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하치코가 사령관의 무릎 위에 앉아 있고, 리리스는 따뜻한 눈으로 동생과 주인님을 지켜보던 때였다. 누군가 기쁜 낯으로 달려왔다.


"오빠, 오빠. 새 장비를 완성했어- 헤헷."


오르카호에서 사령관을 오빠라고 부를 만한 이는 바로 한 명, 닥터 뿐이었다.


사령관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닥터를 바라보았다.


"뭐, 또 엉뚱한 거 만든 건 아니지?"


"오빠도 참. 내가 뭐 맨날 이상한 물건이나 개발하는 줄 알아."


"맨날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이상현상을 일으켰지."


그렇게 말한 사령관이 리리스를 흘끗 쳐다보았다. 리리스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라고는 안 하겠지만. 어쨌든 이건 우리 군의 전력 증강하고 관련된 일이니까, 진지하게 들어 줘."


뒤따라 들어온 램파트가 어떤 장비를 하나 가지고 왔다. 부스터가 달린 군장 모양 장비였다.


"이게 뭐니?"


"짜잔. 전략 기동 장비야."


"전략 폭격 장비하고 다른 거야?"


사령관은 비행 대원들이 쓰는 장비를 떠올렸다.


"비슷하지만, 그것은 공격에 치중된 거라면 이건 기동성에 초점을 둔 거지. 신경계 싱크로 컨트롤과 열핵 제트 엔진을 사용하고……."


머리 아픈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하치코는 신기한 듯이 장비를 기웃거렸다.


"……여러가지 효과가 있지만, 제일 큰 특징이라면. 역시 지상 대원들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해 준다는 걸까. 히히."


"옛? 그럼 저도 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하치코의 눈이 반짝였다.


"응. 한번 시험해도 좋아."


그러나 사령관이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 안정성 테스트는 해 본거야?"


"그럼. 동물 실험도 다 끝냈다고. 애초에 이건 정신에 영향을 주는 장비가 아니니까."


"공중분해될지도 모르니 하는 말이지."


"아이- 오빠도 참. 내가 무슨 돌팔인 줄 알고…… 하치코, 한번 테스트해 봐."


"알겠습니닷!" 신이 난 하치코는 경례까지 올려 붙였다.


리리스와 사령관은 하치코를 말렸지만, 평소부터 날아 다니고 싶었던 하치코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치코는 전략 기동 장비를 장착하게 되었다.


테스트 장소는 오르카호에서 제일 넓은 장소인 실내 경기장이었다. 체육관이나 간이 운동장으로도 쓰이는 시설이다.


잔걱정이 많은 리리스는 하치코의 몸에 장비가 단단히 매어져 있는지 여러 번이나 확인했다.


하치코는 신이 나서 주의사항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얼른 장비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치코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야호- 하치코 드디어 성공했어요!"


하치코는 팔을 쭉 뻗고 강당 안을 종횡무진으로 날았다. 걱정하던 리리스나 사령관은 어느덧 흐뭇한 눈으로 하치코가 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닥터도 신이 나서 테스트 결과를 기록했다.


그런데 하치코는 오 분, 십 분이 지나도 비행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리리스가 하치코를 불렀다.


"하치코- 이제 그만 날아요. 어지러울 거예요."


"언니- 그게, 큰일났어요. 장비가 멈추지 않아요-"


하치코가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했다.


"뭐라고?"


"닥터. 장비가 정지가 안 된대. 어떻게 좀 해봐!"


사령관이 급히 소리쳤다. 닥터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지가 안 된다고? 강제 정지 버튼을 순서대로 눌러 봐." 닥터가 소리쳤다.


"……실은, 까먹었어요- 어떻게 정지하는 지도 모르겠고, 자꾸 순서대로 눌러도 안 되요."


리리스가 다급해서 말했다.


"저거 도대체 언제까지 나는 거야?"


"그, 글쎄. 열핵 제트 엔진을 쓰니까, 추진제를 다 쓸 때까지는 계속 저렇게 날겠지."


"그 추진제는 얼마나 걸리는데."


"추진제 재활용 기술을 적용한 거라…… 아마도 한시간은 더 저럴 거야."


살려주세요- 하치코는 정신이 어지러워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사령관이 다급하게 닥터를 보고 물었다.


"원격 정지 기능은 없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정말!"


모두가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에도 하치코는 계속 날아다녔다. 날아다니는 본인도 어지러워서 눈이 빙빙 돌고 울상이었다.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장비를 컨트롤 하기에도 힘이 부쳐 보였다.


그때 리리스가 닥터를 보고 말했다.


"저기, 하치코를 붙들고 정지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거야 되겠지만, 저 속도는 시속 60km가 넘어가."


리리스가 얼른 말했다.


