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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https://arca.live/b/lastorigin/8930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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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삐걱. 이질적인 소리가 미호의 머리를 울린다. 

 

‘여기가, 어디지...’

 

눈 앞이 깜빡거리는 전구처럼 점멸한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

 

‘이거... 내가 내는 소리인가?’

 

 

울렁거리는 시야 속에서 자신의 몸을 잡고 허리를 흔드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미호의 양 다리를 잡고 허리를 밀어올린다. 

 

“카악, 아악!”

 

내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다. 물소리가 창이 되어 속을 쑤시는 것 같다.

 

“허억, 후우... 일어났네? 도저히 네가 깨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시작했어.”

 

“아악, 하악, 하, 아윽...”

 

“어때? 효과 좋지? 수복실험*주4) 에서 이런 것도 만들어내는 거 보면 과학기술이라는게 확실 좋긴 좋아 안 그래?”

 

“으으윽... 으으...”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야. 아니면 하늘을 나는 건가.’

 

 

“내가 처음부터 이런 걸 즐기지는 않았어. 그러다가 친구 권유로 D엔터를 처음 가 봤거든?”

 

 

‘단맛이 나는데... 공기가 이런 맛이었나?’

 

“그런데 C구역에서 맛본 애가 아주 죽여주는 거 있지? 그때 만난 애는 B구역 애들이랑은 다르게 리미터가 터져있어서 말이야, 할퀴고 밀치고, 저항하는 맛이 장난 아니었거든. 직원이 미리 플리커*주5) 를 써 놔서 간신히 통제했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하겠더라고.”

 

 

‘바닥이 물렁물렁해. 소리가... 새파랗게...’

 

“커헉! 커억... 히익.”

 

“물론 처음에는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나대는 게 기분 나빴는데 말이야, 허억, 뭐랄까... 하다 보니까 진짜 인간을 강간하는 것 같아서 새로운 맛이 있달까? 생각해봐. 진짜 인간은 불법이라 안돼고,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하자니 반항을 안 하잖냐. 너 같은 특이결함품은 그런 점에서 갖고 놀기 재미있단 말이지.”

 

 

“벽이 녹아내린다. 노란색이야. 파란색인가? 스펀지같아.”

 

“하하하...”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것도 유니크하고 말이야! 그렇지? 응? 

 

“응... 흐흐...”

 

“대답해준 거야? 그래그래! 귀엽네! 날 만족시키면 빼돌려서 목숨은 면하게 해 줄게! 근데 왜 그때처럼 저항을 안 하지? 뭐가 잘못됐나?”

 

 

“...”

 

 

“아직 말도 못 하는 건가...? 이상하네.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서 일부러 약효가 느리게 올라오도록 준비했는데. 야! 좀 움직여 봐!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뭐 이리 약해 빠졌어?”

 

남자가 미호의 뺨을 때렸다.

 

 

“...”

 

 

“...야, 기절했냐? 왜 이래?”

 

당황한 남자가 미호를 흔들어 보지만 반응이 없다. 눈을 보니 동공이 크게 열려 있다. 눈 앞을 가렸다가 치워 봐도 빛에 수축되지도 않고 시선을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런 씨발, 이년 뒈졌나? 아니 진짜로? 아직 두 시간도 안 지났다고! ”

 

 

‘설마...’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가 콘돔을 하나 뜯어 손가락에 끼우고 바이오로이드의 입안에 쑤셔넣었다. 검지손가락으로 혀 아래를 더듬던 것도 잠시, 옅은 푸른 빛을 띄는 작은 종이조각 몇 장이 그의 손에 걸려나온다. 

 

“하, 이럴 줄 알았어! 겹쳐져 있었잖아!”

 

“...세 장? 이러니 안 뒈지고 배겨?”

 

색이 연한 것으로 보아 이미 전부 흡수되었을 것이다. 1회 투약의 아슬아슬한 한계치까지 농축한 플리커를 두 장도 아니고 세 장이나 썼으니 그 독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마음만 들떠서 급하게 준비한 탓에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두 시간도 즐기지 못했는데, 어렵게 구한 플리커를 세 장이나 낭비하다니. 

 

“씨발! 장난하냐? 내가 밑작업을 얼마나 들였는데!”

