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무겁다. 몸이 무겁다? 


 - !!! . !!!! - 


가위에 눌렸나? .. 내가 자고 있었던가?

소리가 귓가를 두들기고 있다. 무슨 소리지?


- ㅌㅜㅇ ~ . 투 ㅇ . 퉁-퉁 ~ - 


이런 느낌은... 꼭 물 속에서 소리를 듣는 느낌. 내가 아주 싫어하는 느낌이다. 

가까운 곳에 포탄이 떨어져서 귀가 나가버렸을 때가 꼭 이렇지.

..포탄? ......포탄. -- 포탄 ! 

숨! 숨을 쉬어!! 숨을 쉬어야되 ! 숨 !!!!!


" 커헉 - 크허허헙 !!! 우웨엑 --- ! 커흡..흡 !! 흡!! 흡!!! 흐으읍 !!! 후- "


" !XXXX !! "


시각이 열렸다. 청명한 샛파란 하늘이 보인다.


철컥 - 텅! 텅! 터더덩 !!!!


" 사령관님 !! "


청각이 열렸다. 낯설지만 분명한 발포음이 들린다. 바로 앞에서 총이 발사되고 있다.


" 사령관님 !! 제발..! "


미각이 열렸다. 피 맛이 난다.

후각이 열렸다. 쇠와 화약. 입에서 올라오는 피의 냄새. ..잊고 싶은 전장의 냄새가 난다.

촉각이 열렸고, 아프다. 하지만 괜찮다. 고통은 어쨋든 아직 살아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다. 

머리가 틔였다. 나는 지금... 전장에 있다.

몸... 움직여진다.


" 후웁 !!.. 리리스? "


좋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내 앞에 있는 건 블랙 리리스. 내 2번째 생명줄.

지금 내 상황은? ...그래. 첫번째 저격을 쳐맞았다.


" 사령관님! 움직이실 수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제가 들어 움직이겠습니다. 어쨋든 당장 이곳을 벗어나셔야 합니다 ! "


다급한 목소리. 왜지? 하늘이 보인다는 건 화이트셸이 박살났다는 거지만, 당황스럽지는 않다.

자동차 범퍼가 일부러 적당히 구겨지면서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된 것 처럼, 충격을 흡수하면서 일부러 적절하게 깨져나가도록 설계했다고 충분히 설명을 들었으니까. 이정도는 작전의 상정 내였는데?


" 현재 목표 - 스토커의 전방을 막는 철충을 제외한 나머지 철충들이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이 위치를 향하고 있습니다 ! 몸을 피하셔야 해요! 윽 ..! "


텅 -! 텅 ! --- 텅 !! 

팅 -! 티팅 -!!


!! 도탄소리. 공격받고 있다. 퍼지..퍼지 버튼. 

내 총이... 있다. 후! 나간다!


" 내려간다 ! "


" ! 로자-아줄을 - "


" 안돼! 작전대로 아껴! "


화이트셸이 주저앉은 덕분에 기껏해야 1m 높이. 뛰쳐내려와 화이트셸을 엄폐로 삼는다.

..어라? 씹.. 일단 나중에. 


" 저게... 철충감염체.. "


인간이 억지로 쌓아올린 시멘트의 땅. - 탁 트인 저 넘어로 기분나쁜 국방색..아니, 진흙색깔에 뒤틀린 기계들이 진군해오고 있다.

유리하게 짜두었던 진형을 무너트리고 공격으로 꼴아박는다라... 

이놈.. 문제가 생겼구나?


" 사령관님. 피하셔야 합니다. 저 바다까지만 가면 ... "


? 뭔 말도안되는 소릴...초음속으로 날아오는 탄환 앞에서 도망? 그것도 수영으로?


" 차탄까진 작전대로 간다. 지원 올 수 있는 부대원이 있나? "


입술은 왜 깨물어? 무슨... 내가 가오 때문에 이러는가 싶나?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알고...확률이 높은쪽에 거는 것 뿐이다.


" 포위망을 무너트렸다는 이야기는 저놈들도 문제가 있다는거야. 

  스토커가 차탄으로 날 확실히 작살낼 확신이 있었으면 병력을 방어로 돌렸든가 놈이 몸을 숨기면서 교란용으로 움직였지 않을까?

