걸린 것 같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당연히 네가 걱정돼서 왔지. 무전으로 작전관님께 엄청 혼났질 않나, 작전 마지막에는 자꾸 이상한 소리도 하질 않나. 게다가 저녁밥까지 거르고 곧장 샤워실로 들어온 거잖아. 걱정 안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네.”


미호는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핀토에게 상담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핀토는 분명 좋은 친구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능력은 없다는 것을 미호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호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미호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허둥지둥 아무 말이나 꺼냈다.


“그것보다도 작전관님은 좀 어떠셔? 화 많이 나지 않으셨어?”


“말도 마. 안 그래도 너한테 오기 전에 드라코한테 들렀다 오는 중이야. 몰래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엄청 혼났다더라. 덕분에 지금 드라코는 작전관님이 내준 숙제를 푸느라 정신 없을 거야.”


“숙제라고? 무슨 숙제를 내주셨는데?”


“책 한 권을 그대로 베껴서 적으라고 하셨어. 그렇게 책이 읽고 싶으면 이 기회에 원 없이 읽어보라고 하셨다나. 아까 보니까 드라코 죽을 맛인 것 같던데.”


미호는 울상이 된 채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는 드라코의 모습을 어렵잖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미호 너한테는 별로 화 안 나신 것 같아. 드라코 말로는 오히려 작전관님이 너를 엄청 걱정하셨다고 하던데.”


“걱정이라…… 하긴 그러실 만도 하겠지. 아무리 작전 중이었어도 나한테 ‘그런 걸’ 쏘라고 명령하셨던 거니까.”


작전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려던 미호는 그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미호는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혹시 괜찮으면 나대신 작전관님께 전해주지 않을래? 나는 이제 괜찮다고. 아까 명령은 어쩔 수 없었던 거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이런 건 내가 직접 말하기는 좀 그래서 말이야.”


미호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며 어색한 태도로 말했다. 어쩐지 지금은 홍련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문 밖의 핀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에…… 알았어. 내가 확실하게 전달해줄게.”


“고마워 핀토. 역시 너 밖에 없다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미호 너랑 작전관님 말이야. 아까 작전 때부터 자꾸 이상한 말을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러니까 그런 거 있잖아. 마치 두 사람이 두 사람만 아는 이상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행동한다고 해야 할까…… 평소랑 다를 것도 없는 작전이었는데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핀토의 말에 미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평소랑 다를 것도 없는 작전이었다니?


미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호는 핀토를 잘 알고 있다. 핀토는 정의를 사랑하는 바이오로이드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껏 테러리스트를 ‘진압’ 하는 행위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그녀라도 어린아이의 경우는 예외였다. 핀토는 정의를 사랑하는 만큼 누구보다도 어린아이나 약자의 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핀토가 방금 전의 작전에 대해 평소랑 다를 것 없었다고 말할 리 있을까?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는 이제 그녀의 머리를 쿵쿵 울리는 불협화음으로 변해있었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미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핀토? 혹시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니? 그러니까 아까 작전에서 말이야.”


“미호 오늘 정말 이상하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런 말은 됐으니까 빨리! 지금은 쓸데없는 이야기 할 시간 없어!”


밀려드는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문 밖의 핀토는 진정하라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화 내지 마. 아까 작전 말이지? 그거야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아무런 일도 없었잖아. 평소처럼 내가 교란하고, 불가사리가 길을 뚫고, 드라코랑 작전관님이 진압하는 사이에 미호 네가 주변을 감시해주고. 그것 말고 뭐가 더 있었어?”


“내가 마지막에 저격한 테러리스트는! 그건 혹시 기억 나?”


“물론 기억하고말고. 미호 네가 아니었다면 그 테러리스트한테 우리 팀이 습격당할 뻔 했는걸. 미호 네가 훌륭한 솜씨로 빵! 해치워버렸지.”


미호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나?’ 미호는 애써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


“그 테러리스트 말이야.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


“응? 이상하다니 뭐가?”


“어린아이였잖아. 9살 정도 돼 보이는. 핀토가 보기엔 안 그랬어?”


“어린아이였다고?”


핀토의 반응에 미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핀토는 미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핀토는 애초에 미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내 핀토는 해맑게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리는 정의를 지키는 몽구스 팀이잖아. 어린아이를 쏘는 짓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걸.”


온수가 다 바닥나버린 듯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은 어느덧 미지근하게 변해있었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미호는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이 답변을 보고 구상해본 스토리입니다.


몽구스 팀은 아마 '직접적으로는' 민간인을 사살한 적 없었을 거라 가정하고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