 

남자가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거푸 욕을 뱉는다. 하지만 그런다고 뒈진 바이오로이드는 살아나지 않는다. 

 

잠깐의 정적 후, 남자는 결국 스마트폰을 들었다.

 

 

“...”

 

 

“여보세요, 어 난데.”

 

“약좀 맥였더니 얘가 안움직이거든? 어. 죽었어. 그래, 그것 좀 준비해줘.” 

 

“...”

 

“아 알았다고, 미안해 새꺄. 일 잘 풀리면 니 아들내미 자리 하나 잘 봐줄게. 믿어봐.”

 

예정과는 좀 다르지만 괜찮다. 폐기를 시키나 따먹고 갈아치우나 그게 그거다. 솔직히 빼돌려서 몇 년이고 가지고 놀 생각이었지만 일이 너무 안 풀렸다. 자기 잘못이니 누굴 탓하랴.

 

온기가 빠져버린 바이오로이드 시체 따위에는 흥미를 잃었는지, 남자는 옷을 챙기며 일어났다. 한 시간 후, 몇 명의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와 바디백에 바이오로이드 시체를 쑤셔넣고 현장을 청소했다. 

 

많이 해본 듯 훌륭한 솜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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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바이오로이드 수복 연구를 의미. 

 

바이오로이드는 세포 내의 오리진더스트 덕분에 약물이나 독극물에 대한 저항력이 인간을 훨씬 상회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바이오로이드에게도 효과가 있는 약품에 대한 연구는, 처음에는 바이오로이드의 치료나 수복제 및 수복실 개발을 위한 연구를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수복제 개발이 끝난 이후부터는 군을 포함한 여러 단체와 회사 및 범죄조직에서 해당 연구를 활용하였고, 그 결과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한 다양한 독극물과 마약류가 개발되었다. 

 

 

 

*주5) 플리커(Flicker). 

 

LSD와 비슷한 화학구조를 가진 마약을 칭하는 은어. 복용 시 강력한 환각작용을 선사하고 오감을 폭주시키는 바이오로이드용 마약인 이것은, 다소 독성이나 의존성이 약한 LSD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독성 및 부작용을 선사하는 약물이다. 플리커는 인간에게 투약하면 극미량으로도 치명적인 효과를 보일 수 있어 인간에 대한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특유의 독성은 주요 사용 대상인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플리커라는 별명은 투약한 바이오로이드의 대부분이 빠르게 점멸하는 다채로운 빛깔의 원색 풍경을 경험하는 데서 유래했다. 이는 투약한 바이오로이드의 시신경이 손상되는 과정에서 색각 이상이 일어나고, 이와 동시에 환각이 발현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플리커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환각, 두통, 어지럼증, 멀미, 탈수, 동공산대, 호흡곤란 또는 빈호흡, 인지장애, 심인성 쇼크, 혼수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동공산대, 심인성 쇼크, 혼수 등의 증상이 식별된 경우는 높은 확률로 이미 뇌전증, 심장 마비, 영구적인 신경 손상, 뇌사 등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이때 적절한 응급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대상은 사망한다. 

 

작년 10월 말, 덴세츠 산하의 모 D-엔터 테마파크로 이 마약이 다량 유통된 사실이 확인되어 조사에 들어갔다. 우려와는 달리 이 마약이 인간 소비자에게 유통되거나 빼돌려지는 경우는 없었으며, 일부 관리자의 태업에 의해 사용신고가 누락되어 일어난 해프닝임이 드러났다. 사용신고를 누락한 관리자는 중징계 되었다. 

 

D-엔터에서는 회사 매출과 연관 깊은 중요 이벤트 중 무리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하였으며, 플리커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사회의 귀감이 되었다. 

 

 

 

+++

 

 

 

모르는 천장이다. 그냥 수복실인가?

 

“미호. 괜찮아?”

 

“엥. 나 왜 수복실에 있는 거야?” 

 

“와 진짜 기억 안 나나 본데?” 

 

“미호야 진짜 기억 안 나?” 불가사리와 핀토가 말했다.

 

“...어제 감찰관 만나러 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때 테스트에서 보안상 걸리는 게 있어서 가벼운 조정을 했대. 그때 단기기억이 약간 소실됐다나? 걱정했던 것만큼 큰 결함은 없었다던데.”

