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분홍 머리칼을 땋은 소녀가 벽에 낸 구멍으로 누군가를 조준하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오케이!’

 

쾅.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자 굉음과 함께 방 전체가 크게 진동한다.

 

소리가 쏟아낸 총탄은 인질을 잡고 있던 남자의 왼쪽 눈을 관통해 그의 머리를 터뜨렸다. 

 

램파트가 피에 젖은 인질을 인도하는 것을 확인한 후, 미호는 무전을 날렸다.

 

“처치 완료. 저게 마지막이지? 확인 바람~.”

 

[스톤, 당소 루빅. 목표 전원 사살 및 포획 확인. 인질이 모두 이송되기 전까지는 경계 계속. 이상.]

 

“화장실 가고 싶은데... 시티가드 보고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좀 해줘...”

 

[스톤, 당소 루빅. 찰리 골프 명령권한은 당소측에 없다고 알림. 귀소는 무전수칙 준수할 것. 이상.] *주1)

 

“뭐야 홍씨. 오늘따라 왜 이리 딱딱해?”

 

[스톤, 당소 루빅. 빅터, 빅터.]

 

“핫, 아아... 확인.”

 

‘빅터(V.)’ 는 몽구스 팀끼리의 은어로 블랙리버에서 파견된 감찰관을 뜻한다. 

그리고 ‘빅터, 빅터(V.V.)’는 그가 작전상황을 보고 있다는 의미. 

 

‘젠장 감찰관이 왔다니...’

 

“오늘 일진 진짜 더럽게... 윽!” 

 

저답지 않게 거친 말을 뱉으려다 놀란 미호는 무전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다행이다. 큰일 날 뻔했네.”

 

감찰 중에 테러가 발생한다니 재수 옴 붙은 게 확실하다. 게다가 그 나태한 감찰관이 직접 와 있다는 것도 황당했다. 실전이다 이건가? 일단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듯하지만, 어디에서 꼬투리를 잡힐지 모른다.

 

 

“...그나저나 이번엔 또 누구한테 꽂히려나?”

 

‘평가기간 중 한 번도 가슴을 만져지지 않은 켈베로스는 없다.’ 이 자조적인 농담은 시티가드에서만 사실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서로 다르지만, 블랙리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

 

저번 정기 감찰 때가 기억났다. 

 

그때 온 감찰관은 홍련이나 불가사리가 아니고 드라코의 가슴을 주물렀었지.

 

언제나 멍청한 만큼 활달하던 그 애가 처음으로 누구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었다.

 

홍련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미소지은 채 보고를 이어나갔다.

 

드라코의 굳은 표정 너머로, 핀토의 입 안에서 ‘으득’ 소리가 났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불가사리는 앞만 보고 서 있었지. 나처럼. 

 

 

“...개새끼들.”

 

치안의 심장인 시티가드와 몽구스 팀에서, 정작 감찰관을 비롯한 고위직의 뇌물수수와 성추행은 자유로운 아이러니.

 

 

‘하지만 손 쓸 방법도 없죠. 그러니까 그냥 인내하세요.’

 

‘인내하라고?’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잖아요. 감찰관에게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

 

사실이다. 그들의 비행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조직 내에서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수감찰관. 바이오로이드 부서를 전문적으로 감찰하는 그들은 보통 50~60대 중후반의*주2) 블랙리버 고위 임원 중에서 선출된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정년이 되기 전에 내치겠지만, 블랙리버의 임원들은 일하는 동안 군과 깊은 연이 생기기 때문에 회사에서 그들을 함부로 내칠 수 없게 된다. 그들이 쌓아온 인맥이야말로 블랙리버 사업 확장의 원동력이었으니까. 

 

이 인간들이 인건비를 덜 먹으면서도 불만 없이 은퇴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가 바로 특수감찰관직이다. 일반적인 감찰관은 다른 부서라면 존재감이 크겠지만 현장직과 사무직이 전부 바이오로이드로 이루어진 부서는 명령에 대한 일탈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감찰관이 별 의미가 없다. 

 

즉, 특수감찰관 직책은 승진에 더이상 관심이 없는 고위 간부들이 최종적으로 맡는 한직이자 퇴직 전에 2~3년 하고 내려놓는 일종의 명예직인 것이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형식적인 보고서나 올라오면 돈을 쥐여줄 뿐 그 외에는 그들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덕에 그들은 이사급 권력을 가지고도 상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 자신이 회사의 관심 밖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겸사겸사 뇌물로 한몫 챙기기도 하고.

