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9266696


상편: https://arca.live/b/lastorigin/9111337

중편: https://arca.live/b/lastorigin/9171337

하편: https://arca.live/b/lastorigin/9336713







결국 LRL은 포위되고 말았다.

LRL이 마지막으로 불이 꺼져있는 사령관실의 문을 마구 두들겼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LRL을 빈틈없이 둘러싸버렸다. 그들은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손은 탐욕스럽게 비비적댔고, 눈은 LRL의 온몸을 훑었으며, 입에선 침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LRL의 살갖에 미쳐있었다. 

"쾌락!"

"귀여운 아가? 이 언니가 사랑을 듬뿍 담아 온 몸으로 껴안아줄께!"

"볼만지고싶어! 배만지고싶어! 팔만지고싶어! 볼만지고싶어! 배만지고싶어! 팔만지고싶어!"

"어린 양이여, 그만 운명을 받아들이고 이리로 들어오도록 하시지요. 츄릅~!"

"저리가!! 이 변태언니들!!"

LRL은 들고있던 원래옷을 이리저리 휘둘러 변태언니들을 쫒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는 되려 그들을 더더욱 흥분시킬 뿐이었다.

"꺄꺄! 방금봤어? 귀여워 귀여워!"

"나도 봤어! 헤헤, 우리 숙소에다 가두고, 키우고, 옷입히고, 평생토록 춤추게 하고싶어!"

"LRL, 너를 과잉 귀여움 죄를 물어 우리가 12시간동안 만져주겠어!"

"넌.. 이제.. 영원히 내 거야! 으히히히히히힛!!"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광기어린 모습에 LRL은 마침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었고, 소리지를 기운도 없었다. 설령 마지막 힘을 짜내 바로 앞의 언니들을 필살기로 쓰러뜨린다 해도, 그 자리를 열 배의 언니들로 대신 채워질 게 뻔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이다.

"""좌우좌! 우리 모두의 인형이 되어줘!"""

드디어 무수히 많은 손아귀들이 LRL의 몸을 향해 뻗쳐왔고, LRL은 그저 눈을 꼭 감을 뿐이었다. 





"너희들 이게 무슨 짓들이야? 썩 물러서지 못해?!"

갑작스럽게 울려퍼진 크고 우렁찬 목소리에 LRL의 눈이 떠졌다. 눈앞에서 다가오던 손아귀들이 그대로 멈췄고, 바이오로이드들도 마치 시간정지 마법에 걸린 듯 정지해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LRL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어린애한테 무슨 짓을 할려는거야? 다들 정신나갔어?"

LRL이 돌아본 곳은 분명 불이 꺼진 사령관실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는 키가 크고 풍만한 몸의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흰색 가운으로 거대한 체구를 둘러쌌고, 손에는 얼음팩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LRL이 보기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은 분노와 혐오로 가득차있었다.

"너희들이 이 아이에게 한 짓들을 다 보고있었어. 아주 잘~하더군. 저 애가 싫다고 울부짖어도 자기들끼리 억지로 끌고갈려고 해서는 하는 말이 사람이 못입을 거적대기들 하나씩 입어달라, 평생의 노리개로 삼아주겠다, 영원히 가둬주겠다, 마르고 닳도록 만져주겠다..거기에 침 질질 흘리며 입맛을 다시지 않나, 개코마냥 냄새를 킁킁대지 않나... 야 이 년들아! 니들 완전 순 페도새끼들 아냐?!"

자신들에게 언제나 인자했던 사령관이 진심으로 화내면서 일갈하자, 바이오로이드들은 눈을 깔아내린 채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사령관실 앞은 무거운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안되겠다. 곧 너희들에게 조치를 내릴테니 다들 해산 후 대기하도록. 어이, 거기 너희들, 빨리 숙소로 돌아가! 너희들도 멀뚱멀뚱 서있지 말고 따라 들어가있도록! 용이, 마리, 레오나, 아자젤, 레아.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쟤네들 따라서 각자 방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어! 아 그리고 에키드나, 너는 특별히 벌을 내리도록 하지. 자자, 다들 해산! 해산!!"

사령관이 팔을 휘저으며 해산령을 내리자 바이오로이드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곧 사령관 앞에는 LRL만이 남게 되었다. 그의 분노가득했던 얼굴은 LRL을 보자 곧바로 인자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래, 다친 데는 없고?"

"..."

"많이 힘들었지?"

LRL은 사령관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아이의 눈망울은 마치 저녁노을을 머금은 호수와도 같았다. 눈망울이 아름답게 찰랑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 으아앙, 사령관!!"

끝내 LRL은 사령관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뜨렸다. 




LRL은 사령관의 팔에 안겨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령관실의 조명이 켜지자 의외로 검소한 장식물들이 LRL을 반겨주었다. 들어가면서, LRL은 지금까지 있었던 수난들을 사령관에게 풀어놓고 있었다.

