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곳은 출입국 관리소.


길게 늘어선 줄엔 다양한 종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가져온 짐을 체크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가져온 서류를 살피며 하나하나 도장을 내려찍는 붉은 머리칼의 소녀.


종이를 받친 테이블을 부술 기세로 찍어대는 그녀의 손놀림에 검사를 기다리는 이들은 애써 못본 척 근처를 두리번거리나 쿵쿵대며 울리는 소리에 연신 어깨를 떨고 만다.


“...다음!”


건네받은 서류를 읽기나 하는 걸까. 오히려 검사받는 이들의 표정이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진풍경이 일어난다.


“...이걸로 끝!! 너희들~ 어서 갈 길 가라고~!”


큰소리친 그녀는 의자에서 울리는 삐걱이는 소린 완전히 무시하고 양손을 크게 벌려 뒤쪽으로 뻗어버린다.


“건네받은 서류를 읽기나 하는 걸까...”


“으으~~!! 지루해~! 재미없어~~!!!”


기지개를 피며 새된 소리로 소리치는 소녀.


“건네받은 서류를 읽기나 하는 걸까...?”


“뭐야, 불만이 있으면 확실히 말하라고!”


홱 하고 일어선 소녀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지도 않은 채 입을 삐죽인다.


“건네받은 서류를 읽기나 하는 걸까... 요! 허구헌날 정찰 핑계로 놀러나가는 걸 막아놨더니 어린애도 아니고 뭡니까, 이게?!”


“그치만, 그치만, 그치만! 이런 거 하나도 재미없다고!”


몸부림치며 답하는 소녀의 말에 나이트앤젤은 미간을 짚으며 눈을 감는다. 저 꼬맹인 어째서 점점 퇴화하는 걸까.. 내 신세가 어쩌다 이 지경이..


“대장..! 저희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사령관님이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


“알어, 안다고! 그래서 내가 경계 차 주변을 둘러보고 다닌거라고~ 이런 건 너나 다른 녀석들이 하는 게 훨씬 효율이 좋잖아?! 난 어디까지나 최적의 결과를 위해..”


다시 시작된 메이의 칭얼거림에 화가 날 만도 하건만, 나이트앤젤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얼굴로 그녀의 말에 반박한다.


“최적의 효율을 위해 다이카가 갔으니 대장은 안심하고 작업에 전념해주세요. 대장의 그 특.출.난 능력이라면 실수 따위 없이 저나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일이 빨리 끝나겠죠?”


“....그렇긴 하지만, 그래! 그 녀석 행동이 좀 굼뜨잖아? 그러니 이 기회에 대장으로서 모범을 보인다면!”


“그렇다면 우선 서류작업이 서툰 절 위해 모범을 보여주시죠?”


높낮이 없는 나이트앤젤의 말에 볼을 한 움큼 부풀려 불만을 표하는 메이.


“재수없어. 재수없어. 재수없어. 어쩜 저렇게 재수없는 말만 골라서 할 수 있지? 저것도 아마 능력일거야. 분명 평평한 가슴마냥 생각하는 것도 평평..”


“허기질까 사 온 도넛이지만 하는 수 없죠. 나불대는 주둥이엔 물을 뿌려 조금 진정시킬 수 밖에.”


“먹을래!”


나이트앤젤의 손에 들린 종이 캐리어를 낚아챈 그녀는 어느새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 도넛을 베어 문다.


“그래, 이거야~ 일 끝나고 먹는 도넛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하아~ 대장의 경우엔 어느 때라도 맛있게 먹을 것 같지만 잔소린 여기까지 하죠. 그보다 연락 온 건 보셨어요?”


“연락? 음.. 아, 그래! 지금 막 보려던 참이었어~”


입꼬릴 씰룩인 나이트앤젤이 막 메이의 입에 들어가려는 도넛 조각을 빠르게 앗아간다.


“뭐 하는 거야~! 네 것도 확실히 남겨뒀다구!”


“제가 대장이나 지니야처럼 먹을 것에 환장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것보다 지금 당장 보세요! 얼른!”


“우이쒸~! 대장은 난데..”


투덜거리던 메이는 손가락에 남아있는 설탕을 입으로 빨아내며 단말기의 수신된 알림을 확인한다.


“어디보자.. 보고자 밴시, 주변에 멧돼지가 출몰할 수 있으니 안전에 신경써서.. 이건 아니고.. 보고자 실피드, 멸망 전의 번화가.. 를 발견했기에 조금 수색해 보겠음.. 이 녀석 감히 대장이 일하는데 농땡이를..!”


단말기의 패널을 빠르게 읽어가며 다시금 몸을 뒤로 눕힌다.


“알림, 아우로라 1호점에서 신메뉴 치즈 퐁듀 판매 개시.. 어머! 여긴 꼭..! 믿음으로 단결을.. 저희 코헤이 교에서 시작.. 엘젤 엔젤 아자젤.. 얘들은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안 읽은 메시지가 왜 그리 많아요?!”


“아, 조용히 좀 해봐! 평소엔 바빠서 다 못봤다구..!”


길게 한숨을 내쉬는 나이트앤젤을 애써 무시하곤 다시금 패널로 눈길을 돌리는 메이.


