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니에게 떠밀려 바깥이 보이는 폐허의 옥상으로 올라온 모모는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동고에서 잔해를 상대로 악전고투한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모양이었다.


주변에 철충의 기척은 없다. 시야가 좋으니 습격에 대비하기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모모가 잠시 석양을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브라우니는 폐자재와 약간의 기름, 그리고 발화키트로 순식간에 모닥불을 만들어냈다.


휴대용 팬 위에서 전투식량과 햄 통조림이 브라우니의 능숙한 전장취사 솜씨에 의해 섞이고, 곧 모모는 멸망 전의 잔반과 유사한 형태의 식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비주얼은 심히 유감스러운 것이었으나 냄새만큼은 여느 진수성찬 못지 않은 그 음식을 먹어본 모모는 그 맛없는 탄단지 덩어리의 맛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브라우니의 실력에 무심코 감탄했다. 근 몇달간 먹어본 음식중에선 가장 맛있었다.


"입에 좀 맞으십니까? 그냥 전식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이게 짬이라는 거지 말입니다. 하하."


소탈하게 웃으며 브라우니는 연신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모는 숟가락을 들면서도 참으로 묘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모가 브라우니와 처음 만난지 이미 수년의 시간이 지났다.

둘은 같은 도시의 폐허를 거처로 삼고 있었고, 생존을 위한 자원을 수집할때면 이따금씩 마주치곤 했다.

허나 그것이 개인적인 친분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둘이 마주칠때면 브라우니는 인사와 함께 몇가지 유용한 정보를 던져줬고, 모모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친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브라우니만의 관점이었다. 모모는 브라우니에게 단 한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그랬던 인연이, 단지 그뿐이었던 인연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자신에게 또다시 다른 누군가와 식사를 하는 날이 올거라곤 상상치도 못했던 모모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작은 혼란에 휩싸였다. 


브라우니의 그 스스럼 없는 시선이 불편하면서도,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타인의 존재가 가슴속에 불러일으키는 조그만 온기의 불꽃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아무리 부정하고 묻으려 해봐도, 오래 전의 따스함을 기억하는 가슴은 온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모모는 그저 조용히 숟가락을 움직여 주린 배를 채우는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모모가 심적인 동요를 겪는 동안 어느새 자기 몫을 비운 브라우니는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물어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재밌는 소식이 들어왔지 말입니다."

모닥불을 응시하던 브라우니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 묵묵히 식사를 하던 모모는 시선만을 돌려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요 옆 공터에 잔존병들이 주둔하고 있던거 기억 하십니까? 그저께 그쪽 탐사팀이랑 마주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습니다."

잠시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뜸을 들이던 브라우니는 푸우, 하는 소리와 함께 뿌연 연기를 뿜어냈다.

"살아있는 인간님이 있답니다."

"....."

확실히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의외의 소식이었다. 인간님이 살아있다고? 어떻게?

"그리고 그 인간님이 바이오로이드들을 규합하고 있답니다. 다시 이 별을 되찾으려고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둔지 녀석들은 인간님께 합류하러 간답니다. 어쩌면 모모 씨나 저같은... 머리가 망가진 바이오로이드들이 여태 살아온 게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을 마친 브라우니는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였다. 붉게 빛나는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가고, 자욱한 연기가 밤바람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모모 씨는 어떠십니까?"

"....."

모모는 뭐라 대답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살아있고, 어쩌면 이 모든 악몽으로부터 모두를 구원할지도 모른다고? 너무나도 꿈같은 소리여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설령 정말로 철충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해서 평화가 돌아온다고 해도, 자신은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단언컨데 아닐 것이다.

그렇게 속 편한 해피엔딩을 맞이하기엔 자신은 너무 많이 망가져 있다.

모모는 무심코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잘모씀다?"

브라우니가 모모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뜻밖이었던 브라우니는 잠시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씩 웃으며 답했다.

"전 안갑니다."

"...왜?"

"여기서 죽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브라우니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도시 외곽으로 펼쳐진, 거대한 잔해의 광야에.

브라우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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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여기까지 전편에 들어갔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