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의 사령관이자 바이오로이드들의 총사령관이자 마지막 남은 최후의 인류. 이런 거창한 이름은 바로 그의 것이다. 철충이라는 강적을 상대로 그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지휘하고 멸망 이전에도 있었던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와 함께 훌륭한 전략을 만들어내며 철충 기생 개체들을 파괴하고 섬멸하였다.


하지만 이러는 사이에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안타깝게도 사령관인 그는 평생 누군가를 다뤄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사람들의 위에 서기보단, 위에 선 사람의 아래에서 활동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그는 전략 전술에 대해서는 기본 중의 기본만 아는 자였다. 그러다보니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게 수시로 질타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사령관이라는 직책에 걸맞지 않게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사령관이다보니 이번까지의 전투의 전략은 사령관의 머리가 아닌 모두 지휘관 개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사실상 그의 공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모습을 수시로 보이다보니 그는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렸다.


스틸라인의 지휘관, 불굴의 마리는 이번까지의 전투에서 가장 많이 소모된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부하들이라는 점에서 사령관을 무척이나 증오하고 있었다. 물론 마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희생은 뒤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서도 가장 많이 희생된 바이오로이드들의 출신은 스탈 라인이었고 그 숫자도 어마어마하기에 과연 이것이 희생인지 아니면 무의미한 소모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둠 브링어의 지휘관, 멸망의 메이는 처음부터 그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며 그의 평범하게 짝이 없는 전술적 견해와 소극적인 움직임 때문에 사령관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음에서 완전 좋지 않음으로 바뀐지 오래고, 묘하게 자기를 포함한 둠 브링어를 멀리하는 지휘관의 태도 덕분에 이제는 사실상 증오한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 철혈의 레오나는 사령관이면서 지휘관인 자신보다 전술적 견해가 떨어지면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 채 소모전으로 전투를 흘러가게 하는 그의 지휘 자체를 의심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울리는 남성상이길 원했던 그녀는 오히려 자기가 바라는 남성상과는 멀리 떨어진 그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상태였다.


앵거 오브 호드의 지휘관, 신속의 칸은 앵거 오브 호드의 전투력이 자신 본인에게만 나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이다. 사령관 역시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앵거 오브 호드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적극 투입하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어디까지나 사령관인 그에게 복종해야하는 위치이니 그에게 불만을 표할 순 없었지만 그녀 역시 불만을 가득 품고 있었다.


호라이즌의 지휘관, 무적의 용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최고의 지휘관이니 만큼 사령관의 옆에서 그를 가장 많이 보좌해주고, 지원해준 자이다. 그래서 다른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 비하면 그에 대한 시선이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녀 역시 오르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지휘하기엔 그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AA캐노니어의 지휘관, 로열 아스널은 무적의 용과 함께 그에 대한 시선이 나쁘지 않은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였다. AA캐노니어의 화력으로 철충들을 쓸어버리는 것은 전장에서 너무나도 쉽게 목격되는 장면이었고 로열 아스널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게 해주는 사령관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 오르카 호를 지휘하는 사령관으로서 그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이다.


이렇게, 사령관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기고 있었고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바이오로이들 중 몇몇도 그를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물론 그를 반기며 여전히 호감을 표하는 바이오로이드도 있었다. 그러다가, 오르카 호를 전율에 빠뜨릴 하나의 커다란 정보가 들어왔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의 발키리가 사령관이 아닌 다른 인간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인간은, 여성이었다.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이 일은 크게 화제가 되었다. 최후의 인류는 사령관 혼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 더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여성이다.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은 이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사령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하였고 자신들과 사령관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자들만 이 인간 여성을 관찰해보았다.


