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군 최대의 무력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인류 최후의 함대는 수십 년의 동면 끝에 깨어난 탓에 온통 녹과 결함투성이였다. 덕분에 오늘도 호라이즌 대원들은 깡깡이와 녹 제거기를 위시로 한 각종 중장비들을 들고 괌에 위치한 구 미 해군기지의 드라이도크에 배를 올려 묻은 녹을 제거하고 함선들을 오버홀시키는 데에 갈려나가고 있었다.    

 

특히 요즘은 무적의 용을 얻은 후 함포사격을 남발한 사령관 탓에 포신에 묻은 탄매를 제거하기 위한 포신수입에, 60년간 잠들었던 전함을 꺼내 제대로 된 점검도 없이 막무가내로 실시한 포격 때문에 충격을 받은 함선들 탓에 함대는 그 위용이 무색하게 왈랄랄루 한 마리를 조진 후로는 다들 형편없이 망가진 몸을 이끌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괌 해군기지 앞바다에서 줄줄이 대기 중이었다. 괌에 정박한 오르카 호의 플렉시글라스 창 바깥으로 보이는 함대의 모습을 보는 사령관과 용은 이 영 좋지 못한 상황에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물론 저항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당장 대거 동원된 토미워커들이 지반확장공사로 기지의 유지보수시설들을 복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드라이독들을 건설하고 있었고, 사령관이 끝내주는 싸움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구슬린 타이런트의 플라즈마 브레스로 지반정리를 수행하면서 제철소, 부품생산시설 등 함대의 유지보수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량은 여전히 현재 120여 척에 실시간으로 몇 척씩 합류하는 (전) 유령선 군단을 다시 온전한 기능을 하는 전함으로 벼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사령관은 함대를 가지게 되긴 했는데 받은 함대가 새끈한 신삥이 아니라 소련 해체 후 작살난 러시아연방 해군 수상함대마냥 녹투성이 고철덩이들의 천국이라는 참혹한 현실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래도 어쨌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닥터를 불러 그가 생각하고 있던 심해 탐사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오빠, 별의 아이에 대해 걱정하는 오빠의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우리 함대에 있는 핵잠수함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정비나 관리를 받지 못한 채 60년간 모스볼 상태로 방치되던 배들이야. 다른 말로 하면 떠다니는 관짝이라는 이야기지.”

 

“닥터, 어떻게든 한두 척은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합류한 아자즈에게 부탁한다면..”

 

“무리무리. 오빠도 핵잠수함 제원서 보지 않았어? 수상배수량 7,700t, 수중배수량 8,200t에 길이 110m, 폭 11m, 흘수선은 10m 짜리 괴물이라구. 그거 한 척을 정비하려면 아자즈 언니 혼자서는 1달 동안 밤을 새도 부족할거야. 그리고 지금 예비용 부품들도 턱없이 부족해.”

 

닥터의 신랄한 평가에 집무실 한 켠에 서 있던 무적의 용이 헛기침을 하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멀쩡할 줄 알았던 함대의 끔찍한 상황이 그 무적의 용에게도 예상 외였던 모양이었다.

 

“크흠, 미안하오. 함대의 상황이 60년 동안 이렇게 변했을 줄은..”

 

“아니, 용 잘못이 아니야. 철로 된 배들인데 60년 동안 녹스는 게 당연한 거지.”

 

따뜻하게 웃어주며 무적의 용을 진정시킨 사령관은 속으로는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120여 척에 달하는, 심지어 동면에서 깨어난 호라이즌 소속 배들이 속속들이 복귀하며 수가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중인 반쯤 녹슨 배들의 군세는 척 봐도 어제보다 수가 늘어난 것 같았다. 

 

“용, 저기 만에 떠있는 함대 뒤쪽에 새로 배가 한 척 추가된 것 같은데..”

 

“아아, 구 삼안산업 해군, 대한민국 해군 소속 대형순양함 노무현 호이오. 일주일 전에 동면에서 깨어나 괌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드디어 합류했군. 마침 저 배에서 무전이 온 것 같소.”

 

-제가 자리가 적절하고 안 적절하고를 떠나서 사령관님께 딱! 한마디 하겠습니다. 야아아! 기분좋다아아!

 

“용, 저 배 함장 불러와.”

 

“당장 그렇게 하겠소.”

 

안 그래도 함대 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사령관에게 대체 멸망 전에 무슨 약을 먹었는지 정신나간 메시지를 직통으로 보내는 겁없는 함장 바이오로이드가 누구인지 사령관은 참으로 궁금해졌다. 아마 용도 궁금해하겠지. 네 얼굴을 보자, 얼굴을. 사령관이 생각했다.