  차탄을 쏠 자신이 없든지, 자신있던 초탄이 막혀서 차탄에 확신이 없어졌든지. 어느쪽이든 우리가 최대한 망설이게 해줘야 놈을 잡기가 쉬워지겠지. "


드르르르륵 - 고개를 내밀고 쏠 엄두는 안나지만, 마구 긁어내는 5.56mm 탄환이 내가 여기 있음을 놈에게 계속 전하는 알람이 되리라.


" 여기서 버틴다. 낚시바늘에 걸어둔 싱싱한 미끼처럼.. 잡을 수 있을 것 처럼. 그러니까 지원올 수 있는 부대는? "


" 공대지 능력이 부족한 스카이나이츠 부대원들과 예비대로 편성하신 비군용 바이오로이드. 인근에 있는 스틸라인 2개 분대 입니다. 

  스틸라인 분대들은 급파 중에 철충과 조우. 저희 동북 방향에서 교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


텅- ! 텅!텅! 철컥 - 


" 확인된 적들은 나이트 칙 뿐인가? 화력면에선 어떻지? "


쉬지않고 장전과 사격을 이어가면서도 오르카와의 통신으로 정보를 교차 확인한 리리스가 즉각 회답했다.


" 사전 정찰정보와 다르지 않게 대부분이 폴른 감염 계열이고, 소수의 램파트 감염체가 확인됩니다. 무장은 짐작대로 기본 하부의 기총외에는 대공사격용 추가 기총 및 발칸이 확인됩니다만, 대공사격용 총구를 지상으로 돌리려면 이동을 멈추고 직접 몸체를 앞으로 수그려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해당 자세를 취했을때는 기동력이 상실되고, 취약부인 후면의 에너지 셀이 상단부로 노출되는 부분을 전파 받았습니다. "


텅 !!  - 쿵..


" ..멈춰 서있는 표적지나 다름없게 되네요. "


리리스의 사격 방식이 바뀌었다. 여전히 빠르지만, 쉴새없이 쏘아대던 것과 달리 정조준을 한다는 느낌으로 사격간에 간격이 생겼는데, 도탄되는 총탄의 소리가 눈에 띄게 빠르게 줄어나갔다.

궁금함을 못참고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1~2발 정도를 하부의 주 기총에 발사하여 기능고장을 일으키면, 자연스럽게 대공용 추가무장이라도 사용하려고 멈춰서서 몸체를 앞으로 수그리는 나이트 칙. 

짧은 무방비의 순간에 머리? 꼭대기 위로 빼꼼히 드러나는 등쪽의 조그만 박스를 정확하게 맞춰내면 숙이던 자세 그대로 고꾸라져 기능정지.

뭐야 얘....혼자 다잡을 수 있는거 아니야?


" 사령관님. 등질 곳도 없는 이상, 측후면으로 들이치기 시작하면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


" 동북방면의 스틸라인 소대에게 연결해. " 


" ..네. "


<< 승리 ! 스틸라인 A-112, 113 분대 분대장 노움 병장입니다! 브라우니 334! 나가지마 !! ...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 >>


총성과 비명같은 목소리들이 뒤섞여 들린다. 전장이군. 절대 그립지 않던 알보병들의 전장이 저기 있다.


" 사령관으로부터 명령하달. 우선 임무목표를 수정한다. 작전 목표 - 돌파 및 합류에서 지연전으로 교체. 

이미 앞서나가버린 개체는 놔버려도 상관없다. 가능하다면 급조진지를 구축하고, 추가로 투입되는 적을 최대한 지연시켜라. 

섬멸이 아니라 '지연'이다. 적 개체의 침묵보다 하부 지대지 기총부 손상 및 기동력 상실을 우선시 할 것.

