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마리와 나눈 대화에서 사령관은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지휘관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순순히, 오히려 과할 정도의 정보를 사령관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정보들로 인해, 사령관은 이곳의 상황과 시기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았음에도 쉽게 그것을 믿기는 힘들었다.


그녀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이곳은 자신들이 있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멸망 후의 세계라는 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있는 위치가 다른 해역도 아니고 예전에 SF 영화에서나 봤던 평행 세계의 안이라니, 농담이라도 질이 나빴다.


멸망 전 인간들의 역사와 철충으로 인한 인류 멸망은 같지만, 그 후에 벌어진 시기나 전개가 명백히 달랐다.

무엇보다 다른 점이라면, 다른 오르카호의 사령관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것.


분명 철충과의 대규모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자신과 다른 인물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그 가능성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머리가 더 복잡해질 게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짝 떠 본 대화에서 그가 생각했던 가능성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근데.. 너희의 사령관은 어떤 사람이었어?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알려줄 수 있을까?'


'.. 저희 오르카의 각하께서는..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그다지 사령관에 어울리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발견 당시에 기억을 잃으셨고, 그 탓에 저희를 이끄는 데에 미숙함이 있으셨죠.'


'그래? 그럼 성격은? 혹시 쓸데없이 군기 잡거나 하는 성격이었나?'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냥, 무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아마 두 분께서 만나셨다면 인간님께선 그 분을 꽤나 답답하게 여기셨을지도 모르지만요.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곳의 불굴의 마리 4호는 참, 부럽더군요.'


자신과 그가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라고 단정짓는 그녀의 말에 사령관은 우선 그에 대한 문제를 보류하기로 했다.

최측근이었을 터인 자의 말이니 믿을 만 하지 않은가 싶지만, 그녀가 했던 말 중 한 마디가 살짝 거슬려 그러지 못한 것이다.


사령관은 그 생각을 내색하지 않고 대화가 끝나자 그녀를 이곳에서 물렸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던 리리스는 문이 닫히자 사령관의 심란한 얼굴을 보고 걱정스레 그에게 물었다.


"주인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리리스가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 아니, 괜찮아. 조금 생각해질 게 많아져서 그래. 

근데, 리리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네, 주인님. 말씀하세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거슬렸다. 

그녀가 대화 도중 지나가듯이, 자신에게 한 그 말이.


"... 내가 우리 오르카 호의 마리가 4호라고.. 그녀들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




한편, 지휘관들은 대화가 끝날 때를 기다리며 사령관실 근처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감시라는 명목 하에 다른 오르카의 지휘관들도 그녀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지휘관 개체가 각자 하나씩 더 생기니 그곳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죽하면 사령관실로 놀러가려던 하치코와 펜리르가 알아서 중간에 유턴을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들만이 남은 채로 한 마디의 대화도 없이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던 그때, 기다리는 게 지루했던 메이가 한 마디 불평을 내뱉었다.


"쳇, 길게도 하네. 도대체 언제쯤 끝나는 거야?"


"불평 말아라 메이. 이곳에서의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겠나."


"까놓고 말해서 그 정보를 어떻게 다 믿어? 

중간에 거짓을 섞을 수도 있잖아."


"야, 듣자듣자 하니까 아까부터 진짜...! 뭐가 그리 못마땅해서 안달이야?

우리가 거짓말을 왜 해! 인간한테 해가 될 수 있는 거짓말은 못하는 거, 너도 알잖아!"


"글쎄? 우리야 그렇긴 한데.. 그쪽은 잘 모르겠네.

주인도 제대로 못 지킨 무능한 바이오로이드라면, 가능하지 않아?"


"너어...!!"


"그만둬라 메이. 어찌됐든 우린 구조를 받아 이곳에 있다.

신세를 지는 입장이니 만큼, 쓸데없는 난동을 부려선 안 돼."


"으으...! 설교하지 마! 나도 알거든?! 그치만 저 녀석이..!"


도중에 먼저 시비가 걸렸음에도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다른 오르카호의 메이는 억울한 듯 말을 흐렸다.

억울함과 화가 치밀어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녀의 모습은 제법 안타깝게 보였다.


이내 그것을 보다 못한 다른 오르카호의 아스널이 그녀들에게 호소했다.


"너희가 우릴 아니꼽게 보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이러한 처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희의 사령관이 우리를 이곳에 들인 이상 우린 손님이다. 후한 대접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시비는 걸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대접? 웃기는 소리! 그럼 너희들의 사령관을 제대로 지켰어야지.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한 멍청이들 주제에 살고는 싶었나 보지? 뻔뻔한 것들. 원래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것을 사령관의 자비로 거둬준 것만으로도 이미 과분하고도 넘쳐!"


"아, 그러셔? 야, 우리라고 뭐 이렇게 되고 싶었는 줄 알아?! 우리도 할 만큼 했어!

너희도 안심하지 않는 게 좋을걸? 막말로 저 사령관도 오늘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니까!"


"뭐라고?! 이게 말이면 다인 줄..!"