인간 여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마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처럼 전술적 견해가 아주 뛰어났고 지휘관들이 찾지 못 했던 전술의 허점을 지적해서 보강하는 능력을 선보였고 자신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던 그와는 다르게 자신들과 대화를 아주 잘 나눠주었을 뿐만 아니라 브라우니나 레프리콘 같이 대량생산되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마저도 친절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를 무척이나 선호했고 사령관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한채로 그녀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면서 네스트를 파괴하였다. 네스트가 파괴되자 사령관에게는 커다란 벼락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제서야 지휘관들은 새로운 인간을 발견했다고 알렸고, 사령관보다 훨씬 더 전술적 견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저 소모되기만 했던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을 케어해주는 것 역시 그보다 훨씬 뛰어났고 무엇보다 모두 그녀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를 버리거나 내치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런 희생을 치루면서까지 철충들과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류 복원. 바로 그것 아닌가. 그런데 마침 인간 남성과 인간 여성이 있으니 어쩌면 인류 복원은 더 빨리 이뤄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즉, 그녀들은 대놓고 그를 종마로 만든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령관이었던 그는, 이제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저 인간 남성으로 전락하였다.



☆ ★ ☆ ★



"....."


지하에 구속복을 입고, 손목과 발목에 수갑이 채워진 남성이 축축한 습기가 가득하고 벽에 금이 갔을 뿐만 아니라 먼지가 가득하고 바닥에는 이불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서 앉아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 안은 정말 더럽고 낡았지만 문은 아직도 매끈한 철문이었다. 철문이 열리자 음식이 담겨진 접시 위를 은색 뚜껑으로 덮은 것이 3개 정도 담긴 카트를 끌고 어느 바이오로이드가 왔다. 그녀는 블랙 리리스, 컴패니언 시리즈의 맏언니인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는 조금 부은 눈과 힘 없는 걸음걸이로 카트를 끌고 와서는 그의 앞에 멈춰섰다.


"....식사시간이에요, 주인님."


블랙 리리스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 한다. 아니, 그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새로운 인간이 발견되고 그녀의 지휘력이 기존의 사령관보다 뛰어나자 인간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지휘관 개체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듯 그를 밀어버리고는 그녀를 세웠다. 당연히 이를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반대자가 1할이라면 찬성자는 9할....아무리 결사반대를 외쳐도 그의 도태는 정해진 것이었다. 리리스는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사령관과의 추억. 사령관과의 뜨거운 추억. 그가 아무리 도태되었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자 사랑이라는 점. 리리스는 방 구석진 곳에 빛이 들지 않는 곳에 있는 커다란 노란 천에 덮여져 있는 것을 슬쩍 보았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도 저걸 안 쓰셨구나....


하지만 그녀는 별 다르게 상관하지 않은 채 그의 앞에 접시 3개를 두고 모두 뚜껑을 열어서 안에 담긴 음식들을 보여주었다. 모두 보기만 해도 식욕을 돋구는 음식들이었다.


"소완 그년...이 아니라 주방장 소완이 만든 음식이에요. 맛은 보장되었답니다."


그녀는 인정하기 싫지만 소완이 만든 음식은 모두 극상의 맛을 자랑하였다. 그녀를 무척 싫어하는 리리스 본인이 먹어도 어쩜 이렇게 맛있게 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저 구석에서 떠오른다. 소완과 리리스는 그를 두고 다투고, 싸웠지만 그가 사령관에서 이런 낡은 방으로 추락한 뒤에는 다투는 일도 싸우는 일도 없어졌다. 그녀처럼 소완 역시 눈 아래가 퉁퉁 부어있었고 음식을 하다가 칼에 손가락이 베이기도 하는, 그녀답지 않은 실수도 자주 하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 따위 들어주기도 싫지만 소완은 항상 자신이 만든 음식이라는 걸 그에게 알려달라고 리리스에게 부탁까지 하였다. 리리스는 그녀의 부탁 따위 전부 무시하고 싶었지만 지금 오르카 호 내부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리리스는 소완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몇 안 되는 바이오로이드이다. 그래서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리제. 소완과 함께 그를 두고 다투던 그때가 갑자기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리리스는 소완처럼 리제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햇츙 햇츙거리는 혀 짧은 발음이 맘에 들지 않고 항상 주인님과 함께하려는 시간에 방해를 해대며 가위를 들이미는 스토커를 좋아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리제의 입에서는 그 햇츙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한 방향만을 바라봤는데 사령관이었던 그가 갇힌 곳의 방향만을 보고 있었다. 그 누가 건드려도, 심지어 여동생 다프네가 흔들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 인형이 되어버렸다. 항상 소리죽여 울고, 힘 없이 휘청휘청 걷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 오르카에서 어렵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랬던 리제도 방금 리리스에게 주인님이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해주었다. 리리스, 소완, 리제는 현재의 상황을 가장 슬퍼하는 바이오로이드였다. 싫어했음에도 마음은 똑같아서 리리스는 들어주었다.