"내가 잡을게."


"뭐? 하치코는 44kg이나 된다고. 그 정도 무게랑 충돌하면 언니도 크게 다칠 거야."


"그렇다고 저대로 놔둘 순 없어. 애들 부른다고 기다렸다간, 하치코가 벽에 부닥쳐서 더 크게 다칠지도 몰라."


확실히 리리스의 말대로 하치코는 오랜 고속 비행으로 인해 정신을 잃을 지경에 놓여 있었다.


사령관은 주저했지만, 하는 수 없이 리리스가 하치코를 받도록 허락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들 멀찍이 피하고, 리리스는 하치코를 향해 다가갔다.


"하치코! 언니 쪽으로 날아오세요. 언니가 잡아서 멈출게요."


"예?! 그러면 언니가 다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하치코가 벽에 부딪히는 것보단 나아요. 자.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날아다니던 하치코는 구역질을 삼키며, 리리스를 향해 겨우 몸을 틀었다. 리리스는 하치코를 동체 시력으로 쫒으며, 옆에서 하치코를 잡아채려고 했다. 그러나 둘이 근접하는 순간, 하치코의 몸이 틀어지는 바람에 리리스를 비스듬히 받아 버렸다.


직후, 커다란 충돌음이 들렸다. 리리스는 신음과 함께 이를 악물고 하치코를 껴안고 뒹굴었다. 그녀는 부딪히는 찰나에 손을 뻗어 기동 장비를 벗겼다. 그녀의 손에 뜯어져 내동댕이쳐진 장비는 그제서야 작동을 멈추었다.


곧바로 리리스는 기절해 버렸다. 하치코는 들이받은 때 이미 정신을 놓고 있었다. 닥터와 사령관은 헐레벌떡 둘을 향해 달려왔다.


다행히도 둘 다 워낙 몸이 튼튼한지라, 위중한 부상은 입지 않았다. 그나마 정통으로 들이받지 않아서 충격이 흩어진 덕분이었다.


자매는 한나절 뒤에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깨어난 뒤가 문제였다.


하치코와 리리스를 찾아온 사령관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렸다. 닥터도 전에 없이 당황스런 눈치였다. 둘을 걱정해 모여 든 컴패니언 자매들도 서로 마주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몸이 바뀐 것 같다고?"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하는 거지?"


"아니에요, 쥬인님. 하치코가 정말 리리스 언니 몸이 되었어요."


"주인님. 리리스가 하치코로 되어 버렸어요."


살펴 보니 둘은 말투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눈빛도 달랐다. 리리스는 하치코마냥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해져 있었고, 하치코는 리리스처럼 깊고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게다가, 풍기는 느낌부터가 뒤바뀐 것이었다.


좀처럼 믿지 못한 사령관이 그 뒤로 몇 가지 테스트 - 하치코와 리리스 각자가 사령관하고만 공유하는 비밀 - 를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둘의 몸이 바뀌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은 한숨을 푹푹 쉬며 닥터를 바라보았다.


"닥터야. 이거 또 어떻게 책임질래."


"……미안해. 최선을 다해서 규명해 볼게."


닥터는 둘을 상대로 심도 깊은 뇌 검사와 신체 검사를 실시했지만, 별반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다들 걱정스레 머리를 맞대어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치코의 모습이 된 리리스가 말했다.


"주인님. 이상현상이 생겼다고 경호를 그만둘 수는 없어요. 일단은 이대로 지내는 수밖에요."


"괜찮겠어? 아무래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물론 영영 이대로 지낼 순 없겠지만…… 어쨌든 경호라는 측면에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다른 부대 아이들과 몸이 바뀐 것도 아니고, 하치코와 저 둘 끼리니까."


"맞아요-"


리리스(하치코)가 밝게 손을 들고 거들었다.


사령관은 물론 자매들은 초현실적인 광경을 보는 느낌으로 둘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결국 해결책을 찾아낼 때까지는 몸이 바뀐 채로 지내게 되었다.


사령관은 이 일을 비밀로 하고자 했지만, 입이 가벼운 하치코의 일인 이상 금방 새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비번인 하치코는 으레 하던 대로 소완의 주방을 찾아갔다. 요리 지식이 부족했던 하치코는 탑셰프 소완을 모시고 요리를 배우고는 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하치코 왔어요. 오늘은 무슨 디저트 가르쳐 주실 건가요?"


리리스가 밝게 손을 들어 하는 인사에 소완은 아연실색했다. 둘은 평소부터 앙숙 관계였던 것이다.


"……리리스 양, 혹시 머리에 이상이라도 생기셨사옵니까."


"아니에요. 저, 리리스 언니가 아니라 하치코에요…… 에헤헤, 스승님은 모르시는구나."