"그만들 하시오!"


""윽?!""


결국 두 메이의 말다툼이 점점 수위를 넘어서려하던 그 순간, 그녀들을 일갈하는 짧고 굵은 호통이 울려 퍼졌다.

그 자존심 강한 메이의 말을 단번에 끊어버릴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오르카 호 내에서도 흔치 않았기에 지휘관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또각또각 단정한 발소리를 내며 지휘관들에게 다가온 그녀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이게 무슨 짓이오. 지휘관이란 자들이 함 내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그것도 사령관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소?"


"... 흥, 잔소리는. 아직도 자기가 내 상관인 줄 안다니까.

왠 되먹지도 않은 게 덤비길래 받아준 것뿐이야."


"멸망의 메이. 이유가 뭔들, 소란을 피우는 그대의 행동은 옳지 않소.

이런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아마 사령관께서도 실망하시겠지. 그걸 바라는 거라면, 소관도 더 말리지 않겠소만."


"으...! 알았어! 알았다고! 조용히 있으면 되잖아!

그러니까 사령관한테는 알리지 마...!"


"좋소. 탁월한 결정이오."


그녀는 능숙하게 메이의 화를 잠재우며 사태를 진정시켰다.

아무리 그녀라 해도 사령관이 관련되어 있다면 약해지는 걸 잘 알고 있던 덕이었다.


반면 다른 오르카호의 메이는 그녀가 얌전해지는 모습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같은 메이이지만, 어쩐지 낯설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놀란 점은, 그녀를 진정시킨 바이오로이드의 정체였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단정한 하얀 제복과 긴 머리카락. 푸른색의 눈. 양 허리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4자루의 검.  

그 험난했던 멸망 전의 전장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어 무적이란 칭호를 얻은 블랙리버 최고의 바이오로이드이자, 자신을 포함한 블랙리버 모든 지휘관들의 총 지휘관.


무적의 용. 틀림없이 그녀였다. 그것을 알자마자 메이를 포함한 다른 오르카의 지휘관들은 일제히 긴장했다.

용은 그녀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유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한 것 같아 미안하오. 얼마 전, 좋지 못한 일이 있어 다들 예민해진 같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부디 이번 한 번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시오."


"... 뭐, 좋아. 그 무적의 용께서 이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이번 한 번은 넘어갈게."


"감사하오. 그대들의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소.  

요청한 물자는 이미 준비되었고, 미흡한 수리에 관한 부분도 우리 오르카의 엔지니어들이 도울 예정이오."


"음. 일단 고맙다는 말을 해두지. 

솔직히, 이렇게까지 호의를 받을 줄은 예상 못했으니 말이야."


"우리는 그저 사령관의 말을 따랐을 뿐이오. 감사 인사라면 그 분에게 해주시오.

그 분의 명에 따라 우린 그대들의 오르카호가 수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여기에 머물 것이오.

아마 며칠 정도 걸릴 예정인 것 같으니, 그때까지 잘 부탁드리외다."


"... 그럼 우리는 이만 우리 오르카호로 돌아가야겠네.

마리가 오면, 우리는 먼저 갔다고 전해줘."


"그리 하지."


이내 다른 오르카의 지휘관들은 성공적으로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오르카호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암묵적인 서로에 대한 눈싸움이 있었지만, 어찌저찌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마리가 용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단순히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지휘관들 모두 사령관실로 들어오라는 사령관의 명이 있으셨소.

아마 다른 오르카호의 마리와 대화가 모두 끝난 모양이더군. 라비아타 통령과 아르망 추기경도 곧 합류하기로 했소."


"라비아타 통령까지?"


".. 무언가 중요한 일이 생겼나 보네. 그것도 엄청."


"자세한 건, 가서 들어보면 알 테지."


이윽고, 용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사령관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도중,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다른 오르카의 마리를 발견하게 되자, 다른 지휘관들은 먼저 갔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런가.. 알겠다. 나도 돌아가서 오르카의 수복을 도와야겠군.

다시 한 번, 은혜에 감사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아니라, 각하께 감사드려라.

그 분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너희를 도와줄 이유따윈 없었을 테니."


"훗.. 그러도록 하지. 참, 좋은 사령관을 모시고 있더군.

같은 불굴의 마리로서, 부러울 정도다. 그래, 정말로."


"...?"


"그럼, 이만 실례하지."


그녀는 지원을 받아 나름 마음이 안정된 건지, 사령관을 칭찬하다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하곤 사라졌다.

마리는 그녀의 미소에서 묘한 찝찝함을 느꼈지만, 우선은 사령관실로 향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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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늘까지 달려버렸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난 이렇게 성실한 사람이 아닌데..

그래도 아마 내일은 쉴 것 같아. 아니면 며칠..? 잘 모르겠네.


쓰고 보니 남은 게 메이들이 성질부리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사실 말은 안해서 그렇지, 다른 지휘관들도 메이랑 똑같은 마음이야.

왜 그런지는 아마 다음화에 나올 거 같네.


노잼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