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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시타가 월간 치바 사회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스미스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츠시타는 손에 퇴고를 마친 기사 초본이 들려있었다. 스미스가 혹시나 퇴고를 하기 전 버전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마츠시타는 사회부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자리가 아닌 스미스의 자리로 걸어갔다.

“혹시 처음에 보낸 메일 보셨나요?”

스미스는 컴퓨터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대충 화면을 본 마츠시타는 그 글이 자신이 쓴 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봤어. 지금도 보고 있고 말야. 마츠시타, 너말야, 요즘 꽤 gut가 강해졌는걸. 퇴고도 안한 초본을 나한테 보낼 줄이야. 내가 수정까지 전부 다 하라 이건가?”

“죄송합니다! 수정한 버전은 여기있습니다!”

마츠시타는 몸을 숙여 사과하며 들고온 수정본을 스미스에게 내밀었다.

“알고 있어. 메일로 하나 더 온거 못봤겠어? 그냥 조크야.”

스미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마츠시타를 골려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타야 그렇다 치지만 내용은 정말 잘 썼어. 마츠시타, 역시 널 믿길 잘했어.”

스미스의 말에 마츠시타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정말인가요? 네타가 없어서 그렇지, 네타만 있으면 좋은 기사를…”

“But.”

벗, 일본어로는 밧또. 반전매력이 있는 단어였다. 아니, 매력은 없었다. 그저 이야기의 반전을 불러오는 단어였다. 그 말을 들은 마츠시타는 괜히 와서 말을 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슬쩍 키리시마와 덴세츠를 끼워넣으려 하는 거 모를 줄 알았어? 이렇게 떡밥 풀어서 차기작이라도 쓰려고? 플래그야? 너 소설가야?”

스미스의 분석이 정확했다. 마츠시타는 취재중 발견한 덴세츠의 흔적을 빼놓지 않고 전부 기사에 적어놓았다. 스미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사건’의 배후에 덴세츠가 있음을 알게할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취재중에 덴세츠와 관련된 사건을 발견했습니다. 키리시마 중의원 역시 연관된 일이었고요.”

그리고 키리시마. ‘그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중 하나였다. 일련의 사건을 종결시킨 것은 키리시마 이치카 중의원의 바이오로이드 인권에 대한 기본법, 통칭 키리시마 법 덕분이었다. ‘그 사건’의 설명에 키리시마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맺을 수 없었다.

“그래, 그건 내가 배드한 거지. 아니,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 다른 거 취재하라고 던져준 사안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을 줄 말야. 그건 그렇다 쳐. 그런데 간첩선 사건이 뭐? 덴세츠가 배후에 있다고? 쿠로다! 정부 발표가 뭐랬지?”

스미스는 굳이 옆에 있는 기자에게 불었다.

“북조선에서 보낸 거라고 했죠. 부장님도 아시면…”

쿠로다는 스미스의 시선을 느끼고 말을 멈추었다.

“지금 정부 오피셜을 무시하고 음모론 시작하는 거야? 그래, 음모가 있을 수도 있지. 그런데 증거가 뭐야. 해변에서 덴세츠 사이언스의 시체를 발견했다? 이게 아무 반론도 없이 끝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덴세츠의 바이오로이드가 연간 몇대 생산인줄 알아? 그중 우연히 해변에 사체가 있을 수도 있지. 그리고 그 사체는 어디있어? 증거조차 남지 않았어. 덴세츠가 오히려 이쪽을 고소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마츠시타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왜 그 있지 않는가. 이런 부류 소설이나 영화에서 책임자가 주인공에게 다른 일을 하라며 던져준 일이 메인 사건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책임자가 사실은 도움을 주었다는 클리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스미스는 그저 마츠시타가 덴세츠와 키리시마를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사건’의 취재를 맡긴 것에 불과했다.

“이것만 빼면 좋은 기사야. 가서 그부분만 수정하고 와.”

“하지만…”

마츠시타는 확신하고 있었다. 조금만 단서를 더 찾는다면, 덴세츠의 비리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만 찾는다면 세상을 바꿀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But? 미국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 시발, 신포도는 처먹지 말라.”

그런 이야기는 미국에 없었다. 신포도 이야기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아니, 애초에 미국 이야기가 아닌 그리스 우화였다.

“어느 과수원에 포도밭이 있었어. 과수원 주인을 길을 가다가 한 포도의 맛을 보았어. 근데 그게 Fucking 신 거야. 포도가 달아야지, 쓰면 되겠어? 그래서 주인은 팻말을 붙였어. 이건 신포도니 먹지 마세요. 얼마 뒤에 여우가 그 길을 지나간 거야. 여우는 토끼나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그런데 옆에 과수원이 있어서 봤더니 팻말이 붙어있는 거야. 신포도니까 먹지 말라고. 여우는 말야, 굉장히 교활한 동물이야. 아니면 그 여우가 특별히 교활한 것일지도 모르지. 여우는 생각했어. 과연 정말로 저 포도가 실까? 하지만 내 눈에는 존나 달아보이는걸? 혹시 저 팻말은 먹을 생각을 못하게 하려고 주인이 거짓말은 한 거 아닐까? 실제로는 엄청 단 거 아닐까? 아니 그럴 거야. 여우는 바로 포도를 따먹었어. 그리고 말했지. 아씨, Fucking 시네. 시면 진짜로 시다고 써붙일 것이지. 라고. 이 말의 교훈을 알겠어?”