 

“기억이 날아가? 나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 어디 안 다치고 말도 잘하는 거 보면 괜찮은 거 아냐?”

 

“미호야 이거 몇 개야?” 드라코가 미호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다섯 개” 

 

“그럼 괜찮은가본데?”

 

“야 이 바보야! 그런걸로 괜찮은지 어떻게 알아?”

 

“아냐! 영화에서 봤어! 이거 제대로 셀 수 있으면 문제없는 거라고 했다고! 아... 잠깐 그럼 안돼는데...”

 

“응? 뭐가 안돼?”

 

“네가 하도 안 와서 아이스크림 내가 먹었거든.”

 

“야! 드라코!”

 

미호가 드라코의 볼을 잡아당긴다. 둘을 말리는 팀원들 덕에 수복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

 

 

수복실 입구에서 그것을 한참 지켜보던 홍련이 감찰관실을 찾아갔다. 

 

 

“홍련? 미호를 보러 간 줄 알았는데. 그새 정이 들어서 나를 배웅해주러 왔나?”

 

“...기억을 옮겼더군요. 비용이 많이 들었겠습니다?”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더군.”

 

“원본은 죽었나요?”

 

“그게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정확히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제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폐기대상이었어. 넌 지휘관 타입이라 알고 있잖아?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거라고. 임무 수행에는 아무 지장도 없을 거고, 저것들도 웬만해서는 위화감 못 느낄 테니까.”

 

“하지만 원본은! ...본사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렇게 처리하는 게 허락될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처리하신 겁니까? 본사에 연락해서 조사를 요청하겠습니다!”

 

“야. 이 씨발년아. 네 팀이 어지간히 소중한 것 같은데, 그렇게 소중하면 입 다물고 있는 게 더 좋을거다. 나도 이번엔 사비만 더럽게 깨지고 이득 본 게 하나도 없거든? 내 말 한마디면 너희 팀 지워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정석대로였으면 너희 팀에 쌩으로 결번 생기는 거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팀 해체였어. 염병할 바이오로이드새끼한테 내가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감사할 줄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난 내일 돌아가니까 아가리 꾹 닫고 있으라고. 혹시 몰라 말해두겠는데, 이건 명령이야.”

 

 

“...”

 

 

“이년 봐라? 대답 안 해?”

 

“...알겠습니다, 감찰관님.” 홍련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이를 가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것은 적어도 홍련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렇게 감찰관이 떠나고 2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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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급진적인 바이오로이드 반대파에 의한 인질극이 벌어졌다. 그들은 뉴욕에 위치한 블랙리버 빌딩에서 농성을 벌였으며,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이상, 방금 말한 조건에 포함되는 바이오로이드를 전량 폐기하고 바이오로이드 생산공장 가동을 즉각 중지하라! 블랙리버 본사에서 이에 응하는 연락이 없을 경우, 이 남자를 사살하고 나머지 인질들은 빌딩째로 무너뜨릴 것이다! 반복한다 우리는...”

 

“폭탄 해체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러고 있냐? 저 멍청한 새끼들.”

 

“몽구스 팀이랑 폭발물 제거반이 이미 아랫층 정리한 건 모르나봐. 아니면 녹화본인가?”

 

뉴스를 보고 있는 두 남자가 중얼거렸다. 각각 대테러팀 현장지휘관과 폭발물 처리반의 총책을 맡고 있지만, 사실 바이오로이드 지휘관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기고 있는 낙하산 인사이다. 

 

 

 

“근데 저 인간, 오늘 퇴임식 아니었나? 하필이면 퇴임식에 인질이 되다니 저 인간도 재수 옴 붙었네.”

 

“그런데 인질 주제에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니야?”

 

“회사를 믿는 거지. 아무래도 몽구스 팀이 가까운 빌딩에서 작전중이니까.”

 

“끼이익. 불쾌한 쇳소리가 그들의 신경을 긁는다. 두 남자는 짜증이 난 듯 소음의 주범인 홍련을 바라보다가 이내 무시하고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 빌딩 무너질 일도 없는데, 저거 굳이 살릴 필요가 있어? 어차피 은퇴하잖아.”

