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모세처럼 바이오로이드들의 구세주가 되고 그들을 낙원으로 인도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낙원 앞에서 죽는 걸 보고싶다.


철충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레모네이드 같은 바이오로이드를 탄압하는 자들을 숙청하고 별의 아이들마저 쓰러뜨린, 말 그대로 모든 적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령관이 보고싶다. 


이제 인류의 복원이라는 과제만 남게 되었는데 사령관이 원하는건 사실 그게 아니었던 거야. 사령관은 지난번 vr게임에서 멸망전 인류사회를 처음 접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역을 수복할 때마다 멸망전 인간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본거지.


사령관은 기록들을 볼 때마다 충격에 빠졌어. 자신과 함께하는 바이오로이드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이 도구취급을 받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했던 멸망 전 시대의 모습은 바이오로이드들을 가족, 연인 혹은 그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는 사령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었던거지.


사령관은 회의감에 빠지게 되. 과연 인류를 되살리는게 맞는 것일지 고민하는거지. 인류가 되살아난다면 이제까지 함께 싸워온 바이오로이드들은 다시금 그들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고 그들이 목숨바쳐 되찾은 세상은 다시 탐욕스런 인류의 지배하에 놓일테니까.


사령관은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았어. 잠든 자신을 깨워준 것도, 철충에 감염되어 죽어가던 몸을 새롭게 바꿔준 것도, 자신을 믿고 죽음마저 불사하고 싸워준 것도 모두 바이오로이드들이었어. 사령관은 결심을 하게 되. 새로운 세상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바치겠다고.


마지막 전투에서 사령관은 상처를 입게되. 적대 종족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보고싶다는 이유로 전선에 나서서 부상을 당한거지. 사령관은 전투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숨기고 지휘를 계속하고 결국 승리하지만 상처는 사령관의 몸을 서서히 갉아먹게 되는거지.


지구상의 모든 지역을 탈환하고 적대 종족들을 멸망시킨 사령관은 자신이 처음 눈을 뜬 시작의 폐허로 돌아가. 넒은 평원에 주저앉아 자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콘스탄챠에게 자신이 입은 상처를 보여주게 되. 치료를 받고 오래오래 살아달라고 울먹이는 콘스탄챠에게 사령관은 부탁을 하는거지.


새로운 세상은 싸워서 이긴 너희들의 것이다. 아름다운 너희들의 세상에서 살아달라고. 사령관은 만족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거지.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죽음을 알리려고 오르카호로 돌아가. 그곳에서 있는 수많은 자매들을 보며 한가지를 깨닫게 되. 섬겨야할 인간님도, 사랑하는 주인님도 없지만 자신과 같은 자매들이 거기에 있던거지.


사령관의 무덤은 시작의 폐허에 작게 만들어지는데 최후의 인류, 저항군의 총사령관이라는 살아생전 거창한 직함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수준이었지. 하지만 그 무덤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어.


매주마다 그 무덤엔 각계각층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찾아와 꽃을 바치고 가. 무덤에 꽃을 놓은 그녀들은 한동안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다 돌아가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