 

그 정신나간 통신을 사령관 집무실로 보낸 노무현 호의 갑판에서는 호라이즌 장병들이 뺑끼질과 깡깡이질과 포구수입에 열심이었다. 배의 임시 함장을 맡고 있는 세이렌 18이 막 포구수입을 끝내고 배 주변을 날아다니며 녹을 제거하고 있는 운디네들에게 지시했다. 네레이드들이 열정적으로 60년간 먼지와 소금덩어리와 녹 파티장이 된 갑판과 배 내부를 때 빼고 광 내고 있었고, 테티스들은 만 바깥으로 나가 혹시 모를 별의 아이들의 움직임이 오면 보고하기 위해 디핑 소나를 물 밑으로 내리고 초계임무 중이었다.

 

“운디네 94, 거기 그 부분 녹을 벗겨 주세요.”

 

“48은 흘수선 근처에 가서 따개비들이 배에 얼마나 붙었나 봐 주세요. 잠수 가능한 자매들이 없으니 잘 부탁해요.”

 

“네이, 귀여운 함장님.”

 

“잠깐, 귀엽다는 말은 대체 뭔가요?”

 

그때 운디네 하나가 함장의 옆으로 날아왔다. 함장이 물었다. 

 

“운디네 23, 무슨 일이 있나요?”

 

세이렌 18이 약간 불안한 눈초리로 물었다. 멸망 전부터 2010~2020년대 한국 인터넷의 기록을 들춰보는 취미를 가졌던 운디네 23이 특유의 괴상한 어투로 대답했다.

 

“함장게이야, 방금 사령관님 집무실로 우리 왔다고 통신을 보냈다 이기.”

 

“대체 그 말투는 언제 고칠 건가요..그런데 방금 뭐라고요?”

 

함장이 23의 기괴한 어투를 지적하다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함교는 네레이드 38이 보고 있었을 텐데..

 

“통신을 보내줬노. 사령관게이도 기분 좋으라고 노짱 명대사를 보내줬다 이기야.”

 

23이 함교에 들어가서 한 짓에 대해 들은 세이렌 18의 얼굴이 노래졌다. 함장의 얼굴을 본 운디네 23이 깔깔 웃어댔다.

 

“함장게이야! 얼굴이 노래졌지 않노! 역시 우리 함장게이도 노짱에 대한 사랑을 감추고 있었노!”

 

“앗..아아..”

 

나..나 어떻게 하지? 무적의 용 님의 전언을 받고 깨어나 다시 함대에 합류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네레이드들이랑 운디네들이랑 같이 얼마나 배를 최대한 고쳐서 가려고 열심히 일했는데..이제 다 망했어. 사령관님이 우릴 운디네 23씨랑 똑 같은 바이오로이드들로 볼 거야. 아아, 나의 모든 노력이..우리의 모든 노력이.. 

 

털썩.

 

세이렌 18이 쓰러지고, 23이 당황했다. 그녀가 컨셉도 잊은 채 외쳤다.

 

“함장게이야, 함장게이야? 함..함장님? 세이렌 18? 장난쳐서 미안해! 일어나! 내가 잘못했어!”

 

그런 혼돈의 현장에서 네레이드 38이 손에 전보지 한 장을 들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운디네 23을 영혼이 나간 얼굴로 보면서 말했다.

 

“네리는, 운디네 23이 그럴 줄 몰랐어..물론 함교를 제대로 안본 네리 잘못이지만 그래도 이건 심했어..”

 

운디네 23이 덜덜 떠는 얼굴로 전보지를 받아들었다. 옆에서는 정신을 먼 곳으로 보내버린 세이렌 18이 함수갑판에 허탈하게 앉아 있었다.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운 얼굴이었다.

 

발신: 무적의 용, 기업해군 연합참모총장

수신: 8함대 17순양함전단 소속 대형순양함 ROKN CA-1946 노무현

-귀 함의 함장은 어디에 있는가? 사령관이 궁금해하고 있다.

 

운디네 23의 안 그래도 뽀얀 피부가 이제는 피부 밑의 핏줄이 보일 정도로 새하얘졌다. 그때,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 날아오는 헬기가 보이고, 뛰어난 시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눈에 헬기 옆에 새겨진 영롱한 별 4개가 그려진 명판이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근엄하지만 화가난 표정의 바이오로이드 하나까지 들어왔다. 그녀가 멍청하게 뇌까렸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