"요즘은 좀 어떠신지요? 불편하신...점....은..."


이 무슨 말실수인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저런 꽉 조이는 구속복과 수갑이 채워진 부위에 멍이 들었는데 그게 어찌 불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아무런 내색도 안 하고 있었다. 그는 창문이 없음에도 마침 창문이 달려도 딱 알맞은 위치의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스는 아직 그가 사령관일 때를 기억했다. 그는 이렇게 갇히기 전에도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창 밖이라고 해봤자 바다 속이었지만 그는 그런 바다 속의 모습을 항상 보고 있음에도 항상 그 광경을 좋아했다. 리리스는 음식들을 보니 문득 그가 마지막 식사를 언제 했더라, 하고 스스로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는 최근 7일간 물 외엔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리면 소완의 눈물이 기억난다. 입 댄 자국 하나 없는 음식을 보면 소완은 울 것처럼 동요한다. 어제는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다. 포티아와 아우로라가 보고 있는 주방 안에서 소완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눈물을 더 흘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었다. 라이벌이자 경쟁자의 그런 모습이 리리스에게는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주인님, 최근에 뱃 속으로 음식이 들어간 날이 언제였는지요."


"...."


"...7일이였습니다.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인간은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공복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번 만큼은 꼭 먹어주세요."


다시 소완의 우는 모습을 본다면 자기도 덩달아 울어버릴 거 같아서 리리스는 이번 식사 만큼은 그가 꼭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의 손목 수갑을 풀어주었다. 그가 음식물을 뚫어져라 보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가 잡은 건 포크가 아닌 컵이었다. 컵 안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 컵을 내려놓고는 음식을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리리스가 방금 했던 말이 그의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소완의 음식을 썰었다. 그 역시 공복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는지 식사를 꽤나 빨리, 맛을 음미하지 않고 그저 배를 채운다는 느낌으로만 먹고 있었다. 그릇이 전부 비워졌고 리리스는 적어도 소완이 울진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식기를 전부 카트에 다시 올린 리리스는 흘깃, 하는 눈으로 천장 구석을 바라보았다. 저 작은 카메라로 지휘관 바이오로이드가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소리까지 듣진 못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리리스는 사람을 이렇게 가둬놓고는 감시까지 한다는 것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더 있다간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어떤 구박을 당할지 모르니 그녀는 나가려고 했으나


"리리스."


그가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바로 뒤를 돌아서 반응하였다. 그는 조금 뜸들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밤에 좀 배가 고플 것 같아. 원하는 메뉴가 있어."


"뭐죠?"


이리 가까이 오라는 손짓에 리리스는 카트에 손을 때고 그에게 다가가 귀를 가까이 대었다.


"토스트. 그리고....난 더 이상 이런 처우를 견딜 수 없어."


토스트 라는 말은 그래도 꽤 크게 말했지만 그 뒤의 말은 속삭이듯 말하였고 리리스는 그 말에 별 다른 대답은 못 해주었고 그저 조용히 듣기만 하였다. 그는 리리스에게 부탁했다.


"소완이 만든 음식인 척 하면서 나에게 교란파 생성기를 가지고 와줘."


"주인님, 설마...."


"밖으로 나갈 생각이야."


리리스는 그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커졌다. 다행히 리리스의 표정이 보일 감시 카메라 각도가 아니여서 이걸 보는 지휘관들은 과연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리리스는 그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말해주려고 했지만 이 이상 오래 있다간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게 확실한 의심을 사니까 바로 일어서서 카트 손잡이를 잡고 밖을 나갔다. 철문이 닫혔고 그는 문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벽을 바라보았다.