하치코는 사령관이 몸이 바뀐 비밀을 지키라고 했던 당부를 그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치코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소완은 얼른 믿지 못했다. 하긴 바로 믿는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리리스의 사소한 행동거지며, 말투에 눈빛 등이 모두 하치코와 같다는 것을 깨닫자, 소완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소완은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하치코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얼른 내보내 버렸다. 이에 하치코는 영문도 모르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이, 하치코가 된 리리스도 갑작스레 생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녀는 이전까지, 여유 시간에는 대부분 훈련이나 혼자 보내는 걸로 만족했다. 그러나 하치코의 몸을 쓰고 있게 되니, 가만히 돌아다녀도 여기저기서 인사하거나 같이 놀자는 대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비밀이 공표되지 않은 덕분에 다들 하치코가 리리스인 줄은 까맣게 몰랐다.


"하치코. 나랑 같이 영화 보자. 101마리의 달마안시란 멸망 전의 영화를 찾았어."


"달마시안 아니니?"


"응. 그런가? 헤헤."


"하치코- 책 볼래? 탐사에서 판타지 소설을 잔뜩 가져 왔거든."


각종 부대의 대원들이 하치코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치코가 원래부터 발이 넓고 인망이 높은 덕분이었다.


인간 관계가 넓지 못했던 리리스는 대원들의 행동에 진땀을 빼고 낯설어했다. 그녀는 전부터 두려움의 대상인데다 친하게 지내는 대원도 적었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당황해. 이런 걸 원하던 것 아니었어?'


하치코를 무척 아끼는 리리스는, 내심 하치코의 밝고 붙임성있는 태도를 부러워하여 닮고 싶어했었다. 리리스는 전에 없이 생긴 친구들을 귀찮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놀다 돌아가던 도중 리리스는 낯익은 이와 마주쳤다.


"어머. 하치코. 오늘은 근무가 없나 보네요?"


"레아…… 언니군요."


"언니라니요, 거리감 느껴지게. 친구처럼 부르라고 했잖아요."


리리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제야 레아가 하치코와 친구라고 주장하던 일이 떠올랐다.


이어지는 레아의 수다를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헤어지려는데, 레아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하치코는 기분이 좀 별로인가 보네요."


"예?"


"뭔가 하치코 답지가 않은 느낌이에요. 음, 나쁘다는 건 아닌데…… 혹시, 리리스 양을 닮으려고 그러는 건가요?"


"……그런 일 없어요."


리리스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결국, 하치코의 몸을 쓰고 있어도 자신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모두들 하치코를 보고 반가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리리스는 조금 우울한 기색으로 동생들의 숙소를 찾아갔다. 때마침, 자신의 몸인 하치코가 페로한테 혼나며 방을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하치코, 이렇게 금새 방을 어지럽히면 어떻게 해? 언니 몸을 쓰고 있으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지. 그리고 소완 씨한테도 비밀 다 털어 놨다면서?"


"미안해…… 그렇지만 이렇게 리리스 언니 몸이 되니까, 신이 나서 그만."


"신이 날 게 뭐 있다고."


"하치코는, 리리스 언니처럼 어른스럽고 우아한 말씨를 쓰고, 자매들을 잘 돌보고 싶었거든."


"그렇지만 현실은 몸만 언니인 하치코일 뿐이야. 너 하는 걸 봐봐. 간식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먹고. 리리스 언니가 몸매관리 하는 거 몰라?"


페로가 하치코를 혼내는 것을 훔쳐보던 리리스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 다음날, 리리스는 평소 해 보고 싶었던 일을 했다. 바로 하치코처럼 사령관의 무릎에 앉아 귀여움 받는 일이었다.


"어, 어때요. 쥬인님. 리리스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하치코 모습인 리리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귀여운 척을 했다.


"……왠지 모르게 안 어울려."


리리스가 입을 내밀었다.


"리리스도 하치코 몸이니까 귀엽잖아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쥬인님- 엥? 언니가 먼저 앉아 계셨네요."


그때 하치코가 들어섰다. 하치코는 다소 실망한 눈으로 사령관과 리리스를 번갈아 보았다.


"하치코는 매일 주인님 무릎에 앉았으니, 오늘은 언니한테 양보하세용." 리리스가 거드름을 피웠다.


"엥- 저도 할래요-"


"주인님 무릎에 두 사람이나 앉으면 배겨나지 않을 거예요."


"쫌생이네요."


페로와 사령관은 리리스와 하치코가 아웅다웅 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하치코가 리리스인 채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으며, 리리스가 하치코의 모습이 되어 귀여움을 받으려는 혼돈스런 상황이었다.


