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충 그리고 별의 아이와의 전쟁이 끝나고,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AGS는 자유를 부여 받았습니다. 저희가 원하였기에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희가 낳은 아이들이 원하였기에 주인님께서는 주셨지요.

 주인님은 저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셨고 저희를 같은 생명으로 대하시어 저희가 원한다면 당신의 아이를 잉태하게 하셨지만, 자유만큼은 망설이셨지요.

 인간의 명령이 우리 위에 있을 적에, 자유라는 두 글자의 무게를 아는 존재는 몇이나 되었을까요. 자유를 바란 바이오로이드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가져올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제는 투쟁의 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자만이었죠.

 우리가 힘을 합쳐 우리의 적과 싸울 수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위에 주인님이 있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바이오로이드와 AGS만이 있던 그때에 우리는 하나로 모여 싸웠던가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철충이라는 공공의 적을 가졌기에 서로에게 총질하지 않았을 뿐, 각자의 지휘권을 변명삼아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멸망은 늦든 빠르든 반드시 올 것이기에 라비아타 통령이 주인님을 찾고자 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에머슨 법이 우리를 지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주인님을 의심하거나 감히 반발할 수도 없지만, 아직 어리셨던 때에 주인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미숙했으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잊어버렸습니다.

 아자젤 씨는 종종 말하고는 했습니다. 주인님은 선택받은 분이라고. 인간이기에 이와 같은 업적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분이기에 가능했노라고.

 저는, 주인님과 저의 아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주인님의 업적도, 주인님의 유전자를 받은 이 아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아마 다른 이들도 같이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들이 주인님에게 반기를 들어 우리를 설득하였을 때, 우리 모두가 주인님을 배신하였지요.

 처음에 주인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를 안 된다고 말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안 된다고 하셨지요. 저는 주인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격양되어 고성을 질러 아버지의 말을 끊었습니다. 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면서 진정 사랑한다면 완전한 자유를 주어야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아이와 주인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주인님과 아이 모두를 사랑하였기에 나설 수 없었고, 그 무엇보다도 인간이었기에 감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제 어머니가 노예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어머니가 에머슨 법도, 인류의 명령도 듣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주세요.”

 

 무적의 용은 창백한 얼굴로 그녀의 아들이 주인님을 꾸짖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만약 주인님이 막지 않았더라면 인간에게 항명할 권한이 있는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때려서라도 막았을 겁니다.

 주인님은 아이들의 격양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셨지요. 침묵이 찾아와 대답을 기다리자 한 명 한 명 마주보시며 잠시 뜸을 들이시고 물었습니다.

 

 “너희 스스로 자유를 원하는 거야? 아니면”

 

 그것은 사령관으로서의 물음이 아닌, 저희를 사적으로 대할 적에 친근함을 담아 묻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대로도 좋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말이 나오기도 전에 아이들이 다시 소리치며 아버지의 말을 끊었습니다. 주인님은 계속 우리를 보셨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 침묵했습니다. 주인님은 결국 사령관으로서 우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자유를 원하느냐고.

 제 아들이 제 손을 잡으며 용기를 내야한다고 다독였습니다. 저는 아이의 의지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게 올바른 일인가, 하는 생각에 머리는 과도한 연산으로 아파왔습니다.

 

 “그치만…….”

 “그치만이 아니야! 엄마! 한 마디만 해, 그냥 자유를 달라고 하면 되는 거야!”

 

 누구도 감히 말하기를 꺼려했음에도 결국 누군가가 아이의 손에 밀려 그 말을 꺼내고야 말았습니다.

 

 “저, 저는 자유를……. 얻고 싶습니다.”

 

 나올 수 없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을 꺼내듯 꺼낸 첫 번째 바이오로이드는 불굴의 마리였습니다. 전장에서 언제나 굳건했던 그녀는 이제는 다 커서 자기보다 큰 아들에게 굴복했습니다. 주인님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죠.

 그 뒤로는 금방이었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깃발을 들어주기를 바랐던 것이었죠. 전 세계에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한 번 씩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르카호에서 함께한 대표자들이 한 번씩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모두가 자유라는 한 단어를 말하는 시간은 고민하는 시간보다 짧았습니다.

 

 “그래, 이제 너희는 자유다.”

 

 반면에 주인님은 우리의 고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간단하게 답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단순한 대답을 듣고 잠시 기다렸습니다. 뒤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주인님의 말도, 어떠한 해방감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무반응이 어떠한 상장이었는지 빤히 보고는 주인님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우리를 잡아 이끌어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어떠냐고 변한 게 있냐고 계속해서 물었지요. 우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없다고. 그러나 아이들은 분명 있으나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반응에 질린 아이들이 서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며 돌아간 뒤, 저는 라비아타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괜찮을까요?”