“오르카 호 사령관으로부터 둠 브링어 지휘관에게, 조만간 출입국 관리소를 지나 서쪽 경계.. 사령관?! 야 골판지 대령! 왜 이런 중요한 걸 지금에서야..?!”


펄쩍뛰며 고함치는 메이였지만 귀신의 형상을 한 나이트앤젤의 모습에 의자 위로 정좌하곤 고개를 푹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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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믿고 따라오시라구요~ 제가 대장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의기양양하게 턱을 올려 앞장서는 실피드의 모습에 메이와 나이트앤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그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꽁무니를 쫓고 만다.


“아! 저기, 저쪽의 블라우스는 어때? 내 머리색이랑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러네요. 사령관님이라면 대장의 제복밖에 볼 기회가 없었으니 이 기회에 색다른..”


메이의 말에 동의하는 나이트앤젤의 말은 갑자기 둘 사이로 끼어든 실피드로 인해 끝맺지 못한다.


“쯧쯧쯧~ 이런 이런~ 아직 한~참 멀었어요. 두 분 다!”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나이트앤젤이었지만 여기선 자칭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다.


“그런 하늘하늘한 옷은~ 이미 사령관님 입장에서야 다른 분들을 통해서 지겹도록 봐 왔다구요~? 그러니, 여기선 조금 더 과감하게..!”


회전하며 돌아선 그녀의 손에 들린 낡아빠진 잡지 한 권.


“손에 들린 게 뭐죠, 실피드?”


“후후, 얼마 전 탐사하다 발견했답니다? 여긴 무려 멸망 전 인간님들, 더욱 자세하겐 인간 남성분들이 마음에 드는 여성분에게 구애하기 위한 여러 비법들이 나와있다구요~?”


묘하게 자신만만한 그녀의 표정에 불안감을 느낀 나이트앤젤과 메이.


“그런 거라면.. 저한테도 관련 서적이 없진 않은데..”


“쯧쯧쯧~ 대령님도 은근 보는 눈이 없으시군요? 역시 평평한 가슴마냥 생각하시는 것도 평평..”


“...”


“..이 아니라. 여기 나온 내용은 말 그대로 함! 락! 이라구요?! 자~! 보세요!”


실피드가 들어올린 잡지의 안쪽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가 엉키며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 외설스런 그림들이 즐비하다. 이런 건 탈론 페더에게 부탁만 한다면..


“여기 나온 인간 남성분이 사용한 물건들을 제가 미리 입수했답니다?”


그러면서 준비해 온 가방의 내용물을 자랑스레 꺼내놓는다. 뭐야 이게?


“자, 이쪽은 전동 마사지기, 이건 보석이 달린 피어스~ 아, 요건 그냥 스티커에요. 하복부 쪽에 붙이기만 하면 되죠. 무려 야광이라구요~? 그리고 이건 피부에 지장을 주지 않는 목걸이형 초커. 또 필요할지 몰라 가져온 수갑이랑..”


“스토오옵~! 또 어디서 이상한 소릴 들은 건진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책임지고 태워버리겠어. 넌 메이 대장 따라가서 같이 옷 갈아입는 거나 도와”


“치.. 생각하는 것도 평평해 가지곤..”


머리부터 바닥에 내리꽂히기 시작하는 실피드를 내버려두고 메이는 번화가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부서진 곳이 많은데 정상적인 걸 구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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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건 꽤 괜찮을지도?”


번화가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구경에 한참인 메이의 손은 어느새 쓸어 담은 각종 옷가지와 구두들로 가득하다.


“이걸 다 입어보는 것도 일인데.. 조언을 좀 받아볼까?”


골똘히 생각하며 턱에 손을 댄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불러본다.


“이봐~ 주변에 있지? 나와서 감상평을 들려줄래?”


“..불렀나, 대장?”


눈을 동그랗게 뜬 레이스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온다. 내심 자신을 불러주길 기다린 걸까?


“네 생각은 어때? 여기서 나하고 어울리는 걸 찾을 수 있겠어?”


“..확인해보겠다.”


전신거울의 앞에서 가져온 옷가지를 자신의 가슴께에 대곤 이리저리 회전한다. 몇 분 뒤, 레이스가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표정 좀 풀어~ 그런 얼굴을 한 녀석은 어딘가의 골판지 대령 한 명으로 족하니까~”


“그, 난 이런 외적인 꾸밈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미, 미안하다. 대장.”


메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별달리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레이스는 우물쭈물하다 결심한 듯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그, 혹시 대장은.. 화장.. 에는 관심이 없나?”


“..화장?”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눈을 크게 뜬 메이에게 레이스는 손사래 친다.


“딱히 화장에 일가견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령관에겐 색다른 모습보단 되려 익숙한 모습을 보이되.. 외모에만 조금 신경 쓴다면..”


“익숙한 모습...”


레이스의 말을 되씹는 메이.


“아.. 아니,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대장이 가져온 이 옷들도..!”


“마음에 들어.”


“...응?”