 

 

‘하지만 손 쓸 방법도 없죠. 그러니까 그냥 인내하세요.’

 

홍련이 언제나 강조하는 말이지. 인내.

 

바이오로이드에 불과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초에 그것뿐이다. 

 

참지 않으면 어쩌겠나, 뺨이라도 때릴까? 

 

만약 그랬다간 결함 판정을 받은 몽구스팀은 그날부로 끝이다.

 

아주 운이 좋으면 유예 기간 동안 재교육을 받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재소집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재소집은커녕 공공시설의 바이오로이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주3)

 

 

치직. 날선 전파 소리에 상념이 깨진다.

 

[스톤, 당소 루빅. 작전 종료. 작전 종료. 통제실 복귀 후 대기 바람. 이상.]

 

“핫! 어... 음. 확인.”

 

 

...난 뭐 하고 있는 거람

 

“그래...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미호는 머리를 흔들며 무서운 생각을 떨쳐버렸다.

 

“참자. 인내하면 되는 거야.”

 

내가 저격수로서 가장 자신있어하는 일이기도 하고.

 

벽에 낸 구멍을 휴대하던 소형 디카로 찍고 위치를 메모한 다음 총을 챙겼다.

 

‘읏. 나가기 전에 화장실이나 들렀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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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무전 방식은 예전 무전 경험을 살려 편한 대로 처리함. 

 

 

 

*주2) 이 당시의 인류는 평균수명이 105세였으며,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인간의 경우 더 길었다. 이에 따라 사회인의 경제활동 기간도 기존보다 상당히 늘어나게 된다.

 

 

 

*주3) 몽구스팀이나 시티가드 출신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본업에서 퇴역하여 공공시설로 가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대중에 고유 생산번호가 노출되어있으며, 완전히 동일한 모델이라도 이 생산번호를 통해 쉽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과 회사의 보호를 받는 대테러팀 또는 시티가드 경찰청 건물과 달리 아무나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공공기관에 이들이 복무하는 경우, 이미 무장과 전투회로를 제거당했을 이들은 어떤 보호수단도 없이 보복의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로, 퇴역한 미스 세이프티나 켈베로스 모델들은 폭행, 강간 및 살해 등 다양한 보복성 범죄의 대상이 된다. 이때 피해자의 50퍼센트 이상은 단지 가해자가 최초에 상정한 보복 대상과 같은 모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대상이 된다. 사전에 일련번호를 일일이 대조하는 계획범죄의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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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호~ 왔군요. 잘해줬어요.”

 

건물을 나와 지휘팀 임시막사로 가자, 홍련이 부드러운 미소로 반겼다. 

 

 

C-12홍련. 

 

붉은 눈, 깔끔하게 묶은 적갈색 올림머리. 미인이긴 하지만 얼굴에 침을 뱉어도 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저 완벽한 미소는 오히려 소름이 끼친다. 

 

“됐고 디카나 받아. 작업 땜에 벽에 구멍 뚫어놓은 거 찍어놨어. 견적 내야지.” 

 

“아~ 고마워요. 역시 일 하나는 똑 부러지네요? 우리 미호는.” 

 

“징그럽게 그렇게 칭찬하는 것 좀 그만해~ 존대하는 것도 소름끼치는데 입발린 소리까지 들으니까 속에서 뭐 올라올 것 같거든?”

 

“왜 그래요~ 아까 딱딱하게 굴어서 화났어요? 귀여워라.”

 

“말을 말아야지. 나 돌아가면 샤워하고 싶은데... 아, 안되겠네.”

 

 

홍련의 뒤쪽에서 나타난 남자의 표식이 미호의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온 감찰관이다. 양복을 잘 빼입었지만, 배가 좀 나왔다.

 

 

“반갑습니다, 감찰관님. T-14 미호, 배치번호 NY-15-001349입니다.”

 

“하하! 아무래도 저격수는 얼굴 보기 힘들군요. 아까 솜씨 훌륭하던데요? 역시 몽구스 팀 최고 역량의 저격수답네요.”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능하면 다음부터는 머리가 아니고 몸을 맞췄으면 좋겠어요. 머리가 터지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가면 좀... 살벌해 보이니까.”