역시, 둘이 바뀌니 어울리지도 않고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고심하던 사령관은, 다음 날 이 일의 관계자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페로. 이 일은 소완만 알고 있는 거지? 일단은."


"네. 제가 입단속을 시켰지만, 얼마나 비밀이 지켜질지는."


소완이 굳이 이런 일로 나쁜 짓을 할 것 같진 않지만, 비밀을 오래 끌어서 좋을 리도 없었다.


"닥터는 방법은 알아냈어?"


"모르겠어……." 닥터의 낯빛이 흐려졌다.


"넌 왜 항상 사고치고 나서 해결책은 못 떠올리니."


"기동 장비를 그렇게 만든 건 내 잘못이 맞아. 그렇지만, 몸이 부딪힌다고 정신이 바뀌는 일이 과학적으로 규명 가능한 일이냐고."


닥터는 억울해서 말했다. 그러자 사령관도 할 말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치코가 이렇게 말했다.


"저기, 쥬인님. 그러면 다시 부딪혀 보는 건 어때요."


"응?"


"책에서 보니까 다시 부딪히고 나서 정신이 되돌아 오던데요?"


"그게 말이 되니?"


"이 일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리리스가 거들어 말했다.


"……."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일단은 제안대로 그때처럼 다시 몸을 부딪혀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리리스로부터 구체적인 방법을 들은 하치코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기동 장비를 써서 다시 충돌하라고요? 그러면 언니가 다칠지도 모르는데. 그거…… 아파요, 엄청."


리리스가 쓰고 있는 하치코의 몸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몸이 바뀐 때를 재현해야 제대로 돌아오지 않겠니. 책에서도 그런 식으로 나오고."


"괜찮겠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굳이 그렇게 아픈 방법을 쓰지 않아도."


사령관도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아요. 역시 제 몸은 저한테 어울리고, 하치코 몸은 하치코한테 어울리는 거잖아요. 안 그런가요, 주인님."


"그건……."


당장 방법을 찾지 못하여, 실험은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 리리스와 하치코는 서로 되돌아가기를 바랬다. 어쩌면 내심 상대를 부러워했기 때문에 이렇게 몸이 바뀐 걸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치코는 그때처럼 전략 기동 장비를 다시 장착했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리리스가 기동 장비를 메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이번에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해 신체 능력이 뛰어난 소완과 레아도 와서 참관하는 중이었다. 그녀들도 사정을 알게 된 만큼 도와주기로 한 것이었다.


사정을 아는 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하치코는 다시 기동 장비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속도가 붙어서 곧 시속 50km를 넘게 날았다. 모두가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리리스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치코를 위해 홀로 섰다.


전처럼, 거의 기절할만큼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하치코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리리스 언니- 아플지도 몰라요. 피하셔도 되요-"


"됐어요. 하치코는 빨리 가까이 오세요. 언니도 언니 몸을 찾아야 한다고요."


"안 바뀔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하치코를 위해서라면 언니는 계속 이럴 거니까."


마침내, 하치코는 눈을 감고 몸을 틀어서 리리스 근처에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큰 소리와 함께 리리스와 하치코의 몸이 비스듬히 충돌했다.


리리스는 용케 고통을 참으며, 동생이 다치지 않도록 꼭 붙잡았다. 자기 몸일 때보다도 아픔이 더 컸다. 하치코도 충돌한 직후 바로 전략 기동 장비를 정지시켜 피해를 줄이려고 했다.


부딪힌 둘은 이내 기절했다. 실험을 지켜 보던 이들이 모두 달려왔다.


그리하여 한참 뒤에 깨어난 두 자매는 눈을 깜박였다. 이번에는 대비하고 충돌한 탓인지, 처음보다 덜 다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치코, 리리스? 다시 돌아온 거니?"


사령관이 걱정스럽게 둘을 번갈아 보았다.


두 자매는 눈을 굴려 보고, 손을 움직여 보고, 몸 이곳저곳을 만진 다음 거의 동시에 말했다.


"네. 착하고 예쁜 리리스가 돌아왔어요."


"쥬인님- 하치코가 드디어 제 몸을 찾았어요-"


"잘 됐구나! 하하하."


사령관은 감격의 웃음을 지으며 둘을 끌어안았다.


하치코와 리리스는 부상이 낫지 않아 조금 아파하면서도, 원상태로 돌아온 것에 기뻐해서 마주 웃었다.


지켜보던 모두도, 흐뭇하게 박수를 치거나 조용히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스 언니. 역시 하치코는 하치코인 모습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언니도 언니일 때가 제일 예뻐요."


"응. 하치코도 정말 귀엽고 예쁘단다. 후후."


하치코와 칭찬을 주고 받으며 리리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역시, 타인을 부러워한다고 타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것은 하치코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결국 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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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라긴 좀 애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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