놈들은 나만 보고 일직선으로 돌진하고 있다. 그 점을 잘 노려서 정면으로 상대하지 말고, 최대한 길게 전투력을 유지할 것. 이해했다면 복명복창하라. "


<< 어.. 옛!! 복명복창! 작전목표 수정- 돌파 및 합류 에서 적의 추가병력의 지연전으로. 최대한 전투력을 유지할 것 ! >>


" 좋아. 무리하지말고, 최대한 발을 잡아 끌라는 거다. 그 정도면 충분해. 사령관 OUT. "


<< 승리 ! 레프리콘 상병 재배치 ! 작전 목표가 바뀌었 - >>


" 사령관님.. "


" 잘하는 걸 할 수 있는 만큼 시켜야 오래 버틴다. 저 병력으로 억지로 돌파시켜봐야 너덜너덜해진채로 쓸모없어질 뿐이야. 남은 예비대는 바로 이곳으로 배치가 가능하지? 오르카호가.. 저기쯤에 있으니까. "


<< 대기 중 입니다. 사령관님. >>


알렉산드라. 예비대의 지휘개체로 남겨놓길 잘했어.


" 지원병력 구성은 맡기겠어. 목표는 버티기. 고기방패를 던지라는게 아니니까 안된다 싶은 인원은 빼. 사기만 떨어진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부대원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근접전 부대원들은 동북쪽에 스틸라인 분대가 발을 짤라놓은 쪽으로 투입. 

  강화외골격 장비한 대원들은 램파드 방패든, 오르카 외벽 철판이든 엄폐할만한걸 챙겨서 오고... 음.. 나머지 배치는 맡기지. 내 머리론 여기까지야. "


<< 후후..아닙니다. 사령관님.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다 해버리시면 저희가 할 일이 없지 않겠어요? >>


알렉산드라...묘하게 기분이 들떠보이는데. 이 상황에? 왜지 ?


" 리리스는 지원병력이 오는대로 차탄 방어에 집중. ...믿고 맡기겠다. "


... 얘 귀는 또 왜 빨개져?


" 예! 사령관님 ! "


...... 뭐야. 이런 상황에 왜 기분이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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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리 타격대. 철저하게 발이 묶인 개체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세요. "


" 아이아이 맘 ! "


호쾌하게 대답한 레나 더 챔피언을 필두로 예비대로 대기 중이던 펙스 계열의 근접무기를 장비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먼저 출정에 나섰다.


" 이그니스, 엘븐..참가해줘서 고마워요 이터니티. 토미워커를 대동하여 사령관님께 갑니다. "


전용 외골격을 착용한 이그니스와 엘븐. 토미워커의 손에는 정말로 오르카호의 외벽에서 뜯어낸 두터운 철판이 들렸다.

그들 사이에 무표정하게 자리한 회색- 무지막지한 크기의 관과 살벌한 개틀링 건을 장비한 이터니티가 그들의 창이 되어 주리라.


" 나머지 인원들은 시선 끌기입니다.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은 무장은 가볍게. 보조 부스터 유닛과 더미 홀로그램을 최대한 동원합니다. 목적은 사령관님의 좌측면과 후방을 위협할 수 있는 경로의 철충들의 교란 입니다. 위험한 임무이지만... 부디. "


" 하! 이렇게 몰빵해서 가는데 그 정도도 못하면 하늘의 기사라는 이름이 울지. 걱정마 ! 가자 스카이나이츠 ! "


왠일로 의욕이 만만한 슬레이프니르를 선두로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이 날아올랐다. 무기는 정말 기총 한자루씩. 나머지는 무게는 그들을 더욱 빠르게 해줄 보조 부스터와 적들을 혼란캐 할 더미 홀로그램, 채프 등으로 가득채운 기사들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 남은 대원들은 사전에 조를 나눠준대로 준비하세요. 방어담당은 역장생성기든 방패든 준비한대로 최대한 방어적으로 무장했죠? 공격담당. 들려준 중기관총은 맞추라고 준게 아닙니다. 미리 약속한대로 교차해 가면서 탄막만 형성하도록 하세요. 지원담당은 미리 분출해둔 발포 콘트리트 수류탄은 챙겼나요? .. 좋아요. 가죠 ! 닥터. 오퍼레이터를 맡기겠습니다. "


" 조심들해 언니들 ! "


위험한 전장으로 동원되면서도 그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들의 승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 여기는 타격조 1팀. 스토커 개체를 목시로 확인했습니다. 목표는 차탄을 위한 충전 중! 즉시 교전에 돌입합니다. 2팀! 속도를 올려서 참전하세요. 칸 대장! 갑니다 !! >>


라비아타, 프리가, 앵거 오브 호드 의 대원들로 구성된 타격 1팀이 상정을 한참 웃도는 속도로 적의 심장을 뜯어내려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