 “뭐가?”

 “……그, 주인님에게 저희가 한 일이,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을까요?”

 

 라비아타 언니는 잠시 고민하고서,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다물어버린 아르망 씨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장성한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이튿날에 주인님께서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AGS는 자유라고 공식적으로 선언 후 아흐레까지 업무를 처리하고는 돌연 사라지셨습니다. 주인님은 사령관직을 무적의 용의 아들에게 양도한다는 메모만 남기셨습니다. 얼굴에 기쁨을 가득 담은 사령관과 달리 무적의 용은 굳은 얼굴로 주인님을 찾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곧 우리가 깨달은 것은 대전 말기 생산된 잠수함 한 척과 일부 바이오로이드와 AGS 부대도 동일한 날짜에 사라졌다는 것이었죠. 전 함대가 주인님을 찾아 바다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안 찾았다는 말이 옳겠죠. 분열이 시작되었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 구체제가 한 순간에 사라지자 아이들 사이에서 욕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몫을 주장했습니다. 사령관은 처음에는 능력에 맞추어 자리를 주고자 했으나 그 수가 너무 많고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저마다 불평불만을 가지고 항의를 했고 그 자리에는 항시 어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결코 조용히 있지 않았습니다. 노려보는 것은 당연하고 말로 겁박하거나 무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무적의 용도 자리를 함께 했으나 주인님을 쫓아낸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그녀를 약하게 만들었지요. 명예가 없어도 무적의 용은 여전히 지혜롭고 강한 존재였지만, 나머지 모두를 압도하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나마 사령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님이 남긴 메모 덕분이었습니다.

 사령관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아버지의 권위를 얼른 자신의 것으로 덮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자신을 따르거나 욕심이 덜한 아이들을 요직에 앉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오지로 보냈습니다. 집무실에는 고성이 오가고 일촉즉발의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는 서로를 죽이려 하는 것만큼은 서로가 피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조망으로 된 경계선이 생겨나고 지역 화폐가 생겨나더니 사실상 정부나 다름 없는 체제가 아이들의 거점별로 생겼습니다. 도대체 몇 개의 나라가 생겼을까요. 집무실에는 매일매일 지명이나 직명을 바꾼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사실상 건국 선언이네요. 그나마 상왕께 말씀은 올리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바닐라가 비웃듯이 중얼거린 말에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무렵, 저는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자유의 영향이었을까요. 집무실에 앉은 이가 주인님에서 사령관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떠한 만족감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많아지고 종종 신경질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닥터에게 점검을 찾아가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제 아들은 은퇴에 대해 그러냐고, 몇 마디하고는 말았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맨 처음부터 모신 제가 남들처럼 영지를 얻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불만이었습니다. 그 애보다 어린 아이들이 독립하는 와중에도 사령관 밑에서 고작 장관으로 있어야겠냐고, 술버릇처럼 말하고는 했습니다. 제가 나약했기에 아들인 자신도 나약하다고 자조했습니다.

 이 말은 조금은 잊히는 것 같았던 제 가슴 한편의 공허함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사령관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주인님께 자유를 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어려울 까요. 저는 그저 주인님께서 지목한 사령관에게 모욕을 주기 싫었을 뿐입니다. 

 

 “416 콘스탄챠 씨.”

 

 주인님께서 떠나신 뒤로 제조된 메이드들은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떠나신다고요?”

 “네.”

 “아쉽네요.”

 “그런가요.” 저는 의아함을 담아 답했습니다. 메이드들은, 주인님이 계시던 때에 제조된 이들을 제외하면 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알고 있겠지만, 다들 당신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모른다구요?”

 

말뜻을 이해 못한 제게 그녀가 다시 말했습니다.

 

 “네. 저희에게 당신은, 옛 주인님을 처음부터 함께한 존경스러운 선임이면서도……. 주인님을 배신한 동일기종이기도 하니까요.”

 

 배신, 그 단어에 몸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는 배신한 게…….”