“신포도는 식초로 만들어 먹으라고요?”

마츠시타는 지기 싫다는 듯 말했다. 그녀는 스미스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았지만 그의 말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Fuckin’ 팻말에 적혀있으면 쳐읽으라고. 계속해서 말썽피우지 말고! 덴세츠, 키리시마는 앞으로 금지야! 한번 더 덴세츠나 키리시마 들고 오면 그날부로 월간 치바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마!”

스미스는 과격하게 들고 있던 마츠시타의 기사를 공중에 던졌다. 마츠시타는 그 광경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 긍정적인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는 누구나가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덴세츠는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츠시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말할 수 없게 눌려지고 있었다.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 열망이 마츠시타를 움직이게 했다. 수많은 일이 있었다. 그 일들은 마츠시타에게 원동력이 되었다. 마츠시타는 앞으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목에는 족쇄가 걸려있었다.

마츠시타는 기자실에서 뛰쳐나왔다. 월간 치바를 나섰다. 어디론가로 걸어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곳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울부짖을 곳을 찾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을 찾았다. 그런 곳이 있을까. 길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하늘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누군가는 마츠시타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마음껏 울 장소따윈 없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마츠시타는 애먼 벽에 주먹질을 했다.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마츠시타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대로 모든 것은 끝날 것이었다. 덴세츠는 성공할 것이었고 마츠시타는 이름없는 기자로 생을 다할 것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문 앞이었다. 마츠시타는 익숙한 문을 보았다.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토모를 웃는 얼굴로 바라볼 수 없었다. 문을 열지 못한 마츠시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마츠시타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마츠시타?”

토모의 목소리였다. 마츠시타가 고개를 돌리자 장바구니를 들고 있던 토모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 토모. 집에 있는 거 아니었어?”

“마츠시타, 술 너무 마신 거 아냐? 자기집 비밀번호도 까먹은 거야?”

토모는 한숨을 쉬며 마츠시타를 부축해주었다.

“토모, 그게 아니라…”

“다 큰 어른이 그러면 되나.”

토모는 마츠시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문을 연 토모는 마츠시타를 부축해 그녀를 소파에 앉게 해줬다.

“마츠시타, 조금만 기다려. 오늘은 내가 밥 해줄게. 해장에 좋은 걸로”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츠시타는 토모가 해준 밥을 먹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토모는 마츠시타의 말을 듣지 않고 냄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TV에서 봤는데 말야. 해장할 때는 쌀에 고추를 넣어서 밥을 지으래.”

당장에라도 토모를 말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밥에 고추라니. 상상도 하기 싫은 맛이 연상되는 음식이었다.

“대체 어느 방송을 본 거야.”

“마법소녀 모모.”

“뭐?”

말도 안되는 대답에 마츠시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농담이야.”

토모가 마츠시타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마츠시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거지? 또 덴세츠는 건들지 말란 소리 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거 쓰지 말라니까.”

“그런 말 한 적 없잖…”

“쉿.”

토모는 검지손가락으로 마츠시타의 입을 막았다.

“마츠시타, 세상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그걸로 끝난게 아냐. 그래. 마츠시타의 말대로 이제 세상은 나를 인간으로 부르지 않게 되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마츠시타가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진 않잖아. 나는 마츠시타를 좋아하고 마츠시타도 나를 소중히 여기잖아.”

토모의 말대로였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마츠시타는 바뀌지 않았다. 그저 바뀐 세상에 절망할 뿐이었다.

“그거면 된 거야. 마츠시타는 마츠시타로 있는다면 마츠시타는 언젠가 무언가는 해낼 거야. 그것이 기사든 저녁밥이든간에 말야.”

“토모…”

마츠시타는 천천히 토모의 팔에 얼굴을 기대었다. 살짝은 차가운 토모의 팔이었지만 그정도면 충분히 따듯했다.

“그러니까 마츠시타, 좋은 분위기는 그만두고 밥을 해줘.”

“그래… 뭐?”

토모가 뿌린 찬물에 마츠시타는 토모를 돌아보았다.

“마츠시타가 고추밥 먹고 싶다면야 나는 말리지 않을 거야. 싫으면 마츠시타가 저녁밥을 해야지.”

토모는 그렇게 말하며 마츠시타의 옆에 앉아 리모컨을 들었다.

“어떡할래?”

토모의 말에 마츠시타는 피식 웃었다.

“알았어. 대신 맛없다고 하기 없기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츠시타는 부엌으로 걸어가 토모가 사온 장바구니 내용물을 보았다. 토모는 원하는 것이 훤히 보이는 아이였다. 그녀가 사온 재료만 봐도 토모가 기대하고 있던 저녁밥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조금만 기다려. 곧 밥 해줄 테니까.”

눈물을 슥 닦아낸 마츠시타는 요리준비를 시작했다.

“마츠시타, 간 못맞춘거 눈물 탓하면 안되는 거다?”

토모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츠시타는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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