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지른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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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잡았슴다! 이것 좀 보십쇼!”


“그거 개구리 아니냐?”


“맞슴다! 개구리도 구우면 꽤 맛있지 말임다?”


“...”


주먹만 한 개구리를 잡은 케이크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소완 상대로 고작 개구리 구운 걸로 되겠냐고.

그런데 우리 중에 요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긴 한 건가? 나나 땃쥐는 즉석식품 아니면 남이 해준 요리만 먹었고, 지금 하는 꼬라지 보면 케이크 쟤도 글러먹은 것 같고.


“대장, 그냥 요리대회건 뭐건 안 하면 안 될까? 어차피 소완이 이길 텐데.”


“나도 그러고 싶다, 정말. 그런데 요리대회 참가 안 해도 식재료는 모아야 돼...”


“아! 저 좋은 생각이 났슴다! 그 약쟁이 아줌마를 담그면 되는 거 아님까?”


“아서라, 사령관님이 하지 말래. 다들 좆같아도 사내 단결활동이라 생각하고 참아보자고...”


그냥 신난 케이크를 제외한 우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단결활동’의 시발점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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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카에 합류한 우리는 따뜻한 물에, 안락한 침대, 그리고 안전한 환경까지, 길바닥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사치를 누렸다. 멸망 전으로 비교하자면 3성급 호텔쯤은 되려나.

 식재료가 부족한 건지 아니면 담당자가 없어서 그런 건지 삼시세끼 전투식량 아니면 참치만 나왔지만 콘스탄챠와 바닐라, 포티아 덕에 상당히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퇴근 후에 팀원들과 함께 평화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케이크! 빅 뉴스!”


노크도, 초인종도 없이 브라우니 2056이 우리 방으로 불쑥 들어왔다.


“여, 56이 어서오고. 무슨 일인데?”


“소완, 소완이 왔어! 삼안의 그 요리사 바이오로이드! 게다가 사령관님이 ‘그 발언’도 했다고!”


“‘그 발언’이라니?”


“소완을 보더니 입이 찢어지게 웃으면서 ‘내게 참치만 먹이는 바이오로이드들이게 질렸어.’ 라고 한 거야!”


쯧쯧, 그 소리는 다들 안 듣는 데서나 하지.

하지만 케이크에게 사령관의 철없는 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오오오...! 그럼 쩐식 말고 진짜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는 건가?”


“그렇지! 그렇지! 일단 계란후라이부터 해달라고 해야지~”


“난 쏘야! 쏘야도 같이 써주라!”


땃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앞으로 어떤 갈굼이 브라우니 2056을 덮치게 될지 기대됐다. 케이크야 내 담당이니까 뭐, 적당히 넘기면 되겠지.

그래, 그 때는 적당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고 했다. 실제로 식사의 질이 상당히 높아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 미친 요리사가 잠수함에 약을 풀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시작은 사령관이었다. 동공이 풀어지고, 거의 웅얼거리다시피 한 목소리로 ‘소완이 주는 차를 거부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내리고서는 소완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웅... 소완의 차를 마시면 머리가 멍해지는데...”


“...주인님의 명령이에요, 하치코.”


그렇게 컴패니언을 시작으로 수상함을 느낀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소완의 수상한 차를 마셨고, 그 때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모두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고, 매일같이 ‘조리 시간’이라는 이유로 불려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가르치는 건 좋은데, 더치걸이나 컴패니언처럼 요리랑 상관없는 인원들까지 업무를 내팽개치고 줄곧 요리만 하고 있으니... 게다가 그놈의 요리 때문에 매일 일주일 치의 식재료가 소모되는 바람에 쉬지도 못하고 탐색을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야간 탐색을 끝내고 사령관에게 보고하려던 때였다.


“닥쳐!”


“...소첩은 서운하옵니다. 주인께서 자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니...”


사령관실 안에서 사령관의 고함소리와 예의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자, 소완이 주사기에 찻잔의 차를 채우고는 곧바로 사령관의 목덜미에 꽂아 넣는 모습이 보였다. 움찔거리던 사령관은 이내 잠잠해지더니, 소완의 품에 몸을 기댔다.


“후후,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


나는 팀원들을 호출할 새도 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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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주방까지 쳐들어 온 건 좋았으나, 흔히들 생각하는 마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찬장도, 냉장고도 이름 모를 말린 풀떼기들로만 가득했다.

저 멀리서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시간이 없었다.

가스레인지를 켜 찾아낸 풀들을 전부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매캐한 연기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제대로 짚은 것 같다.