 

“조심하겠습니다, 감찰관님.” 

 

“좋아요, 좋아. 믿고 있습니다. 아... 홍련? 다른 아이들은 어디에 있나요?”

 

“불가사리와 핀토는 이번에 구한 시민들과 함께 있고, 드라코는 파손된 장비를 정비 맡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민들이 우리 팀원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한 모양이에요.”

 

“그거 좋군요. 분명 회사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동의합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으음... 하지만 돌아가기 전에 이번에 활약한 팀원들한테 제대로 인사하고 싶었는데 좀 아쉽군요.”

 

“돌아가십니까? 혹시 다른 일정이 있으신가요 감찰관님?”

 

“뭐, 평가는 끝났으니까요. 돌아가서 이번 작전 평가를 미리 정리해두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저쪽은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저는 먼저 숙소로 돌아가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마찬가지로 복귀해서 대기하면 될까요?”

 

“예~ 그렇게 하세요. 나중에 봅시다.” 

 

 

+++

 

 

“안녕히 가십시오. 감찰관님.”

 

홍련은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막사에 앉아만 있었으면서. 돌아가면 분명히 퍼질러 잘걸?”

 

“입조심하세요.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겁니다. 저분이 간 덕에 우리도 여유가 생겼잖아요.”

 

어느새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온 홍련의 목소리에 미호가 살짝 몸을 떨었다. 

 

감정의 조각도 없는 표정과 목소리. 가면을 벗은 홍련의 본모습은 차고, 건조하다.

 

“아마 곧 호출이 있겠죠. 다른 아이들 좀 불러주세요. 정비 끝나는 대로 감찰 준비합시다.”

 

“알았어. 얘기해 둘게. 그리고...”

 

 

“뭐죠? 미호.”

 

“샤워할 시간은 있지?”

 

“...빨리 끝내세요.”

 

 

+++

 

 

쏴아아아... 따스한 물줄기가 미호의 나신을 데운다.

 

“하아~” 

 

얼굴이 풀어진 그녀가 행복한 한숨을 쉬고 만다. 

 

미호는 콘크리트 먼지와 화약 냄새를 씻어주는 이 샤워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자신의 몸에 부딪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빗소리같은 소음이, 그녀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을 어머니의 자장가와 같이 느껴진다. 

 

얼굴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고개를 저을 때마다 물이 사방으로 튄다. 따스한 물방울이 머리를 떠나며 열을 옮긴다. 미지근하게 식은 물이 상기된 목과 등을 지나 허리를 향한다. 

 

미호의 하얀 젖가슴과 허리 아래의 은밀한 계곡을 매만진 물결이 결을 따라 방울져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방아쇠를 당긴 직후의 기억이 몸에 결코 닿은 적 없을 피비린내와 함께 씻겨 나가는 듯한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

 

굳었던 심장이 이제야 다시 뛰는 것 같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따뜻한 물이 실감하게 해 준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가능하면 백지상태로. 미호는 얼굴을 비빌 때마다 상상하곤 한다.

 

 

“...”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듯, 기억도 결코 씻겨나가지 않는다. 그녀가 엮은 죽음은 이미 매듭까지 지어진 선명한 살인의 증거가 되어 묘지에서, 납골당에서, 시체와 뼛가루와 비석으로 영원히 남겠지.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다. 그것은 터져나갈 곳을 찾는 듯, 여기저기를 쿡쿡 쑤신다. 일상을 도저히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이 굴레에서 어서 해방되고 싶다.

 

 

“...”

 

 

샤워실 밖을 나가고 싶지 않다.

 

밖을 나가면 또 다른 임무가 기다리고, 또 사람을 쏴야 하고, 머리가 터져 뇌수에 젖은 눈알이 바닥을 구르는 걸 관찰해야 하고, 파손한 벽 사진을 찍고, 또 시말서를 제출하고, 훈련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미호~ 곧 감찰관 온대~ 빨리 나와~”

 

“...알았어.”

 

 

감찰관의 얼굴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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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https://arca.live/b/lastorigin/8930374

3화: https://arca.live/b/lastorigin/8930575



사령관님... 자유... 오르카 대회가... 시작했어요... 다들... 많이 참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