 

“내 말이. 비싼 건물은 지켰으니까 이제 괜찮은 것 같은데. 어차피 일할 인재야 썩어넘치고. 저 인간도 괜히 은퇴 후에 박쥐처럼 옮겨다니는 꼴 보느니 뒈져 주면 좋을텐데.”

 

“그렇지. 그래야 우리 비리도 묻힐 거 아니야? 저 새끼만 안 떠벌리면 우리도 마음 놓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저건 못 구한 셈 치자. 애들은 천천히 올려도 괜찮잖아?”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한 홍련이 말을 시작했다.

 

 

“지휘관님? 한시가 급한지라 바쁘신 와중에 괜찮으시면 지금 보고드리겠습니다. 현재 인질은 1층에서부터 올라간 저희 몽구스팀이 대부분을 구출한 상태이고, 예상대로 폭탄들은 대부분 기둥에서 발견했습니다. 확인된 인질은 총25명이며, 추정하건대 12층을 기준으로 각 층마다...”

 

“아 그만! 그만! 됐어. 나한테 보고하지 말고 알아서 처리해. 그리고 멍청한 년아. 굳이 직접 올 필요가 있어? 무전 때려!”

 

“죄송합니다, 지휘관님. 하지만 규정상 작전 중 주요 결정사항 변경은 직접...”

 

“아 몰라 귀찮아. 너 존나 똑똑하잖냐. 니가 알아서 해라. 책임은 내가 질게.”

 

“하지만 지휘관님, 규정상...”

 

“하, 규정! 규정! 씨발 말이 많아! 니가 전부 알아서 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작전에 대한 세부 작전 권한은 제가 넘겨받도록 하겠습니다. 지휘관님, 믿고 맡겨주셔서...”

 

 

쾅. 철문의 쇳소리가 그녀의 말을 잘라낸다.

 

“...감사드립니다. 정말로요.”

 

혼자만 남은 복도에서, 그녀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

 

 

 

블랙리버 소유의 빌딩. 24층의 다목적회의실에서 일순간 섬광이 일었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 싶더니 그곳을 지키고 있던 테러리스트들이 쓰러진다. 목이나 가슴에 얼음 스파이크가 박힌 시체들 너머로 홍련이 걸어 나왔다. 인질은 섬광 때문에 눈이 부셨는지 머리를 흔들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간신히 고개를 돌린다. 

 

“예상대로 한 명이군요.”

 

 

“야! 늦었잖... 어? 뭐야. 홍련 이년이 직접 왔네? 인력이 부족했나봐?”

 

“...”

 

“그래도 이제 살았네. 어휴...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 밧줄에 살이 배겨서 말이지. 그러니까 이것 좀... 응?”

 

홍련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귀를 막았다.

 

 

“...야, 너 뭐하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야 씨발년아. 뭐하냐고.”

 

이윽고 그녀는 귀를 막은 양손 중 한 손을 떼는가 싶더니, 

 

 

퍽 퍽 퍽. 손바닥으로 자신의 귀를 있는 힘껏 때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얼이 빠져있는 사이 그녀는 반대쪽 손을 들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퍽 퍽 퍽.

 

“야, 너 뭔 개짓... 당장 ■■■!”

 

목이 꺾일 만큼 강한 힘으로 귀를 때리는 명백한 자해행위. 그녀의 자해는 양쪽 귓구멍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 미■■■! ■■■ ■■는■■?”

 

감찰관이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고막이 파열된 홍련에게 그 소리는 거의 닿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감찰관님.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입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는 제게 어떤 명령을 내리시는지 원활하게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 ■...! ■ ■■■■, ■ ■■■■!”

 

“하지만 선처 부탁드려요. 저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답니다.”

 

“■■? ■■■■■, ■ ■■■?”

 

홍련이 감찰관에게 다가간다.

 

“...■■... 뭐■?”

 

 

“저는 감찰관님을 구출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건물 내부로 돌입하다가, 감찰관님 곁에 설치되어 있던 시한폭탄에 휘말릴 예정이거든요.” 

 

 

불행하게도 말이죠. 빙긋 웃으며, 그녀는 처음부터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남자의 곁에 내려놓았다. 