“...지금 뭐 하는 짓이옵니까?”


조리실로 들어온 소완의 표정은 말 그대로 얼음장이었다.


“헤, 헤, 헤. 네년의 약들을, 흐히히, 전부 태워버렸지, 헤헤헤...”


“감히... 주인께 드릴 지고의 쾌락을...!”


날아드는 소완의 주먹을 가뿐히 피하고 옆에 있는 식칼을 집어들었다.


“오오, 그래. 이렇게 된 김에 네년을 죽여버리고 오르카를 정상으로 되돌려야겠어!”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자초한 일이옵니다.”


소완 역시 식칼을 뽑아들고 자세를 잡았다.

목을 노리고 날아온 칼을 능숙하게 쳐낸 소완은 역으로 내 목을 노렸다. 그 검격을 살짝 물러나 피하고,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컥...”


자세가 무너진 틈을 타 다시 목을 찍으려고 했는데, 이걸 또 쳐내네?

요리사 주제에 꽤 하는데? 조금씩 생채기를 내 볼까?


“읏...!”


소완의 전완이 베이며 흰 조리복이 피로 물들었다. 헤, 요상한 데 노리니까 놀랐지?

다음은 반대편 팔. 목을 치는 척 하면서... 이렇게!


“아하! 그렇지! 정신 똑바로 안 차리지? 그따위로 해서 재료 손질이나 할 수 있겠어? 앙?!”


“지금... 소첩을 농락하는 것이옵니까...?”


“그래! 모가지 따기 전에 너랑 재미 좀 보련다!”


한껏 미간을 구기고 이를 앙다문 표정과는 다르게, 소완의 공격은 침착했다. 무작정 급소를 노리지 않고 차근차근 피해를 누적시키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나한텐 안 통하지만.

우리는 꽤 오랜 시간동안 합을 나눴고, 자신이 냈던 자잘한 상처가 나아있는 걸 알아챈 소완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뭐가 잘 안 되냐? 뭐가 잘 안 돼?”


“장난은... 적당히 하시지요...!”


식칼과 식칼이 부딪혀 불꽃과 쇳조각이 터져 나왔다. 서슬 퍼런 소완의 눈을 마주 노려보며 칼을 맞대고 힘싸움을 하던 그 때였다.


“멈추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소완과 내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컴패니언의 페로였다.


“주인님께서 두 분을 찾고 계십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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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완과 함께 함교로 들어서자 모두의 이목이 이쪽으로 쏠렸다.

아이 씨... 좀 딴 데 좀 보면 안 되나?


“주인님, 두 분을 데려왔습니다.”


“수고했어. 소완, 안타깝지만 널 구금해야겠어.”


사령관의 말에 소완은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취급을 받다니... 마치 제가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옵니다.”


“왜, 마약사범은 죄인 맞잖아? 멸망 전에도 그랬어.”


내 빈정거림에도 소완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소첩은 이 한 몸 바쳐 모실 분을 찾아왔사옵니다. 그런 저를 주인께서는 진심으로 반겨 주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소완의 말에 사령관이 흠칫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이 애매한 게...”


“아니오, 정확하게 해드리겠사옵니다. ‘내게 참치만 먹이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질렸어. 어서와, 소완.’ 이라고 하셨사옵니다.”


저런, 이래서 높으신 분들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니까?

모두의 이목이 사령관에게 주목되자, 사령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소첩은 주인의 영양 상태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선사해 드렸사옵니다. 그런 소첩을 이렇게 취급하시다니요.”


“어...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


사령관은 할 말이 없었는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 방식은 옳지 못해!”


아, 젠장. 말이 길어지잖아. 빨리 가둬버리고 끝내지.


“모두들 제 음식을 극찬했사옵니다. 저와 같은 요리실력을 갖고 싶다고 한 건 당신들이 아니었는지요.”


당신만 빼고. 마지막엔 날 흘겨보며 쏘아붙이는 소완에게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뭐야, 다들 원해서 한 거였어?


“소완, 넌 틀렸어! 지금부터...!”


사령관의 결의에 찬 한 마디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좋아, 빨리 이 약쟁이를 해치워버리고 정상으로 돌아가자고.


“오르카 요리 대회를 시작한다!”


뭐?


뭘 시작해?


어이가 없는 건 나뿐만이 아닌 건지, 함교가 침묵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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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령관의 기행으로 사건이 일단락되고, 왜 그랬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소완의 음식을 집어던졌을 때, 소완의 그 슬픈 얼굴이 떠올랐어. 그래서 그런 거야.”