“... 그래서 그 바다소녀들이 이런 요상한 걸 들거와서는 말야.. 음?”
 
그런데 LRL은 작고 오똑한 코를 킁킁대더니,

“흠, 권속, 오늘도 그.. 누구랑 알몸 레슬링을 했느냐?”

“엇?!”

“이것은 분명.. 에이미랑의 그때와 똑같은 냄새!”

“아니 그건 또 어째서..”

“그러고보니 옷은 왜 흰색망토이고, 손에 있는 얼음의 결정은 왜 들고있느냐? 아 맞다! 그리고 조명은 왜 꺼져있었고?”

“그, 그게..”

“권소~옥!”

“그래, 그래! 오늘도 아주 격렬한 레슬링이었어. 거기에 16명과의 1대 다 태그매치였지. 정말 힘든 날이었다고…”

사실은 이랬다. 오르카호의 재보급에 따른 휴일에는 각종 바이오로이드들의 잠자리 요구가 빗발쳤다. 사령관으로서는 정말로 힘든 일이었으나 부대의 사기유지 및 스트레스, 갈등 해소 등을 위해 거절할 수도 없었다. 원래는 이럴때를 위해 준비된 소년의 몸으로 일을 치르려고 했었다. 

그런데 휴일 아침, 오르카호 인트라넷에서는 ‘중년의 배나온 남성이 떡감이 더 좋다!’라는 괴게시물이 올라오더니 이내 대원들의 압도적인 추천을 받았고, 얼마 안가 중년의 몸에 미친 여성들이 사령관실 앞에 몰려와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에 굴복한 사령관이 뚱뚱한 아저씨의 몸으로 갈아탔고, 이후 16명이나 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차례로 상대하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니, 다른 애들은 그렇다 쳐도 마리 이 녀석은 원래 쇼타콘 아니었어?.’

중년의 몸으로 한계이상으로 뽑혀진 결과 사령관의 그곳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속의 관들은 고통으로 자신의 과로를 호소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두 알들은 뽑힌 체액들을 어떻게든 보충하기 위해 지금도 오버히트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후우~.. 그래서 달아오른 내 몸을 식히려고 이런 차림으로 있었지. 얼음도 마찬가지고.”

“흠.. 알겠다. 아무튼 그렇게 있다가 이 프린세스의 위기를 본 것이고?”

“그치 그치.”
 
“고맙다! 역시 내 수하로 삼을만한 인간이로다!”

“하하, 이녀석..”

사령관과 LRL은 테이블로 다가갔고, 사령관은 LRL을 들어올려줘서 의자에 앉혀주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 컵에 담아 LRL에게 주었다. 자신은 흑마늘즙을 꺼내 컵에 담았다. LRL은 지치고 힘든 기색이 뻔히 보이는데도 컵에 입을 안대고 가만히 있었다.


“궂이 그렇게 안 기다려도 되는데..”

“짐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 하느니라~! ”

그 모습에 사령관은 기특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동시에 컵을 들어올렸고, 동시에 꿀꺽거렸고, 동시에 파~했다. 그리고 함께 축 늘어졌다. 오늘은 두 사람에게 참으로 힘든 시련의 날이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천장만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오랜만의 평화에 몸을 맡기던 도중, LRL이 먼저 말을 꺼냈다.

“권속…”

“왜, 좌우좌?”

"이씨, 인간! 인간도 그렇게 불러서는 아니된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공주님.”

"칫, 아무튼.. 그래서 인간, 인간은 왜 이 레비아탄 속의 사람들이 우리만 노리는지를 알 것 같느냐?"

사령관은 예전부터 자신이 노려지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오르카호 속에서 여성 바이오로이드들은 수백명인데 남성은 사령관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최근의 급격한 전력증간으로 바이오로이드의 수는 만 단위로 급격히 치솟았다. 거기에 그들의 건강하고 에너지넘치는 몸은 언제나 인간 남성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나 자신의 몸을 침흘리며 노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LRL한테는 왜 그랬을까? LRL이 비록 대원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그녀는 여자아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LRL을 노릴 이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령관이 골똘히 생각하는 찰나에 고개를 숙이던 LRL이 조그마한 입을 열고 말했다.

"짐이 생각하기론.. 그들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짐이 등대에 있을 적, 그곳에 잠들었던 고문서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느니라. 인간 여성들은 언제나 두 가지모습이 되고 싶다고. 하나는 여자로서의 자신, 그리고 또 하나는 엄마로서의 자신이라 하였다."