 

“■?”

 

“온몸에 화상을 입고 고막이 터진 상태로는, 아무리 저라도 작전 수행이 힘들답니다.” 

 

 

“...”

 

 

“■! ■■ ■■■■! ■ ■■■ ■■■■!” 

 

사태를 파악한 감찰관이 미친 듯 날뛰었다. 그러나 밧줄은 풀리지 않는다. 그녀는 폭탄을 재가동하고 타이머를 다시 확인한 뒤 만족스럽게 돌아섰다.

 

“■, ■■■? ■... 씨■■■! ■■■ ■■■ ■■■■!”

 

 

‘하나, 둘, 셋, 넷...’

 

 

“...■■■! ■■■■!”

 

“■■, ■■! ■■■! ■■■■■! ■■■... ■■■■!”

 

 

‘열 하나, 열 둘.’

 

“■■■! ■■■■! ■ ■■■■!”

 

 

“계산상으로는 이쯤에 서 있으면 적당하겠군요...”

 

사실은 이대로 같이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요.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돌아섰다.

 

“■■■...! 제■...! ■■■...!”

 

 

“그럼, 몽구스팀 작전지휘관 홍련이 팀을 대표해서 인사 올리겠습니다.” 

 

“■■! ■ ■■■...!”

 

“퇴임 축하드립니다. 감찰관님.”

 

그녀가 언제나처럼 정갈하게 미소지으며 고개 숙인 직후, 거대한 폭발이 그 미소와 남자의 비명을 삼켰다.

 

 

 

+++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발견하여 제거한 폭발물의 수는 30개로 폭발물의 수와 설치된 위치를 보았을 때, 테러리스트들은 빌딩 전체를 무너뜨릴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확인된 인질 25명 중 24명은 시티가드에 인계되었으며, 알려진 테러리스트 15명 중 8명은 체포, 7명은 저항 중 사살되었습니다. 몽구스 팀의 바이오로이드 C-12홍련이 현재 인질 수색 및 폭탄 해체 지휘중이며...

 

...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블랙리버 빌딩에서 폭발이 발생하였으며, 바이오로이드 C-12홍련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관계자들은 몽구스 팀이 폭탄 해체를 일부 실패하면서 일어난 폭발인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폭탄의 파괴력이 비교적 크지 않아서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인질로 억류되어 있던 A씨의 생사가 불분명한 가운데 발생한 이번 폭발은 수색 및 구조작업을...

 

 

 

+++

 

 

 

블랙리버 사설 수복실. 미호가 부상당한 여자에게 한참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왜 혼자 들어갔어? 평소에는 안 그러잖아!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거야?”

 

“미안해요, 미호...”

 

“이번 일로 인간 지휘관 자리도 전부 경질됐어. 마지막에 전권 위임받은 홍련도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아... 중징계가 떨어졌거든... 게다가 홍련 타입을 업그레이드한대... 77번팀이 새로 개발한다나? 다른 건 모르겠지만 개발이 끝나면 아마...”

 

C-12타입은 전부 폐기처분되겠지. 예상한 일이다.

 

 

“...그건 그때 가서 일이죠. 혹시 계속 옆자리를 지킨 거에요? 미안해요.”

 

“미안하긴 뭘 미안해~ 게다가 나 혼자 한 게 아니고 교대로 한 거야. 잠깐 기다려봐! 애들 불러올게.”

 

“아니에요. 전 피곤해서 눈 좀 붙일 테니까 다른 아이들... 팀원들한테도 좀 쉬라고 하세요. 다들 지쳤을텐데 괜히 저 때문에 못 쉬고 있으면 안됩니다.”

 

“응... 알겠어. 그렇게 전달할게. 그럼 푹 쉬어.” 미호는 그렇게 말하며 수복실을 나섰다.

 

 

“...”

 

 

그녀는 자신이 언제나 팀원들에게 하던 말을 떠올렸다.

 

‘인내하세요.’

 

겨우 한 번. 도저히 인내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인 결과가 이 꼴이다. 역시 자유의지란 그걸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듯하다. 바이오로이드가, 우리가 자유로워지려면 세상이 한번 망하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다시 눈을 감으며 홍련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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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