왠지 모르게 애덤 박사가 떠오르는 사령관의 결정에 이 ‘사내 단결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케이크는 여전히 식재료라고 부르기에 상당히 하자가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대장! 대장! 이것 좀 보십쇼!”


“또 뭔데?”


“굼벵이임다! 이놈을 바싹 잘 구우면 그렇게 맛있지 말임다!”


후... 안되겠다. 식재료는 주변 정착지에서 사던지 해야지.


“됐다. 채집은 그만하고, 저기 있는 마을로 가서 뭐 있나 보자고.”


참치캔은 다른 식재료에 비해 보존기간이 높아 가치가 있을 테니 괜찮은 식재료들과 교환이 가능하겠지... 물론 물물교환을 해 줄 때의 이야기겠지만.


“케이크! 그걸 또 왜 먹는 거야?”


땃쥐의 비명에 고개를 돌려보니 케이크가 굼벵이 하나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음, 굼벵이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지 말임다. 드셔보시겠슴까?”


“웩, 아니...”


광산과 테마파크에서 살아남은 땃쥐에게도 그건 좀 아니었나보다.


“케이크, 사령관님은 생존식 싫어할걸. 참치요리도 며칠 만에 질색하는 거 보면 모르겠냐.”


“에이, 생존식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게 진짜 맛도리 아님까?”


“너는... 아니다. 그러면 한번 해봐.”


“흐흐흐, 기대하셔도 좋슴다! 다들 놀라실 검다!”


흉악한 비주얼에, 그리고 그에 걸맞는 끔찍한 맛에 놀라겠지.

비닐봉투에 굼벵이들을 한가득 채워 넣는 케이크를 보며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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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인근 바이오로이드 공동체에 도착했다. 아마도 오늘 내로는 오르카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사령관님, 케인입니다. 들리십니까?”


‘응, 잘 들려. 무슨 일이야?’


“복귀가 지연될 것 같습니다. 예상 복귀시간은 내일 1500입니다.”


‘알겠어, 특이사항 있을까?’


“송신한 좌표의 바이오로이드 정착지에서 하루 동안 머물 예정입니다.”


‘우리가 도와줬던 곳이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상.”


무전을 마치자 케이크가 조심스레 물었다.


“뭐라심까?”


“몸조심하랜다.”


“다행임다! 징계라도 때릴 줄 알았지 말임다.”


“겨우 그것 가지고?”


“힝, 미군에 있을 때는 그랬슴다.”


아, 맞다. 얘 군인이었지. 계속 잊어버린다니까.


“야영은 어디서 할까, 대장? 저기 괜찮아 보이는데.”


땃쥐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를 가르켰다.


“아니, 마을에 들어가서 방을 빌리자. 그게 안 되면 폐건물이라도 찾아보자고.”


“괜찮을까? 우릴 그렇게 반기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여차하면 오르카 소속이라고 밝히면 되지. 여기가 저항군한테 도움 좀 받았다던데.”


지금까지 우리가 머물렀던 공동체들은 고작 떠돌이였던 우리에게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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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죄송합니다. 방은 못 내드릴 것 같네요.”


아, 젠장.


“예상은 했지만... 길바닥에서 자야겠네.”


땃쥐는 쓰게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대장, 일단 저녁이나 먹을까? 저기에 분식집 하나 있던데.”


“그래, 그러자.”


땃쥐가 가리킨 건물로 향하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낡았지만 잘 관리된 간판에는 ‘분식집’ 이라고만 적혀 있었고, 유리창으로 붉은 머리를 한 누군가가 요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실드 오브 케인의 작전관이자 내 아내였던 11번 홍련. 그녀가 서 있었다.


“어서오... 어머...”


홍련의 흉 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오랜...만이네요.”


“...그래. 오랜만이지.”


계산대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말을 잃었다.

분식집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케이크는 둥그렇게 뜬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봤고, 땃쥐는 뭐라도 말해보라는 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먼저 침묵을 깬 건 홍련이었다.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


또다시 침묵이 이어지자, 케이크가 못 참겠다는 내뱉었다.


“에! 그! 저기! 스팸 라면 하나 부탁함다! 어흐, 날씨가 아직 쌀쌀하네.”


“저는 참치마요 김밥 하나요.”


땃쥐가 케이크의 부산에 가세하고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갔다 올게. 먼저들 먹어.”


“에휴... 저 양반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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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분이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