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락 하버는 철충의 침공에 수세에 몰린 인류의 최후의 거점 요새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희망의 불꽃은, 압도적인 적의 공세와 휩노스 병으로 서서히 꺼져가고 있지요.

모든 것의 종말과 죽음이 너무도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이곳의 최후의 인간님들의 삶의 태도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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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 거주구 철충 침입! 전투원은 즉시 전투 배치! 민간인은 신속히 대피하라!'


방송과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저는 짜고 있던 목도리를 내던지고 뛰쳐나갑니다.

기어이 철충 몇 기가 대공 포화를 뚫고 침입한 모양입니다. 지하가 아닌 지상 외곽 거주구에서는 이제 잦아진 일이죠.

벌써 멀리서 총성과 폭음, 비명이 들립니다. 대응 병력이 달려오기까지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결국 초동 대처는 거주구 주민들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밖에 계시던 주인님께서 집으로 황급히 들어오시며 제게 소리치십니다.


"마리아!!!"


제 이름만 불리자마자, 저는 벽에 걸려 있던 소총을 집어 주인님께 던져드립니다. 사전에 명령받은 대로.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고 주인님께 소리칩니다. 역시 사전에 명령받은 대로.


"주인님, 유언!!"


"야채 좀 가리지 마라!"


그 짧은 말씀만 남기시고, 다크서클로 퀭한 얼굴로 씩 웃으며, 망설임 없이 달려가십니다. 총을 들고. 죽음을 향해.

죽음이 너무 흔해져서일까요. 이런 외곽 거주구의 주민들은 위급 상황에서의 방침을 서로 약속해 놓았습니다.


행동은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유언은 짧고 간결하게.


저는 2층으로 뛰어올라가 도련님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갑니다.

며칠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시는 어린 도련님을 안고, 제 총을 챙기고 비상계단으로 달려갑니다.


아아, 어째서인가요. 제가 바이오로이드니 제가 철충을 막으러 가는 게 맞는데. 그게 상식이고 락 하버의 규칙인데.

어째서 외곽 거주구의 주민들은 반대로 하시는 건가요. 이런 일이 닥치면, 왜 인간님들이 죽으러 가시는 건가요.

그저 제가 유모니까, 저희가 더 튼튼하기 때문에 민간인 대피 임무를 맡기시는 건가요.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예정된 죽음을 회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걸까요.


뭐가 되었든, 저는 그저 명령받은 대로 도련님을 안고 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제 품 안의 도련님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언젠가 깨어나시면 꼭 유언을 전해드리겠다고, 속으로 맹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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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건물 잔해 밑에 가스 밸브가 새고 있어요. 저거 빨리 안 잠그면 대폭발이 일어날 거예요. 제가 들어가서 잠글게요.

체구가 작으니까 저밖에 못해요. 지금 여기 더치 걸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데려올 시간도 없고.

당신은 너무 커서 애초에 못 들어가고, 들어가도 잔해를 건드려서 완전히 붕괴할걸요? 그러니 가서 시티 가드나 불러오세요."


"아... 안 됩니다! 큭, 곧 무너집니다! 이렇게... 어리신데! 더 사셔야 한다구요! 크윽! 아직... 남은 시간이 얼마나 많으신데!"


제가 명령권을 거부하는 고통을 참으며 만류하자, 겨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인간님께서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고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더 살면 어떻게 되나요?"


"......네?"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그때 제가 무슨 답이든 내놓았어도 달라졌을까 싶습니다.


"지금 안 죽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나요?"


벙어리가 된 채 가만히 서 있는 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시던 인간님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살러' 가는 거니까."


"예? 이, 인간님! 인간님!!"


그렇게 영문 모를 말씀만 남기고, 어린 인간님은 무너진 건물 잔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가셨습니다.

가스 밸브를 잠그고 나오는 도중 쏟아진 건물 잔해에 깔려 돌아가셨다고, 후일 시티 가드의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구해 인류연합정부와 락 하버의 또 하나의 미담과 선전거리로 남으셨지만, 저는 여전히 그 분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떻게 포장해도 그저 궤변을 늘어놓고 일찍 죽으러 가신 것 뿐일까요.


아니면, 마지막 몇 분 동안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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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부 정찰대에 지원할 거야. 너는 다른 주인을 찾든지, 군에 들어가든지, 도망치든지 알아서 해."


"주인님, 기어이 정신이 나갔습니까? 가면 100% 죽습니다. 죽으려고 환장한 겁니까?"


"나야 우리 바닐라랑 영원히 오래오래 살고 싶지. 네가 해 준 그 맛대가리 없는 과자를 또 먹고 싶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도 해. 죽은 우리 자식 강화수술 시켜서 살리고 건강히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그럼 대체 왜요!!!!"


"내가 뭘 원하는지가 중요한가?"


"......예?"


"죽음이 오고 있어. 좆같이도 가까이 왔지. 무슨 꼴뚜기 같이 생겼더군. 매일 밤 내 머리속에 악몽을 속삭인다고.

그렇게 침대에서 괴로운 잠만 자다 죽고 싶진 않아. 싸우다가 죽게 해 줘. 저 새끼들한테 침이라도 뱉고 죽게 해 줘.

내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에 머리속에 들어찬 게 악몽이나, 내가 이루지 못한 소망들에 대한 망집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내 힘으로 해낸 작은 일들과, 살아남은 너를 생각하면서 미소 지으며 죽고 싶어. 그러니 부탁한다."


"으흑, 흑... 주인님......"


"그동안 미안했다. 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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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간님. 인간님께서는 왜 저희한테 그렇게 잘해주시는 검까?"


"왜? 무슨 문제라도?"


"저희는... 바이오로이드임다. 인간이 아님다."


"뭐가 그렇게 다른데?"


"저희는 공장에서 만들어짐다. 머리에 모듈이 박혀 있고, 뼈가 철로 만들어져 있슴다."


"그렇지."


"저도 잘은 모르지만, 한 1000년은 살 수 있다고 들었슴다."


"어우, 부럽네."


"그리고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철충한테 공격당하지도 않고... 휩노스 병에 걸리지도 않슴다."


"그게 제일 부럽구만. 요새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거든."


"그래서 다른 인간님들은 저희를 싫어하시는데... 왜 인간님은 저희도 인격체로 대해주시는 검까?"


"흠. 그래, 뭐. 확실히 인간은 아닐지도 모르지."


"......"


"근데, 너는 대포를 맞으면 어떻게 되냐?"


"그야 뭐... 저는 그냥 브라우니니까... 죽겠지요."


"그리고, 만약에 1000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계속 산다면?"


"그때는... 수명이 정해져 있으니까... 저희도 늙어 죽겠지요."


"그래. 결국 죽겠지. 모로 가든 서울로 가든, 너희도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니야? 내가 너희를 인격체로 대해 줄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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휩노스 병까지 퍼지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자 비로소 죽음 앞에 초연해진 최후의 인류를 써 봄.


약간 드래곤 라자의 헬턴트 영지 느낌으로.


뭐 그동안 구인류가 저지른 악행에 비하면 너무 늦게 깨닫긴 했지만.