☆ ★ ☆ ★



리리스의 예상대로 지휘관들은 그녀를 불렀다. 레오나, 마리, 메이, 칸, 용, 아스널, 라비아타, 홍련. 그가 갇힌 방을 감시하는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이다. 그를 몰아내는 데에 가장 크게 찬성한 마리, 레오나, 칸, 메이와 중립을 지킨 용과 홍련, 거기에 반대한 라비아타와 아스널. 이후 사령관의 처신 관련 문제로 한 바탕 크게 다툰 후로는 그녀들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안 하고 있었다.


마리가 가장 먼저 물었다.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눴지?"


"....특별한 주제는 아닙니다."


"카메라를 통해 본 모습으론 그가 블랙 리리스 자네를 부른지는 꽤 드문 일이지. 최근 7일 동안 죽은 시체처럼 조용히 있는 그가 널 부른 건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역시 날카롭다. 만일 그 방 안에서의 대화가 모두 들렸다면 그는 물론이고 리리스마저도 위험하였다. 하지만 리리스는 마리를 향해, 그 누구를 향해서도 한 마디 할 생각 없었다. 리리스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채 한숨을 쉬며 자신이 말한 그 특별한 주제가 아닌 것을 말하였다.


"그가 야식을 먹고 싶다 하더군요. 토스트를 먹고 싶다 하였습니다."


"....하긴, 그는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까요."


리리스는 이럴 때 자신의 설명을 보충해주는 라비아타가 고마웠다. 라비아타는 사령관 축출을 반대한 바이오로이드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마리를 비롯한, 그를 축출하는데에 찬성한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불만과 반감을 품고 있었다. 무적의 용은 그 정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됐네. 수고했네, 블랙 리리스."


"잠깐."


그 때, 멸망의 메이가 입을 열어 모두의 주목을 집중시켰다. 메이는 리리스를 가리키며 의심하는 눈빛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로 그냥 토스트를 먹고 싶다, 고만 말한 거 맞아? 그런 거라면 그냥 말하는 걸로도 괜찮잖아. 왜 굳이 귓속말로 한 거지?"


"제가 그거까지 파악한 상태에서 보고해야한다는 명령은 없었기에."


"뭐가 어쩌고 어째?!"


메이가 버럭하며 리리스를 쏘아붙히자 무적의 용이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진정하시오, 메이. 토스트를 먹고 싶다는 말 자체에 아무런 의심거리는 없소. 흥분하지 마시오."


"너희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메이는 오히려 그런 무적의 용이 이상한듯 말했다. 모두가 메이를 바라보았고 메이는 카메라에 비친 그의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상하잖아! 7일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있기, 앉기, 일어서서 벽 보기, 잠자기 밖에 안 하던 저 녀석이 갑자기 블랙 리리스를 불러세웠잖아. 그것도 '토스트를 먹고 싶어' 라는 3초도 안 걸리는 말을 그리 오랫동안 하지? 분명히 뭔가 있다고."


리리스는 속으로 저 땅꼬마 라고 그녀를 헐뜯었다. 리리스는 제발 그의 탈출 계획이 들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리리스 본인도 그의 탈출을 돕지 말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지휘관들 특히 레오나, 마리, 메이에게 들킨다면 더더욱 엄중하게 감시되는 공간 아래에 놓일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가 꿈꾸는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메이가 아직까지도 흥분하고 있을 때, 레오나가 블랙 리리스를 불렀다.


"정말로, 그거 뿐?"


"네. 그거 뿐입니다."


"....그래, 좋아."


레오나가 리리스에게 빨리 가보라는 손짓을 마지막으로 리리스는 지휘관들이 모인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는 나가자마자 벽 뒤에 숨어서 지휘관들이 이후 나눈 대화를 들어보았다. 가장 먼저 메이가 아직 화가 다 가지 않은 목소리로 용을 불렀다.


"용, 너, 왜 블랙 리리스를 감싸주는 거지?"


"소관은 그런 행동은 한 적 없소. 허나, 방금 블랙 리리스를 향해 그런 반응을 보인 메이 귀관의 행동은 전혀 현명치 못 하다고 할 수 있겠소만."