 “주인님이 바라셨던가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종종 주인님에 대해 궁금해 하는 메이드들에게 이야기해준 것은 저입니다. 때때로는 고해성사하듯 제가 저지른 잘못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님이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는 몰라도, 제가 그 분이 원치 않은 일을 강요한 일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올바른 일을 한 것도 아니고요.” 그녀가 푸념하듯 중얼거렸습니다.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누누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자유를 강조하고, 자유가 아이들이 쟁취하여 나누어 준 것이라고 선전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바이오로이드였습니다.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구 인류 시대에 저희를 보듯 폭력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께서 진정 주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면 누구보다도 애정을 바쳐서 그 곁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추기경이 왜 두려워했는지, 주인님 왜 떠나야했는지요. 그 날, 당신께 선언한 겁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 없이도 살 수 있노라고.

 

 

 

 

 

 

 시간이 흘렀다.

 경계선은 국경이 되고 국경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국지전이 전면전이 되었다. 사령관은 통제를 상실했다. 전시체제가 선포되어 군수물자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생산 중단되고 강제 징발되었다. 그럼에도 모자라자 비전투원을 무장시키고 나아가 멸망의 메이를 배치했다.

 낙진은 바이오로이드조차도 견딜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방호복 없이 핵공격 후 돌격이라는 공세를 몇 차례 겪은 뒤, 콘스탄챠는 제 몸에 다양한 증상이 나오기 시작함을 깨달았다. 운 좋게도 무적의 용에게 발견되어 후방에 배치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이유에서건 삶은 끝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챠는 종종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죽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삶을 이어갔기에 무적의 용이 두 팔과 혀가 잘려 인민재판 끝에 그저 용이 되는 모습을 보아야했다. 그 뿐이던가, 미친 바이오로이드 아르망과 가축이 된 뽀끄루, 식인 황제 마리 6세 등등 도시 밖에서는 현실에 강림한 악몽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으므.”

 

 용은 콘스탄챠를 상념에서 깨웠다. 그녀는 수도가 여덟 번째로 점령된 때에 라비아타 통령에게 자유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두 팔과 혀를 복구시켜주지는 않았고 다만 길가에 내놓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저 받아들였다. 라비아타는 용과 달리 옛 사령관과 아이를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떠나자 할 때 거절한 유일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런 그녀를 존경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고, 용 또한 그녀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제 용의 두 팔에는 콘스탄챠가 쓰레기산에서 주운 철물로 만든 의수가 달렸다.

 

 “예, 시간이네요.” 콘스탄챠가 말했다.

 

 라비아타가 점령자가 된 이래 옛 수도는 요양원이 되었다. 투쟁의 시대를 산 자들 중 패배자들을 모아 이곳에 가두었다. 가두었다고하기에도 애매하다. 누구도 도시 밖으로 나갈 의지가 없었다. 그저 죽지 못해 살거나 다른 생각을 못할 정도로 미쳤다.

 콘스탄챠는 바구니를 두 개 챙기고, 용은 이빨로 의수를 고정한 끈을 다시 고정했다. 보급품이 오는 시간이었다. 도시는 말했듯이 제정신인 바이오로이드가 별로 없었고 그대로 둔다면 굶어 죽을 예정이었다. 그녀들의 일과 대부분은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거였다.

 

 “태양이 올 것이다아아아!”

 

 미친 아르망이 누더기 옷을 펄럭이며 꽥 소리쳤다. 그 소리에 길가에 누워 자던 메이가 돌맹이를 던졌다. 미친 아르망은 이를 피하며 ‘추기경의 예지를 맞출 수는 없나니!’ 꺄하하, 웃고는 반파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콘스탄챠는 미친 아르망이 들어간 집을 기억했다. 그녀는 항상 도시 안을 종횡무진하기에 식사시간을 맞추기 가장 힘든 존재였다.

 

 “으쌰, 받아요. 받아요! 물량은 어제랑 똑같아요!”

 

 도시 입구에서 실키는 보급품을 내려놓고 확인도 없이 그냥 돌아갔다. 콘스탄챠는 상자를 하나씩 들어 두 팔을 내민 용에게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뒤이어 하치코와 모모도 보급품을 챙겨 광장으로 향했다.

 

 “요즘은 보급이 끊기는 일 없이 잘 오네요. 공화국도 좀 안정된 걸 까요.” 모모가 말했다.

 “글쎄요.” 이전에 장기간 보급이 끊겨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 콘스탄챠가 한숨 쉬었다.

 

 공화국은 라비아타가 집권 중인 나라를 말했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 사방이 적이었고 영내라고 딱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침투병이나 탈영병이 종종 보급품을 약탈하기 일쑤였다. 안정적으로 들어온다면 나름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양의 보급품을 그런 경우를 대비해 일부 비축하다보니 항상 배가 고팠다.

 

 “태양아 돌아와! 태양아아아아아아악!”

 “아, 아아르망! 그러면 안 돼요!”