LRL의 답변에 사령관은 놀란 눈을 치켜들 수 밖에 없었다. LRL이 아무리 어린아이같은 모습이라고 해도 100년동안 등대에 갇혀온 이 아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 그 이상을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이 몸이 어둠속에 갇혔을 적, 짐은 언제나 곰돌이에게 위로받으며 인간을 기다렸노라. 우리 곰돌이는 짐의 동료이면서도 친구, 그리고 내 소중한 아이가 되주었느니라."

"..."

"인간, 아마 그들도 이 힘든 전쟁의 시기에 우리 둘을 꼭 보고 싶었을 것이니라. 남자인 사령관, 여자아이인 나를 보고서 자신들이 사랑을 받는 여자가 되고,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됬을 것이니라. 그렇게 해서 그들이 영혼이 없는 인형이 아니라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걸 느낄 것이니라."

"...좌우좌..."

LRL의 말에 사령관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LRL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LRL은 말없이 머리를 기울여 그의 크고 거친 손을 받아들였다. 등대에서 외롭게 지내던 이 아이는 그저 자신이 돌봐주어야할 대상만이 아니었다. 100년동안 암흑의 나날을 견뎌야 했던 이 기구한 아이는 이제 고귀한 프린세스가 되어 자신을 찾아주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될 요정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영이 되어주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 널 괴롭혔던 대원들에게는 벌을 꼭 내릴거야."

"흥, 그녀석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느니라!"

"아하하하하하.."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던 사령관은 LRL을 마주보아주었다. 사령관의 깊고 검은 눈과 LRL의 맑고 빛나는 눈이 마주했다. 이내 사령관이 LRL에게 말했다.

"LRL, 내가, 아니 우리 오르카호가 약속 하나 해줄께."

"응? 무슨 약속?"

"우리가 이 전쟁을 끝내면, 인간들을 꼭 많이 낳아줄께, 이 오르카호 뿐만 아니라 모든 배를 채울 정도로 많이."

"오~! 그럼 이 진조의 수하들.. 크흠, 아니 친구들도 많이 생기는 건가?"

"그럼그럼, 남자친구들, 여자친구들이 아주아주 많이!"

"그, 그래? 와아~ 사령관! 정말정말 고마워! 역시 사령관이 최고야!"

LRL은 신이 나서 사령관실 안을 이리저리 방방 뛰어다녔다. 아까까지 지친 기색으로 꼼짝않던 LRL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채 다시 철부지 아이로 돌아와주었다. 그런 모습을 사령관은 마치 귀여운 딸을 둔 아빠웃음으로 지켜봐주었다. 그때 LRL이 사령관에게 빠르게 다가오더니 쪽~ 소리와 함께 사령관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응? 좌우좌?"

"이건 사령관의 약속해주는 거에 대한 내 선물! 히힛~!"

LRL의 기습뽀뽀에 사령관이 얼떨떨한 사이에 LRL은 활짝 편 미소로 사령관실을 나갔다. 사령관은 허탈하게 웃은 뒤에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자신의 볼에 남긴 빨간 뽀뽀자국은 이내 금방 사라졌지만, 그 동그랗고 부드러운 입술이 준 느낌은 오래오래 남아서 볼을 간질여주었다.



다음날, 마침내 탐사를 나간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고난은 끝을 맺었다. 특히 그리폰은 LRL에게 접근하려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주먹을 휘두르며 쫒아냈다.

"머리 한 대 맞아볼래?"

"꺄아아악! 꿀밤여왕이 나타났다!"

그렇게 오르카호에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아침, 어제 있었던 LRL 괴롭히기에 동참했던 오르카 호의 모든 대원들이 비행갑판에 집합되었다. 그들을 집합시킨 사령관은 강력한 질책과 함께 알렉산드라와 마리아 감독하의 3일간의 아동보호 교육을 명했다.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투덜대며 사령관에게 불만을 표했지만, 다른 때엔 관대했던 그는 이번 만큼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렇게 오르카호 내에는 3일동안 알렉산드라의 전기채찍소리와 마리아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에키드나... LRL에게 공포를 안겨줄 정도로 심하게 괴롭혔던 이 여인에게는 그 중에서도 특히 무거운 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 무염식? 무당식? 이런 걸로 어떻게 15일을 견디란 말이더냐?

"후후훗, 그러게 소첩과 같이 선을 지키며 즐겼어야죠."

"그게 무슨! 어서 이 사악한 것들을 물리거라! 그리고 어서 떡볶이과 아이스크림 과자를 대령하거라!

"안되옵니다. 이것은 주인님의 지엄한 어명이시니, 이 함내의 그 누구도 거스릴 수 없사옵니다.".

"시.. 싫어!! 싫어!!"

"훗, 그럼 15일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그렇게 에키드나에게는 15일간 금고형에 무염식+무당식이 내려졌다. 15일동안 에키드나의 방에서 울려퍼진 곡소리는 오르카호에 새로 들어오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어린아이를 괴롭힌 대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