"예감이 안 좋다고. 전부터 별 말도 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저 남자가 탈출을 계획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이건 메이의 말이 맞다."


마리가 메이에 찬성해주었다. 하지만 마리 역시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여러 바이오로이드가 파악한 바로 그에게 오르카 호를 탈출할 수 있는 전력은 어디에도 없지. 그를 축출하는데에 큰 불만을 품은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수가 적으니 그녀들도 무언가를 하기엔 어려울 거다."


"마리 너 마저?! 무언가 조치를 빨리 취해놓아야 한다고!"


"전 지금도 과하다 봅니다."


그 때, 라비아타가 말을 꺼냈다. 마리는 그 과하다는 뜻을 그녀에게 물었다.


"과하다니, 무슨 의미지?"


"당신들도 잘 알고 있다시피 저 역시 마리 당신이 말한 그를 축출하는데에 큰 불만을 품은 바이오로이드이고 반대하기까지 했죠. 저는 둘째쳐도 불만을 품은 바이오로이드들은 지금 이 상황을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자들의 숫자가 적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에 귀를 닫는 것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죠."


"흥, 그게 무슨 상관이야? 반대자들도 현재의 사령관이 훨씬 더 유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텐데. 라비아타, 너도 그 점에서는 따르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지금 과하다고 보는 제가 참고 있지 않나요."


라비아타가 살짝 독기를 품고 말하자 메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레오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불안하다면 이렇게 하자. 그를 감시할 공간은 저대로 두지만 감시하는 인원은 더 늘리는 거지. 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아이들이 추가로 감시한다면 되는 거겠지?"


철혈의 레오나의 의견은 모든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을 납득하게 만들었다. 메이도 그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라비아타도 그저 감시자들의 숫자만 늘리는 거라면 상관없었다. 감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지휘관들은 다음 주제의 대화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무적의 용이었다.


"그녀는 지금 어떻소?"


"아직 전 사령관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한 상태야."


가장 최근 동안 새로운 사령관인 그녀의 곁을 보좌한 레오나가 말해주었다.


"정말로 이래야겠소? 난 이 일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납득도 이해도 안 되는군...."


"아니, 차라리 이러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


지금까지 쭉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신속의 칸이 의견을 냈다.


"그는 며칠 전까지 사령관이었다가 저런 위치로 추락한 그에게 현실은 무척 뼈아픈 것일테니 차라리 완전히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새롭게 시작한다고? 리리스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더더욱 귀를 귀울여보았다. 칸은 말을 이었다.


"멸망 이전, 인류의 어느 비밀기관이 사용했던 기억소거제. 닥터가 완벽하게 구현했지. 이제 이를 그에게 투여할 자가 누군지 정해야한다."


리리스는 자신의 귀가 제발 잘못되었기를 바랬다. 기억소거제라니. 소완 그년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 하는데....하지만 닥터의 지능이라면 기억소거제를 구현시키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닐 것이다. 칸의 그 말에 홍련이 발언했다.


"그거라면 저희 몽구스 팀의 미호가 적당할 것 같군요."


"몽구스 팀은 중립 아닙니까."


마리가 그녀와 그녀의 몽구스 팀이 사령관 축출 때 중립을 지켰던 것을 떠올리며 우려를 표했지만 홍련은 오히려 지혜롭게 답하였다.


"전 사령관 축출에서 찬성을 던졌든 반대를 던졌든 간에 차라리 이런 일은 중립을 지켰던 저나 용 씨의 호라이즌이 적당하다고 봤습니다."


지휘관들은 차라리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던 그녀의 팀이 하는 것이 가장 낫고, 가장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메이, 마리, 칸, 레오나는 찬성했고 용과 라비아타, 아스널은 내키지 않았지만 축출된 후의 그의 마음과 심리를 고려해본다면 차라리....라는 생각으로 찬성했다. 물론 용과 라비아타와 아스널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일을 하겠다는 홍련도 눈을 아래로 깐 채로 그저 주먹만 꽉 쥐고 있었다. 리리스는 그제서야 다시 생각했다.


주인님의 탈출을, 돕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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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후회물과는 조금 다른 색을 입혀봄 그래봤자 똑같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