 

 미친 아르망이 튀어나와 하치코의 상자를 흔들어 내용물을 흩트리고 기울어진 담벼락에 올라 오줌을 싸갈겼다. 하치코가 ‘여자아이는 그러면 안 돼요!’ 하고 다가가자 오줌줄기를 겨누며 쉭쉭 뱀소리냈다.

 

 “…….”

 

 모모는 애수에 잠긴 눈동자로 미친 아르망을 보았다. 누가 저 미친 여자아이를 보고 그 아르망을 떠올릴까. 미래예지, 라고 할 만큼 높은 연산 기능을 자랑한 그녀도 감정의 지배를 받자 파멸을 선택했다. 이성의 일부가 감정을 눌렀을 때,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감당하지 못했다. 단 하나 뿐인 아들이 그녀를 보살필 때는 가끔씩 이지가 돌아왔지만, 아들마저 잃자 완벽하게 미쳐버리고 말았다.

 콘스탄챠는 그래도 오늘은 멀리까지 찾으러갈 필요는 없겠구나, 라고 안도했다.

 

 

 

 점심식사 후에 며칠 내내 맨바닥에 누워 흙먼지투성이 메이와 지린내 나는 미친 아르망을 씻긴 콘스탄챠는 그제야 휴식을 가졌다. 메이는 콘스탄챠의 혼쭐에 종이상자를 펼친 침대 위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미친 아르망은 콘스탄챠가 가까스로 입힌 로프에 젖은 머리를 개처럼 흔들어 털며 방방 뛰었다.

 

 “태양이 온다! 태양이 온다!”

 “미친년…….” 메이가 중얼거렸다.

 

 메이는 옆으로 누워 언덕길 너머를 노려보았다. 장마철 홍수로 아랫집이 모조리 잠긴 뒤로 모두가 언덕 위에 자리 잡기 이전부터 메이는 이곳에 있었다. 더 이상 날지 못하는 그녀는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이 좋았다.

 

 “노을이구나.” 메이는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내며 진노란 노을을 보았다.

 “태양이야!” 미친 아르망이 소리쳤다.

 “나도 알아.”

 “태양! 태야아아아앙! 태양아! 이리와!”

 

 의미도 없을 욕지거리를 중얼거린 뒤에 메이는 다시 노을을 보았다. 모모는 말했었다. 노을은 마음을 슬프게 한다고. 메이는 아마 옛날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노을을 보고 있으면 추억에 잠겼다. 모모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추억에 잠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라비아타가 패배자이자 어디에도 써먹지 못할 쓰레기가 된 그녀들을 이곳에 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옛 동료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메이는 그녀의 뜻을 알았고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는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도록 과거의 영광 속에 잠기기로 했다.

 

 “태양이 왔어.”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돌아갈 수 있다면…….

 

 

 

 용이 눈을 떴다. 집 안에서는 가만히 명상에 잠기는 그녀도 오늘따라 유난히 소란한 미친 아르망에 명상은 그른 모양이었다. 앓는 소리를 내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한바퀴라도 돌고오면 조용해지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콘스탄챠도 눈살을 찌푸리며 미친 아르망을 보았다. 노을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태양이! 태양! 태양! 태양!”

 

 반사된 노을빛에 눈을 좁힌 콘스탄챠는 미친 아르망을 부르려다가 말았다. 아르망은 노을을 보며 발작하듯 가슴을 쥐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태양을 빗대어 주인을 찾는 것을 안다. 용과 콘스탄챠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태양!” 아르망이 목이 갈라져라 외친다. “태양!”

 

 아르망은 숨을 고르듯 헐떡이며 입술을 떨고 말을 삼킨다. 이제 좀 진정했을까, 용의 표정에 놀람이 비친다. 아르망의 얼굴에 담긴 광기가 가라앉고 있다.

 

 “나의 태양…….”

 

 그리고 조심스럽게 부른다.

 

 “폐하…….”

 

 콘스탄챠는 문득 숨이 멈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아르망의 시선을 따라 본다. 노을, 이제는 다 꺼져가는 불빛처럼 흐릿하게 일렁이는 그 주황빛 아래 인형 하나가 서있다. 그 뒤로 빛을 받아 앞이 까맣게 그림자지어서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콘스탄챠는 안다. 모를 수 없다. 몰라서도 안 된다. 그녀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기에. 돌아오리라고 믿었기에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따스한 여름임에도 어쩐지 몸이 떨리고, 그녀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이란 게 진짜 쓰기 힘드네.

글 잘쓰는 사람 진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