메이는 좌측의 선반을 밟고 올라가 레이스와 눈높이를 맞춘 다음 힘차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역시 내 부대원이야! 그래, 괜히 급하게 꾸며봤자 호들갑 떠는 것 같지~ 네 말이 맞아!”


“어.. 응.. 그렇다면, 해결이군!”


“응! 해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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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대장? 긴장된 건 알겠는데 티는 내지 말자구요, 우리?”


“내, 내내내내가 언제 긴장을 했다고! 그, 그래..”


“아오..”


미간을 짚은 나이트앤젤은 같은 쪽의 손과 발이 동시에 올라가는 메이를 바라보며 양파를 좋아하는 어딘가의 병사들을 떠올린다.


“대, 장님~ 사령관님이.. 30분 뒤에.. 도착하실.. 거에요~”


“들으셨죠? 괜히 앞에서 어기적거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무게라도 잡고 있어요, 평소처럼. 사령관님을 안내하는 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메이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뻐그덕거리며 관리국의 안쪽으로 향한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나이트앤젤 역시 옷가지를 정리하며 시계를 확인한 그때.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엗?!”


엥? 왜 이렇게 빨리 오셨.. 다이카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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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네?”


“무슨 소리~ 난 언제나 그대로라고! 사령관이야말로 벌써 내 얼굴을 잊다니 좋은 배짱이야~?”


문틈으로 바라본 둘은 간만에 만난 사이답지 않게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도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모양.


“그래도.. 전시상태가 해제된 후에.. 제대로 잠자리를 가지셨으니.. 문제없지.. 않을까요..?”


“하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솔직히 그 시간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손자까지 볼 기간이었다구요! 그리고 또 혹시 모르죠. 한 번 하고 우쭐해져서 다시 또 그런..”


나이트앤젤의 말이 계속되려는 찰나, 관리국의 안쪽에서 진하게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의 광경을 응시하곤 조심스레 문을 닫는 둘.


“그것 봐요.. 우리 대장도.. 할 땐 한다구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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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말라.”


침대에서 일어난 사령관은 아직 채 식지 않은 매트리스의 온기를 그리워하다 자신의 옆에서 골골대며 잠에 빠진 메이를 내려다본다.


특별하다. 그랬기에 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의 거리감을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이리저리 어질러진 이불을 그녀의 어깨까지 끌어올리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일?”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그녀가 물어온다.


“아, 잠깐 물 좀..”


“건방져.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 나와 떨어지길 택한다고? 괘씸한 사령관에겐 벌을 줘야지~ 3초 내로 다시 와.”


“아니, 그건 무리지..”


쓴웃음을 짓는 사령관에게 메이는 그럼 어쩔 수 없지~ 라며 그런 사령관에게 손을 흔든다. 아직 어리둥절한 그에게 메이는.


“잘 부택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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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을 늘어지게 한 사령관은 다시 물통을 채워 돌아간다. 그런 그의 앞길엔 한쪽 벽면에 등을 기대어 자신에게 손짓하는 인영, 아니 나이트앤젤이 있었다.


“..즐거우셨나요, 사령관님~?”


“나이트앤젤? 이 시간에 무슨.. 잠이 안와?”


나이트앤젤은 조금은 피곤한 눈초리로 그런 사령관을 바라보다 자연스레 팔짱을 껴온다.


“아직 쌩쌩하시죠? 그렇다면 좀 어울려 줘요~ 저도 대장 못지않게.. 많은 걸 준비했으니까~”


“어, 그런데 난 메이가..”


“후훗, 그렇게 걱정되시면 자. 보세요?”


나이트앤젤이 방금 전까지 메이와의 밀회를 즐겼던 방의 문고릴 돌려보지만, 안쪽에서 잠긴 듯 시원스레 열리지 못하는 방문을 확인시킨다.


“..보셨죠? 우리 대장은 잠꾸러기라~ 자는 와중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지경이라구요~?”


“하하, 그렇지. 그러는 넌?”


“전 이래봬도 어른이랍니다? 누구 씨 덕분에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지만.. 슬슬 한계거든요~?”


화사하게 미소짓는 나이트앤젤과 함께 맞은편의 방으로 향하는 사령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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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외로 사령관 일행은 그 후로 이틀이나 메이 일행과 어울리며 못다한 담소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다가왔다.


“언제라도 연락해. 기다리고 있을게.”


“날 뭘로 보는 거야, 사령관? 하루하루 밀려오는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뭐, 그래도 생각나면 한번쯤은 해볼 수도 있으니까..”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젓는 메이를 사령관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런 그의 손길에 자연스레 얼굴이 빨개지는 메이.


“메이를 잘 부탁할게, 나이트앤젤.”


“언제나와 같은 제 역할이죠.”


“역시 믿음직스럽다니까~”


나머지 대원들과도 한번씩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별을 고한다.


이내 저 멀리 사라져가는 사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메이의 표정은 더 이상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도 아닌.. 의젓한 지휘관의 얼굴이었다.


“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갑자기 뭐야?”


뒷짐을 지며 다가오는 나이트앤젤에게 메이는 흠칫하며 묻는다.


“아무것도.. 혼잣말이에요.”


“재수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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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이 끝난 후의 일을 상상하며 써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